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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마녀의 여행) 당신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나라

Icefra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0 21:35:30
조회 748 추천 22 댓글 9
														


팬픽 쓰는 거 원래 이렇게 힘들었나 죽겠네

그러니까 여러분은 메모장을 멀리하고 뇌내 히토미를 가까이 하는 편이 낫습니다


눈동자


*딱히 스포는 없지만 원작과 관련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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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떠나는 여행이란 낭만적일지는 몰라도, 때로는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불안한 눈빛으로 흘깃거리며 길 위를 날고 있는 저 마녀처럼 말입니다.

그야, 오솔길도 아니고, 어엿한 도로가 깔려 있다면, 멀지 않은 곳에 다른 나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마녀는 오늘 특별히 가고 싶은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그저 도로를 따라 빗자루를 달렸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인 것입니다.

예상과는 달리, 나라는커녕 오두막 하나 찾지 못한 채 해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 잠자리는 꼼짝없이 노숙입니다.


"하아..."


그렇다면 약간의 희망과 후회와 절박함이 뒤섞인 채, 숲속에 난 길 위를 날아가는 저 마녀란 대체 누구인가.

네, 바로 저입니다.




"당신의 욕망을 이루어 주는 나라?"


길의 끝에 갑작스레 툭 나타난 것은, 그런 간판이 내걸린 거대한 성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성은 아니고, 성문뿐.

어떻게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정말 대놓고 수상하네요."


저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렇게 수상한 모습에 수상한 이름을 한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아마 상당한 바보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은, 수상한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볼 만한 사정과, 대부분의 경우에 자기 안위 정도는 지킬 자신이 있는 뛰어난 마녀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다행히 저는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음... 어떻게 할까요..."


일단 성문 주변을 둘러 날아 봤지만, 그저 쭉 이어지던 길과 숲이 있었을 뿐, 그 나라의 내부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부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지만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저는, 이윽고 문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악마가 만들어둔 함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노숙을 하긴 싫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정말로 어떤 악마가 만들어둔 함정이라면.

어쩌면 '저'를, '저'들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그런 희미한 가능성을 떠올리며, 저는 지팡이를 들어 성문을 겨누었습니다.




성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왕궁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왕궁의 내부.

열렸다고 생각한 순간, 저는 이미 그 안에 있었습니다.

왕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정면에 옥좌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왕궁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그러나 제 기억 속의 어느 옥좌와도 맞아 떨어지지 않는 평범한 옥좌였습니다.

어쩌면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옥좌 같은 것에 별 관심은 없고, 보통 왕이 앉아 있어 잘 보이지도 않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것보다, 갑자기 나타난 왕궁에 놀라 두리번거리는 사이, 정면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딜 보는 거야? 여기야 여기~"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돌아보자, 방금까지 비어 있던 옥좌에 여성이 한 명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웃고 있었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녀는, 삐딱한 자세로 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나른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유리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녀의 외모는 무척 낯익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매일매일 만나온 사람처럼.

혹은 바로 제 자신처럼.

아니 제 얼굴이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눈빛에 깃든 나른함과 색기는, 분명 제 것이 아니어서, 저는 그것이 '저'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나른한 색기, 장난기와 지성이 담긴 제 눈썹과는 달리 음험함만을 드러내는 눈썹, 살짝 입맛을 다시듯 드러난 혀에서, 저는 제 흑역사 중 하나인 옛 지팡이 언니와의 만남을 떠올려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더라도, 깊게 파인 상의의 가슴골로 드러난 저 쓸모없는 지방덩어리와, 드러낸 복부와 다리 대부분, 그리고 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하고 음란한 문신들만 봐도, 누구라도 저것이 '저'가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긴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옥좌 위의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 나라를 만들어낸 건가요?"

"맞아, 잘 아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요."

"오, 그래? 내 동족을 만나보기라도 한 거니?"

"당신이 악마라면요. 그 악마는 뿔과 날개도 달려 있었지만..."


