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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동생에게 EBS 폴더를 털린 사연 -14-

LL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2 20:03:27
조회 750 추천 20 댓글 4
														


 요즘은 하루하루가 살맛이 났다. 여동생은 근처에 채희가 있어서 부담스러운지 이제 거의 찾아오지 않거나, 와도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돌아가고, 가끔씩 전화시도를 하는 정도였다.


 채희는 그 이후 나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관심조차 주지 않아서 속이 편안했다. 유리와의 관계도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비도 밀리지 않아 집세랑 식비에서 민폐가 되지 않아 당당할 수 있어 좋았다. 최근 들어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행복했다.


 고작 12월 초에 월급이 들어왔을 뿐인데, 돈도 천천히 모아서 컴퓨터를 사서 EBS 폴더를 채워 넣고 유리와의 플레이에 참고해야지. 하는 글러먹은 생각도 자주 들 정도로 여유로웠다.


 이제 길거리에서 슬슬 캐롤도 들려오는 시기가 오자,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하나둘씩 세워지고 있었다. 연말 분위기가 나서 나도 절로 기분이 같이 들떴다.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때가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성수기라고 둘 중 하루는 무조건 풀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당일을 유리와 보내기 위해 이브에 출근한다고 정한 상태였다. 반드시 나중에 소소하지만 평범한 직장을 잡아서 둘 다 쉬어주겠어! 둘 다 유리와 보낼 거야!


 "그러고 보니 아리는 크리스마스엔 어떻게 할 거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계획! 집에서 내내 둘이 붙어서 파티해도 즐거울 것 같고, 어디 놀러가는 것도 그 나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둘이 호캉스를 즐기면서 하루 종일… 시트는 어차피 호텔 직원들이 치워 줄테니 뒤처리도 편할 테고….


 "앗! 얼굴 빨개졌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에헤헤헤. 비밀이야."


 "엉큼해."


 유리는 스스로의 몸을 지키듯 감싸는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원래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지만… 현대에는 어째선지 커플의 날이 되어버렸지. 아마 유리도 유리 나름대로, 나도 내 나름대로 이벤트를 준비하겠지. 크리스마스는 그 자체로 특별한 날이니까.


 "우선 이브 밤은 어떻게 보내고 싶어?"


 크리스마스이브 밤10시까지는 고생할 것이 훤해도, 밤부터 시작이니까! 유리라면 집에서 보내고 싶어 할까? 아니면 특별한 장소에서 보고 싶어 할까? 우선 알바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만.


 "유리는 어떻게 하고 싶어?"


 "그… 둘만의 특별한 기념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왔다! 유리 특유의 소녀감성. 그렇다면… 역시 유리를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이라거나? 근데 출입이 허가될까? 아마 되어도 파티까진 무리겠지? 경비가 지키고 있는 곳에서 꽁냥 댈 수도 없을 테고. 1학년 교실을 계기로 유리와의 추억의 장소가 될 만한 곳들을 마구 회상해 보았다.


 둘이 술을 처음 마실 수 있게 된 1월 1일을 떠올려 보았다.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다른 인파들과 마구 섞여 있있던 그 시절. 모두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세고 종소리가 퍼질 때 환호를 내질렀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는데 12월 31일이 생일인 사람은 그 장면을 TV화면으로 보면 정말 복잡한 심경이었겠어. 자기 생일이 끝나는 날을 굳이 인파가 몰려들어서 카운트다운을 세다니.


 굳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인파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여기는 기각이었다. 예수님이 탄생한 기념일인데… 커플 염장질은 하더라도 최소한 절에서 하진 말아야지. 천벌이 내릴까봐 무서워.


 그렇다면 그때 처음으로 같이 갔던 술집? 아마 바였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같이 예쁜 칵테일을 마시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우선 여기는 후보!


