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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욕망] 마왕의 탄생

연보라눈꽃(112.151) 2021.02.01 16:07:12
조회 704 추천 22 댓글 8
														

(ㅎㅎ 처음 쓴 글이야 재밌게 보고 쌔게 피드백 해주면 고맙어)


“타나 거기 있어?”


가장 해가 뜨거운 시간에.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만나는 시간에 나는 나뭇잎으로 덮인 땅구멍 옆에 쪼그려 앉아 타나를 불렀다. 오늘은 뭐하고 놀까? 어제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위에 있는 둥지를 보고 거기 있는 아기새들에게 먹이를 줬다. 삐약거리는 새들이 계속해서 먹이를 조르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었지. 그쪽 땅에 살아서 그런지 그 새들은 머리에 뿔이 나 있어서 더 신기했다. 오늘도 그 새들이 잘 있는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아님 다른 동물 예를 들면 토끼를 잡아볼까? 토끼? 맞아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결국은 토끼 덕분이다.





나는 두 눈의 색이 다르다. 왜 색이 다른지 엄마에게 물어보면 엄마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살짝 아련한 눈빛을 띄우시며 아직 몰라도 된다며 손을 내저으셨다. 엄마는 내가 왜 나는 아빠가 없는지 물어볼 때에도 왠지 같은 반응이셔서 나는 그냥 내가 아빠가 없는 거랑 내 두 눈의 색이 다른 게 상관이 있나보다 하고 말았다. 애들이 나보고 아빠가 없다고 놀리고 두 눈이 색이 다른 괴물이라고 놀려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뭐 어떡해. 그런데 그렇게 계속 놀리는 애들과 같이 노는 건 싫어서 낮에는 집에서 엄마랑 같이 바느질을 하거나 엄마가 밭일을 하러 나가실 때에는 그냥 누워서 하늘을 봤다. 외로운데도 외로운지도 모르고.


그러다 진짜 답답하면 마을 바깥의 커다란 벽을 보러 갔다. 거기는 마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말에는 벽 너머에는 악마가 산다나. 이 벽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지은 게 아니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가 어릴 적에도 그냥 서 있었다고 했다. 그 벽은 여름에도 서늘하고 해가 제대로 비치지 않아서 무섭게 컴컴했다. 마을 어른들은 불길하다고 벽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반대로 나는 그것 때문에 벽 가까이에서 놀았다. 벽 주변에는 아무 사람도 없고 그럼 날 놀릴 사람도 아무도 없고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나를 보면서 쑥덕쑥덕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벽 주변에 누워서 벽을 넘는 상상을 했다. 이 마을에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면 혹시 벽을 건너면. 그러니까 혹시 악마는 나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해가 가장 높이 오래 뜬다는 더운 날에 나는 또 하늘을 보다가 지쳐 벽으로 갔다. 서늘한 벽에 기대서 나비나 개미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는데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온통 검고 이마에 뿔이 난 토끼. 토끼가 무슨 양이나 염소도 아니고 이마에 뿔이 있다고? 진짜 신기하다. 궁금한 마음에 나는 너무나 더움에도 토끼를 쫓았다. 주변을 막 뛰어다니다 토끼가 벽 밑을 막 파면서 도망치길래 나도 아무 생각도 없이 자연스레 그 구멍 속으로 쫓고 막 파고 들어가다 결국 토끼를 잡았을 때에는. 하늘에 검은 태양이 떠 있었다.


“거기 누구야?”


이게 무슨 일인지 가만히 태양을 바라며 멍 때리다 들린 낮지만 맑은 목소리.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내 품속에서 바둥거리는 토끼같이 머리에 뿔이 하지만 양 옆으로 뿔 두개가 달린 애가 길다란 나뭇가지를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


머리에 뿔 그리고 검은 피부에 빨간 눈동자. 내 오른쪽 눈동자와 같은 색깔. 나는 그 애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내 출생의 비밀을 깨달았다.


“아빠? 아니 엄마?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빤데 엄마야. 근데 나랑 나이도 비슷한 거 같은데 내 아빠가 될 수 있나? 아니 뭐 이런 이상한 일이 세상에 다 있담.”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나저나 너 진짜 누구야? 머리에 뿔이 없으니까 외인같기는 한데 눈 한쪽은 내인이랑 똑같네. 와 진짜 이상한 애구나 너.”


내가 계속 버둥거리는 토끼를 품에 안고 고민에 빠져 있자 그 애는 어느새 내 가까이 다가와 가만히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뭐야 노크는 하고 와야지.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가까이 와. 깜짝이야. 근데 넌 또 누구야? 외인? 내가 외인이면 넌 내인이야? 너 악마 아니야?”


