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짝사랑은 여자 엘프였다.

나는 용사 일행의 일원인 마법사였다.

모험 중 우연히 일행과 떨어져 숲을 헤매던 차에 그녀와 처음 만났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작은 귀. 그녀는 엘프였다.

복숭앗빛 피부와 길게 쳐진 눈꼬리.

모든것을 포용해줄 것만 같은 미소.

첫눈에 반했다.

나는 그녀를 붙잡았고, 그녀는 흔쾌히 나와 일행이 되어주었다.

나와 그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왕성을 향한 모험에 뛰어들었다.

나는 밤이 되면 모닥불 앞에서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눕는 걸 좋아했다.

누워서 올려다본 그녀는, 함께 보이는 밤하늘과 무척 잘 어울렸다.

좋아한다고 나지막하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도 좋아."

사랑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대답.

나와 그녀의 성별을 감안하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대로 잠들곤 했다.

반년이 넘도록 이어진 긴 모험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기엔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다.

닿지 않을 것 같던 마왕성은 어느새 눈에 보일만큼 가까워졌고, 일행의 모두는 긴장한 듯 몸을 추스렸다.

그렇게 우리는 마왕성에 도착했다.

마왕성의 적들은 강력했다.

스무 명에 달하던 대형 파티였지만 마왕과 마주쳤을 때는 이미 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하나 둘씩 전열이 무너져가는 찰나, 용사가 회심의 일격을 가했지만 마왕은 별거 아니라는 듯 우뚝 서서 용사의 목을 가지 치듯 떼어내버렸다.

모두가 전의를 상실한 순간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사랑해.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각오를 다잡고 신의 주문을 영창했다.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고, 턱밑으로 흘러 상의가 검붉게 적셔졌다.

신의 주문은 내 모든 생명과 마력을 남김없이 산산조각내었다.

조각난 모든 기운이 허공에 모여 터질듯이 부풀어오르더니, 마왕에게 쏘아지듯 날아갔다.

생애 마지막 마법.

귀가 찢어질만큼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시야를 덮쳤다.

"제발 죽어라..."

종교는 없지만 기도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날 보고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눈이 감겼다.

그 순간 내 생명은 끊어졌다.

.

나는 불현듯 눈을 떴다.

어째서 살아났는지 의문이었다.

눈을 떴을 땐 잡초가 무성한 채로 방치된 마왕성 건물의 1층이었다.

마법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왕과 대적한 날, 그날부터 100년하고도 2년이 더 흘러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양초들과 주문서, 지워져가는 마법진으로 보아

내가 살아돌아오기를 원한 누군가가 큰 규모의 마법을 펼쳤다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죽은 자를 원래대로 소생시키는 마법 따위 있을 리 없다.

분명 실패했어야 했을텐데.

내게 죽음은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했고, 모든 상황이 방금 전 일어난 것 같았다.

그녀. 마지막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땠을지 나지막히 떠올려봤다.

그녀는 모험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곤 했다.

고향에서 기다리는 동생이 있다고.

나를 보면 동생이 떠오른다고. 그런 말도 했다.

아차. 나는 머리를 한대 때렸다.

고향이 어느 곳인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니.

.

"엘프? 찾으려면 고생 좀 할 걸?"

마법사의 탑 꼭대기의 늙은이가 퉁명스레 뱉은 말이었다.

엘프의 거처를 찾는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커다란 대삼림에 모든 엘프가 모여 산다는 건 소설속에서나 볼 법한 일.

세계 각지에 점처럼 흩어져 작은 규모의 부락을 지어 사는 게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이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얼굴만이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나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고, 숲을 헤매다가 다른 엘프를 만나기도 했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엘프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녀가 인간의 언어를 따로 습득했기에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셈이다.

"엘프만 보면 눈 돌아가는 남정네들이야 차고 넘치지만, 여자는 또 처음보는구만."

유명한 정보 판매상을 찾아갔을 때, 그는 흥미가 생긴다는 듯 자신의 턱수염을 만지작댔다.

"귀가 쳐졌다고 했지. 그렇다면 나이트 엘프나 우드 엘프는 아니겠군. 피부가 하얗다면 아마 남부 지방의 엘프도 아닐걸세.. 그리고 머리에 월계관처럼 생긴 띠를 했다고 했지?"

그는 종이에 여러 이름을 적어놓더니 펜으로 슥슥 그어대며 대여섯 개의 후보를 추려냈다.

인간 세상에 알려진 엘프의 거처만 수십개인걸 감안하면 굉장히 뛰어난 정보력이었다.

"그나마 접근성이 높은 건 이쪽이겠군. 아마 한달이면 충분히 도착할거야."

"감사합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대륙 동쪽의 알자스 산맥이었다.

"건투를 비네. 사랑은 좋은 거지. 언젠가 만나면 함께 찾아와 이야기를 더 들려주지 않겠나?"

"물론이죠."

나는 길을 떠났다. 언젠가 그녀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아마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날의 해가 밝을 것이다.

.

짝사랑을 찾아 떠나는 소재가 떠올랐는데

내가 판타지 느낌을 좋아해서 그쪽으로 써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