제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녀가 뒷머리를 쓸며 팔을 펼치자, 뿔과 날개, 꼬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입을 다문 저를 보고 웃으며 그녀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네, 그렇게요."

"흐응~ 재밌네. 그럼 이야기가 빠를 테니까, 최대한 간단하게만 설명해 줄게. 여긴 내가 만든 나라고, 너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나라야. 너는 이곳에 사흘간 머물 수 있고, 사흘 뒤 이곳을 떠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어. 더 궁금한 거 있어?"

"이곳에 남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묘하게 차가운 말투로 물은 저의 질문에, 그녀는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습니다만.


"아, 혹시 그것도 알고 있는 거야?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대신 아주 아주 기분이 좋을 거라는 건 보장할게."

"..."


잠시 저는 그녀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녀는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짧은 눈싸움 뒤에, 저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제 욕망을 이루어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데? 눈으로 직접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르려나?"


그녀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자, 제 뒤에 있던 공간이 사라지는 대신 수많은 문이 늘어선 벽이 나타났습니다.

기묘한 것은 문의 개수를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공간의 끝은 분명 보이고 있었지만, 제 앞에 놓인 첫 번째 문 앞에 서서 마지막 문을 바라보아도 그 끝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 끝까지 걸어간다고 해도 마지막 문에 당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묘한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뭐 해? 열어봐."라며 재촉했습니다.

마음을 다지고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자 그곳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저와 암네시아 씨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함께 묵었던 여관에서의 저와 암네시아 씨가 있었습니다.

반라의 저가 역시나 반라 상태의 암네시아 씨에게 깔린 채로 서로 열렬한 입맞춤을...


"아니, 아니! 잠깐, 잠깐, 잠깐!!"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이 부서져라 닫아 버린 저는, 돌아서서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뭔데요 이거! 뭐 하자는 겁니까 지금? 성희롱? 성희롱입니까? 해보자는 거군요? 좋아요, 이건 정당방위입니다?"


지팡이를 꺼내 그녀를 향해 겨누자, 그녀는 못내 우습다는듯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한참을 웃은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말했습니다.


"아, 미안, 미안. 너무 웃겨서 그만. 질문이 뭐였지? 이게 뭐냐고 했었나? 정답은 '여관에서 암네시아와 오해를 풀지 못한 너'야. 이 문 너머에는, 네 욕망과 관련된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가능성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욕망이라고 해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전문 분야는 성욕이라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밉살스럽게도 윙크마저 해가며 재잘거리는 악마의 태도에 결국 폭발한 저는, 지팡이를 휘둘러 그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아니, 막으려고 했습니다.

푸른 고리가 그녀의 입을 둘러싸고 떠올라 순식간에 조여들었지만, 고리는 허공을 지나듯 그녀를 통과해 스스로 부딪힌 끝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황한 저는 재차 다른 마법들을 날렸지만, 모두 허무하게 그녀를 통과할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벽에 부딪힌 마법들마저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악마는 성가시다는듯 뿔을 긁적거리더니, 이윽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해 두겠는데, 악마가 만든 세계 안에서 악마를 도발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야. 어지간히도 잔챙이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인간한테 당할 일은 없거든. 알겠지?"

"..."


저는 여전히 부아가 치밀었지만, 상황을 깨닫고 천천히 겨누었던 지팡이를 내렸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악마는 다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 같으니, 나는 이만 실례할게. 좋은 시간 보내!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그렇게 악마는 손을 흔들며 천천히 사라져 갔습니다.

좋은 시간이라니, 같잖은 소리를 하는군요.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을 뻔한 것에 조금 놀라면서, 저는 냉정을 되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저 문을 다시 여는 것은 논외였습니다.

분명 다른 '저'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실현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저 '저'들이 전에 만난 '저'들 같지도 않았구요.

그렇다면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출구를 찾았지만, 처음부터 출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시험 삼아 벽에 구멍을 내려 했지만, 역시나 제 마법은 벽을 통과해 갈 뿐이었습니다.


"난감하네요..."


결국 사흘 동안은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만 할 모양입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기장을 꺼내 오늘의 사건을 기록하거나.

