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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길들이기 5

ㅇㅇ(223.33) 2017.08.06 14:31:57
조회 1676 추천 46 댓글 17
														

건조한 메르시가 보고싶어 쓴 글 5 (완)
스킨십 진도를 나가기 위해 어떻게든 쥐어짠 글 orz







조련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앙겔라는 몽롱한 정신으로 양치를 하다가 생각했다.
이제 만 스물이 된 제 어린 연인은 아직 침대에서 쿨쿨 자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또 몰래 침대에 들어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놀라서 몇 번 아이를 깨워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휴일이면 번번이 앙겔라의 침대로 들어왔다. 몇 번 반복되다보니 하루 종일 공부하는 아이가 지쳐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냥 두었다. 그 뒤로 이상하게 저녁식사에 찬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은 거실 테이블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이가 엎드려서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 잠 좀 깨고 힘내라며 안마를 해줬는데, 그 날 야식으로 양송이 소스를 곁들인 치킨 꼬르동 블루가 나왔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야식에 이리 신경을 쓰나 싶어, 그 다음부터 아이가 피곤해하는 모습이 보이면 자연스레 안마를 해주게 됐다.

또 있다.
아이는 연인 간에는 스킨십이 매우 중요하다며, 적어도 아침저녁 출퇴근할 때에는 꼭 포옹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지만, 처음에 앙겔라는 생전 해본 적 없는 그런 낯간지러운 짓은 못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런 매일이 반복되는 와중에 어느 날은 너무 아이가 시무룩해하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팔을 뻗어 안아주었다. 사실 그건 안아준다기보다는 어깨에 팔을 어색하게 두르는 정도에 지나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아무튼 그 뒤로 도시락 반찬이 더 다채로워졌다.

반면에 앙겔라가 늦어지는 수술 때문에 미처 연락도 못하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나, 비번 날에 병원 일로 급하게 나가봐야 할 때는 반찬이 하나씩 줄어들거나 그 날 야식으로 그냥 밋밋한 과일이 나왔다.

서른여덟이나 먹어서 음식 때문에 아이와의 약속을 더 잘 지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미묘하게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제만 해도 동료 의사가 펑크 낸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에 시간을 쪼개서 먼저 자라고 연락을 넣지 않았던가. 평소대로였다면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을 챙길 생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결코, 절대로 요리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상에서 아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자주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길은 들였으니 이제는 조련시키는 건가……. 앙큼하기 짝이 없는 연인이었다.


양치를 끝낸 후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마쳤을 때는 오전 8시였다. 병원 출근까지는 아직 시간이 널널했다. 앙겔라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세상모르게 잠이 든 제 연인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은 머리로 뭘 그리 열심히 생각하는지, 가끔 fMRI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는 의학 논문을 읽다가 가끔 뒤를 돌아봤을 때, 왠지 모를 뜨거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런 충동이 더 강하게 들곤 했다.

“하나, 저 이제 나갈 건데요.”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작게 말을 걸었다. 안 일어나면 조용히 나갈 셈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듣고 아이가 눈을 비볐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의 손을 잡아 내렸다.

“으응……. 출근하세요?”
“네, 이제 나가려고요.”
“네에-.”

아이가 대답하고는 거진 눈을 감은 채로 어찌어찌 상체를 일으켜 팔을 뻗는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를 품안에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 때문에 심장이 간질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아이가 잠에 취한 와중에도 웃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요. 하나도 푹 쉬고 있어요.”
“네에…….”

아이는 포옹을 풀자마자 침대로 풀썩 쓰러져서는 다시 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의 가슴께까지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다음,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

아이와 사귀기 시작한 지 6개월. 그간 앙겔라의 생활 이곳저곳에 아이가 끼어들었다. 그 전에도 은근슬쩍 칫솔을 가져다 놓는다던가, 토끼가 그려진 제 전용 머그컵을 개수대에 올려놓는다던가 하는 일은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화장품은 물론 갈아입을 옷도 놔두고 다니는 둥 아주 본격적이었다.