 수학여행 가서 처음으로 같이 잠들었던 곳은 너무 멀고… 하교길에 처음으로 같이 군것질하러 들렀던 분식집은… 크리스마스에 굳이 분식집? 전혀 로맨틱하지 않아!


 "아리야?“


 "앗! 응."


 "너무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 같아서."


 "으, 응."


 으으, 창피해라. 혼자 너무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나 보구나. 하지만 둘만의 기념일을 만든다면 대충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반드시 최고의 하루를 보낼 생각이니까! 이럴 땐 유리를 녹일 멘트를 떠올려야 해! 그러니까…


 "많은 장소와 때를 생각해봤는데."


 "응."


 "나는 유리와 보내는 매일이 이미 특별한 기념일이야. 나는 유리와 없었던 크리스마스보다 오늘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아, 아리야."


 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대성공인 모양이었다. 유리는 내 품으로 파고들어 촉촉한 눈빛을 보내왔다. 너무 크게 자극한 것일까? 오늘도 안아달라는 신호… 겠지?


 맨 처음에는 내가 그쪽 계열의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고 부담스러웠지만, 이젠 하고 나면 정신적인 교감이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젠 내 쪽이 중독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언제든 OK야.


 "읏! 이건… 요, 요즘 추워져서. 12월 중순이니까."


 매일같이 하고도 은근히 돌려 말할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처음에는 내가 실수했다는 의무감으로 사귀기 시작했고, 여동생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지만 어느새 유리에게 빠져버린 나를 발견했다. 계기는 어찌 되었든 현재가 중요한 법이니까.


 "그럼 내 몸으로 따뜻하게 해줘야겠네."


 그리고 평소처럼… 은 시시하니까 나는 속옷만은 입으로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굉장히 힘들지만… 속옷이 벗겨지며 살갗이 천천히 드러나는 게 어딘가 흥분돼! 춥다는 유리도 온 몸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내뺄 생각은 없었지만 짓궂게 유리의 귀에 속삭여 보았다.


 "뜨거워. 굳이 내가 따뜻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하, 하지만 아리가 추워 보이니까!"


 유리는 내 옷을 벗기며 나에게 안겨왔다. 당장 코피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달달하고 사랑스러워! 매일 같은 플레이를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으니 참신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오늘은… 아까의 대화를 생각하면… 그거다!


 "오구오구! 우리 아가! 엄마 쭈쭈가 그리워쪄?"


 말을 하고 급격히 창피해져서 얼굴은 화악 달아올랐다. 하지만 가슴은 자신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 애처럼 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오늘은 응석을 마음껏 받아주는 엄마 컨셉이야! 요즘 응석 부리지 못했던 만큼 부리게 허락해줄 테니까!


 "응애애! 응애!"


 유리는 목소리를 귀엽게 쥐어짠 다음 내 가슴을 물고 쪽쪽 소리가 나게 흡입하기 시작했다. 내가 쪽팔리지 않게 배려해줘서 다행이야. 위에서 내 가슴에 매달려 쪽쪽거리는 모습에 흥분되기보단 그 자체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쩐지 성스럽게 정화되는 기분. 이게 모성애? 아기가 생긴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 아니야! 유리는 항상 사랑스러우니까! 모성애는 아닐 거야!


 나는 깨끗하고 평온한 기분으로 그 자세를 유지하던 중에, 유리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빨을 세워서 잘근잘근 깨물어보였다. 아까 했던 생각 취소!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역시 흥분돼! 지지 않을 거야!


 "응애애!"


 나는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유리의 가슴에 매달렸다. 네가 했던 것처럼 나도 응석부릴 거야! 유리를 밀어 넘어트리며 예쁘게 솟은 가슴을 살짝 빨아들이다가 혀를 살살 굴려가며 잘근잘근 깨물어 보았다. 세상에 엄마 젖을 물때 이런 아기는 없겠지만… 나를 흥분시킨 유리 잘못이야!


