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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욕망] 언니에게서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2)

0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07 23:58:45
조회 621 추천 18 댓글 3
														

전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707400&search_head=60&page=1


 해가 바뀌고 아르는 드디어 염원했던 16살이 되었지만, 특별히 변한 게 없자 실망했다. 달라진 눈높이와는 상관없이 히는 자신보다 또 훌쩍 앞서 있었다. 게다가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16살의 히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조금도 예상이 되지 않는 다는 거였다. 아르는 여전히 히를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그 동안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거라곤 이 마을에서 인간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프루티가 아직 마족의 지배하에 놓이기 전부터 이 마을엔 마족과 함께 인간과 여러 이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살고 있었다기보다는 대부분이 변방의 마을에서 납치당한 사람들이었고, 릿과 셸도 그런 방식으로 스피엘과 만났다.

초기에는 흡정을 할 수 없는 이종족들의 취급은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 쥐도 새도 모르게 가족구성원들 중 인간만 납치되어 이쪽으로 오는 경우도 많았다. 릿과 셸처럼 가족단위로 끌려오거나 마을 단위로 납치당한 사람들을 운이 좋은 쪽에 속했다.


 지금에서야 어느 마을이든 인간과 마족, 이종족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게 자연스럽게 됐고 서로가 공존하는 느낌이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유독 이 마을 인구수에서 인간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이것은 아르가 아무 문제없이 매일 다른 인간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아직도 당시의 썩어빠진 문화들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잘나가는 고위직의 마족들 중 몇몇은 아직도 인간을 정기 몇 번 빨아주면 좋아 죽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마족들의 자식도 아르와 히가 다니는 학교에 꽤 있었고, 종종 상대의 동의 없이 인간을 덮치는 녀석들도 있었다. 물론 걸리면 처벌을 받긴 했지만, 흡정을 당하는 인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아도 마족들은 은연중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아르는 그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히가 이 학교에서 그런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열이 뻗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길 정도로 생각 없이 구는 건 이제 극소수의 마족들뿐이기 때문에 아르가 우려하는 일이 있었을 가능성은 아주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하는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르는 마음을 진정 시키기 위해 방에서 나와 물을 들이키던 중 익숙한 발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온 히와 눈이 마주쳤다. 히는 별 말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르의 눈을 피하며 컵을 집었다. 아르는 히와 단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얼마만인지 헤아려봤다.


 ‘마지막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새벽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에 취했는지 아르의 입에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튀어나왔다.


 “언니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없어.”


 “그럼 그...해본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지정하지 않았지만, 히와 아르는 서로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조용한 방안에서 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히는 지금 이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자다 깬 새벽에 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왜 궁금한데?”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아르는 살짝 기가 죽었다. 찬물을 잔뜩 들이켜 몸이 조금 진정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은 히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언니는 학교 얘기 같은 거 잘 안 해주니까. 요즘 상급반에선 어떤가 해서...”


 “딱히 별다를 건 없어. 이젠 내년이면 졸업이라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기도 하고.”


 히는 학교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인간인데도 마법을 다루는데 특화된 이종족들과 비교 했을 때 전혀 손색이 없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외의 학업 성과도 우수했다. 졸업이 가까워진 지금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르는 모르고 있지만, 다른 마족들은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와 실력에 비해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던 히에게 한 번이라도 다가가 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최근 히는 학교 이야기만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일절 아르에게 하고 있지 않았다. 아르는 아르대로 다른 여자들과 만나느라 바빴고, 히는 처음과 달리 점점 행실이 나빠지는 아르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따라서 히와 아르의 대화는 단절 된지 오래였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이란 단어는 아르의 뇌리에 날아 들어와 꽂혔다. 아르는 히가 졸업하고 나면 이대로 서로에게 말도 걸지 않는 상태로 영영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정도면 졸업 후에 마왕성이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겠네.”


 “, 그렇지.”


 히는 졸린지 눈을 깜빡이며 대충 대답했다. 히의 그 대답은 아르가 가지고 있던 불안한 마음이 가속시켜 아르를 조급하게 했다. 아르는 반사적으로 히를 끌어안았다. 품안에 들어온 히의 몸이 조금 떨리는 게 느껴졌다. 맨살이 맞닿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따듯함에 아르는 자칫 정신을 놓았다간 자신도 모르게 히의 정기를 흡수해 버릴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싸우기라도 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혹은 언니가 그렇게 재수 없기만 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몸에 아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언니와 같은 인간의 생활을 하던 때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르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언니는 나 싫어하지 않지?”


 “...안 싫어해.”


 히의 무미건조한 대답엔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아르는 만족했다. 언니가 자기를 싫어하지 않는 다고 말해준 것이 기뻤다.


 ‘나 언니를 좋아하는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아르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결심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아르는 자주 히의 옆에 붙어 있으려 했다. 히는 불편해 하면서도 그런 아르를 매몰차게 내쫒지는 않았고, 이것이 두 사람이 종종 절대 두 마디 이상의 대화로는 이어지지 않는 이상한 문답을 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그날 밤 이후 아르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르의 관심은 주위의 다른 여자들에게서 다시 히로 바뀌었다. 한동안 내팽겨 두었던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히를 앞지르는 게 아니라 히의 옆에 있고 싶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의 시선도 좋았지만, 자기가 히를 볼 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벅차오르는 것처럼 히도 그렇게 자신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히는 지금 방에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버려 굉장히 곤란했다. 웬일로 학교가 일찍 끝나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는데,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한 것 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보나마나 또 아르겠지 생각하며 기척을 죽이고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르가 히의 브래지어를 꺼내 들고 있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해버린 것이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장난인가 싶어 문을 열려는데, 아르는 이제 히의 속옷을 입어보고 있었다.


