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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벽

ㅇㅇ(223.33) 2017.08.08 19:53:11
조회 2322 추천 73 댓글 10
														

하나 Side







박사와의 첫만남은 평범했다.

요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인사한 후,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며 얼굴을 익히는 중에 하얗고 예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면은 없었지만 곧바로 알아보았다. 앙겔라 치글러. 발키리 수트와 카두시우스 지팡이를 만들어 낸 천재 의학박사이자 전장의 천사.
소문만 무성하던 인물을 드디어 실제로 보게 돠는구나 싶어 하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기동기갑부대 소속 대위 송하나입니다. 오늘부로 오버워치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코드네임은 D.VA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여자는 미소를 띤 채 인사를 받았다.

"의무관인 앙겔라 치글러예요. 잘 부탁해요."
"네, 의무관님."
"편하게 박사라 불러요."
"네, 박사님."

그렇게 여자는 하나에게 '박사님'이 되었다.

*

어린 나이에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오버워치에 오게 된 하나의 눈으로 봐도, 박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낮에는 환자를 치료하고 밤에는 연구를 하며 말 그대로 밤낮없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정말로 천사 같았다.

하나는 금세 박사를 따르게 됐다.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온화한 말투, 나이 어린 하나를 존중해주는 어투 등은 하나에게서 호감을 사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들이었다.

멀리에서도 박사를 한눈에 알아보고 뛰어가서 인사하면 박사는 미소진 얼굴로 인사를 돌려주었다. 박사의 근처에서 식사를 할 땐 평소보다 더 식사가 맛있게 느껴졌고, 심심할 때 의무실에 놀러가면 친절하게 상대해주기까지 했다.
박사의 모든 것들이 하나에게는 호감으로 다가왔다.

정 붙일 곳을 정하자 하나는 오버워치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같이 훈련하는 요원들과도 금세 말을 트게 되었고, 처음으로 나간 임무도 무사히 잘 마쳤다. 하나는 이 모든 게 박사의 덕 같았다.

임무를 나갈 때마다 하나는 박사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의무실에 들렀다. 박사에게 그 말을 들으면 정말로 다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평소보다 훨씬 집중도 잘 되고, 전황 파악도 빨이 되었다. 하나에게 있어 박사는 행운의 여신 같은 존재였다.

가끔씩 상처를 입고 박사를 찾아가면,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나를 치료해주었다. 하나는 박사의 그런 관심이 너무 좋았다. 박사만 보면 저절로 할 말이 많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

탈론과의 전투를 겪은 날의 일이었다.
사상자가 많아 기지 내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하나는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피해 저녁식사를 한 후 곧장 숙소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지 분위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결국 게임기를 침대 위에 던지고 박사를 만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박사의 다정한 미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박사는 의무실에 없었다. 하나는 의아해했다. 박사가 1년 365일 의무실에 상주한다는 것은 기지 내에서도 널리 퍼진 정보였다. 밤이니 연구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리로 가 보았지만 거기에도 박사는 없었다. 하나는 의료동을 샅샅이 뒤지며 박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의료동을 나서는데 갑자기 옥상이 떠올랐다. 혹시 몰라 옥상으로 향하자, 거기에 박사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안기려던 하나는 옥상 입구에서 우뚝 서고 말았다. 처음 하나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박사의 힘없이 늘어진 어깨였다. 시선을 내리자 하얗고 긴 손에 들린 담배 한개비가 보였고, 발치에는 한 주먹은 될 법한 많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다. 박사를 찾아서 신이 났던 기분이 가라앚은 것은 순간이었다.

하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박사의 얼굴을 살폈다. 박사는 피폐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옆 얼굴에서는 온갖 고뇌를 끌어안은 듯한 고뇌와 비통함이 느껴졌다. 그런 얼굴을 한 박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나는 제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차마 말을 걸지 못한 채, 하나는 소리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옥상에서 내려왔다. 숙소로 걷는 내내 박사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 사망자가 많은 날이라 괴로워하는 걸까 싶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박사의 얼굴에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친한 누군가가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의 침대 위에 몸을 눕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정신이 또렷해져갔다. 눈만 감으면 괴로워하고 슬퍼하던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참을 생각하던 하나는, 박사도 위로를 필요로 라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내려친 듯한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르잖아."

