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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a4 한장으로 끝내는 백합 - 8

글쓰는병시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8 08:23:53
조회 125 추천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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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어느 놀이동산에 도착했다. 이미 폐업하고 철거가 진행중인 곳이었다. 폐업하기 전, 너와 몇 번인가 왔었던 곳이었지만, 폐업이 가까워지면서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네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역시 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왕 사라질 것이었으면 조금 더 있다가 사라져 주었으면 했다.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고 했던 주제에 아직 내 기억 속에 너는 남아있었다. 나는 차라리 네가 무사했으면 싶었다. 전혀 일면식 없는 곳에서 직장을 잡아 일을 하고, 퇴근해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면 이라고 바랬다.

 놀이동산 입구에는 공사중 이라는 팻말과 함께 테이프가 길게 쳐져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 컨테이너 박스에 '현장사무소' 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그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테이프를 살짝 들어올리고 조심스레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놀이동산은 고요했다. 여기저기 때가 내려앉은 놀이기구들이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 잠겨있었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이 곳이 이전날, 우리가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회전목마에 앉아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회전목마에 앉는다는 행위는 꽤나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는 해가 지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놀이기구들의 그림지가 길게 뻗어있었다. 저 멀리 크레인이 보인다. 나는 크레인이 있는 쪽을 보며 어떤 놀이기구가 있었는지 기억해내보려고 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정확하게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한가지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롤러코스터가 있었던 곳인가.“

 생각이 입으로 나왔다.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을 하며 나는 회전목마에서 일어나 크레인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크레인은 놀이동산 구석에 있었다. 여러 놀이기구 사이를 걸어가면서 생각이 났다. 이 놀이동산에는 롤러코스터 대신 놀이동산을 한바퀴 도는 관람열차가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롤러코스터가 무서워서 대신 관람열차를 타고는 했었다.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너는 지금 사라져 버린것인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와 연락이 끊기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부 너에 관한 의문이었다.

 

 드디어 크레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사이, 해는 더욱 기울어져서 이젠 석양이 되었다. 크레인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역광을 받아 그림자로만 보이는 형태는 사람을 닮아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크레인 반대편으로 가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검푸른 얼굴이 보였다. 너였다. 공중에 네가 매달려 있었다. 축 쳐진 너의 몸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다시 내가 왔던 쪽으로 걸어갔다. 너의 뒤로 석양이 불타오른다. 기묘한 희열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 경찰에 신고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만 더 너의 모습을 보고싶다는 욕구가 내 손을 가로막는다. 크레인에 길게 목을 매달은 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던 너의 말로일줄 그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석양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내 뒤로 밤하늘이 떠오른다. 기묘하게 늘어난 너의 목이 눈 안쪽에 날카롭게 꽂혔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날 마셨던 커피의 쓴 맛이 다시금 내 입을 가득 채웠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같이 왔고, 나는 근처 경찰서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나왔다. 그날 날 찾아왔던 너의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집에 돌아왔지만 나는 불을 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는 철거중인 놀이동산에서 어떤 생각을 했던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더 이상 너는 완전히 사라질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석양을 등진 너의 긴 목이 잔광처럼 내 눈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714522


이 이야기의 후일담

백합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애매하긴 한데 일단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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