 ‘아니, 입어봤자 사이즈도 안 맞을 텐데.’


 히는 동생의 해괴한 모습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헛기침을 했다. 아르는 급하게 속옷을 벗어 서랍에 밀어 넣었고, 히는 모르는 척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처 윗옷을 입을 시간까지는 없었던 아르가 당황해하며 앞을 가렸다.


 “노크 좀 해!”


 “여긴 내방이잖아. 그런데 뭐 옷이라도 빌리려고?”


 “, 으응, 맞아. 근데 이제 됐어.”


 아르가 허둥지둥 자기 옷을 주워 입었다. 손이 꼬이는지 단추에서 손가락이 헛돌면서 히의 눈에 아르의 가슴이 언뜻 들어왔다. 마족이 2차 성징 전에는 성장이 느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르는 나이에 비해 너무 꼬맹이 같았다.


 ‘어차피 성격도 딱 애 같으니까 상관없나.’


 히는 아르를 빤히 처다보며 아직 까지는 어린이용 캐미솔 정도로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르를 떠올리고 보니 슬슬 주니어 브라 정도는 사줘도 될 것 같기도 했다. 엄마들에게 찾아가는 게 아니라 굳이 자기 속옷을 꺼내 입어 봤다는 점에서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났지만, 안쓰러우니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아르가 왜 그렇게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 하는지는 잘 이해가되지 않았지만, 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들은 동생이란 건 원래 뭐든지 언니를 따라하고 싶은 법이라고 라고 말했다.


 ‘존경의 마음으로 따라하고 싶어 한 다기보단 단순히 날 이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히는 아르가 매사에 눈치 없고 시끄럽지만 자신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점은 조금 동생 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아르의 생일에는 제대로 언니노릇을 한 번 해볼까 하는 변덕이 들었다.

.

 아르의 생일 날 저녁, 축하가 끝난 히는 방에 돌아와서 시계를 쳐다보며 아르가 어느 타이밍에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올지 가늠해 봤다. 자신의 준 선물을 뜯어보고 경악했을 아르의 얼굴을 예상해 보니 벌써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 곧이려나.”


 히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 밖으로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끄럽게 방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말이 안 나오는 듯 입을 웅얼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뒤에 숨긴 손을 꼼지락 거리는 아르가 있었다.


 “보고 있었으면 말을 하라고!”


 마침내 폭발한 아르가 히에게 뒤에 숨기고 있었던 속옷을 던졌고, 히는 답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반응이 웃겨서 한참을 크게 웃었다.


 “거울을 한참 들여다봤으니까 그게 마음에 들었나 해서. 어차피 새 거였으니까 줄까 했지.”


 히가 일부러 능글거리는 말투를 하는데,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아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입을 꾹 다문 모습이 곧 울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히는 너무 놀렸나 싶어 방에 숨겨두었던 진짜 선물을 꺼냈다.


 “이리 와봐.”


 히는 아르의 등 뒤에서 서서 윗옷을 벗겼다. 뭐하는 짓이냐며 버둥거리는 아르를 힘으로 누르고 준비해뒀던 상자에서 주니어 브라를 꺼내 입혀줬다. 그러자 이게 인간의 악력이 맞냐며 투덜거리던 아르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눈대중으로 골랐는데, 다행이 딱 맞네. 이런 건 사이즈가 잘 맞는 걸 입어야하니까.”


 히는 자신의 안목에 감탄하며 속옷 위로 아르의 가슴을 매만졌다. 빈 공간은 없는 걸 보니 잘 고른 것 같았다.


 “, 하지마..!”


 아르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몸을 빼고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선물이 마음에 드는 듯 한참을 두리번 거리는 아르를 보며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찬찬히 살펴보면 아르는 뿔이나 꼬리 같은 것도 없고 꽤나 인간 같았다. 반은 인간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귀가 인간의 것이랑 다르게 뾰족하게 생겼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로 마족 같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엘 엄마도 별로 마족 같지는 않지.’


 스피엘은 머리의 양쪽에 자란 뿔이나 피부색이 외견상으로 누가 봐도 마족이었음에도 히는 그렇게 느꼈다. 이어서 히는 학교에 있는 다른 마족들을 떠올렸다. 제 또래의 마족들은 하나 같이 히만 보면 뻔히 꿍꿍이가 들여다보이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놈들뿐이었다.


 히는 그래서 마족들이 싫었다. 다른 인간 친구들은 마족과 하는 걸 좋아했지만 히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하는데 기분 좋아져야 한다는 게 자신도 이성을 가진 사람인데 스스로가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동물 같이 느껴져서 불쾌했다.


 ‘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히가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 친구들이 곧잘 했던 말이다. 히는 릿을 닮아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어느새 아르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기분 좋은 표정을 하며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있었다. 늘 별 생각 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 같은 아르를 보며 히는 자기가 정말로 너무 어렵게 생각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것도 가져가.”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히는 슬며시 웃으며 아르의 손에 아까 던진 속옷을 쥐어줬다. 아르는 아직도 히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한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히는 생각이 투명하게 보이는 아르의 머리를 꾹 눌러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 줄게. 금방 나만큼 자랄 거잖아?”


 “, 당연하지! 조만간 내가 앞질러서 깜짝 놀랄걸?”


 아르는 언제나처럼 호들갑스럽게 우쭐거리며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갔다. 히는 아르가 떠나 겨우 조용해진 방 안에서 그 짧은 새에 가지각색으로 변하던 아르의 웃긴 표정을 떠올리며 마족이건 뭐건 아르는 아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안심되는 기분으로 침대에 누웠더니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조금 유치하게 굴었나.’


 편안한 잠에 빠져들면서 히는 아르랑 같이 있으면 자신까지 바보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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