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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녀의 여행] 제자가 마신 것 上

pamoo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0 18:42:28
조회 295 추천 14 댓글 3
														

  "일레이나……. 설마, '그걸' 마신 건가요?" 


  프랑은 생각지도 못한 재회와, 그와 동시에 일어난 사고 사이의 관계성을 의심했다. 마셔서는 안 될 일이었는지 들고 있는 마법서가 후두둑거리며 바닥에 떨궈졌다. 방금까지 내용물이 잘 담겨 있었지만 누군가 마셔서 텅 비게 된 작은 유리병, 그 유리병을 들고 있는 자신의 제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네? 이 물병 말인가요? 목이 말라서 마셨는데…." 


  혹시 마시면 안 되는 거였나요? 일레이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긁적였다. 특별한 메시지가 쓰여 있지도 않은 사실과 별다른 색깔 없이 투명한 액체라는 사실의 조합은 일레이나가 판단했을 때, 마셔도 이상한 게 아니었었다. 때마침 목도 말라 있었다. 하지만 프랑의 반응으로 인해 일레이나의 결론은 오답이 되었다.


  "……일레이나, 당신이 마신 건……. 물이 아니라, 이 나라의 귀족 영애가 제게 의뢰한 '사랑의 묘약'의 개량판이에요."


  사랑의 묘약? 개량판? 그걸 마신 직후에 본 사람은? 일레이나는 별안간 프랑의 놀라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칠칠치 못하다고 생각했을 자신의 별난 선생님이 아니라, 크게 당황한 그 모습에서 우러러 나오는 아름다운 연상의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선생님처럼 일레이나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프랑은 일레이나가 마신 '개량된' 물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0부터 100까지 둔다면, 통상적으로 알려진 사랑의 묘약 같은 경우에는 단기간적으로 한순간에 감정이 100까지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0으로 훅 떨어지는 물약이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특별 제작으로 탄생한 별무리의 마녀표 사랑의 물약은 그것보다 천천히, 0부터 100까지 차곡차곡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효력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때까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해독제는 만들어 두신 거죠, 선생님…?"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만들어 두지는 못했어요."


  아까 전과는 반대로 심각한 표정의 일레이나와 대수롭지 않은 듯 표정이 풀린 프랑은 빈 유리병을 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까 전부터 묘하게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일레이나는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약효가 들기 시작했구나. 그렇다고 해서 대뜸 자신의 선생님에게 고백을 하거나, 달려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되도록 빨리 해독제를 만들어 드릴게요. 일레이나, 혹시 숙소를 예약해놨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취소하고 저의 집에서 잠시만 머물러 주세요."


  선생님의 집? 사고 수습을 위한 합리적인 대책임이 분명한데도 들려오는 목소리와 그 내용의 울림은 뜀박질하고 난 뒤의 무언가와 비슷해서 일레이나는 자연스럽게 프랑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이게 두근거릴 정도의 일인지 곱씹었다.



-



  개량되었다고 해서 해독제를 만드는 일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정도 집중해서 만든다면, 자신의 스승에게 들이대는 제자의 추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일레이나는 프랑이 정리한 문제의 레시피를 눈으로 훑으며 약효가 어느 정도로 뻗쳐나갈지 예상했다. 확실히 감정이 빠르게 솟구치지는 않기에, 급히 꺼야 하는 불은 되지 못했다.


  "그나저나, 사랑에 빠지게 된 일레이나라니. 정말 보기 드문 일 아닌가요?"


  제자가 들려주는 여행담에는 언제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인물이 빠지질 않았다. 어디를 가든 누군가에게 반드시 사랑을 받는 자신의 제자가, 역으로 사랑에 빠지게 됐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결국엔 사고였고, 그 대상도 자신이 되었지만 프랑은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은 듯 웃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요…."


  스스로 눈뜨고도 못 볼 '추태'를 피하기 위해, 일레이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예를 들면 긴 머리칼로 가려진 한쪽 눈과 그 반대편에 있는 눈물점, 사파이어같이 깊은 푸른색의 눈동자, 그 모든 게 제 가슴을 떨리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약효로 인한 '착각'이라고  판단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토록 사소한 것에도 과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사랑은 귀찮은 것이 아닐까. 일레이나는 프랑이 제게 찻잔을 넘겨줄 때 잠깐 닿은 손의 감촉을 무시하려 애를 썼다.



-



  조립은 해체의 반대 과정이라는 말이 있듯, 프랑은 처음 만들었을 때와 달리 손쉽게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해프닝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방에서 나온 프랑이 해독제가 완성됐어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앞치마를 두른 일레이나가 먼저 말했다.


  "저, 선생님. 오늘 제가 민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어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빵도 있어요. 조금은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덧붙이는 일레이나 때문인지, 아니면 만찬과 가까운 식사를 준비해놨기 때문인지 몰라도 프랑은 해독제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금 이따가 말해도 늦지 않겠죠? 약효는 느릴 것이다,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으니 프랑은 상관없을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고마워요, 라고 말하자 일레이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으리라.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도 해독제보다 먼저 일레이나가 말을 가로챘다. 어깨를 주물러 드릴게요, 욕실에 거미가 나왔으니 제가 잡아드릴게요, 내일 아침에는 뭘 드시고 싶으신가요, 등등 일레이나는 한때 질리도록 했던 잡일에 열정을 보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제자는 해독제가 뒷전으로 밀려나 잊혀질 만큼 무척이나 귀여웠다. 프랑은 그런 일레이나의 행동이 단순한 호의인지, 약물로 인한 인공적인 사랑인지 궁금하여 일레이나에게 물었다.


  "일레이나, 사랑의 묘약은 효과가 있나요?"


  지금 절 보면 두근거리나요? 프랑이 로브의 옷깃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짓자, 일레이나는 고민에 빠진 듯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글쎄요…. 제가 선생님의 가정부처럼 이런저런 집안일을 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을까요?"


  일레이나 또한 약효를 우습게 여기고 있던 탓에 '이성적인 생각'에 감정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점점 프랑을 향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일레이나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이리로 가까이 올래요?"


  프랑의 얼굴에는 딱 봐도 '장난스러운' 미소가 쓰여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제자를 놀리는 것에 대해 '싫어요'라는 대답이 즉각 날라오거나 가까이 와도 뚱한 표정인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현재 프랑에 앞에 선 일레이나는 어딘가 잔뜩 긴장한 듯했다. 


  "더 가까이."


  말없이 조금 더 바짝 다가오자, 프랑은 팔을 뻗었다. 일레이나의 볼에 손가락이 닿았고 동요한 듯 유리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대로 손바닥으로 볼을 감싸자 따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내일은 꼭 해독제를 만들어 줄게요."


  그 말 뒤에 입맞춤이라도 있는 게 아니었는지 일레이나는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잘 자요'라는 말만 덩그러니 남은 채 혼자 남겨졌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기에, 일레이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해독제 같은 거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밤새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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