서로가 바빠 자주는 못 보지만, 거의 반 동거나 다름없는 현 상황에 대해 앙겔라는 가슴이 무거웠다. 18살이나 어린 아이를 사귀는 것도 모자라, 원한 적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한 적 없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는 반동거라니. 게다가 아이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익숙해진 포옹까지 생각하면 가슴에 매달린 추는 무게를 더했다.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미묘한 죄책감만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앙겔라와 아이의 애정전선은 쾌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죄책감이 문제였다. 앙겔라에 비해 아이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래서 포옹 이외의 스킨십은 아예 시도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는 자각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포옹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또 아이에게 길들여지듯 익숙해질 것 같아 솔직히 꺼려졌다. 포옹 다음에는 키스, 키스 다음에는……. 그런 식으로 속절없이 끌려갈 자신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연인이래도 그렇지, 나이 차가 얼마인데…….


머릿속 한켠에 스킨십에 대한 문제를 밀어두고 정신없는 오전 시간을 보낸 후, 앙겔라는 아이가 새벽에 미리 싸둔 도시락을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서 자리하고 있었다. 앙겔라는 먼저 인사해오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해보이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수요일엔 수업이 없었는데, 때문에 아이는 앙겔라가 아무리 말려도 수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곤 했다. 오늘은 직접 만든 함박스테이크에 베이컨 말이 주먹밥, 치즈 감자 샐러드 또띠아롤, 베이컨 에그 샌드위치, 닭가슴살 샐러드까지 있었다. 후식으로는 망고와 딸기, 키위 같은 과일이 예쁘게 열을 세워 들어 있었다. 앙겔라가 함박스테이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사이, 휴게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몰려와 도시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치글러 선생님 애인분은 정말 부지런하네요. 매주 이렇게 양 많고 예쁘기까지 한 도시락 챙기기가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세상에, 오늘은 함박스테이크까지 있네요. 직접 만드신다고 하셨죠?”

앙겔라는 그저 짧게 네, 하고 대답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도시락을 싸간 지도 6개월쯤 되었다. 언제나 병원 앞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때우던 앙겔라가 처음 도시락을 들고 휴게실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들고 나타난 도시락통이 작지가 않았다. 4단 도시락에는 온갖 정성이 들어간 요리가 가득 차있었고, 누가 봐도 앙겔라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평소 사무적인 대화 이외는 일절 하지 않는 앙겔라는 다른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도 어려운 존재라 서로 서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도시락을 나눠먹으라고 하도 신신당부를 한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겠냐고 한번 물어보았었다. 그 말에 선뜻 나선 것은 오랫동안 앙겔라와 보아 온 수간호사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너나할 것 없이 다가왔다. 솔직히 앙겔라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아이의 요리 실력을 칭찬하는 말 때문에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날 앙겔라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소문이 병원 내에 쫙 퍼졌다.

식사를 하는 내내 여기저기에서 음식 맛에 대한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앙겔라는 그냥 말없이 먹기만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았다. 한참이나 어린 연인이 제 인간관계를 챙겨준답시고 이런 식으로 정성을 들이는 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반면에 바쁜 제 삶 때문에 아이에게 신경을 제대로 써주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들었다. 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피곤해하는 아이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 외엔 해줄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다.

“치글러 선생님 애인분이 선생님을 정말정말 좋아하나봐요. 매번 다른 음식으로 도시락 싸는 거 보면 선생님한테 정말 홀딱 빠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제 남친도 요리하는 게 취미라면서 도시락 몇 번 싸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시들해지더니 이제는 특별한 날 외엔 잘 안 해주더라고요.”
“하긴 도시락 싸는 게 보통 일이어야지. 매번 메뉴 생각하는 것도 일이고. 저번에는 딸내미 소풍 도시락 싸는데 자꾸 치글러 선생님 도시락이 생각나서 괜히 딸내미한테 미안하더라니까.”