하나는 소리내어 말했다. 방금 전까지의 하나가 그러했듯, 사람들은 박사에게서 위안을 얻으려고만 했다. 위험해지면 전장의 천사를 찾았고, 힘들어지면 박사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사는 오버워치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였고, 하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기대는 이였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남들한테 위안을 주는 박사님이 힘들어하면, 누가 박사님을 위로해주지?

하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쉽사리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날 밤을 새워가며 박사에 대해 생각했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옥상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홀로 가슴을 삭혀야 했을 이유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그리고 한동안 하나는 박사를 피해 다녔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박사가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의무실에 찾아가지 않았고, 멀리에서 박사가 기지 내를 걸어가는 것만 훔쳐봤다.

박사를 볼 때마다 하나의 가슴은 계속 통증을 호소했다. 처음 겪는 증상이었다. 밤이면 박사의 얼굴이 천장에 그려져 떠나지를 않았고, 자연히 잠에 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만 갔다. 며칠을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박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라고.

한참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게 된 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하나에게 있어 박사는 그저 '박사님'이었다. 그 외의 수식어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박사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을 인정하자 떠오른 것은 그런 의문이었다. 하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박사가 좋아하실 만 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박사는 원체 물욕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박사가 커피를 자주 마신다는 것을 떠올렸다. 군 보급품이 흔히 그러하듯, 의무실에 있는 커피도 그다지 좋은 품질의 것은 아니었다. 날이 새자마자 곧바로 좋은 커피 머신과 온갖 종류의 샘플 원두를 주문했다.

며칠만에 찾아간 의무실에서 박사는 하나를 평소처럼 맞이해주었다. 탈론과의 전쟁이 있던 날, 박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 정면에서 그녀를 보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하나는 박사의 미소진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박사의 상냥한 얼굴에는 괴로움의 잔재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날 본 박사의 아픔은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괴로움이 아닌 것 같았는데도. 그래서 그게 더 마음 아팠다.

매일같이 의무실에 들르며 하나는 조금씩 의무실 내부를 바꾸기 시작했다. 박사가 오랫동안 쓰던 낡은 커피머신을 신형 고급 커피머신으로 바꿨으며, 박사에게 이것저것 시음을 시킨 끝에 알아낸 취향의 원두도 가득 채워놓았다. 박사가 앉는 의자에 푹신한 쿠션도 가져다 놓았고, 아침마다 일찍 찾아가 청소를 돕기도 했다.
하나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박사에게 있어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 날 박사가 물었다.

"하나 양, 왜 의무실에 이렇게 신경쓰는 건가요?"

왜냐면 내가 박사님을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박사님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하니까요.
마음과는 달리 하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제가 의무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잖아요. 박사님이 편해야 그걸 보는 제 마음도 편하죠. 별 거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 정도는 되지 않아요?"

박사는 물끄러미 하나를 쳐다보시다가 곧 미소지으며 그래요, 하고 말했다. 들키는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부터는 덜 티나게 박사를 챙겨야겠다고 해야겠다고 하나는 다짐했다.

*

몇개월 후, 탈론과의 충돌이 있었다.
임무가 끝나서 기지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하나는 박사가 걱정이었다. 또 그 날처럼 혼자 삭히고 있으면 어쩌지? 박사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켰다. 마음을 들키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의 발걸음은 의무실로 향했다. 역시나 박사는 없었다. 이번엔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박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탄하듯 길게 내뿜는 하얀 연기가 천천히 허공으로 사라졌다. 힘없이 쳐진 어깨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내가 박사님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늘도 그저 바라만 봐야하나 싶어 가슴이 무거웠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박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박사가 또다시 담배를 꺼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하나는 박사의 힘없는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조심스레 빼냈다.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폐한 박사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손의 주인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자 박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나는 그런 박사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박사의 몸도 걱정이었다.

"박사님, 이러다가 몸 상하면 어떻게 해요."

박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하나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자마자, 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나 양, 사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냉정한 목소리. 처음 듣는 어투였다. 하나는 얼른 사과했다.

"죄송해요, 박사님. 하지만 박사님이 너무 담배를 피우시는 것 같아서……."
"제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그게 하나 양과 무슨 상관이죠? 앞으로 이런 간섭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박사가 그렇게 말하고서 돌아선다. 말은 차가운데 한순간 보였던 표정이 슬퍼보였다. 하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일단 박사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를 다 주워다가 옥상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꼭 박사한테 내쳐진 자신의 모습 같았다.

