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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동생에게 EBS 폴더를 털린 사연 -10-

LL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2 17:49:02
조회 548 추천 24 댓글 1
														

 회식 이후엔 아르바이트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11월로 달이 넘어가자 아이스크림 점에서는 초짜인 나와 채희의 스케줄을 붙이는 악행을 일삼았다. 아마 회식 때의 일로 채희의 음울한 분위기를 감당하면서 케어 할 사람으로 나를 점찍은 모양이다.


 이제 기초적인 일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쳐도 아직 혼자서는 돌발 변수도 감당이 힘들고, 둘 다 손님 응대가 어색한 유형의 사람이다. 당연히 일하는데 불편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둘 다 어찌어찌 오늘도 무사히 사고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보기와 달리 손님 응대 빼고는 채희가 나보다 일을 잘해서 패배한 느낌.


 그래도 돌발 상황에도 무사히 대처를 해낸 걸 보면…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기존에 발휘하지 못했던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나한테도 그런 능력이 있었구나. 있었다면 수능 때나 회사 면접에서 발휘되었으면 좋았을걸.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매장 내에서 인사를 마치고 귀가할 시간이 되었다. 근데 결국 방향이 같다보니 매장 내에서 인사하고도 어색하게 같이 걸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평소에는 아무 말 없이 거리감을 가지고 돌아갔는데 오늘은 달랐다. 웬일로 사교성 제로인 채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아리언니. 혹시 사귀는 사람 있나요?"


 "네. 있어요."


 나는 유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마 지금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최근 관계가 급격히 뜨거워져서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 결국 이쪽 사람이었구나.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오늘도 은근히 요구 하겠…지?


 "상당히 좋아하나 보네요."


 "네? 네 사귄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아, 아직 뜨거울 때고…. 아하하."


 사실 유리의 알몸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힌 걸 들킨 게 아닐까 해서 반쯤 변명했다. 어색하진… 않았겠지? 살짝 눈치를 보자 채희는 눈을 이채롭게 빛내며 살짝 붙어왔다. 가, 갑자기 왜 이러지?


 "부럽네요."


 "그, 그런가요? 채희씨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랄게요."


 그 나쁜 년 말고도 좋은 사람은 아마… 많을 테니까. 그런 녀석은 개에게 물렸다는 생각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게 채희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사실… 최근에 다른 사랑을 찾으려고 했는데요. 에헤헤. 방금 차여버렸네요."


 서, 설마 나? 나는 왜? 인싸 취향 아니었어? 그래도 대놓고 빼앗겠다거나 그런 선전포고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심해도… 되겠지?


 그 나쁜 년에 대한 마음정리도 의외로 빨리 한 것 같고, 다시 나 말고 좋은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 이 아이도 유리 같은 만남이 있으면 좋을 텐데. 물론 유리는 안되고! 의외로 그렇게 소중한 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최근 깨달았으니까.


 "역시… 안 되겠어요. 새로운 사랑으로 잊으려고 했는데…. 걔에게 어떻게든 복수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요."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 모르겠다. 복수를 응원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마음을 받아줄 테니 복수를 관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어느 쪽의 말을 해줘도 현실에서 막장드라마가 펼쳐질 거야! 이미 충분히 막장이지만!


 "어, 어떻게 복수할 생각인가요?"


 만에 하나라도 범죄를 일으킬 생각이라면 말릴 생각이다. 남의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자기 취향을 강요하다가 버린 녀석은 천벌을 받아도 싸다. 최악의 인간이다. 그러나 그딴 녀석 때문에 소중한 인생을 범죄에 물들게 하는 걸 방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그녀석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철저하게 파멸 시킨다거나요?"


 자, 잘못들은 거 아니겠지? 위, 위험해. 채희… 보기보다 위험한 녀석이야. 가급적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지. 복수의 대상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어! 애꿎은 피해자를 늘리지 말아줘.


 그리고 이번엔 내가 간접적으로 찼으니 설마… 타겟은… 유리를 휘말리게 한다거나 하진 않겠지? 난 애초에 네 마음을 갖고 놀지 않았으니까!


 "자, 잠깐만요. 애꿎은 사람을 휘말리게 하는 건 좀……."


 "농담이었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할리가요. 아직 그럴 능력도 없어요."


 농담이었다면 다행이지만 방금 분위기 진심 같았어. 아니야! 농담이어야 해! 여동생에 이어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싸이코가 근처에 하나 더 생기면 감당이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요주의 인물로 강하게 찍어놔야지.


 그렇게 생산성 없는 잡담을 떨다 보니 어느 새 건물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이 불편한 대화에서 해방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에 젖을 때였다. 


