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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단편] 악역 영애는 파멸을 소망한다앱에서 작성

키시베로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05 03:52:19
조회 1480 추천 65 댓글 14
														

매년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변방에 있는 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을 언제나 기대했다.


자상하고 따뜻하며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는 할머니는 어릴 적 나의 안식처였다.


그러던 할머니는 내가 8살이 되던 해, 깊은 밤 난롯가 근처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다.



"리베, 문섀도우 가문의 미래시는 절대적이란다. 한 번 목격한 가능성을 따른다면 틀림없이 그 인과는 이루어지지. 하지만 그 미래에 순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다."


"으음...."


"그렇네.... 리베한테는 조금 어려웠겠구나. 그럼 예시를 들어 주마. 리베가 미래시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리베가 본 시간대에 그 절벽에 간다면 반드시 떨어질 거란다. 하지만 리베가 절벽에 가지 않는다면, 떨어지는 미래를 피할 수 있다는 소리야."


"어, 그러면 자기가 좋아하는 결과만 따를 수 있다는 소리인가요?"


"그렇단다. 하지만 언젠가 너에게 미래시로 인해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겠지."


"선택...이요? 그냥 더 좋은 쪽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가능성을 목격한다는 것만으로도 리베는 정말로 불합리한 선택을 해야할 때도 있단다. 리베에게는 그런 때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선택에 순간이 다가온다면 부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할머니는 바란단다."



할머니의 얼굴에 지금껏 보지 못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알아챈 나는 할머니의 말에 방긋 웃으며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려 했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가 나를 걱정한다는 것 만큼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문섀도우 가문의 사람들은, 10살이 되는 날부터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미래라곤 해도 수 분, 수 시간, 수 일 뒤의 단편적인 내용을 볼 수 있는 것뿐이지만, 새로운 해가 찾아오고 처음으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 달빛을 통해 몇 년 뒤 일어날 거대한 파장을 불러올 중요한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가문의 선조님은 이 능력을 통해 이 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고, 그로 인해 지금의 이 공작 가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 오며 10살이 되는 해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이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는 열 살이 되어 미래시 능력을 얻게 되었다.


11월에 태어난 천진난만했던 나는 미래시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능력을 사용했고, 이내 새해가 찾아와 나 또한 첫 보름달을 맞이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부모에게 심부름을 부탁받은 아이처럼, 숭고한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양 달빛을 뚫어지게 쳐다본 나는 달이 하늘의 꼭대기에 올라오는 때, 부모에게 부탁받은 물건과 다른 것을 사온 아이처럼 일그러지게 되었다.




달빛 너머로 비추어진 미래에는 지금보다 성장한 나와 5명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4명의 여자아이는 나를 무릎 꿇게 하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1명의 여자아이는 빛이 발산하는 지팡이를 나에게 겨누었다.


그 빛은 나의 전신을 속박하여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 후 3명에 여자아이에게 비참한 몰꼴로 바닥에 내팽겨쳐진 나는 왕실의 기사단이 나를 체포하러 오는 것을 절망적인 얼굴로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왕궁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





달빛에서 눈을 뗀 나는 내가 본 풍경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감옥에 갇힌다는 거야?


미래에 나는 얼마나 나쁜 짓을 벌이는 거야?


나는, 이런 미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문득, 할머니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능성은 피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11살이 되어 맞이하는 보름달을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파멸의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알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





11살이 되고, 또 다시 새해가 찾아오고, 또 다시 보름달이 하늘에 걸렸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 번 달빛을 들여다 보았다.




두 기사에게 팔을 붙잡힌 나의 앞에는 매서운 단두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주변의 군중들은 악녀의 심판에 흠뻑 취해 과열된 분위기로 나에게 목소리를 쏘아대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 이 비극의 전말을 회상해보았다.


마법 학원에 입학한 평민.


날카로운 외모와 공작이라는 지위, 남들보다 조금 뒤떨어진 사교성으로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던 나와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력이 존재했다.


그녀는 어느샌가 공주와 3명의 여자아이의 총애를 얻게 되었다.


한 명은 이 나라의 힘을 상징하는 기사단장의 딸.


한 명은 '현자'라고 불릴 정도로 명석한 지능을 가진 천재.