 나는 집요하게 가슴만을 공략했다. 아기 같은 손놀림으로 조물딱 거리면서 섬세하기보단 투박하게 물고 빨고 주물렀다. 유리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이 추욱 늘어져버렸다.


 아랫쪽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지만… 오늘 저긴 노터치야. 컨셉은 확실하게 갖고 갈 거니까.


 어쩐지 승리감에 취해 유리에게 무릎 베게를 해주고 허리를 아주 살짝 숙여 다시 젖을 물렸다. 유리는 반쯤 풀어진 눈으로 다시 아기처럼 쪽쪽 빨기 시작했다.


 민망하지만… 중독될 것 같아. 어차피 내일 둘 다 쉬는 날인데 이대로 밤을 새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내일은 다시 격렬하게 놀 생각이니까. 오늘은 체력을 온존하는 느낌으로 쉬어야지. 나도 벌써 호흡이 가빠지고 있고.


 "허억… 헉. 오늘은 여기까지."


 "으, 응."


 둘다 급격히 부끄러워져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쩌자고 이런 짓을 했을까? 역시 추우니까 이대로 끌어안고 자도 되겠지. 나는 살며시 유리를 끌어안고 나란히 누워보았다.


 아까의 행위로 유독 가슴이 민감해져서 그런 걸까? 유리의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내 가슴에 울려 퍼지는 감각이 들었다. 어쩐지… 진정되지 않아. 이대로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아.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유리는 무슨 생각인지 누워있던 내 위에 몸을 겹치듯 누웠다. 방금 전까지 서로 물려주던 가슴끼리 닿아서 급격히 부끄러워졌지만…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겠지.


 유리는 살며시 눈을 감고 나를 끌어안고 제법 오랜 시간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눈을 다시 뜨고 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실 심장이 왜 왼쪽에 있는 걸까 늘 궁금했는데."


 "응."


 유리는 정말 포근함을 느끼는 사심 없는 표정으로 내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 오른쪽 가슴은 아리의 심장이 뛰는 걸 느끼기 위해 비워주고 있던 거였어."


 그 말에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유리의 심장이 뛰는 것을 오른쪽 가슴으로 느껴 보았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쪽 가슴으로 심장이 비슷한 속도로 뛰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비어있던 한쪽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일까?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 심(心)을 써서 심장인 것일까? 부끄럽게 이런 멘트는 어디서 배운 거야!


 결국 더 이상 특별한 행위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유리의 말에 여운을 느껴 제대로 잠에 들 수 없었다. 앞으로도 유리의 심장이 뛰는 걸 계속 느끼고 싶었다.


 몸을 격렬하게 섞지 않아도 이런 대화만으로 정서적인 교감이 된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는 기회가 되면 그런 행위보다 포옹을 해봐야지.


 결국 진정이 필요한 나는 유리와 다시 끌어안고, 호흡과 맥박을 느낀 뒤에야 평온한 느낌에 잠길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행복한 날이 가득하길….



 아침이 되자, 유리는 평온한 표정으로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요즘 어쩐지 내가 더 먼저 깨는 느낌이다. 나는 유리가 깨지 않게 조심히 끌어안은 채, 어젯밤에 나눈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유리의 심장이 천천히 두근거리는 감각이 비어있던 오른 쪽으로 다시 느껴졌다.


 내 심장의 반쪽. 이래서 사랑하는 연인을 내 반쪽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오른쪽 가슴에 심장을 느끼게 해준 것은 유리니까 유리가 내 반쪽인 거겠지?


 오늘은 둘 다 느긋하게 쉬는 날이니 이렇게 평온하고 정서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적어도 어젯밤에 나눈 대화는 진심으로, 그동안 보냈던 어떤 크리스마스보다도 특별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리를 평온하게 해줘야지.


 "우웅? 먼저 일어났어? 깨워주지."


 눈만 뜬 유리는 아직 살짝 잠긴 목소리였다. 나는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유지하며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여 주었다.