일기장을 오늘 자부터 다시 읽거나.

악마가 앉아 있던 옥좌를 천천히 뜯어보거나.

옥좌 앞에 깔린 카펫의 무늬를 구경하거나.

천장의 얼룩을 세거나.

타오르는 초들을 바라보거나.

벽을 만져보기 위해 다가가거나.

어째선지 아무리 걸어도 다가갈 수 없어 지칠 때까지 같은 곳을 걷거나.

차라리 잠을 잘까 하고 누워보거나.

아무리 잠드려 해도 잠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심심해..."


저는 결국. 할 일을 모두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뿐.


"꿀꺽."


저는 무수히 늘어선 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심심할 틈 따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어떤 분들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조금 정도는 흥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뭔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뭐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잘 대답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해서 악마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결국 저는 문을 열지 않기로 했고, 그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저에게는 바로, 빗자루 씨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빗자루 씨에게 마법을 걸어, 인간의 모습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빗자루의 모습이 사라지고 벚꽃빛 머리색에 저보다 조금 큰 키의 빗자루 씨가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저는 그만 반가운 마음에, 저답지도 않게 와락 빗자루 씨를 포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라는 빗자루 씨에게 이럴 때 당신이 함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웃으며 저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뒤의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빗자루 씨를 불러낸 저는, 빗자루 씨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이 나라에 대해서-저 문 너머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그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만,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이야기를 하면 악마가 나타난다고 했던가요.

갑자기 저희 앞에 나타난 악마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분명 도발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고 경고했을 텐데? 거기에 물건을 사람으로 만들어서 시간을 때우다니,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건 반칙이야. 네가 반칙을 한다면, 나도 반칙을 해도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당황한 제가 뭐라 반론하기도 전에, 악마는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풍경은 일변하여, 저희는 낯선 방 안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방 안에 놓인 커다란 침대에는, 나체로 누워있는 저와 제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사야 씨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양손으로 사야 씨의 머리를 잡아 누르며, 비명 같은 교성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야 씨는 마치 강아지처럼 열정적으로 제 다리 사이의...


"아아아아아아악!"

"일레이나 님!"


수치심으로 시뻘게진 저는 정신없이 문을 향해 달려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또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였을 뿐이었습니다.


또다시 나타난 낯선 방에서, 저는 식탁에 엎드린 채 제 몸을 덮은 프랑 선생님 아래에서, 허리를 움찔거리며 교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와 달리 제대로 옷을 입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었지만, 프랑 선생님의 손가락은 명백히 제...


"싫어어어어어!"

"일레이나 님! 기다려주세요!"


열심히 저를 쫓아오는 빗자루 씨의 손을 뿌리치며, 저는 그저 다음 문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불행에 불과했습니다.

다음 방에서는 프리실라 씨가 반라의 제게 입으로 어떤 약을 먹인 뒤 "후후, 이제 처음 만났을 때의 제 나이가 되었네요, 언니." 같은 의미 불명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그 다음 방에서는 속옷 차림의 아네모네 씨가 눈물을 흘리며, 오늘밤만이라도 좋으니 추억을 만들어 달라며 제게 몸을 기대어 오고 있었습니다.

웃기지 말아주세요! 남의 소중한 추억을 더럽히고 있으면서 무슨 추억을 만든다는 겁니까!

또 그 다음 방에서는 도로시 씨가, 그 다음 방에서는 샤론 씨가, 또 그 다음은...


소녀 두 명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저의 위에 올라타거나, 어째선지 꽁꽁 묶인 채 미나 씨에게 채찍을 맞고 있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방들을 지난 끝에, 마침내 저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우... 다 싫어... 이제 그만해 주세요..."

"일레이나 님..."


쫓아온 빗자루 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저를 불렀지만, 저는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떤 얼굴로 빗자루 씨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겁니까?

수치심과 분노로 저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엉엉 울었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위로하려던 빗자루 씨도 결국 자기를 봐달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싫다며 울었습니다.