휴게실에 모인 여자들 사이에서 수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작 도시락 주인은 별 말이 없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앙겔라가 원래 그런 성격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도시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리저리 주제가 바뀌며 계속되었다. 앙겔라는 대부분을 흘려들었다. 어차피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앙겔라의 귀에 들려오는 단어가 있었다.

“…그래서 키스 안 해줬다고 삐진 거 있죠?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아가지고는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
“요새는 사귀자마자 A부터 C까지 다 진도 빼는 커플도 많던데 키스 정도는 해주지 그랬어.”
“그렇긴 한데 막상 스킨십하려고 하니까 사귄 날 바로 키스하면 가볍게 보일까봐 신경 쓰이더라고요.”
“에이, 요즘 누가 그런 거 신경 쓰면서 사귀어?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행동해.”

어느새 주제가 또 바뀌어 있었다. 스킨십, 키스, 이런 단어가 들리자 앙겔라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지금 휴게실에 흐르는 분위기에 따르면, 보통 사귄지 6개월이면 진도가 나갈 대로 나가 있을 시기였다. 반면에 자신은 어떤가. 기껏해야 포옹, 그것도 아이의 끈질긴 요구로 인해 겨우 나간 스킨십이니, 아이가 불만을 가질 만도 했다. 어떻게든 해야 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까마득히 어린 연인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은데, 한발 떼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다. 결국 생각이 많은 채로 점심시간은 끝을 맞이했다.


점심에 시작된 고민은 저녁 퇴근시간까지 이어졌다. 과연 어디까지가 아이에게 허용될 수 있는 스킨십인가 하는 것이 그 주제였다. 저도 아이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가 성인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아이의 얼굴에 있는 보드라운 솜털을 볼 때마다 죄지은 것 마냥 가슴이 켕겼다. 앙겔라는 한숨만 푹푹 쉬어댔다.

*

퇴근을 하니 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주었다. 문을 열자마자 안겨드는 아이를 한차례 안아주고 앙겔라는 집에 들어섰다.

“잘 쉬었어요, 하나?”
“네. 완전 푹 잤어요. 박사님 침대 진짜 편해요.”

방긋 웃는 아이의 미소가 해맑아 앙겔라도 설핏 미소 지었다. 작년 이브 때 아이의 앨범을 보는 동안 앉아 있었던 침대도 앙겔라의 침대만큼이나 안락해보였는데, 아이는 끝끝내 앙겔라의 침대가 훨씬 좋다고 우겨대며 침대에 들어왔었다.

“도시락 잘 먹었어요. 오늘도 맛있던데요. 다들 칭찬하더라고요.”
“아, 정말요? 다행이다. 오늘은 좀 컨셉이 중구난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딱히 생각나는 건 없어서 그냥 꾸미기만 했는데.”
“그렇게까지 매번 공들일 필요는 없어요. 사실 하나가 피곤하니까 도시락도 안 쌌으면 좋겠어요.”
“그럼 솜씨가 녹슬잖아요. 안 돼요.”

아이의 완강한 거부에 앙겔라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저를 좋아해서 이렇게 챙겨준다는데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슴이 간질간질해서 괜히 아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아이의 입매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씻고 오세요. 저녁 준비 거의 다 됐어요.”
“그럴게요.”

씻고 나온 후에는 아이와 식탁에 앉았다. 흰 콩이 고소한 카술레와 바게뜨로 식사를 한 뒤, 아이가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과 호두파이를 후식으로 먹었다. 아이와 만나기 전에는 대체 무슨 맛으로 식사를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식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꼬박꼬박 퇴근시간을 지키게 되는 것 같았다. 제 생활태도가 음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머리에 떠올랐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끝내고 앙겔라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아이는 위층의 제 집으로 가서 공부할 책들을 가지고 내려왔다. 앙겔라가 작년에 제출할 논문에 이어 새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도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은 대체로 이렇게 보냈다.