 "오른쪽 심장을 채워보고 있었어."


 어제 했던 멘트가 급격하게 부끄러워졌는지 유리의 얼굴이 빨갛게 화악 달아올랐다. 아마 잠도 깨버렸을까? 벌써 부끄러워서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자, 잠깐! 어제 그건 분위기에 무심코…!"


 사실 말로 하긴 부끄럽지만, 내게 상당한 여운을 남긴 멘트였다. 사실 몇 번이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듣고 싶을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 시점을 회상하며 다시 유리를 꼬옥 끌어안아보았다. 아침부터 이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그런 느낌으로 뒹굴 거리다가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배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특별하게 공동 작업으로 요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예쁜 사진이 나오고, 함께 해냈다! 같은 느낌으로 완성되길 원했다. 유리는 겨울이라 몸이 따뜻해지는 녀석이 좋겠다며 스마트폰으로 괜찮아 보이는 레시피를 펼쳐 보였다. 이미 만들려고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구나.


 부르기뇽이라고 프랑스식 와인비프스튜였다. 유리는 정말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지 부르고뉴산 와인을 찬장에 몰래 보관해두고, 신선한 야채들과 송아지 볼 살 까지 냉장고에 채워 넣어놨던 상황이었다. 본격적이야! 어쩐지 요즘 냉장고를 못 열게 했었어.


 실행한다는 것만으로 즐거운 공동 작업이었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는 압박감에 나는 진지하게 유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나갔다. 이정도로 준비했는데 나 때문에 실패하면 내가 나를 용서 못해!


 "먼저 베이컨을 구워서 건진 다음, 그 기름으로 볼 살은 겉만 살짝 익을 정도로만 구워줘. 끝나면 불러줘"


 유리는 살짝 데친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토마토 페이스트마저 수작업으로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고3 때 공부하던 때보다 극도로 집중했다. 볼 살의 겉 부분에 살짝 갈색이 돌기 시작하자, 나는 고기를 건져낸 다음 유리를 불렀다.


 "일단 다 됐어."


 토마토를 으깨고 다른 향신료와 함께 졸이고 있던 유리는 불을 줄이고는 내 쪽을 지켜보았다. 소의 육즙이 남아있는 내 프라이팬을 본 다음, 각지게 썰어놓은 양파와 당근을 부어주었다.


 "굽다가 숨이 빠지면 아까 구웠던 베이컨도 같이 넣어줘."


 "오케이!"


 내가 지시를 받는 입장이긴 했지만, 그래도 함께 노력해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유리의 지시에 맞게 베이컨도 넣고, 다 익은 뒤엔 육즙이 배어나온 볼 살을 함께 넣었다. 과정이 끝나자, 유리는 계량해둔 밀가루를 살짝 뿌려준 다음 가스레인지 아래 붙어있는 오븐을 열었다.


 "여기서 4분 구울 테니까. 끝나면 섞고 다시 구워줘. 그러면 고기 질이 좋아진다고 적혀있어."


 벌써 배가 고파졌지만, 공복은 최고의 조미료라고 하니까 믿고 기다리겠어. 옆에서 유리가 끓이고 있는 포도주의 향기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벌써부터 너무 기대되기 시작했다.


 사진만으로 이 감동을 담아낼 수 있을까? 거치대가 없어서 동영상은 힘들다는 게 한이야! 최소한 사진만은 스마트폰 메인 화면으로 삼는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나중에 이런 때를 대비해서 거치대도 반드시 사둘 거야! 그땐 반드시!


 제법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럴싸한 야채와 고기볶음이 나왔다. 내가 열심히 한 결과물이 유리가 직접 만든 토마토 페이스트와 졸인 와인과 합쳐지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렇게 둘이 함께 노력해나간 결실이 하나가 되는 거였어! 다만….


 "이대로 오븐에다 3,4시간정도 졸이면 돼."