한 명은 이 마법 학원의 교장의 딸.


예지 능력을 얻은 이후로 공작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항상 똑부러지게 행동하고 생각하려 노력해왔지만, 4명에게 둘러싸여 사랑받는 그녀를 보며 나는 무심코 부러움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에게 곧잘 어울리지도 않는 유치한 장난을 치곤 했다.


친구는 없었지만 나의 표면적인 모습과 공작위에 따르던 추종자들은 꽤나 있었기에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곤란해하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와 4명의 여자아이를 보며 그 순간 만큼은 나와 그녀와 4명과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단순히 친해지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며 단두대를 앞에 둔 미래의 나는 나 자신에게 조소를 머금었다.



시간이 흘러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시간이 흐르며 장난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질투와 부러움은 괴기하게 뒤섞이며 본래의 모습을 잃은 체 거무칙칙한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를 향한 시기는 점차 도를 넘기 시작했고, 그녀는 몇 번인가 목숨의 위기를 맞이할 뻔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갖가지 시련들을 뛰어넘고 그녀 안에 잠들고 있었던 '성녀'의 자질을 깨우치며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때마침 나를 몰아세우기 위해 증거들을 수집했던 3명도 모든 준비를 마쳐서 나는 연회장에서 그대로 악행들이 폭로되어, 그녀에게 묶이고, 감옥에 수감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철없던 과거의 나에게 저주를 내리며 미래의 나는 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서슬 퍼런 금속날이 나의 목을.




혼란에 빠진 나는 누구의 목이 두동강났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체 내 목을 부여잡으며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런 미래. 반드시 피하고야 말겠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강렬히 생각했다.





***





12살이 된 나는 또다시 미래를 엿보았다.


성녀가 된 그녀는 나를 제거한 후 압도적인 성녀의 힘과 그녀를 따르는 4명의 권력자들을 통해 이 나라의 부패를 흔적 없이 쓸어버렸다.


이윽고 그녀는 공주와 '맹세'를 맺고 이 나라의 왕 못지 않은 실권를 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이 나라를 보다 살기 좋게 만들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녀를 따르고, 모든 국민들이 그녀를 찬양한다.




나는 내가 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미래를 보지 않음에 안도하면서도, 내 마음 속에 어떤 '가정'이 피어나는 것을 인지했다.


나는 애써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그 가정을 다시 마음 속에 묻어버렸다.





***





13살이 되는 해.


또 다시 바라보는 미래


그녀는 누구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 나라를 위협하던 타국을 굴복시켰다.


모든 국가가 통합되어 거대한 제국이 된 이 나라, 셸린은 오랜 세월 동안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된다.



너무나도 완벽한 해피 엔딩.


해피 엔딩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예언의 이어짐. 가능성의 이어짐.


나의 질투가 그녀를 성녀로 각성시킨다.


성녀로 각성한 그녀의 활약을 통해 전 세계에 평화가 도래한다.



나, 리베 문섀도우의 파멸은 가장 확실하고 안정되고 '좋은' 미래를 보장하고 있었다.





***





내가 왜?


내가 어째서?


꼭 내가 희생해야 하는 걸까?


미래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가장 확실하게 '좋은 결과'을 얻을 순 없겠지.


하지만 그녀가 성녀로 각성하는 건 굳이 내가 파멸하지 않아도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하지만....





***





14살이 된 나는 마법 학원에 입학할 준비를 마쳤다.


이미 대부분의 짐은 기숙사로 옮겨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께 간곡히 부탁하여 내 발로 학원까지 향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으로 가는 길에서 살짝 세어나가, 나는 뒷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뒷골목의 풍경은 언제 봐도 지옥을 떠올리게 했다.


굶주림과 폭력, 약물과 무질서, 고통과 슬픔이 난무하는 곳.


도시의 빛과 강렬히 대조되는 이 나라의 어둠.


이 나라는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어느 미래에, 성녀가 퇴치하기도 하는 부패한 권력자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


왕의 힘은 점점 약해져만 가고, 과거의 영광은 저편으로 흐려저만 갔다.


아마도 공주는 성녀로 각성한 그녀를 보며 희망을 보았을테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신화를 통해도 전해졌고, 역사서에 적힐 정도로 그리 먼 과거도 아닌 때에도 성녀는 나타나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성녀는 특별하였다.