 "아리언니. 아까 했던 말은 진심이니까. 언제든 생각이 바뀐다면 말해주세요."


 말을 마치고는 갑자기 내 손목을 끌어당기더니 입맞춤을 해버렸다. 나로서는 대응할 틈이 없는 불의의 사고였다. 자, 잠깐! 근데 나한테 연인이 있으니까 포기한 거 아니었어?


 당황한 내 마음은 모르는지, 용건을 마친 채희는 뻔뻔하게 웃어보이고는 먼저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태가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괜히 찔리는 기분이 든 나는 본 사람이 있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쟤 저번에… 같이 부축해줬던 애지? 방금 잘못 본 거 아니지?"


 듣기만 해도 등골이 얼어붙을 정도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 나는 딱딱하게 굳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채희가 사라졌던 방향… 그러니까 입구에서 유리가 팔짱을 끼고 나를 울먹이는 눈망울로 노려보고 있었다.


 일부러 마중 나오려 한 걸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근데 설마… 방금 그거 본 거야? 본 거겠지?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면서 이렇게 화가 난 유리는 처음 봐.


 "자, 잠깐만.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방금 본 장면에는 오해가 없는 것 같은데."


 유리는 눈물을 흩뿌리며 바로 몸을 돌렸다. 아, 안 돼!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 해! 바로 나한테 막장드라마가 펼쳐질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방에 돌아와 유리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하고 눈조차 마주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부, 불편해.


 마음 같아선 채희를 호출해서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최악의 경우는 그 녀석이 입을 일부러 잘못 놀려서 파국을 끌어내는 경우였다. 걔도 보기보다 위험한 사람 같으니까. 아니 방금 일로 위험한 사람인 게 확실해 졌으니까!


 "으읏, 저… 내 말 좀 들어줄 수 없을까?"


 "……."


 나는 완전히 죄인이 되어 있었다. 정말 바람 핀 게 아니라서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이럴 때 유리를 달래주려면… 몸의 대화뿐일까? 아니야! 그렇게 뭐든 몸으로 해결하려 하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대화의 물꼬는 터야 했다. 나는 유리의 뒤로 이동하면서 어깨를 주물러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지, 진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적당히 몸으로 때우려고 하지 마!"


 유리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 난감한 입장이었다. 한동안 유리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까 싶어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최근에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해도 그 동안 유리에게 제대로 된 신뢰를 사지 못한 내 잘못이니까.


 "미안해. 한동안 네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예산은 정말 부족하지만, 계속 상처를 주는 걸 알면서 옆에 있긴 미안했다. 시간이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면 그 때 대화해도 되니까. 내가 씁쓸하게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였다.


 "잠깐만."


 유리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나가려다 몸을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리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낸 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가지는 말아줘. 이야기는 들어줄 테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을. 흐끅."


 나도 그렇지만 유리의 마음도 어지간히 복잡한 모양이었다. 보고 싶은 마음과 보기 싫은 마음, 질투심과 애정, 신뢰와 의심이 그 안에서 얼마나 격렬히 싸우고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나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유리의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이제… 들을 준비가 되었어."


 유리는 약간 목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유리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해 언어선택을 해가며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걔는 같이 알바 하는 입사동기야. 최근 스케줄을 겹치게 배정받아서 퇴근길이 겹쳤던 것뿐이야. 그리고 입맞춤은…."


 "입맞춤은?"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고백 받았다는 사실 같은 걸 어정쩡하게 숨기면 말의 앞뒤가 어색해질 수 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채희가 괘씸하니 걔의 프라이버시 따윈 지켜줄 이유는 없다.


 "그래. 솔직히 말할게. 걔한테 고백 받았고, 나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단단하게 못 박았어. 근데…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하라며 기습으로 당한 상황이야. 당연히 걔의 말에 응할 생각은 없어!"


 "…그랬구나."


 "믿어주는 거야?"


 "……."


 유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대답을 보류했다. 아마… 함부로 '믿는다.'도 '믿지 않는다.'도 내뱉을 수 없는 거겠지. 어째선지 알 것 같았다. 믿고 싶지만 감정이라는 녀석은 그만큼 복잡한 법이니까.


 사실 당시에 굳어져서 바로 채희를 바로 밀쳐내지 못한 내 잘못도 컸다. 침착하게 밀쳐내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 지경까지 가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밤을 보냈다. 간만에 차갑게 식은 머리로 많은 걸 생각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채희가 저런 식으로 들러붙어오고 관계를 부수려 들었다면… 그 나쁜 년이라 지목된 애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쪽 입장은 듣지 못했으니까.


