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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동생에게 EBS 폴더를 털린 사연 -8-

LL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2 17: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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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살기로 결정하면서 머무는 기한보다 먼저 식사 및 정리 당번을 정하기로 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여동생을 돌봐준 경력 덕에 나 혼자서도 가능하다.


 얹혀사는 입장이니 가급적 내가 하겠다고 했으나, 이런 계획을 짜서 달력에 새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는 유리의 말에 설득되었다. 내 연인이지만 너무 천사 같아.


 당번은 유리의 스케줄에 맞춰서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직장에서 스케줄 근무하는 유리에게 맞춰서 내 아르바이트 근무일을 조정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럴 경우 문제는….


 "둘이 함께 쉬는 날이 줄어들겠네."


 유리가 쉬는 날 당번을 하면 내가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유리가 일하러 나가는 날엔 내가 쉬면서 당번을 한다. 이러면 당연히 둘 다 쉬는 날이 쉽게 겹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거기다 유리는 사회초년생, 나는 알바초기라 스케줄을 입맛에 맞게 짤 수 없으니 둘 다 출근하는 날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유리는 나를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같이 쉬는 날이 소중해질 지도 모르지만… 배웅하는 입장이 되는 것도, 배웅 받는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


 막연히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유리가 출근하는 날 아침 따뜻한 아침상을 차리고 배웅해주고, 돌아오면 미리 저녁을 차려놓고 맞이해주는 하루.


 그리고 내가 출근하는 날엔 반대로 유리가 저렇게 해주는 것이다. 둘 다 함께 쉬는 날은 적어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정신적 교감이 될 수 있어보였다.


 "이게 이번 달 내 스케줄이야."


 여기 주라고 쓰인 부분은 주간, 단 하루지만 야라고 쓰인 부분은 당직, 비가 비번인 듯 했다. 휴는 휴식이겠지. 나는 스케줄 표를 스마트폰 사진으로 저장해두었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나와서 출근하면서 스케줄을 짤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은 직후라, 잘 되길 기도했다.


 "그래도 마침 내일 쉬니까. 내가 먼저 배웅해주겠네."


 "으응. 잘 부탁할게. 그래도 낮 10시까지 도착하면 되니까, 너무 일찍 일어나서 신경 안 써줘도 돼."


 당장 내일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서 그럴까? 어쩐지 살짝 쑥스러워졌다. 그리고 둘 다 쉬는 날이 생기면 어떤 것을 할까도 즐겁게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늦어졌다.


 유리는 첫날부터 그런 걸 바라는 눈치였다. 옆에 누워서 옷소매를 살짝 당기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내 마음이 아려올 정도로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몸에는 어제 여동생이 잔뜩 남긴 녀석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길면 3주는 남아있을 거라는 내용이 부담을 주었다. 이걸 보이면 유리는 확실하게 상처를 받겠지. 결국 회피하거나 옷을 입은 채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아까 일정을 생각하다 들떠서 그걸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오늘은 키스로 무마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리를 살짝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보니 혀를 굴리고 타액을 먹이는 유형의 키스도 있다는데… 조금이라도 만족시키려면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겠지?


 나는 유리의 위에 올라타서 유리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며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리고 살며시 혀를 내밀어 도톰한 입술을 두들겨 보았다. 입술은 유리의 마음처럼 의외로 쉽게 열렸다.


 입 안으로 침입하는 데 성공한 내 혀는 유리의 혀를 뱀처럼 매끈하게 휘감았다. 그다음 살짝 끈적거리는 느낌의 타액을 서로의 혀 안에서 주고받으며 오래 농축시켜 하나가 된 액체를 꿀꺽 삼켰다.


 어쩐지 야한기분이 들며 이런 키스를 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달래주긴 커녕 시동이 걸린 느낌이었다. 유리는 입가에 살짝 흐른 침을 닦아내며 적극적으로 공세에 돌입하였다.


 이번엔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내쉬며 일방적으로 타액을 내 목구멍에 밀어주는 감각. 나는 얌전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랑의 묘약처럼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탐스러운 입술, 유연한 혀, 그리고 서로의 마음에 닿는 호흡 한줄기까지 놓치지 않고 탐했다. 농염한 분위기 속에서 정신은 쾌락의 늪에 살짝 발을 담근 느낌이었다.


 "저 이제 슬슬…."


 유리는 제법 달아올랐는지 나를 슬쩍 재촉해보였다. 그 덕분에 흐름에 휩쓸리고 있던 나는 정신을 퍼뜩 차릴 수 있었다. 분위기에 휘말려 실수를 할 뻔했어!


 나는 여기서 끊는 게 미안했지만, 정말 미안했지만! 여기서 끊어야 했다. 이 이상은 내 이성이 위험해! 지금 내가 옷을 벗어던지는 참사만은 막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해도 될까?"


 "에, 엣?"


 유리가 굉장히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서 죄책감이 들지만… 정말 어쩔 수 없으니까.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유리를 만족시킬 멘트를 떠올려보았다. 유리의 뺨에 입을 맞춘 다음 귀에 속삭여주었다.


 "이 다음은 내일 밤에 할게. 기대해도 좋아."


 "으? 응. 알았어."


 유리의 촉촉해진 눈가를 보니 정말 미안하지만, 귀중한 하루의 유예를 얻었다. 내일은 스스로를 자제를 하면서 유리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아야겠지.


