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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피카대회]이 사랑을 영원케 하소서

Ly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13 10:03:52
조회 451 추천 20 댓글 8
														

  나는 새하얀 눈을 사랑했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순수를 사랑했다. 그 위에 흘려낸 한 방울 핏자국은, 황홀했다. 직접 빚어낸 그 작은 오점이, 순수의 파멸이 얼마나 기꺼운지. 오직, 자신의 결심으로 물들여본 자 만이 이해하리라.


  나의 고양이 펠샤. 그러니 너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잡티 하나 없던 새하얀 털. 빛나던 푸른 눈동자. 그런 네가 죽어가며 기대던 모습은 정말로 애처로웠거든. 내가 준 먹이 때문에 앓으면서도, 주인이라며 따르던 네가, 바르르 떨며 속을 게워내 드레스를 더럽히던 네가 말야. 아아, 너는 정말 훌륭한 고양이었단다.


  그래. 아가씨도 정말 아름다웠지.


  “안녕하세요, 엘렌님. 이번에 시녀로 발탁된 라첼레에요.”


  이름처럼 빛나던 아가씨. 자그마한 불쾌함 정도는 환한 웃음으로 지워버리던 모습. 햇살처럼 빛나던 금발. 겨울에도 푸른 숲 같은 눈동자. 고귀하고 고귀한, 노망가의 공녀. 값비싼 향유로 몸을 씻고, 이국의 천으로 드레스를 지어 입히던 가문의 보석. 신께서 흩뿌리는 눈보다 새하얀 그녀.


  “좋은 말동무가 되어줘요. 라첼레.”


  저 밝은 미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공작가의 시녀가 되려던 이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저 그런 귀족가의 여식이 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무엇까지 하여야 했는지. 그렇지만, 결국 남아있는 건 보잘것없는 가문의 나였다.


  “물론이죠. 공녀님.”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꽃을 꺾어 내 품에 가둘 수 있을까. 그래, 나 없이는 살 수 없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오직 나만을 태양으로 알도록 해야지. 아가씨도, 공작님도 나만이 유일한 시녀로 생각되도록. 가장 완벽하고 헌신적으로. 그대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잎으로 차를 끓이고, 새하얀 밀가루와 투명한 설탕으로 꽃잎 같은 디저트를. 당신만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모두에게 비참함을. 그들의 빛을 앗아, 당신을 비추도록.


  “정말, 오늘 샤론 양은 심했다니까.”


  장난스러운 투덜거림. 오로지 나만 들을 수 있는 지저귐.


  “아가씨가 너무 아름다우시니까요. 질투하여도 어쩔 수 없지요.”


  질투하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가장 아름답게. 그 몸에서 오직 달콤한 장미 향이 뿜어지도록


  “샤론 양은 샤론 양대로 아름다운데 말야.”


  아아, 순수한 우리 공녀님. 그렇기에 다들 그 눈밭을 짓밟으려 하는걸. 하지만 걱정 말아요, 제가 티 하나도 생기지 않게 지킬 테니.


  “다들 조금 더 나은 데 힘을 쏟아야 하는 데 말예요.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 저 얇은 목이 언제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려 기대게 될까.


  “알아주는 건 라첼레 밖에 없다니까.”


  입가에 맺히는 분홍빛 작은 초승달. 그 어떤 태양보다 밝은 달. 나를 안는, 가늘디가는 팔. 그 아래 뼈의 곡선마저도 아름다운 아가씨.


  “어머, 아가씨, 그러면 화장이 망가져요.”


  “그래도, 이런 얘기까지 들어주는 건 라첼레 뿐인걸.”


  아아, 이제는 나를 믿으리라. 무엇이 일어나도 믿어주리라.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어. 시녀를 한 명 더 구하자고. 안 그래도 하녀들이 들 시중까지 네가 들어주느라 힘들잖아. 같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야.”


  진심이 담긴 걱정. 하지만 아가씨, 저는 괜찮답니다. 오직 저 하나면, 영원히 충분하답니다.


  “고마워요, 아가씨.”


  그러니까, 태연하게 이야기하자. 그 누가 오더라도.


  “반갑습니다. 엘렌 공녀님. 엘로이즈입니다.”


  미움이 드러나지 않도록. 저 지저분한 갈색 눈과 불길한 검은 머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아, 어떻게 나만이 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저들을 물러낼 수 있을까. 아아, 그래, 그렇게 하자. 악마 같은 시녀와 그 유혹에 빠져든 하수인들. 공녀님을 올곧게 감싸는 천사, 날개에 안겨, 깃털을 더럽히는 성녀. 그것을 오롯이 받아주는 이.


