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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보지 마세요.(슬 끝나갑니당.)앱에서 작성

리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3 14: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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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걸음으로 서윤이가 말한 병원으로 향했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문을 닫지 않았을까를 걱정했다.

그 걱정대로, 병원은 불이 꺼져 있었다

결국 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 날 낮, 나는 다시 그 병원을 향했다.

다행히 오늘은 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에서 심리상담실 팻말이 걸린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에 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를 맞이해주는 상냥한 미소.

"안녕하세요, 상담사 김혜원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실수로 돌직구를 날려버렸다.

"혹시 이나연 학생을 상담하고 계신 분인가요?"

상담사, 그러니까 혜원 씨는 꽤나 동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오는  말.

"죄송하지만 내담자의 정보는 함부로 유출할 수 없습니다. "

나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저, 저는 나연이의 친구에요."

순간 혜원 씨의 눈에 비친 적의가 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더 이상 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게 질문을 해온다.

"...실례지만 이름이?"

"박나리입니다."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리는 혜원 씨.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말을 다시 시작했다.

"인사를 다시 해야겠군요... 저는 4년 동안 이나연 학생을 상담해온, 김혜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모르는 나연이의 비밀들을 전부 알고 계신건가요?"

"저도 다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연이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만으로도, 당신을 향한 적의는 타당하다고 확신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나는 알아채지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 일들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선생님... 부디 제가 몰랐던 것들을 가르쳐주세요."

"마땅히 당신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알려주는 것을 제가 아닙니다."

"...? 그럼..."

"정말 친구가 맞았다면, 나연이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습관임을 알고 계시겠죠."

나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연이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야, 통화로 일기를 써야한다고 말한 적도 적지 않았으니까.

"지난 4년 동안의 일기를, 치료 목적으로 제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나연이는 절대로 남에게 그것들을 보여주지 말라했고, 저 역시도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나는 혜원 씨가 그 다음으로 할 말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상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연이도 그걸 알기에 그것을 읽지 말라고 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그 아이처럼  상냥하지 않습니다."

"..."

"당신은 그 아이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고, 온전히 느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록들은 당신에게 가치가 있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두툼한 공책들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연이가 당신을 위해 숨겨온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면, 그것들을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의 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혀진 나연이의 이름.

나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이것을 자각한 것은 꽤 오래 전이고, 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어느정도 납득한 상태였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된 오늘, 나는 같은 반의 한 여자아이를 보고 두근거리고 말았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조금은 보이시한 매력의 여자아이. 긴 속눈썹. 가느다란 손가락. 상냥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표정이지만 말에서 묻어나오는 순수함. 우연한 계기가 있어 친해지게 되었고, 서윤이와 함께 셋이서 다니게 되었다. 역시 여자를 좋아하는 일 같은 건, 없겠지. 이 마음은, 조용히 혼자 간직해야겠다.]

곧이어 몇 장을 내리 넘기자, 나는 내가 원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나리가 서윤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늘 그래왔듯 남자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다 살짝 다쳐, 수습하기 위해 보건실로 향했다. 문을 연 순간 보였던, 서윤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던 나리의 모습. 나는 어렵지 않게 나리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장면은 본 순간 비겁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리도 여자아이를 좋아했다면, 왜 내가 아니었을까.]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본능적인 이끌림이라는 비겁한 단어로 그것을 포장할 수 있을까.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다음 대목을 읽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나 같아도 내가 아니라, 서윤이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누가봐도 여자스럽고 귀여운 서윤이. 그저그런 외모에 여자력이라고는 없는 운동만 하는 나. 누가 어울리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나는 비겁하게도 이해해주는 친구인 척 해버렸다. 당당한 나연이처럼 마음을 전할 용기도 없어서, 둘의 관계를 도와주겠다는 위선을 저질러버렸다. 한심하다, 나.]