옥상에서 내려와 정처없이 걸었다.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박사에게 잘못했다고 다시 사과해야하나 고민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디바잖아. 왜 한숨을 쉬고 있는 게야?"

아나였다. 하나는 물끄러미 아나를 보았다. 오버워치에 오래 있었으니 당연히 박사에 대해서도 잘 알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하나의 가슴에 부러운 마음이 차올랐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은데."
"아니요, 별 일 아니에요."
"앙겔라랑 옥상에서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었던게야?"

흠칫, 놀라 아나를 보았다. 안대를 하지 않은 눈이 하나를 부드럽게 보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본부 옥상에선 의료동 옥상이 훤히 보인단다."
"아……. 언제부터 보신 거예요?"
"앙겔라가 옥상에 올라왔을 때부터지."
"…그런데 그걸 그냥 지켜만 보셨어요?"

하나는 저도 모르게 불만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박사가 그 많은 담배를 피울 동안 말리지 않고 보기만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아나는 하나의 버릇없는 말투에도 화내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박사님은 너무 괴로워 보였어요. 전… 주제넘지만 박사님을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박사님에게서 위안을 얻는데, 정작 박사님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나의 말에 아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나가 물었다.

"앙겔라를 좋아하니?"
"……네."
"그래, 그래서 다가가고 싶은 게로구나."
"그렇기보다는… 박사님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저렇게 혼자 괴로워하는 거 보기 싫어요. 박사님이 저러는 거, 하루 아침의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아나는 말없이 하나를 보았다.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에 하나가 절로 움찔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한번 시도는 해보자꾸나."
"네?"
"…앙겔라는 어릴 적 옴닉 사태로 부모를 잃었어. 그 때의 충격이 제법 컸던 모양인지, 사람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의료계에 몸을 담았다고 하더구나."

하나는 박사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단 한마디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버워치에 처음 왔을 때, 앙겔라는 지금보다 훨씬 활발한 성격에 마음이 열려 있는 아이였지. 어느 날은 술자리에서 그러더구나. '모두를 구하고 싶다'고."

하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모두를 구하고 싶다니. 세상에,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아직 어린 하나조차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나가 말을 이었다.

"전쟁이라는 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지.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절로 닫히게 되어 있어. 앙겔라의 경우엔 그 경향이 더욱 심했지. 애써서 살려놓은 사람이 이튿날이면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야."

하나는 박사의 깊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에 가슴이 아팠다. 전장에서 얼마나 박사가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치료하는지 본 적 있었기에 더 이해가 되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앙겔라가 많이 지친 것 같아."
"……사령관님은 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아, 물론 정말정말 감사한 말씀이고 아주 잘 새겨들었지만……."

하나의 말에 아나가 씁쓰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앙겔라가 네게는 그나마 벽을 덜 세우는 것 같더구나. 때로는 너처럼 젊은 패기를 가진 애들이 필요한 법이지."

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떠나갔다. 하나는 아나의 말을 곱씹었다. 숙소로 돌아가 침대 위에서 계속 생각했다. 옥상에서의 접근이 박사가 그어 놓은 선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물러나서 거리를 유지하면 다시 박사의 미소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는 박사가 표면상으로 짓는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가 보고 싶었다. 제게서 돌아섰을 때의 그 슬퍼보였던 표정을 더 이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나는 뒤척이며 생각했다. 아나가 말한 젊은 패기라는 걸로 박사의 철벽을 뚫어내겠다고. 박사의 차가운 태도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라면 꿋꿋하게 웃으며 다가가서 박사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때 매일같이 TV 앞에 서던 경력도 있으니 예쁜 미소 따윈 언제든 그려낼 수 있었다. 내일부터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하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한동안 마음 아플 일들이 많을 것 같았다.






앙겔라side







앙겔라 치글러는 옴닉사태로 부모를 잃고,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았다.

모두를 구하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 먹었다.
오랫동안 앙겔라 치글러의 마음에는 그 문장이 살아 숨쉬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했다. 젊은 나이에 박사가 되어 외과 과장으로 일했고, 나노생명공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명을 하여 이름을 떨쳤다. 발키리 수트를 개발했고,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젊은 나이에 성취했다.

오버워치에 적을 두기로 한 것 역시 의료계에 몸담게 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모두를 구하고 싶었다. 혼란한 시대가 끝이 나 조금이라도 더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무수한 피를 흘려야했다.