“아 귀야. 목소리 좀 낮춰봐. 너 진짜 목소리 크구나. 그나저나 갑자기 나보고 악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외인들은 우리를 악마라 부르나 봐?”


걔는 어느새 내 옆에 걸터앉아 내인과 외인에 대해 말을 해 주었다. 벽 안에 살고 있는 아니 머리에 뿔이 자란 사람들이 내인이고 벽 밖에 살고 있는 머리에 뿔이 없는 사람들이 외인이라고. 그리고 이쪽 세계는 사람들이 정기로 이루어져 있고 넘치는 정기를 뿔에 저장하기 때문에 머리에 뿔이 있다고 말이다. 


“근데 넌 나 보고 안 놀랐어? 나는 너희가 있는지도 몰랐거든. 머리에 뿔이 있다니 진짜 신기하다 좀 만져봐도 돼?”


“흐앗 야! 아으.. 뭐하는… 거야.. 흐으 손.. 떼라고 으읏!”


“와 조금 몰랑몰랑하네. 되게 느낌 좋다. 근데 왜 그래? 기분 나빠? 미안 미안. 이제 그만 만질게.”


걔는 왠지 몸을 잘게 떨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나를 노려봤다. 우와 이렇게 검은데도 빨갛게 변하긴 하네. 진짜 신기하다.


“야!!! 갑자기 뿔은 왜 만져! 아니 허락도 안 맡고 그냥 만지다니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이상하네. 너 친구 없지?”


“헉 어떻게 알았어? 나 친구 없어. 미안 그래서 내가 좀 예의 없었나 보다. 근데 또 야야거리는 건 좀 그렇다. 내 이름은 리브야 넌 이름 뭐야?”


“아니 진짜 없어? 아니 그럼 내가 미안. 근데 뿔은 만지는 거 아니야. 엄마가 그러는데 뿔은 진짜 친한 사람. 진짜 진짜 친해서 그 사람과만 평생 같이 지내도 좋을 것 같은 사람한테만 만지게 하는 거래. 내 이름은 타나야.”


그 애가 내민 손을 잡았다. 타나의 손은 조금 차가워서 나는 오늘이 일 년중 가장 더운 날이라는 사실을 조금 잊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만나 같이 놀았다. 만나는 시간은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 하루의 한가운데. 그렇게 나는 집에서 또 하늘을 보며 누워있다 너무 더워서 지치면 그때 그 애를 만나러 나갔다. 나는 타나를 만나서 외로움을 알았다. 외로움은 타나가 나에게 없는 시간이야. 지금까지는 답답한 뭔가가 나를 뜨겁게 채울 때 그게 뭔지 모르니 없앨 생각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누워 스스로를 태웠다. 이제는 뭔가가 나를 뜨겁게 채우면 타나를 만나러 갔다. 타나를 만나 같이 놀면 뛰면서도 시원했으니까. 타나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나를 만났을 때 타나가 짓는 미소나 그 애가 흘리는 웃음소리에 빠지면 나는 마음 속까지 시원해서 그때까지 몸 속을 덥게 괴롭히던 외로움을 금새 없앨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커가며 그때마다 살짝 달라졌다.


“리브 하아.. 잠깐만 하으.. 우리 여기서.. 흐.. 더 하면 안돼..”


“왜? 좀만 더하자. 이렇게 좋은데 왜 그만하자고 한데?”


“우리.. 흐으.. 이러다.. 임신.. 할 수도 있어..”


“엥?”


타나는 내인은 입맞춤만 해서도 임신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물론 오직 입맞춤만 해서는 보통 임신이 되지는 않고 뿔을 만지면서 계속 하고 또 조금 더 내밀한 뭔가를 하면 임신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마을 내에서 외인이 내인과 입맞춤을 하다 임신을 한 경우가 있었다고.


“헉 이 마을에도 외인이 있어? 되게 신기하다. 가끔씩 우리 마을에서 사람들이 종종 없어지던데 그 사람들이 여기 있나 보네? 근데 너 말하다 보니 호흡도 돌아오고 좀 괜찮아 졌나 봐? 우리 좀 더하자. 무슨 임신은 임신이야 보니까 한 만명 중에 하나 생길까 말까 한 일이겠구만 뭐.”


“아니 리브 잠깐만 흐읍!”