[나리에게 멋대로 그런 말을 내뱉어버린 이상, 책임을 져야겠지. 나리가 나를 바라보는 눈과 서윤이를 바라보는 눈을 볼 때, 슬프게도 알 수 있었다. 나리의 마음이 변할 일은 절대로 없을꺼라고. 나와 이어질 수 없다면, 나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져 행복했으면 한다. 그렇기에, 나는 둘의 관계를 최선을 다해서 도울 생각이다.]

그 뒤로는, 내가 알고 있던대로 최선을 다해서 나를 도와주는 나연의 모습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대목도 함께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서윤이가 나리의 마음을 알아챈 듯하다. 나리를 볼 때 희미하게 보시는 안절부절한 눈빛. 서윤이도 나리에게 마음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도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마 내 마음도 함께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겠지. 숨긴다고 숨겼는데, 탄로 나고 말았나보다. 서윤이는 상냥하니까,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내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겠다.]

서윤이는... 이미 나연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어?

나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한적한 공연에서 서윤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예상대로, 서윤이는 나와 나리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꽤나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절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었고, 마음을 접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도 내 마음만 생각했으니, 너도 너 마음만 생각하라고 말해주기 위해서. 서윤이는 찜찜하지만, 이내 납득한 모앙이었다. 다행이다, 둘의 사이에 방해가 되지 않아서.]

[서윤이와 이야기를 나눈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늘, 나는 드디어 서윤이와 사귀게 되었다는 소식을 나리로 부터 들었다. 드디어 둘이 연인이 되었구나. 나는 이제 나리를 좋아하면  안된다. 그런데도 나는 변함없이 나리를 좋아한다.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피해를 주면 안되겠지.
나 스스로 몇가지 규칙을 정해야겠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유난히 구겨지고 닳은 다음장으로 향했다.

[첫번째, 둘의 사이를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 도움이라고 치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할 것이다.

두번째, 도움을 주었다고 자만하거나 우쭐대지 말 것. 상냥한 둘이 나를 치켜세워 주더라도, 절대 친구 이상의 선을 넘지 말아야한다.

세번째, 둘 중 한 쪽을 편애하지 말 것. 나리와 서윤이 모두  소중한 내 친구다. 한 쪽을 옹호하여 나머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자.

네번째, 과도하게 친한 척을 하지 말 것.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들러붙거나 하여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 말자. 나리와 서윤이 둘만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므로, 억지로 셋이서 함께 하려 하지 말자.



둘을 도와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나와의 사이는 멀어질 것이다. 가까워지고 가까워져서,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까지, 반드시 이 규칙들을 지키도록 하자. 1년이 되든 5년이 되든, 언젠가 둘에게 버림을 밪는 것이 이 마음에 대한 유일한 속죄일 것이다.]

그 뒤의 나연이는 정말, 악착같이 그 규칙들을 지켜나갔다.

자신을 속이고 둘이 데이트를 하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모른 척해 주었고,

말다툼이 있었을 때는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대화로 오해를 풀어나갔다.

우리가 고맙다는 말을 했을 때도 자만하기는 커녕 자신을 깎아내렸다.

1달 만에 우리 둘로부터 연락이 왔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기에는 명백히 적혀 있는 상처들.

[셋을 원하는 건, 어쩌면 나뿐만 아닐까.]

[절대 자만하지 말자. 나는 무엇을 해도 둘의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달만에 둘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유는 둘의 말다툼이었다. 어쩌면, 둘에게 나의 가치는 이것뿐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할 때마다, 나연이는 상담실을 찾아갔다.

자신을 꾸짖어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나연이를 꾸짖었다.

어떻게 상담사가 이런 말을 하는거지?

하지만 나는 다음 대목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혜원 선생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고통을 들여봐달라는 것도 모자라, 나에게 새로운 논리를 심어달라는 부탁. 본래의 논리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 논리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것을 행하는 자도, 행해지는 자도 고통스러운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약한 나는 버틸 수 없어.]

처연하게 눈물이 흘러나온다.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무겁게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칫하고 말았다.

눈을 의심했다.

대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명백히 적혀있는 그 대목에, 내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다.

[어젯밤, 나는 나리에게 강제로 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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