앙겔라는 치열하게 살았다. 낮에는 환자를 치료했고, 밤에는 더 많은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앙겔라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전장에서 쓰러져 죽음의 문턱 앞에 다다랐을 때면 간절하게 앙겔라를 불렀으며, 가까스로 살아난 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충을 털어놓았다. 앙겔라는 젊은 날 다짐했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떠올리며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살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보람되는 일이었고, 어린 날의 앙겔라가 꿈꾸던 일이었다.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환자를 치료하고 살려내도, 목숨을 잃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었다. 온 힘을 다해 환자를 고쳐놓으면, 그들은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처음에는 괴로웠다.
더 열심히 노력하자고 생각했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했고, 그리고 현실과 마주했다. 앙겔라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왔다.

새로 배치되어 풋풋한 웃음을 띠고 인사를 건네던 요원도, 오래 보아와 친근한 마음이 드는 요원도 죽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필사적으로 살려내보았자 그들은 또다시 전장에 섰고, 어느 순간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앙겔라는 지쳐갔다. 밤낮을 새가며 살려내고 살려내도 사람들은 죽어갔다. 회의감에 시달렸다. 더 이상 가까이 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눈치채고 보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앙겔라에게서 위안을 얻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앙겔라는 오버워치의 상징 중 하나이자, 전장의 천사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바란 적 없는 칭호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이를 만난 것은 그렇게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

전장에서 10년을 보내오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 웬만해선 놀라지 않던 앙겔라도 아이를 본 순간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어렸다.
아직 10대 후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이는 엘리트 군인으로 새로운 전장에 발을 들였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기동기갑부대 소속 대위 송하나입니다. 오늘부로 오버워치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코드네임은 D.VA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앙겔라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며 제 소개를 하는 아이에게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아이를 전장으로 끌어들인 오버워치의 존재 의의에 대한 회의감이 들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지쳐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전장의 천사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의례적인 미소를 띤 채로 아이의 인사를 받았다.

"의무관인 앙겔라 치글러예요. 잘 부탁해요."
"네, 의무관님."
"편하게 박사라 불러요."
"네, 박사님."

제 말에 아이가 수줍게 미소짓는 것을 보자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언제 스러져 없어질지 모르는 아이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바랐다.

그러나 앙겔라의 소망과는 다르게, 아이는 앙겔라를 곧잘 따랐다. 앙겔라가 보이면 멀리서 뛰어와서 웃으며 인사했고, 식사 시간이 되면 옆에서 식사하고 싶어했으며, 심심하면 의무실에 찾아와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예쁘고 착한 아이의 순수한 호의를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앙겔라는 아이를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이게 최대한 정을 주지 않겠다 마음 먹었다.

하지만 아이는 앙겔라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사히 오버워치에 적응했다. 몇 번이고 거듭되는 전장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자잘한 찰과상을 제외하면 다치는 일도 없었다. 기껏해야 응급처치로 처치 가능한 수준의 부상을 달고와서 호들갑을 떨며 앙겔라에게 치료를 부탁하곤 했다. 그런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보고 있자면,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잔뜩 경계했던 것이 무색했을 정도였다.

어느새 앙겔라는 아이가 의무실에 놀러오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다치지 않는 메카 조종사. 아이에 대해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다치지 않는, 메카 조동사. 앙겔라는 속으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안전한 울림인지. 단단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아이에게서는 죽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앙겔라의 곁을 맴도는 아이를 내버려 두었다.

어느 날은 매일같이 앙겔라를 찾아오던 아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임무가 있던 날이었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아이는 그 날도 의무실에 찾아와 반창고를 붙여달라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 날 이후 의무실을 찾지 않는 아이가 의아했으나 그뿐이었다. 그저 이제 앙겔라에 대한 흥미가 다 된 모양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후 볼살이 약간 빠진 채로 모습을 드러낸 아이는 다시 매일 매일 의무실에 놀러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무실 내부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앙겔라가 오랫동안 쓰던 낡은 커피머신을 신형 고급 커피머신으로 바꿨으며, 앙겔라 취향의 원두를 채워놓았다. 앙겔라가 앉는 의자에 푹신한 쿠션도 가져다 놓았고, 아침마다 일찍 찾아와 청소를 돕기도 했다.

어느 날 앙겔라가 물었다.

"하나 양, 왜 의무실에 이렇게 신경쓰는 건가요?"