그러자 저 밉살스러운 악마가 눈치도 없이 다시 나타나 주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으응, 이상하네. 보통 내 나라에 들어온 인간은 사흘 동안 쾌락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데. 왜 너희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걸까? 아직 준비한 게 많은데, 이러면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잖아. 곤란하네..."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악마에게, 저는 강렬한 살의를 느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일어서서 저 악마를 종잇장처럼 좍좍 찢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빗자루 씨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일어나 서서 악마와 저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빗자루 씨는 악마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악마 님, 부디 그만해 주세요. 제게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으니, 일레이나 님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예상 외의 내용에 저는 그만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더해서 빗자루 씨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던 것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일레이나 님, 부디 제가 없어도 건강하시기를 바라요. 새로운 빗자루 씨와 행복하시기를 바랄게요."

"뭘 멋대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요? 거기에 뒷말은 뭔가요? 비꼬는 겁니까?"

"주인을 위한 제 충정을 폄훼하지 말아주세요 일레이나 님. 마지막 정도는 웃으면서 보내주세요."

"누구 맘대로 마지막이라는 겁니까. 웃기지 말아주세요. 악마 씨, 나는 괜찮으니까, 빗자루 씨를 내보내 주세요. 부탁이니까요."

"아니요 일레이나 님을."

"됐으니까요."

"일레이나 님이야말로 됐으니까요."


결국 누구를 내보낼 것이냐로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한 저희를 보며, 악마는 질린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 그래. 너희가 바보라는 건 잘 알겠어. 그리고 네가 솔직하게 즐길 수 없는 것이 쟤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겠고.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너, 빗자루라고 했나? 원래 물건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러니까 원래는 널 내보내는 게 맞지만, 네 충정을 높이 사서 특별히 체류하는 것을 허가할게. 자."


말을 끊은 악마가 손가락을 튕기자, 저와 모두는 처음 도착했을 때의 왕궁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제 뒤에는 다시 무수히 많은 문들이 늘어서 있었고, 원래 옥좌가 있었던 반대편에는 단 하나의 문이 서 있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악마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수수께끼 같은 말을 중얼 거리고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습니다.

그러자 빗자루 씨는 문과 함께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옥좌가 나타나 빈 공간을 메웠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잠깐만요, 빗자루 씨를 어떻게 한 거예요!"

"걱정하지 마. 그저 너랑 똑같이 즐길 수 있게 해준 것뿐이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어. 너희는 즐기고, 사흘 뒤에 이곳을 나갈지 말지 결정할 수 있어. 그것뿐이야."


말을 마친 악마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어둡고 거대한 방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제가 이제껏 여행 중에 만났던 수많은 여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프랑 선생님, 암네시아 씨, 사야 씨, 실라 씨, 아빌리아 씨, 미나 씨,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근데 있잖아, 네가 지금까지 지나온 방은 사실 견본품 같은 거였고, 원래 이 나라는 네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악마는 음험하게 웃으며 말꼬리를 흘렸습니다.

천천히 제게 다가오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저는 섬짓한 어떤 예감에 다급히 악마를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설마.


"잠깐만요. 뭘 하려는 건가요? 그만 두세요! 아까 지나온 방으로 충분하니까요! 네?"


그러나 악마는 빙그레 웃으며, 제가 잡고 있는 것도 무색하게, 천천히 사라져갔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랄게?"


그 한마디만을 남겨놓고.


"안 돼! 가지 마세요!"


방금 전까지 찢어 죽이고 싶은 상대였건만, 저는 애절하게 사라지는 악마를 붙잡으며 외쳤습니다.

그러나 악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방 안에는 결국 여성들과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 아, 안 돼!"


방 한구석에 몰린 저는 여성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비명을.

이윽고는 더이상 비명을 지를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말입니다.




때때로 사람은 스스로 불러온 함정에 빠져 곤경을 겪기도 합니다.

더이상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된 저 마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두운 방 안에 갇혀 무수히 많은 여성과 끝나지 않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저 마녀란 대체 누구인가.


네,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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