나는 바싹 붙어서 우리 사이에 원래 어떤 공간도 없었던 것처럼. 타나의 차가움에 내가 흠뻑 젖도록. 그렇게 처음부터 나에겐 뜨거움이 없었던 것처럼. 타나의 차가운 팔이 나를 빈틈없이 감싸 안고 나를 차갑게 가두는 것을 느끼며. 타나의 혀가 내 뜨거운 입을 차갑게 물들이며 내 혀 아래가 아리도록. 마음대로 혀를 엉키며 차가운 쾌락이 조금씩 커져가기를. 가끔씩 고개를 돌려가며 입이 떨어질 때 나오는 타나의 신음은 언제나 뜨거워서. 내가 타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기뻐서. 타나가 그렇게 나의 뜨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도록. 나는 타나의 이를 골고루 쓸어 훑으며 우리가 방금 먹었던 딸기의 새콤함을 계속 번지게 타나가 나중에도 딸기를 먹을 때면 이 순간을 계속 떠올리도록. 그리고 타나도 내가 없으면 자연스레 번지는 뜨거움에 나를 그리워하기를 혀를 쓰며 빌었다. 




첫맞춤은 딸기의 맛. 우리는 계속해서 입맞춤의 맛을 늘려갔다. 그런데 가끔씩 해가 질때까지 입맞춤을 하면 급격하게 피곤함이 몰려와서 그 날은 정오까지 잠을 잤는데. 타나는 입을 맞추다 갑자기 크게 기분이 좋아지면 그게 흡정을 당하는 거라고 알려줬다. 흡정. 나의 정기. 타나는 정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면. 타나는 내가 되는 걸까. 타나를 이루는 모든 정기가 다 나의 정기이기를. 그렇게 하고 싶다면 별수 있을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타나와 입을 맞출 수밖에. 






“리브! 사랑해!! 너무 너무 고마워!!! 평생 아니 항상 함께 할게. 정말로 언제나 행복하게 해줄게. 눈에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손에 물 한 방울 묻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게 해줄게. 너무 사랑해 정말로 고마워!!!”


“뭐야? 너 취했니? 술은 내가 완전히 저쪽 동네에서 뜬 후에 같이 처음으로 마시기로 했잖아. 참나 왜 이렇게 과장이래?”


“리브 너 임신했어.”


“진짜?”


그 날 처음 뵌 타나의 부모님… 아니 모모님?은 갑자기 나돌아다니던 딸이 임신한 애인과 돌아왔다고 하니 정말로 놀라셔서 갑자기 타나의 뺨을 때리시다가 나를 보고 쑥스럽게 인사하시고 다시 타나의 등짝을 때리시는 등등 무슨 난리를 치셨지만 사태가 어느정도 정리되고 난 뒤에 제대로 인사드리니 정말 친절하고 따듯한 분들이셨다. 타나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이쪽 어머님을 닮았고 둥글고 쳐진 눈꼬리는 저쪽 어머님을 닮았구나 되게 신기하다. 우리 엄마는 안 왔지만 상견례 하는 거 같고 되게 느낌 이상하네.




그날부터 난 타나의 부모님과 함께 타나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정말 타나와 모모님은 그때 고백할 때 말한 것처럼 내가 뭐 집안일이라도 좀 도울까 하면 손사레를 치며 말리셔서 가만히 앉아서 태명을 고민했다. 원래 태명은 간단하게 지어야 악마가 안 잡아가니까. 아니 생각해보니 난 지금 악마 소굴에 있는 거네. 그럼 뭐 태명이 아니라 그냥 이름을 지어야겠다. 


“여보 우리 아이 이름은 뭘로 지을까?”


“리브? 여보라니?”


넌 제발 눈치도 없냐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하하 아이쿠. 우리 여보 여보 여보. 근데 태명부터 지어야 하지 않아? 내인도 태명 같은 게 있나?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짓는 이름이 따로 있거든. 진짜 이름을 뱃속에서 미리 지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서”


“우리도 있어. 그런데 우리는 태명을 지으면 악마가 잡아간다고 그랬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이미 악마랑 결혼한거야. 맞다 근데 우리 결혼식은 언제 해? 완전 속도위반이다 우리.”


“내인들은 결혼식을 아이의 첫 돌 때 해. 그 전에 헤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이랑 같이 일년동안 잘 지내고 결혼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 거래. 우리 결혼식은 어떻게 할까? 우리 결혼 완전 크게 하자. 사람들은 적어도 백명은 모으는 거야.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 우리 아기랑 우리 여보랑 같이 웃으면서 막 하늘에서는 꽃잎이 떨어지고 모두의 축복에 휩싸여서 정말 반짝일 것 같지 않아? 헤헤 흡 여보 지금은 입맞추면 안 된다니까?”


“흡정만 안 하면 입 맞춰도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어? 여보가 너무 귀여워서 못 참겠어 한 번만 하자 응?”


임신 중에 하는 애정행위는 아이 발달에도 좋대. 우리 아이 여보처럼 귀엽고 똑똑하게 태어나야지. 안 그래? 타나와 오랜만에 하는 입맞춤은 여전히 딱 맞게 차가워서 내가 오랜만에 제자리를 찾아간 듯한 느낌에 무심코 흡정의 직전에 직전까지 맞대고 있었다. 큰일날 뻔했다. 임신 중 흡정하면 아이의 기운까지 빨아들일 수 있어서 위험한데.