사실은 왜 제게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으면 부담스러운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에둘러 묻는 질문에 아이는 순하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제가 의무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잖아요. 박사님이 편해야 그걸 보는 제 마음도 편하죠. 별 거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이 일상의 소소한 기쁨 정도는 되지 않아요?"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앙겔라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동료의 친절이라고 하면 못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앙겔라도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일에 지쳐있었다. 아이의 말마따나 아이가 보이는 호의는 지쳐있는 앙겔라에게 있어 아주 작은 기쁨 정도는 되었다.
아이는 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 굳이 쳐낼 필요는 없었다.
그 날까지는 그랬다.

*

그 날은 탈론과의 충돌이 있던 날이었다.
탈론과의 전쟁은 특히나 많은 사상자를 남기곤 했다.
늦은 밤, 앙겔라는 옥상 한 켠에 자리한 낡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전쟁에 대한 회의감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끝이 나지 않는 이 쳇바퀴 같은 굴레가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한참을 말없이 줄담배만 피워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연하라고 충고하는 주제에, 발 밑에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일 정도로 담배를 피워대는 자신이 우습게도 여겨졌다.

다음 담배를 꺼내드는데, 갑자기 따뜻한 손길이 조심스럽게 제 손에서 담배를 가져갔다. 앙겔라는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앙겔라의 가슴이 헝클어졌다.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는 지쳐있는 제 모습을 들켰다는 사실과,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약한 모습을 하필이면 한참 어린 아이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

"박사님, 이러다가 몸 상하면 어떻게 해요."

굳은 표정의 앙겔라에게 아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의 두 눈은 슬픈 기색이 역력했고, 정말이지 가당치 않게도 앙겔라를 이해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심란해하던 앙겔라의 심기가 틀어진 것은 순간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나 양, 사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죄송해요, 박사님. 하지만 박사님이 너무 담배를 피우시는 것 같아서……."
"제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그게 하나 양과 무슨 상관이죠? 앞으로 이런 간섭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저도 모르게 날선 목소리로 말하고 앙겔라는 차갑게 돌아섰다. 순간 상처받은 듯한 아이의 눈동자가 뇌리에 떠올랐으나 고개를 흔들어 떨쳐내버리고 옥상을 나섰다.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제 영역을 침범받았다는 생각에 짜증도 났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어린 아이에게 화풀이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었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결국 그 날은 잠들지 못했다.

*

제 차가운 모습에 놀라 떨어져 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이튿날 웃는 얼굴로 의무실에 찾아왔다.

"박사님, 오늘은 바람이 되게 선선하네요! 기분 좋은 날씨죠?"

앙겔라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제가 어제 제대로 말을 안 했나보군요. 앞으로 용무 없이 의무실에 오지 말아 주세요. 의무실은 놀이터가 아니에요."
"아, 저 놀러온 거 아닌데. 청소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둘이 하면 빠르잖아요."

아이는 빙긋 웃고는 얼른 청소를 시작했다. 앙겔라는 심히 거슬렸으나 한참 어린 아이에게 진심으로 화를 낼 수도 없고, 몸싸움을 해서 쫓아낼 수도 없으니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리 전장의 천사로 불리는 앙겔라더라도,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금세 지칠 것이라 생각했던 앙겔라의 예상과 달리, 아이는 매일 매일 웃는 얼굴로 의무실에 찾아와 앙겔라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앙겔라는 철저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어린 아이의 호기심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그라들 정도의 감정. 괜히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박사님! 저 오늘 대련하다가 다쳤어요. 여기 좀 봐주세요! 레나 언니가 힘 조절을 못해서 쓸렸어요."

그러나 아이가 용무가 있어 찾아왔을 때는 그럴 수 없었다. 소독하고 약만 바르면 되는 수준의 상처를 달고 아이는 앙겔라를 찾아와 호들갑을 떨어댔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의사로서 그럴 수가 없었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는 사이 아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박사님이랑 마주보니까 정말 기분 좋네요. 박사님, 오늘도 정말 예뻐보여요."

앙겔라는 대답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손만 움직여 처치를 끝냈다. 유리알처럼 무감정한 앙겔라의 눈빛을 받고도 아이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쁘게 웃어보였다.

"박사님, 웃으면 복이 온대요. 전 박사님이 많이 웃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치료 끝났으니 나가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박사님 덕분에 이제 안 아파요. 내일 소독하러 또 올게요!"