  “공녀님. 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늘 차를 맡은 것은 엘로이즈. 첫 티타임에서 이 악마의 무능은 드러나리라. 가장 고운 찻잎이 사라지고, 썩은 찻잎이 섞인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어설픈 실수가 드러나리라.


  “읍…”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공녀님?”


  그렇다. 이 무능한 악마는 그조차 알지 못하고 그대로 차를 끓여 대접했다. 맑고 산뜻한 향기, 그 뒤를 치고 올라오는 축축하게 썩은 차의 구린내. 저절로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 그렇지만 아가씨는 그마저도 괜찮다는 것처럼 금방 웃는 표정을 지으신다.


  “……!”


  그렇지만, 유일하게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


  “누가, 누가 찻잎에 손을 댄 겁니까!”


  자기의 실수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마.


  “저기…”


  쩔쩔매는 하녀, 곤란한 공녀님.


  “엘로이즈, 조금만 조용히요.”


  그제야 잘못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지는 악마.


  “죄송합니다, 공녀님.”


  그럼에도, 화를 숨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모습.


  “하녀들이랑 제가 나중에 얘기해볼게요.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엘로이즈.”


  귀한 찻잎에 하녀들이 손을 댔을 리도 없지만, 다만 감싸주는 상냥한 공녀님.


  “라첼레, 미안하지만 차를 새로 끓여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아가씨.”


  새 주전자, 새 그릇, 새 찻잎. 달콤한 향만 우러나도록 살짝. 부드러운 찻물이 아가씨의 목을 타고. 억지로 짓는 표정이 아닌, 풀어진 부드러움. 무능한 자의 놀람. 그래요. 나는 아가씨만을 위한 완벽한 시녀랍니다.


  “역시, 라첼레가 끓여준 차가 제일 맛있어요.”


  “공녀님, 저는…”


  입술을 깨무는 엘로이즈.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해보려는 거겠지.


  “그럼, 다음엔 엘로이즈가 다시 끓여줄래요?”


  “…물론입니다. 공녀님.”


  저 굳은 표정. 하지만 어떤 결심을 하여도 그 무능은 벗겨내지 못하고, 악함이 지워지는 일도 없으리. 그 마음속 깊은 곳의 독이 그대를 좀먹으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악이 설 자리는 없을 텐데.


  “아가씨, 곧 파티가 있는 건 기억하시죠?”


  “아, 맞아요. 고마워요, 라첼레. 깜빡 잊고 있었네요. 옷은 맡길게요. 엘로이즈도 라첼레를 잘 도와줘요.”


  “네, 아가씨. 맡겨두세요.”


  “네, 공녀님.”


  내가 아가씨의 시선을 받는 게 못마땅한 눈치. 그래, 아가씨가 아니라 공작가의 시녀라는 자리, 그걸 보고 왔을 뿐이겠지. 그러니 너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대로 추락할 거야. 질척하게 흙에 뒤섞여 녹은 눈처럼.


  “잘 오셨어요. 라첼레님. 곧 있을 파티 의상 때문에 오신 거죠? 저분은 새로 오셨다는 시녀님이신가요?”


  “네, 엘로이즈 님이랍니다. 엘로이즈? 이 분은 항상 공녀님의 의상을 맡아주시던 비비엔느님이예요.”


  “엘로이즈입니다.”


  “비비엔느에요. 그러면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네요. 반가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요. 겨우 이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저 수없이 많은 이국의 값비싼 옷감들. 손끝만 대어도 흐트러질 정도로 섬세하고,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질 것처럼 매끄러운 천. 빛나는 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장식. 웬만한 가문은 손댈 수도 없을 정도의 고급품들.


  “엘로이즈. 엘로이즈는 처음이니까, 옷은 제가 준비하도록 할게요. 엘로이즈는 관리를 맡아줘요.”


  자신이 주역이 아니라는 것에 불만을 품는 표정. 그러나 마지막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 공녀님께 생색을 낼 수 있다는 것에 기쁜 표정. 부담스러울 정도의 물건에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안도. 쉴 새 없이 떨리는 눈꼬리와 입술이 말해주는 악마의 속삭임.


  “공녀님은 상냥하시니까, 노력을 금방 알아주실 거예요.”


  순식간에 열리는 동공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아닙니다. 다만, 걱정이 되어서…….”