지금껏 존재하지도 않던, 미래영겁 이어지는 평화가 그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래시를 얻고 처음으로 새해의 보름달을 맞이한 이후, 나는 문섀도우 가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교육받고 노력하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외면하고 싶어도 이 나라의 어둠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


나의 선조가 피를 흘리며 세운 이 나라에는 그만큼 애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세월이 흐르며 정신이 성장함과 동시에 이 나라를 구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뭐, 내가 파멸하는 미래에선 그런 순수한 소망도 불온한 감정으로 더럽혀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서, 13살의 예언을 본 후 시간이 흘러 머리가 차가워질수록, 억울하고 불합리하게 느껴만졌던 그 '사실'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절망적인 뒷골목을 보며 드디어 결의를 다짐할 수 있었다.


이 나라를 위해서, 나는 미래의 성녀 레이나에게 파멸하기를 소망한다.





***





"어머, 실례. 앞에 서 계신 줄 몰랐답니다."


"그 정도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 특별 전형으로 마련한 평민 입학생의 자리가 아깝네요."


"어라, 그 쪽으로 마력탄이 휘어져버렸네요."


"함정이요? 설마, 제가 그런 유치한 장난을 하겠나요?"


이 외에도 추종자들을 이용해 경고하거나 괴롭히고, 매일같이 필사적으로 마법을 연습하고 공부해나가며 레이나의 위의 서서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했다.


진심으로 상대를 괴롭히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한지 다시 생각해보면 어색한 부분도 꽤나 있었지만, 레이나는 잘 걸려든 듯 하였다.


등을 덮을 정도로 만개한 백금발의 머리칼을 휘날리고 자수정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강렬하게 주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하였다.


상처받은 것처럼 보여도 결코 의지를 잃지 않는 레이나의 모습은 성녀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그리고 레이나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착실히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공작의 연으로 예전에 만나본 적 있는 이들은 처음엔 나에게 찾아와 왜 그러냐고 가볍게 다그치곤 했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될 때쯤에는 그 4명과도 완전히 적대할 수 있었다.


미래시에 따르면 나는 이번 겨울, 학원의 무도회가 시작되는 날에 파멸하고 만다.


나는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오르는 공포를 애써 떨쳐내며 내일로 향하였다.





***





여름 방학이 끝나고 계절도 완전히 가을로 접어들자, 나는 본격적으로 레이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마수를 풀어 그녀를 노리게 하거나, 지하 미궁으로 그녀를 꾀어내거나, 추종자를 이용해 위험에 빠뜨리거나.


갖가지 방법으로 그녀를 위협해왔지만, 그녀는 당연하게도 인연과 본인의 힘으로 보란듯이 시련을 넘어섰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다.


마법 골렘을 폭주시켜 레이나를 노리게 했을 때는, 마법 골렘이 제어를 듣지 않아서 정말로 큰일이 날 뻔 했다.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녀 자신의 마력도 때마침 바닥났던 순간이었기에 진심으로 그녀는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급하게 로브를 쓰고 정체를 감추고 그녀를 도와 골렘 진압을 성공하였지만, 성녀가 될 레이나를 죽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후로도 몇 차례인가 그녀가 '정말로' 위험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정체불명의 여인으로 위장해서 위기를 넘기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숱한 나의 노력 덕분에, 어제 레이나는 드디어 성녀로 각성하였다.


또한 일부러 나에 대한 거짓 음해를 퍼뜨리게 하는 등 온갖 수단을 전부 사용한 결과, 나의 인식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제 성녀의 각성이라는 대사건과 무도회라는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무대가 만들어졌으니, 나를 단죄할 심판대는 갖추어졌다.


그리고 심판의 날은 벌써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죽음의 공포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것이었지만,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 자기암시를 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후회는 없다. 그녀를 성녀로 만드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학원의 정원에서 초승달을 올려 보며 나는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귀에는 예상치 못한 발걸음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리베 님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처음 리베 님을 보며 느낀 것은, 이 세상엔 저렇게 고귀한 것이 존재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맑고 푸른 천공이 생각나는 하늘빛 머리칼과 바다처럼 깊은 푸른빛의 눈동자는 그녀의 날카로운 인상과 조화를 이루어 미의 결정을 이루는 듯 했습니다.


