바보도 아닌데 바보같이 굴었다.

벽에 기대어서 너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더 이상 어린애처럼 굴지 말아야지, 이제는 그만 제대로 행동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몸이 맘대로 따라주지 않아 속상해 하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손을 들어야했는데.. 옆에서 풍겨오던 그 비릿한 내음이 아직도 코 끝에 스며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어찌 그렇게 단단한지 너는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손을 들었다.

이렇게도 올곧게 서던 너인데.. 나를 도와주러 선뜻 손을 내밀어 오던 너였는데, 나는 간간히 너를 향한 미약한 증오를 품었다. 정말 이기적이기도 하였다. 겁쟁이인 나를 대신하여 항상 앞서서 대신 모든 풍파를 맞아주며 이끌어주던 너인데, 그런데 나는 그런 너를 가끔 미워했으니.

차라리 네가 나를 내쳤다면, 도와주러 오지 않고 그저 외면했다면, 손을 들지 않고 거짓으로 살아남은 나를 질타하였다면 이렇게도 너가 밉진 않았겠지.

“하.., 말도 안되는 억지네...”

나 자신조차도 헛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이기의 극치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품게 되는 건 멈출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너를 좋아하고만 싶다. 더 이상 자질구레한 감정들에 휩싸여 같잖기만 하는 증오를 품는 건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도, 이 감정들에 혐오를 품고 괴로워하는 것도 힘들뿐이니 이제 그만 전부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나를 꽁꽁 싸매어 놔주지 않았다. 분명 내 감정인데, 내 뜻대로 굴어주지 않아 미약한 속상한 마음마저 든다.

차라리 티만 내지말자고 결심하면서도 너의 그 얼굴들을 보면 내 결심은 절벽위에 쌓아놓은 돌탑마냥 쿵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첫 눈에 반했다고 했던가. 얼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했다. 성격마저 성실하고 반듯해 보이는 게 자기 취향이라며 설레어하는 모습이 어찌 그리 야속하던지.

우습게도 내가 조금만 더 의지되는 사람이었다면, 그 시절들의 너도 나를 그런 눈으로 봐줬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 시절 내가 너에게 설레어 하듯이 내가 너에게 다가가면 얼굴을 붉혀오는게 너도 나와 같지 않을까 착각하며 상상하곤 했었다. 바보같기도 하지. 너는 그냥 익숙하지 못한 접촉에 어색해할 뿐이었다.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러써도 망한 주식들이라 그런가 짝사랑, 망한 사랑, 친구 사랑 응원하는 마리아 밖에 루트가 안떠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