거실 테이블에 자리 잡아 논문에 집중하려 했지만, 앙겔라의 머릿속엔 오늘 낮에 들었던 스킨십에 대한 말들이 다시 맴돌고 있었다. 자꾸만 시야 가장자리에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눈이 갔다. 한참 싱그러운 나이에 저처럼 무미건조한 사람을 만나 청춘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됐다. 이럴수록 제가 더 잘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앙겔라는 아이처럼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풍부한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며 그다지 솔직하지도 않았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자신이 한참 부족한 인간이라는 자각이었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쉬자 아이가 고개를 들어 앙겔라를 보았다.

“박사님, 뭐가 잘 안 되세요?”
“네……, 좀 어렵네요.”

아이와 저에 대한 일들이, 라는 주어는 빼먹었다. 처음 듣는 앙겔라의 약한 소리에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사님도 어려워하는 게 있어요?”
“…저를 어떻게 보는 거예요. 당연히 있죠.”
“박사님 이미지로는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해결해버릴 것 같은데.”

앙겔라가 실소를 흘렸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전 잘 하는 부분에서는 잘 하지만 못하는 부분에서는 못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박사님이 그렇게 말 할 정도로 어려운 거예요, 그 논문?”
“…그런 것 같네요.”
“제가 기운 나게 해드릴까요?”
“뭐라도 해주려고요?”
“네, 그러려고요.”
“그래요, 그럼.”

앙겔라는 당연히 야식이겠거니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말이 막혔다. 물리적으로 입이 막힌 거였다. 어느새 다가온 아이가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가있는 동안 아이가 앙겔라의 아랫입술을 제 윗입술로 살살 씹더니 마지막엔 약간 아플 정도로 깨물고는 얼굴을 떼어냈다.

“어때요, 기운 나세요?”
“…….”

기운이 나는 게 아니라 정신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뒤늦게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달아오르는 볼 때문에 입만 벙긋벙긋했다. 아이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말했다.

“아, TV에서 이러면 기운 난댔는데. 박사님, 어때요? 기운 나요?”
“하…하나 양.”
“양은 빼셔야죠, 박사님. 우리 사귀기로 했을 때부터 이름 부르기로 했잖아요.”
“그게… 아니, 지금 이게…….”
“왜요, 연인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보니까 아까보다는 기운 나신 것 같네. 그럼 저 공부할게요.”

아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의연하게 말하고는 제 자리로 가서 앉았다. 눈에 들어오는 아이의 목덜미가 점점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앙겔라는 뒤늦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를 잡으려 하면 먼저 눈치 채고 뺐더니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이번에도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한걸음 선을 넘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또 아이에 의해 가벼운 입맞춤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로 길들여질 것 같았다. 그럴 확률이 몹시 높았다. 거기에 오늘 하루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죄책감이 그 순간에는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는 것도 웃겼다. 앙겔라는 실소를 터뜨렸다.

“…박사님?”

앙겔라는 아이를 보았다. 볼이 발그레 물든 아이는 찰나에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예뻤다. 그 동안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런 작은 스킨십 하나하나에 움찔대는 건 저답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대로 어린 연인에게 계속 끌려 다니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단 생각도 들었다.

앙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옆으로 가 앉았다. 허벅지가 맞닿자 아이가 움찔하는 기색이 생생히 느껴졌다.
앙겔라는 손을 뻗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이의 볼을 감싸 쥐고 속삭였다.

“이건 뽀뽀잖아요. 힘내게 하려면 키스를 해줘야죠.”
“…저 할 줄 모르는데.”
“가르쳐 줄게요.”

다음 선은 먼저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앙겔라는 당황으로 요동치는 아이의 눈을 감겼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맞닿았다.
뜨거운 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끝.




1. 저는 애정씬을 1도 못 씁니다.
2. 글 올릴 때마다 언른 진도 나가라는 댓글이 자주 보입니다 orz
3. 압박감에 못이겨 쥐어짠 글이니 그냥 그러려니 해주십쇼 ㅠㅠ
4. 혹시라도 전편 보실 분은 "하나메르하나"로 검색하면 됩니다.
5. 다음주부터 진짜 바빠져서 한동안 못 옵니다 ㅠㅠ 잘들 지내요 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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