또한 높은 곳에 선 자로서 언제나 그에 걸맞는 품행을 실천하는 그녀를 보며 시골 출신인 저는 동경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리베 님은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미움받은 지조차 모른 체 저는 그녀에게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공주님과 세 분이 저를 지탱해주셔서 견딜 수는 있었으나, 동경하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날, 묘한 위화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리베 님은 언제나 저를 괴롭혔지만, 리베 님의 괴롭힘에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여태까지 살면서 괴롭힘을 당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시작될 즈음에, 저는 그녀의 괴롭힘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을에 접어들자, 리베 님의 괴롭힘은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림자 마수를 풀거나, 지하 미궁으로 꾀어내거나, 추종자들을 이용해 생명에 위험을 느낄 정도로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리베 님의 행적에서도 위화감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리베 님은 언제나 그녀 자신이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자 마수의 마력에서는 그녀의 잔향이 확실이 묻어났고, 지하 미궁으로 꾀어낸 것도 그녀 자신이 직접 벌인 일이고, 그녀의 추종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숨이 걸릴 정도로 위험한 행동을 하는데 너무나도 당당히 행동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마법 골렘 사건이었습니다.


한밤 중에 로브에 씌여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그녀의 하늘색과 그녀의 목소리는 도저히 오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리베 님은, 어떤 목적을 지닌 체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무언가을 위해서 저를 곤경에 빠뜨리고 위험한 일을 겪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이 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밤, 그녀에게 진실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리베 님."



목소리의 주인은 레이나였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려 대응하였다.



"어머, 밤 중에 허락 없이 기숙사 밖을 나가선 안될 텐데, 제법 배짱이 있으시군요."


"그렇게 말하는 리베 님도 기숙사를 빠져나오셨잖아요?"


"... 그러면 비긴 것으로 하죠. 들키기 전에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저는 좀 더 밤하늘을 보고 돌아갈거랍니다."


"리베 님, 그럴 때는 무단으로 밖에 나왔다는 것을 퍼뜨린다며 협박할 때이지 않나요?"


"...."



레이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등 바로 뒤편까지 걸어왔다.




"제가 모를 줄 알고 있었나요? 리베 님이 일부로 저를 괴롭히는 걸."


"무슨 터무니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나요. 그렇다면 제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괴롭히기라도 했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신가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지금의 저로선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저는 오늘 리베 님을 만나러 온 것이에요. 알려주시지 않으실래요? 어째서 그런 짓을 해왔는지."


이미 레이나는 성녀로 각성했다.


나의 악행은 이미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제와서 아무리 성녀가 된 그녀가 나를 변호하려고 애써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내가 파멸되는 결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희미한 달빛에 조금 취해버린 것인지, 내일 다가올 운명에 아직도 겁을 먹은 것인지, 그녀에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릴 적, 제가 정말로 좋아하던 할머니는 제게 말씀하셨답니다. 문섀도우 가문의 미래시는 절대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문섀도우 가문 대대로 내려진 예언의 축복... 말인가요."


"네. 당신도 아마 들어본 적이 있으시겠지요. 할머니께선 미래시로 바라본 가능성을 따라간다면 그 결과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답니다."


"...."


"그거 아시나요? 문섀도우 가문에는 유독 오래 산 사람이 적다는 사실을요. 아마도 선조들도, 저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요. 정말이지, 신이 우리 가문에 축복과 동시에 저주를 내려주신 것인가. 그들 또한 저처럼 불합리한 선택지를 당면한 것이겠지요."


"...그게 무슨...."

"할머니께선 아마 도망쳤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겠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할머니께선 살아남으셨고 대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셨겠죠. 그 말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로 씁슬해 보였으니 말이지요."


"잠깐, 설마...."


"어찌됐든, 저는 드디어 가능성의 이어짐의 첫 연결고리를 맺었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자,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너무 바깥에 오래 있으면 감기에 걸릴 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당신은...."


"확실하게 거머쥘 수 있으니깐. 미래시의 유혹이지요. 운과 운명에 맡기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랍니다. 그럼, 내일 무도회에서 다시 뵙지요."