  순식간에 입술을 뚫고 나오는 거짓. 너는 시녀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지금도 봐. 우리가 하는 얘기를 반도 알아듣지 못하잖아. 오직 아가씨를 위한 이 옷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잖아. 수많은 천들이 층층이 쌓여 흐드러지는 옷. 세밀한 보석 장식들이 옷을 강조해주는 옷. 주위의 옷들을 죽이고, 아가씨를 빛내줄 옷. 내가 아가씨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관리법은 비비엔느가 잘 알려줄거예요. 조금 까다롭긴 해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거예요.”


  만약, 저 옷에 흠이 난다면, 저 악마는 어떻게 될까. 사소한 흠이라도 생긴다면. 아마 이번에도 그저 웃으시겠지. 하지만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런다면. 아가씨가 모두를 의심하며 나에게 기대어 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시나, 바보 같아. 비비엔느가 한참을 설명하여도, 장식과 천들을 다시 한 번 묻는 꼴이라니. 그렇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 교활한 계략은 성공하지 못할 거야.


  “라첼레, 엘로이즈, 정말 고마워요. 아름다운 옷이네요.”


  “꼭, 파티 때까지 흠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의욕적이다. 그게 어떻게 자신을 갉아먹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한마디 않아도 먼저 나서는 꼴이라니.


  엘로이즈는 그 이후로 바쁘게 움직였다. 천의 올이 상하지 않게, 먼지가 쌓이지 않게, 혹시라도 하녀들이 보석을 뜯어내지 못하게, 눈이 벌게져 직접 옷을 관리했다. 그렇지만, 혼자서 밤새도록 옷을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파티가 하루를 앞둔, 그날 저녁. 악마는 태연하게 잠들어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지도 못하고. 필요한 건, 조그만 칼 한 자루. 하녀가 순찰을 할 뿐, 지키는 이 하나 없는 드레스룸. 보란 듯 걸려있는 아름다운 드레스. 살짝, 아주 살짝 톡. 그저 장식 몇 개만, 춤을 추는 와중에 떨어지도록.


  “공녀님.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화려한 옷 속에서 빛나는 아가씨, 새하얀 눈보다 순수한 아가씨.


  “아가씨는 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부드러운 낯으로, 언제나 웃으시게 북돋워드리자.


  “항상 고마워요, 라첼레. 비비엔느에게도 감사 전해줘요. 그리고 엘로이즈, 상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관리해줘서 고마워요.”


  아아,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답니다. 게으른 악마는 자신의 임무를 잊었고, 그 옷은 이미 망그러졌답니다. 역겨운 악마야, 너는 네 주인의 임무마저 내팽개치는구나!


  “어머!”


  아아, 저걸 보렴. 결국, 떨어져 버렸잖니. 그것이 네 책임이었을 텐데.


  “아가씨, 괜찮아요.”


  조용히 챙겨,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자. 원래부터 그런 장식은 없던 것처럼. 아가씨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작게 고맙다고 말하는 아가씨,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지는 악마. 아하하, 너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야. 깊고 깊은 곳으로 침잠해서, 가장 깊은 심연으로 되돌아가야 하니까.


  “너희들, 준비를 어떻게 한 거냐!”


  당연하게도, 불같이 화를 내는 공작님.


  “죄송합니다. 최대한 확인한다고 하는 것이…….”


  “고정하세요, 공작님. 더 신경을 쓰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엘로이즈 양을 탓하지 말해주세요.”


  불꽃이 향하는 건, 당연하게도 관리를 맡았던 무능한 악마. 그렇지만, 한 번에 타오르면 안 되니까,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리면 안 되니까 나는 감쌀 거야. 서서히, 질척하게 녹아가도록. 잿불처럼 은근하게 타오르도록.


  “죄송합니다, 공녀님. 모두 제 불찰입니다.”


  나와서야, 악마는 아가씨에게 고개 숙인다. 안에서는 공작님께. 밖에서는 아가씨께. 너무나 속이 보이는 역겨운 일.


  “괜찮아요, 엘로이즈. 그럼 사과로, 저번에 약속했던 차를 다시 끓여주시겠어요?”


  아가씨는 그걸 거절하지 못한다. 어떤 실수에도 부드러운 손을 내미시는 분, 그렇지만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반복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엘로이즈 양.”


  “그럼 다구만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아가씨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신다. 내가 찬장에서 꽃 같은 다구를 꺼내면, 탁자에는 이미 찻잎과 설탕이 놓여있다.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투명한 설탕 위로 새하얀 눈꽃이 내린다. 조금, 아주 조금. 눈꽃과 뒤섞이는 결정들.