 갑자기 분위기를 식힌 사죄의 의미로 유리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고 자리에 누웠다. 집을 완전히 떠나 얹혀 산 첫 날밤은 이렇게 끝났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내가 눈을 뜨자, 유리는 이미 아침상을 차려놓은 뒤였다. 흰 쌀밥과 마늘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된장국, 김치, 마늘 후레이크가 듬뿍 올라간 계란프라이, 통마늘이 들어간 어묵볶음 등 메뉴는 평범하지만 제법 신경 쓴 티가 났다.


 근데 노골적으로 마늘을 어필한 걸 보면… 어젯밤 일에 대한 시위일까? 이런 식으로 어필하지 말아줘. 나도 그렇게 끝낸 거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하니까.


 나는 가볍게 씻은 다음, 따끈따끈해 보이는 아침상 앞에 유리와 함께 앉았다. 진하게 올라오는 마늘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해왔다. 그러나 한국인은 마늘의 민족. 이런 메뉴는 언제나 환영이다. 나는 무조건 맛있게 먹고 칭찬해줄 생각이야!


 "흐아아… 너무 호화로운 거 아냐? 잘 먹을게."


 "응. 힘내라고 열심히 만들었어. 맛있게 먹어."


 힘내라는 의미가 조금 의미심장했지만 좋게 받아들이자. 나와 유리는 소박하고 평범한 식사를 시작했다. 갓 지은 밥과 된장국의 가슴 따뜻해지는 조합은 물론이고, 애호박과 두부가 들어간 구수한 된장국과 기름진 반숙 계란프라이의 궁합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조합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니까.


 "으으! 정말 맛있어! 어떻게 만든 거야? 나도 알려 줘! 나도 이렇게 만들고 싶어!"


 "에헤헤. 사랑을 잔뜩 담아서."


 살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에 마음이 녹아드는 느낌이다. 이 미소를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역시 체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둘이 먹는 쪽이 충실감이 느껴진다. 나오길 잘했어!


 뱃속보다 마음이 충실해지는 식사를 마친 뒤, 양치질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출근 첫날이니 첫인상을 좋게 주기 위해 유리의 도움을 받아가며 화장을 했다.


 입술은 옅게 틴트를 바르고, 눈썹은 가늘고 길어보이게 폈고, 뺨에는 비비크림정도만 살짝 발라서 조금 희어보이게 꾸몄다.


 꾸미다보니 어느 새 나갈 시간이 되었다. 꾸미는 시간은 몰입해서일까? 시간이 잘 가는 느낌. 잔뜩 꾸민 나는 유리의 배웅을 받으며 나섰다.


 유리는 이번엔 배웅 키스를 함부로 요구할 수 없다는 듯 살짝 떨어져 있었다. 아마 둘 다 아침부터 마늘을 잔뜩 먹어서 마늘냄새가 올라올 테니까 그런 거겠지. 이건 양치로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되고. 아마 유리도 후회하고 있겠지?


 "잘 다녀와야 해. 그리고 예쁘게 꾸몄다고 바람 피지 말고. 후훗."


 "으응. 다녀올게. 편히 쉬고 있어."


 아침 식사의 기운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 든든함이라면, 오늘 하루는 거뜬할 테니까!




 나는 바로 의욕적으로 일을 배웠다. 지급받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시간에 출근한 선배에게 포스기를 다루는 법,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힘을 덜 들이고 푸는 법, 아이스크림의 무게를 재는 타이밍, 청소의 과정, 포장 시에 드라이아이스 취급 법,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조심히 선반에 두는 법 등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첫날부터 하드해!


 물론 한 번에 머리에 넣기 힘들어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몇 시간동안 헤메다가 옆에서 시키는 대로 스쿱으로 지정된 아이스크림을 푸는 중노동만 하였다. 어느새 손목을 뻐근해지고, 어깨도 결려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안 따르면 몸이 고생하는구나. 내가 일을 정말 우습게보았구나 하는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참을 배우면서 중노동을 하다 보니 제법 어둑어둑해져 퇴근할 때가 되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었으면 진작 뻗었을 거야. 끝나자마자 나는 오늘 하루를 이겨냈다는 성취감에 젖었다. 기분이 올라온 나는 선배와 함께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퇴근 준비를 하였다.


 "오오, 아직 있었구나."


 나왔더니 어제 면접을 봤던 점장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스케줄도 알아봐야 하니 바로 점장실로 찾아 뵐 예정이었지만 먼저 찾아오셨네?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 한명이 사복차림으로 움츠리듯 서 있었다. 자꾸 드는 위화감 때문에 이상할 정도로 눈이 가는 아이였다.


 "아직 있었구나. 여기 채희는 막 면접 본 신입이란다. 오늘부터 일하겠다는구나. 여기 아리랑 동기가 될 테니까 잘 지내보렴."


 "네."


 나는 입사동기를 보다가 이상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고 말았다. 볼륨을 살짝 준 미디엄 헤어스타일이나, 체형, 화장의 농도 등 전체적으로 어딘가 나랑 닮은 느낌?


 내가 그렇게 특이하게 생긴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일부러 이렇게 닮게 꾸미기도 힘들겠다 싶었다. 확연한 차이가 있다면 내가 조금 음침 계열이라면 이 아이는 침울 계열이라는 것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아이는 음울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아 주춤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쉬었다가 시작하지. 얘가 과연 손님 응대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래도… 어딘가 남 같지 않으니 잘 대해줘야지.


 "잘 부탁합니다. 저도 오늘 막 입사했어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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