아이가 싱긋 웃고 의무실을 나섰다. 앙겔라는 이마를 짚었다. 아이는 저 별 것 아닌 상처가 나을 때까지 꿋꿋하게 의무실에 들를 것이 뻔했다. 그리고 앙겔라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미소 띤 얼굴로 앙겔라를 찾아왔다. 앙겔라는 아이가 말을 걸든 말든 빠르게 소독을 끝마쳤다. 아이가 감사의 인사를 하더니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박사님, 이 쿠키가 커피랑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요."
"안 먹어요."
"박사님 가끔 당 떨어지셔서 포도당캔디 드시잖아요. 그 대신 드시면 되죠."
"필요 없어요."
"두고 갈게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이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쿠키 상자를 앙겔라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후다닥 사라졌다. 앙겔라는 인상을 썼다. 아이는 앙겔라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앙겔라는 망설였다. 상대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인 상대라면 더 그랬다. 앙겔라는 쿠키 상자를 쥐고 한참을 주저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고 상자를 휴지통에 처박았다.

이튿날, 아이는 똑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앙겔라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활짝 웃는 아이의 미소가 참 싱그러웠다. 정말 쓸데없는 데에 힘을 쏟는다고 생각하며 앙겔라는 시선을 돌렸다. 가슴 속에서 거스러미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약간의 후회가 몰려들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앙겔라는 등을 돌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아이가 숨을 멈추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어……. 쿠, 쿠키가 박사님 취향이 아니었나보네요. 죄송해요, 박사님. 다음엔 조금 더 박사님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올게요."
"아뇨. 그러지 말아요."
"괜찮아요, 박사님. 취향은 존중해야죠. 이거 버리면 되죠? 쓰레기통 비울게요."

잠시 말이 끊겼던 아이는 곧 아무렇지도 않게 앙겔라에게 말을 건네고는 쿠키 상자를 쓰레기봉지에 담았다. 아이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앙겔라의 눈에 들어왔다.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앙겔라는 난감해졌다. 아이가 상처받았음에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 뻔히 보였다. 앞으로 이 짓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할 것 같단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이는 다음 날 유명한 제과점에서 만든 수제쿠키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앙겔라는 그 역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튿날 찾아온 아이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꿋꿋하게 웃으며 다른 쿠키를 사오겠다고 했다.

그런 나날이 계속 반복되었다.
쿠키, 캔디, 초콜릿 등 가져오는 선물은 다양했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앙겔라는 그 선물들을 버릴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매일 아침 쓰레기통을 확인할 때마다 흔들리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숨기려고 애를 써도 아직은 어린 아이. 앙겔라가 차갑게 굴 때마다 앙겔라의 눈에는 아이가 상처받는 게 눈에 보였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너무 차갑게 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미 몇 번의 성의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후였다.
결국 앙겔라는 아이에게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하나 양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박사님께 조금이라도 기쁨이 되었으면 해서 하는 일이에요. 부담 갖지 마세요."

앙겔라의 머릿속에 아이가 제게 베풀었던 호의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태어나기를 상냥하게 태어나,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차갑게 굴어본 적 없는 앙겔라 역시 아이의 호의를 거절하는 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아이가 그 날의 자신을 모르는 척 넘어갔으면 그냥 선물이라 여기면서 웃으며 받아들였을 텐데.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깊어진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끊어내고 싶었다.

"부담을 갖지 않을 수가 없네요.앞으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세요."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전 하나 양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귀찮아요. 찾아오지 말아요."

앙겔라는 아이가 건넨 초콜릿 상자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

아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선물을 버렸으니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속절없이 흔들리던 아이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 날, 제 손에서 담배를 조심스레 빼낸 후 이해한다는 듯이 바라보던 눈빛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속이 불편해졌다. 앙겔라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떨치려 애썼다. 안 그래도 지친 몸과 마음에 아이에 대한 생각까지 더해지니 너무나도 피로했다.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앙겔라는 아이와 마주하게 됐다. 임무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제게 온갖 정이 다 떨어졌을 거라는 앙겔라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멀리에서 앙겔라를 발견하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박사님, 우리 오랜만이죠? 오늘은 같이 임무 받는 날이네요!"
"……그래요."

앙겔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잠시동안 앙겔라의 두 눈을 그리운 듯 들여다보더니 들어본 적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하니까 최대한 후방에 있으세요. 지켜드릴게요."