“나 잠시만 저쪽에 다녀올게.”


“뭐? 안 돼 위험해. 우리 아이 낳고 가도 괜찮지 않을까? 임신 중이라고 아무 곳도 못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하단 말야”


“맞아 여보 말도 맞는데 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여보도 알겠지만 나 혼혈이잖아. 그래서 엄마에게 나 임신한 것도 빨리 알려주고 싶고. 또 엄마도 여기에 넘어왔으면 좋겠어. 나는 어머니가 누군지 모르지만 엄마는 어머니가 누군지 알 거 아니야. 우리 결혼식에 내 엄마랑 어머니도 계셨음 좋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 잘 기다리고 있을 수 있지?”


타나에게 짧은 입맞춤을 보내고 나는 집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항상 나 하자는 대로 들어줬던 타나였는데 난 왜 타나의 그 부탁 하나를 못 들어줬을까. 그랬더라면.




“오랜만이야 엄마”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많이 말라 있었다. 정말 놀라셨겠지. 딸아이가 무슨 반년만에 나타났으니. 그것도 배가 산처럼 불러서. 나는 그 밤에 엄마와 깊은 말을 나누었다. 내가 사실 아빠가 아니라 어머니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부터. 내 아이도 아빠가 아니라 어머니가 정기를 준 아이이고. 그리고 또 아빠가 없던 게 늘 슬펐지만 그래도 엄마도 늘 열심이셨던 걸 안다고 지금껏 못했던 말까지 모두 꺼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쪽으로 같이 떠나자고. 나는 내 어머니를 찾고 엄마도 엄마의 반쪽을 찾고 내 결혼식에 와 달라고 그렇게 말을 전했다. 우리는 오늘 밤은 자고 내일 아침에 같이 저쪽으로 떠나기로 했다.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횃불이 타오를 듯 빛나는 바깥은 고함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쳐서.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팠다. 악마를 죽여라. 저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악마를 죽여라. 악마를 죽여라. 끌려가서 올라간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는 무섭게 커다랗다. 


악마의 씨를 밴 년을 죽여라! 악마를 죽여라! 


쌔게 붙들린 팔이 아파 졸음이 멎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가 악마의 씨를 밴 걸 어떻게 알았지. 아님 그냥 몇 달이 지나고 돌아온 여자가 배가 불러있으니 악마를 품었다고 의심하는 걸까? 부지런히 생각을 하다 팔에 빙빙 돌아간 밧줄이 아프게 짓눌렀고 다리 목을 연달아 감싸 매어 그대로 십자가에 단단히 매달렸다. 그리고 미끈거리게 뿌려진 이 액체는 기름이다. 그렇다면 날 불태워 죽이려고 하는 거구나. 불을 지펴서 악마를. 


악마는 본디 차갑게 태어나서 불에 약해! 불을 지펴라! 악마를 죽여라!


악마를 죽여라!


악마를!


타나. 타나. 너의 이름을 외치면 이 뜨거움이 줄어들까. 몸의 안팎이 뜨거워. 나를 태워 올라서 못 버티겠어. 그러면서도 나의 안보다 밖이 더 뜨거운 이유는 배 속에 타나가. 나의 타나의 반을 타고난 아이가 있기 때문일거야. 타나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에 마음의 뜨거움이 줄어든다. 타나. 정말 고마워. 나에게 차가움을 알려줘서. 그런데 타나 왜 거짓말한 거야? 나 항상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잖아.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 눈에 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해준다고 했잖아. 나를 잔뜩 기대하게 하고서는. 앞으로는 정말로 차가운 나날만이 있을 거라고 약속해서는 왜 거짓말한 거야. 너무 뜨거워. 이렇게 뜨거운 적이 없었어. 최악으로 뜨겁고 끔찍하게 외로워. 타나의 아이와 함께인데도 이렇게도 뜨겁단 말이야.



뼈까지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커다란 쾌감을 느꼈다. 



눈을 떴을 때 마을에는 온통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니 차갑지 않으니 재인가 봐. 마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건물도 없었다. 크게 한바퀴를 돌아보니 온통 하얀 재여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멍하니 있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에 아래를 내려보고는.


편평하다.


비명을 질렀다. 






“여보!!! 괜찮아? 리브…”


나는 온통 미지근한 그래서 잔인한 잔잔함 속에서 차가움을 느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크게 안았다. 타나. 늦었어.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근데 나 이런 생각을 했어 한 번 들어 볼래?


“외인들을 전부 죽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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