 "자, 잠깐! 첫 끼도 아직인데? 이, 이제 한계야. 내가 죽거든 양지 바른 곳에…."


 난 평범한 크림스튜처럼 금방 끝날 줄 알았지. 3,4시간? 이건 고문이야! 나는 엄살을 부리며 죽어가는 척을 했다. 사인은 공복 중 비프스튜 향기의 과다섭취로 해줘.


 "아하하. 그럴까봐 내가 그저께 만들어 둔 게 있었어."


 "사랑해 유리야!"


 나는 반사적으로 유리를 껴안고 뺨을 부벼주었다. 부활주문은 왕자님의 키스가 아니고 수제요리였다고 할게. 유리는 냉장고를 뒤적거리더니 까만 조각이 들어있는 통을 꺼내보았다.


 뚜껑을 열자 나오는 이 씁쓸한 향과 이 형태는… 브라우니구나! 1학년 종업식 때가 떠오르네. 그때도 마침 발렌타인이라고 만들어 줬었지.


 사실 안이 진득한 듯 촉촉하고 묵직해서 맛있었지만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바로 반이 찢어졌던 이별의 추억이 담긴 간식이니까.


 "이거 보니까 고 1때 종업식 날이 떠오르네."


 "나도 마침 그 생각하고 있었어."


 사실 그 이후로 브라우니를 먹었던 기억은 없었다. 카페 같은 데서 간식으로 파는걸 보기는 했지만… 그날 서러워서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으니까.


 유리도 그랬을까? 나는 아련한 느낌으로 브라우니를 한조각 집어서 천천히 구경해 보았다. 어쨌든 직접 만져보고 향기를 맡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야.


 "난, 사실 이걸 먹은 직후에 유리랑 반이 찢어진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직도 브라우니를 못 먹고 있었어."


 말해놓고 급격히 민망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정말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니니까.


 "정말? 나도 그 이후로 사실브라우니를 못 먹었거든."


 유리는 내 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여보였다. 아마 지금 나도 비슷하게 눈을 반짝이고 있겠지? 우리 한 마음이었구나. 이 감각도 어째선지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때도 자주 손을 맞잡고 꺄아! 꺄아! 하는 느낌이었는데. 오늘도 어쩐지 그때와 같은 느낌이 될 것 같은 기분이야.


 "반이 찢어졌을 땐 슬펐지만 어쨌든 계속 만났으니까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이젠 그런 생각이 들어."


 "응. 나도 그래서 다시 만들어볼 용기가 생겼던 거야."


 이런 사소한 것까지 함께 한발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초콜릿 과자가 우리를 떼어놓았던 덕분에 1년간 매일 일상처럼 봐왔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 건지도 깨달았다.


 아마 계속 같은 반이었으면 그 1학년 때가 소중했었다는 걸 몰랐을지도. 추억은 이런 감각으로 다시 회상해보면 참 아름답게 변해있어.


 "그럼 빈속에 블랙커피는 좀 그러니까… 라떼나 우유랑 같이 먹을래?"


 "그럼 우유로 할게."


 그렇게 스튜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유리는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같은 반이었던 것은 고작 1년뿐이었지만, 그 1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달콤하고 진득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씁쓸한 감각이 반가웠다. 우유와도 어울리지만 당연히 커피와도 어울리겠지? 다음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커피와도 먹어봐야지.


 유리도 천천히 브라우니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해서일까? 약간 여운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유리가 입에 브라우니를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살짝 지나갔다.


 브라우니는 케이크라서 잘 안되겠지만, 생 초콜릿이라면 입에 넣고 키스한 다음 혀를 굴려서 녹여먹고 먹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탕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초콜릿은 잘 녹으니까.


 …아냐! 잡념아 썩 물러가라! 요즘 머리에 음란마귀가 씌었어!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할 변태가 어디 있어! 비프스튜가 완성되기 전까진 우린 연인이 아니야! 지금 이 순간만큼은 꿈이 가득했던 고1이니까! 고1은 그런 썩은 생각 따위 안 해!