앙겔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이가 그럼 가볼게요, 하고서 달려갔다. 앙겔라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천천히 의료 장비를 챙겼다. 그 와중에도 아이에 대한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치지 않는 메카 조종사. 앙겔라는 그 문장을 읊조렸다.

*

전장은 언제나처럼 끔찍했다.
빗발치는 총탄에 맞아 쓰러진 병사의 가슴을 있는 힘껏 눌러 지혈하며 앙겔라는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해나갔다. 응급처치가 끝나자 의무병들이 부상자를 후방으로 옮겼다. 여기저기에서 의무관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앙겔라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멀리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에서 엄호를 받으며 후방으로 물러나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특기라던 자폭을 한 모양이었다. 저러고도 안 다치는 걸 보면 정말 운이 좋거나 전투 센스가 탁월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앙겔라는 고개를 흔들어 아이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찾아 움직였다.

서둘러 부상병을 치료하는데 갑자기 가까운 거리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폭탄 같은 게 터진 모양이었다. 앙겔라의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응급처치를 하고 다른 부상병들을 살펴야했다.

"박사님!"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앙겔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온통 푸른색뿐이었다. 동시에 둔한 충격이 느껴졌고, 다음 순간 앙겔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귀가 멍멍했다. 바로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잠시 있자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왔다. 한동안 끙끙대던 앙겔라는 짙은 피냄새를 맡았다. 눈을 깜박였다. 시야가 온통 빨갰다.

"…하나 양?"

아이는 말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에서 피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주위의 땅이 군데군데 움푹 파여 있었다. 앙겔라는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팡이, 카두세우스 지팡이가 필요했다.

"의무관님! 무사하십니까?"

멀리에서 의무병이 달려오며 물었다. 앙겔라는 대답할 여유도 없이 지팡이를 찾으며 미친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지팡이가 떨어져 있었다. 다른 의무병이 재빨리 지팡이를 주워다 건넸다.

그 짧은 사이에도 아이의 피는 쏟아지고 있었다. 지팡이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해가는데 기이한 감각이 앙겔라를 자극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로 가득한데도 소름끼치는 고요가 느껴졌다. 아이의 가슴에 움직임이 없었다.
아이의 상태를 살피던 의무병이 소리쳤다.

"어레스트, 어레스트 났습니다!"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심정지가 온 것이었다. 상처 부위가 너무 넓어 지팡이로도 다 지혈할 수가 없었다. 앙겔라는 아이의 흉부를 미친듯이 압박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온 힘을 다해 cpr을 시도하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에서 앙겔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의무관님,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정신없이 흉부를 자극하는데 의무병이 앙겔라의 손을 떼어내며 외쳤다. 아이의 가슴이 작게 들썩이는 것을 보고 앙겔라는 온몸의 힘이 쫙 빠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의무병들이 수혈팩을 들고와 나머지 처치를 하는 동안 앙겔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귓속에서 벌떼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채 아물지 못한 아이의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의무관님!"

앙겔라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상처를 계속 살피고 싶었으나 앙겔라는 야전 의무장교였다. 겨우 한 사람을 살리자고 전장을 떠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됐다. 아이가 후방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힐끗 보고 다음 부상병을 향해 뛰어갔다.
부상병을 응급처치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이에게 차갑게 굴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이의 진심을 너무 가볍게, 그리고 안일하게 여겨온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떠올랐다.
가슴이 새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

임무가 끝났다.
앙겔라는 아이를 보낸 이후 곧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해 부상병을 치료했다. 치료를 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기지로 돌아온 후, 아이가 입원한 병실로 향하는 앙겔라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병실 문을 열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는 아이가 보였다. 앙겔라는 침상 옆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아이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전장에서 거의 다치는 일이 없는 아이였다.
안전하게 엄호를 받고 있었으니 원래대로라면 별 부상 없이 숙소로 돌아가 그토록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 앙겔라의 눈앞에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다.

다치지 않는 메카 조종사라고, 그렇게 멋대로 믿어왔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지켜드릴게요, 하고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앙겔라는 손을 뻗어 아이가 누워있는 시트를 만지작거렸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낯설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아이는 웃고 있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와 웃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천진한 미소 뒤에서 상처받아 흔들리던 눈동자였다. 그 순한 갈색 눈동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괴로워졌다.