레이나는 불합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그녀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의 걸음걸이보다도 훨씬 빠르게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 만약 레이나와 내가 친하게 지냈어도, 그녀가 성녀가 되어 모두를 구하는 가능성이 있었을까.


이런 헛된 망상을 품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이름 앞에 나 자신도 풀어졌기 때문이겠지.





***





"저랑 한 곡 추시겠나요, 리베 님?"


레이나를 중심으로 약간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던 무도회는, 그녀의 말로 인해 흐트러지게 되었다.


레이나의 저 발언으로 인해 적잖은 사람들이 충격을 먹었고, 특히나 그 4명은 더욱 경악했다.


공주와 세 명은 레이나를 만류하였지만, 레이나는 웃으며 그들을 뿌리치고선 나에게 다가왔다.



"...예, 기꺼이."



마지막 추억이 레이나와의 춤이면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무도회장은 나와 레이나를 중심으로 기묘한 공기가 흐르게 되었다.



  레이나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나를 리드했다.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리드하든, 리드받든."


"...네."


"어제 리베 님의 이야기를 듣고 계속 생각해봤어요. 리베 님과 저와 관련된 진실을 완벽히 추측할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봤어요."


"...."


"지금 저 뒤에서 리베 님의 악행을 폭로할 4명과 성녀가 되어 리베 님을 몰아세우는 것이 전부 리베 님의 계획대로의 일이라면, 저도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


"저, 리베 님을 동경했거든요. 리베 님의 모든 것이 저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그런 멋진 리베 님과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미래 예지 때문에 제 소망이 전부 짖밟혔다고 한다면,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


레이나의 입술이 내 입술과 맞닿은 것을 눈치챌 때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동자를 번쩍 뜨고 자신이 목격한 일이 사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짧지만 강렬하게 입맞춤을 해온 뒤, 고개를 들어 선언하듯 강렬히 말했다.



"저, 성녀 레이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리베 문섀도우를 신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다시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며칠이나 걸렸다.


성녀의 권력을 우습게 본 것이 불찰이었다.


이정도까지 갔으면 아무리 성녀라도 공주도 있고 권력자들에게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신부로 삼겠다는 그 폭탄 발언은 조금의 소동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파멸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뒤의 일은, 의외로 별 탈 없이 흘러갔습니다.


성녀의 힘을 믿고 잘 안되면 협박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다행이게도 제 당찬 포부는 수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학원의 학생 신분이니 동거라던가 결혼식이라던가는 뒤로 미루어졌지만, 리베 님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프로포즈를 하고 며칠 후, 리베 님은 모든 전말을 저에게 털어놓으셨고, 저는 이 사실을 알려 오해를 풀었습니다.


오해라고 하기엔 실제로 제가 피해를 입은 일도 많지만,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리베 님을 '사실은 착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원래부터 리베 님은 착한 사람이 맞구요.


그 후, 저는 리베 님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리베 님이 예언에서 본 저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부흥과 평화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결정을 내렸을 정도의 리베 님과 함께했기에, 부패청산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후 저희들은 학교를 졸업해서 지금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리베 님의 예언에 따라 피 한 방울 안흘리고 대륙을 통일해야 하는데, 힘들어 보이지만 리베 님과 함께 걸을 길이라 생각하면 기대가 차오릅니다.



최근의 리베 님은 정말로 귀여워지셨습니다.


미래시로 들여본 미래에서부터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는지, 평소엔 위에 선 사람답게 똑부러지게 행동하다가 둘만 남게 되면 응석부리듯 달라 붙는 것이 참...


아, 이야기가 잠깐 딴 곳으로 새어나와버렸네요.


저는 리베 님의 미래시를 거스르고 리베 님의 파멸을 막아냈습니다.


그 대가로 저는 성공이 보장된 왕도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저는 반드시 리베 님의 염원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저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서 영원히 헤매는 나약한 성녀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리베 님의 미래시도 건재하지요.



리베 님의 미래시에서 저희의 미래에 무엇이 비칠 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거스르더라도, 따르더라도, 리베 님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더 이상, 파멸을 소망하는 악역 영애가 생기지 않도록, 저는 리베 님과 함께 소망을 이뤄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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