 "으음? 표정이 갑자기 이상해졌어.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에헤헤헤."


 그렇게 아늑하면서도 어렸던 시절의 텐션이 살아있는 분위기속에서 간만에 재잘재잘 수다를 떨 수 있었다. 가끔은 이런 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것도 좋겠어.


 땡!


 이 경쾌한 종소리는! 오븐 쪽에서 난 거지? 드디어 제대로 완성된 거지? 이제 고1 시절은 필요 없어! 난 어른이야! 위장에다가 비프스튜를 한가득 밀어 넣을 생각만 하는 글러먹은 어른이야!


 "완성된 것 같아!"


 "드,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짙은 갈색의 스튜. 보기만 해도 황홀해져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기 시작했다. 벌써 입 안에 군침이 싹 돌기 시작했다. 이걸 보니 정말 크리스마스가 코 앞이라는 느낌이야.


 유리는 크고 넓은 접시에다가 스튜를 깔끔하게 담아놓은 다음, 와인 병에다가 여분의 와인을 졸졸 따라주었다. 분명 한 낮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겨울이라 날이 짧아서 그런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아까 브라우니는 사실상 간식이고, 이게 오늘의 첫 끼이자 마지막 끼니겠네. 반드시 만족스럽게 먹어 보일 거야.


 밥상 위에 올라가 있어서 모양이 살진 않았지만… 유리는 최선을 다해 세팅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촛대를 꺼내서 하얗고 긴 양초를 끼워 촛불을 켠 다음, 형광등을 꺼보였다.


 제법 어둑어둑해진 배경에서 촛불만으로 비춰지는 비프스튜와 와인은 이미 하나의 작품이었다. 근사해! 조명 빨 대단해!


 최대한 근사해 보이는 각도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제법 만족스러운 샷이 나왔다. 이건 한국인의 식전 기도. 맛있는 음식을 영접하기 전의 기도와 같은 거니까.


 "그럼 유리 셰프. 심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하하. 긴장되네요. 심사위원장님."


 나는 스푼으로 스튜를 고기와 함께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보았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걸 고기가 녹는다고 하는 거구나. 와인과 토마토페이스트의 맛을 가득 머금은 고기는 입안에서 사르르 사라졌다.


 "10점 만점에 120점! 우승입니다! 유리 참가자! 소스를 잘 만들어서 그런가? 엄청 맛있어! 유리도 먹어봐!"


 나는 흥분해서 유리에게도 권해보았다. 유리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한 스푼 떠서 먹어 보았다. 잠시 입을 오물거린 다음 눈을 반짝였다. 유리의 마음에도 든 게 틀림없어.


 "와아! 고기가 사르르 녹네. 아리가 신경 써서 작업해줘서 그런 것 같아!"


 "에헤헤. 고마워."


 "야채도 소스가 배어서 부드럽고 맛있어!"


 "응."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소소한 행복이 피어나는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내가 유리에게 크리스마스보다 유리와 보내는 평소가 더욱 특별하다고 이야기 했었지. 그 말에 절대 과장이나 아부는 없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이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들어있었다.


 장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 때 굳이 둘만의 특별한 기념이 될 장소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유리와 나의 추억이 가장 많이 밴 이 아담한 방이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라는 것을 지금 다시 깨달았다.


 "지금 깨달았어."


 "응? 뭔데?"


 나는 지금 별 것도 아닌데 눈물겨울 정도로 행복한 이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장소는 계기일 뿐,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특별하게 만든다고.


 "난 크리스마스를 이 집에서 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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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가 되지 않게 글의 페이지가 넘어가면 3,4편씩 올리는 방향으로 갈게요.

포스타입이 소설 칸 만들고 쓰기엔 관리자측?승인이 떨어질 필요가 있어 보여서 오랠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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