앙겔라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순전히 저를 위한 진심으로만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아이는 순진하게 다가와 제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도 앙겔라는 아이를 밀어내기 바빴다. 앙겔라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을 제 선 안으로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힘겹고 무서운 일이었다.

아이를 처음으로 차갑게 대했던 날, 아이가 보였던 이해의 눈빛이 떠올랐다. 가당치도 않은 눈빛이라 생각했다. 앙겔라가 십여년 동안 안아온 죽음에 대한 괴로움과 회의감을, 한참이나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단정짓고 분노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이 역시 매번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는 군인이었다. 죽음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아이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속셈 없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 아이가 꺼림칙했다. 더 이상 친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벽을 단단히 세우기만 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나.
앙겔라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이와 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방적으로 호의만 받은 셈이니까. 하지만 아이가 저를 구하고 죽을 뻔하자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지치고 피곤한 제 삶에 소소한 기쁨이라도 주겠다고 애쓰던 아이를 매몰차게 거부했던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오랜 세월 의사로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만 익숙했었는데, 아이는 그런 앙겔라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왔고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데도 앙겔라는 지쳤다는 이유로 아이를 내몰았다. 상처받고 돌아서면서도 이튿날이면 예쁘게 웃으며 다가왔던 아이를 생각하자 심장이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를 떠올리며 후회를 곱씹고 있던 앙겔라는 문득 시선을 느꼈다. 언제 눈을 뜬 건지, 아이가 말없이 앙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 속에 제 얼굴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박사님……."

아이가 작게 소리내며 앙겔라를 불렀다. 그리고 앙겔라가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순간 앙겔라는 울컥했다.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떨리는 입술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불안정한 호흡뿐이었다. 순식간에 눈앞이 부예지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제 걱정이 먼저인 아이의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아이가 팔을 뻗어 앙겔라의 손을 잡는 것이 보였다. 제 체온보다 약간 높은 온기가 따스하게 손을 감싸쥐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말했다.

"박사님, 힘들면 울어도 돼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누가 뭐라고 하면 내가 혼내줄게요."

우습게도 그 말을 듣자마자 고여있던 눈물이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손으로 황급히 눈물을 닦았지만 또다시 차오르는 물기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앙겔라는 스스로가 한계까지 내몰린 상태라는 것을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겨우 제 나이의 절반 정도를 살아온 아이에게서 받는 위로에 지친 마음이 다독여지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서툰 이 한 마디에 눈물이 날 리가 없었다. 아이는 그저 말없이 앙겔라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

"박사님, 생강 쿠키는 커피에 안 어울리는 것 같죠?"
"그러네요. 생강 맛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그쵸? 에이, 이번에는 꽝이네."
"그냥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 커피에 어울려야 하는데."

아이가 투덜거리며 생강 쿠키를 내려놓았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빙긋 미소짓는다.


병실에서의 하룻밤 이후, 앙겔라는 아나에게 휴가를 신청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왔던 앙겔라였기에 놀랄 거라 생각했지만, 아나는 그저 잘 생각했다며 허가를 해줄 따름이었다.

휴가라고 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는 건 아니었다. 앙겔라는 숙소에서 고전 문학을 읽으며 편히 쉬었다. 날이 좋을 때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햇볕을 쬐었고, 밤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했다. 아이가 그런 앙겔라의 옆에서 함께했다. 언제나 연구실 간이침대에서 불편하게 자던 생활을 하지 않고, 숙소의 침대에서 편히 잠에 드니 불면증도 나아졌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이가 쥐어주는 게임기로 어색하게나마 게임을 하다보니 점차 그 동안에 하고 싶어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무리하지 않고 즐기듯 하나씩 해 나갔다.

보름 동안의 휴가 후, 앙겔라는 한결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할 테지만,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부담이 훨씬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다가오는 아이를 밀어내는 것도 그만 두었다. 아이의 마음을 받아준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제 삶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아이와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는 어느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다음엔 크래커 종류로 가져와 볼게요. 도리토스로 입가심 좀 해야겠어요."
"하나 양, 간식은 어디까지나 간식이라는 거 잊지 않았죠? 곧 저녁 시간인데 과자를 또 먹게요?"
"아, 한 봉지만요! 네?"

아이가 앙겔라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피웠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서 미소지으며 말했다.

"안 돼요."






끝.





그냥 썰로 놔둘걸. 역시 글로 쓰니까 망작되네.
이제 진짜로 갈게. ㅃ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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