  잔에 맑은 찻물이 차오른다. 나와 아가씨는 설탕을 한 스푼,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악마는 그냥 한 모금. 달콤한 찻물이, 위험한 눈보라를 몸 구석으로 보낸다. 그러나 너무 미약해 겨우 다치게 할 뿐인 독이.


  “맛있네요. 고마워요, 엘로이즈.”


  해냈다는 표정. 곧 그런 표정은 지을 수 없게 될 텐데.


  단지, 올바르게만 우려낸 차. 좋은 잎이 있고, 좋은 방법이 있었기에 향긋한 차. 제대로 만들어진 달콤한 디저트로 차의 맛을 씻어낸다. 아가씨는 향기로운 차와 달콤한 디저트에 기분이 좋아져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에서, 악마의 행동을 잘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 처음 준비해보는 파티에 고생했다는 이야기.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말에 목적을 이룬 것처럼 행복해하는 표정이란.


  차는 한 모금씩 천천히 줄어들었다. 파티의 이야기가 끝나고, 소소한 잡담으로 넘어가려 할 때 즈음, 찻물이 비었다. 초에는 불이 붙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차 고마웠어요, 엘로이즈.”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공녀님.”


  “엘로이즈도, 라첼레도요.”


  “걱정 마시고, 편안한 저녁 되세요, 아가씨.”


  잠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조금씩 꼬여가는 뱃속. 아가씨도 비슷한 감각을 느끼리란 기쁨에 달콤하게 잠이 든다. 그것도 잠깐, 속이 완전히 뒤집혀 눈이 뜨인다.


  “우웨엑!”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겨우 침대 밖으로만 고개를 내민다. 입안이 신물로 가득하고, 무언가 속을 마구 후벼대는 것만 같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마구 뛴다.


  “하, 후아… 웨에엑!”


  숨이 차오르도록 속을 비우고 있자니, 저택이 소란스럽다. 입가의 오물을 잠옷 소매로 적당히 훔치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무, 슨, 일이냐!”


  부산하게 뛰어다니는 하녀들. 나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공녀님, 공녀님께서…”


  부들부들, 겁에 질려 떠는 모습. 아아, 아가씨. 아가씨는 과연 어떤 모습이실까. 저처럼 추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이미 비어 신물만 올라오는 데도 쏟아질 것 같은 입을 틀어막고 달린다. 아직 그곳에 있는 건, 나와 하녀와 아가씨뿐.


  “아가, 씨…?”


  “라, 우엑… 첼, 레?”


  가는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가씨. 하녀들이 대어주는 통에 신물만 겨우 토해내는 아가씨. 핼쑥해진 얼굴, 그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빛나시는 아가씨. 그야말로, 품 안에 가두어 두고 싶은 모습. 나도 참지 못하고 토해내는 모습에 걱정스럽게 보아주는 공녀님.


  “너, 도… 웨엑!”


  소란스러운 저택에서, 뒤늦게 찾아오는 게으른 악마, 엘로이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가증스러운 모습. 오직 혼자 멀쩡하게 서 있는 이. 나와 공녀님이 한참 간호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함.


  “이게 무슨 일이냐!”


  아침이 되어 완전히 뒤집히는 저택. 분노하신 공작님. 사시나무처럼 떠는 하녀들. 어제의 일을 쥐구멍까지 쑤셔대는 사람들. 그렇지만 명확한 것은 없고, 죄인이 걸리면 능지처참하겠다는 일갈뿐. 나와 아가씨만 있었던 곳은 모두 엉망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날 밤 나와 아가씨처럼 앓았던 하녀가 쫓겨났다. 설탕에 들었던 독이 밝혀졌으니까. 누가 섞었는지 알지 못해, 끝은 흐지부지되었지만, 악마와 하녀들에게 가는 시선은 한층 날카로웠다.


  아가씨는 한층 창백해져 아름다웠다. 내 몸이 조금 흔들리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떨어진 체력으로 괴로워하시면서도, 그들을 감싸는 자애로움이 더 황홀했으니까. 아직도 꺾이지 않은 그 모습이 너무나 순수했으니까.


  “아가씨, 조심하세요.”


  당연히, 악마들은 아가씨와 혼자 있을 수 없었다. 몸을 회복시키려 시작한 산책도 오로지 나와 아가씨만. 성치 않은 몸을 서로 기대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디뎌야 했다. 겨우 한 바퀴를 돌면 산책은 끝이 났다. 다리를 후들거리는 공녀님을 위해, 엘로이즈가 준비한 와인으로, 입을 씻어내면, 하루는 끝났다.