 다음 출근 때도 근무가 겹치니 확실히 말해둬야지. 그리고 유리와의 신뢰 회복은 조금 걸리겠지만… 반드시 힘낼 생각이다. 애꿎은 유리만 상처를 받은 상황이니까. 나는 어떻게든 유리의 마음을 풀어줄 방법을 떠올리려고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지이이이잉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상당히 피곤했지만 스마트폰 진동에 눈을 떠야 했다. 오늘은 유리가 출근하는 날이니까 정성을 다해 배웅해줄 생각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밥을 먼저 꺼냈다. 따끈따끈한 밥보다 볶음밥 류는 이런 차갑게 뭉친 밥을 쓰는 게 밥알이 덜 뭉개지니까. 오므라이스에다가 케첩으로 하트를 진하게 그려서 사랑을 표현해주겠어!


 우선 격식부터 차리기 위해, 유리의 옷장을 살짝 뒤져서 비교적 하늘하늘한 디자인을 한 까만 복장을 입고, 흰 앞치마를 겹쳐 입었다. 아마 이것만으로 메이드 같진 않겠지만, 중요한 건 정성이니까!


 우선 계란을 풀어서 얇게 펴서 구운 다음 접시 위에 세팅을 해놓았다. 그다음 양파와 피망과 당근을 잘게 썰고, 양파부터 은은한 갈색이 날 때까지 볶았다. 고소하면서 달달한 향이 올라오면 살짝 덜어내고 당근과 피망을 볶는다. 그다음 마늘을 슬라이스해서 기름에 구워서 마늘 후레이크와 마늘기름을 만들었다.


 대강 밑 준비를 마치고 밥은 주걱으로 살살 눌러가며 소금을 친 다음, 볶은 야채 및 햄과 섞어 아까 만든 마늘기름에 볶아주었다. 내가 봐도 그럴싸한 비주얼이 나왔다.


 이 볶음밥을 접시 위에 동그랗게 세팅해둔 계란 위에 얹은 다음 마늘 후레이크를 올렸다. 그다음 마무리로 나와 있는 계란을 덮어 준 다음 후추를 살살 뿌려주었다. 이걸로 완성이야.


 요리를 완성한 나는 유리를 흔들어 깨워주었다. 어제 일도 있었으니 가급적 조심스럽게.


 "우, 으음…."


 유리가 원래 아침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무척 피곤해보였다. 아마 잠을 설친 것이겠지. 다시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공들여서 만회해나갈 생각이다.


 "에헤헤. 오늘 아침은 사랑을 담은 오므라이스야."


 나는 힘겹지만 억지로 웃어 보이며 밥상 앞으로 이끌었다. 솔직히… 이런 거 굉장히 민망하지만! 원래 살면서 할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조금 창피한 것 정도는 괜찮아!


 "사랑을♡ 사랑을♡ 듬뿍 듬뿍 머금고 맛있어져라! 얍!"


 나는 손을 머리 옆에 붙이고 고양이 귀처럼 만들고 애교 넘치게 팔랑여준 다음, 케첩을 바로 짜 보였다.


 Y U ♥ R I


 하트를 조금 크게 그리긴 했지만 내 사랑의 크기라고 받아 줘! 유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소탈하게 웃음을 터트려 보았다.


 "아하하… 이게 뭐야."


 "내 사랑 표현이양."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면서 살짝 윙크를 해보였다. 다행히… 유리의 기분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라도, 식사투정이라거나 심각하게 그림자 진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일단 이렇게 한걸음씩 나아가는 거야.


 식사 이벤트 덕분인지 다행히 출근하는 유리를 무사히 배웅해낼 수 있었다. 현관 밖으로 나서는 유리의 표정은 조금은 밝아진 느낌이었다. 돌아올 때도 최대한 열렬히 맞이해줘야지.


 "다녀올게."


 "잘 다녀와."


 나는 인사를 하며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들어보였다. 유리의 쿡쿡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짧지만 애교 넘치는 키스를 남겨주고 밖으로 나갔다.


 지나치게 정신력을 소모한 나는 잠시 쉬려고 주저앉았다. 아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한 유리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살 부릴 때가 아니었다. 돌아올 때 마음을 녹여줄 이벤트를 생각해야 했다.


 똑똑똑


 유리인가? 뭘 두고 왔나? 아무 생각 없이 도어 록을 열어주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유리라면 문을 두들길 필요 없이 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텐데? 나는 서둘러 다시 잠그려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상대의 힘이 더 강했다. 강도일까? 아, 안 돼! 문을 열리게 놔둬선!


 그러나 젖 먹던 힘을 다한 노력에도 문은 열리고 말았다. 힘없이 엉덩방아를 찧은 나는 겁먹고 불의의 습격자를 올려다보았다. 눈앞에는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여동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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