  사건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가씨의 외출복이 찢어져 산책하러 나갈 수 없었다. 날카롭게 잘려있었는데도, 주위에 칼이나 가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작님은 하녀를 관리하던 엘로이즈를 문책했다. 그래, 아가씨가 쓰러진 이후로는 나는 전담 시녀가 되고, 엘로이즈는 하녀들과 잡무를 담당하게 되었으니까.


  수많은 하녀가 벌벌 떨었다. 무능한 악마가 아무리 당당하게 말하여도, 잡아내겠다, 다짐하여도, 공작님의 귀를 스쳐 갔다. 다만, 나에게 짐을 더 얹어 미안하다고 하였을 뿐이다.


  아아, 아가씨의 생활이, 그 모든 것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나는 터질듯한 발을 놀려 하녀들을 부리고, 음식을 검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앓아눕고 말았다. 그래. 저 간악한 악마 탓이다. 나의 몸도 좋지 못하여 잠시 맡겼을 뿐인데, 그 악마는 최악의 방식으로 일을 해냈다.


  그녀가 건넨 꿀이 들어간 독한 와인, 그것이 문제였다. 그것을 마신 아가씨가, 한 모금 나누어 받은 내가, 티타임때처럼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공녀님도 그 악마의 본질을 꿰뚫어 본 눈치였다. 그래, 그 꿀은 악마의 가문에서 진상된 것이었으니까. 마셨던 컵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시고.


  하녀도, 악마도 의심을 피하지 못했다. 악마와 그 하수인들에게 멀어져 우리는 영지 구석의 별장으로 떠났다. 아무도 없는, 아가씨와 나만의 낙원.


  “미안해, 라첼레.”


  하녀들이 하던 일을, 성치도 않은 몸으로 혼자 하는 건 힘에 부쳤다. 그렇지만 행복했다. 시름시름 앓는 아가씨. 나의 음식을 깨끗이 먹어주시는 아가씨. 불편하더라도 한마디 불평하지 않으시는 아가씨. 밤마다 내게 달라붙는 아가씨. 오직 나에게 의지하는 아가씨.


  행복은 길지 않았다. 곧 물거품처럼 스러질 것 같은 아가씨이기에, 공작님은 순식간에 약혼을 잡아오셨다. 좋은 가문의 멋진 왕자님. 나만의 아가씨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가씨, 간식이에요.”


  “고마워, 라첼레.”


  새하얀 눈꽃이 내린 장밋빛 케이크, 하늘이 담길 정도로 맑은 차. 아가씨는 금세 쓰러졌다. 바닥을 뒹굴며 토하고, 배를 부여잡으며 피오줌을 흘렸다.


  “라, 첼레…”


  나에게 안겨 온 세상의 추악함을 토하셨다. 내 옷을 더럽히며 기대고, 점점 맑아지는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오롯이 믿어주는 이가, 피로 물들어가는 새하얀 눈빛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괜찮아요, 아가씨. 조금만 견디시면 나아질 거에요.”


  그럴 리 없었다. 아아, 이미 늦었어요, 아가씨. 새하얀 눈에 너무 취하셨답니다. 아슬아슬하던 둑은, 넘쳐나는 폭우에 무너져버렸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우린 영원히 하나가 될 거예요.


  이미 약해진 내 몸은, 가냘픈 아가씨의 무게도 견디지 못했다. 내 위에서 바르작거리던 아가씨는 몸부림을 멈추었다. 따듯했던 숨결이 멎었다.


  안심하세요, 아가씨. 기다리세요, 펠샤. 나도 곧 따라갈게요.


  콰작, 우득. 아가씨의 아름다운 심장이 내 손에 들렸다. 조금 전까지 맹렬하게 뛰던 조그마한 심장이. 아가씨는 내면까지 아름다웠다.


  갈색빛이 돌도록 잘 구워진 스테이크. 비밀 양념은 충분한 눈꽃. 한입. 몸이 떨렸다. 두 입. 눈물이 새었다. 세입.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네 입, 그리고 전부. 뱃속이 뒤집히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나는 피투성이 아가씨를 안고 눈을 감았다.


  아가씨, 우리 엘렌 아가씨. 이젠 영원히 함께 에요. 누구도 우릴 떼어놓지 못하니 안심하세요.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요. 이제 따라가요. 아아, 지끈거리는 머리도, 터질듯한 심장도, 타오르는 몸도 곧 저물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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