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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시알못 독붕이가 <일본 현대시 시집> 추천해봄

ㅇㅇ(112.165) 2021.04.15 22:19:47
조회 1646 추천 2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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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코초 다카무라 고타로 



사실 따지자면 현대시가 아니라 근대시이긴 하지만 꽤나 매력적인 시집이기에 소개해봄

자료 찾으면서 봤는데 90년대 시 문예지에도 좋은 일본 시로 소개되어 있더라 


'레몬애가'라는 시는 공지영이 자기 책에서 인용해서 나름 대중적으로 알려졌다고 캄.  


다카무라 고타로가 자신의 아내 '지에코'에게 바친 시집 


둘은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느날 지에코는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자살까지 시도함.


고타로는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지만 결국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 지에코는 사망하고 만다. 


지에코와의 첫만남부터 사별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지만지답게 번역 잘되어 있고, 시 한편 한편마다 해설, 원문 다 있어서 보기 좋을 거라 생각함. 


+ 부록으로 역자분이 쓴 지에코초 논문까지 있어서 참고 자료로 읽기 좋았다.  


아래 시는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지에코가 죽기 전 마지막 모습을 묘사한 시 


레몬 애가


그렇게도 당신은 레몬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프고 희고 밝은 죽음의 자리에서

내 손에서 받은 한 개의 레몬을 

당신의 고운 이가 우드득 깨물었다

황옥빛 향기가 감돈다

그 몇 방울 하늘의 것인 레몬즙은 

번쩍 당신의 의식을 정상으로 했다

당신의 푸르고 맑은 눈이 희미하게 웃는다

내 손을 잡은 당신의 힘의 건강함이여

당신의 목구멍에 거센 바람 소리는 있지만

이런 생명의 벼랑 끝에서 

지에코는 원래의 지에코가 되고 

생애의 사랑을 한순간에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옛날 산 정상에서 한 것 같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당신의 기관은 그것으로 멈췄다 

사진 앞에 꽂은 벚꽃 그늘에

서늘하게 빛나는 레몬을 오늘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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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구리하다 사다코 


히로시마 출신의 시인이 히로시마 원폭 참상을 그린 반전시집. 


그 자신도 히로시마 출신인 만큼 2차대전 당시에 원폭에 피폭됨 


구리하다 사다코는 원폭 전부터 남편이 아나키스트이기도 했고 중일전쟁의 참상을 전해듣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시를 썼음. 


원폭 이후에는 원전 반대나 반전 운동에 힘 썼다. 


혹자는 이거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시집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단호하게 아님 ㅇㅇ


이 시집의 의의는 그녀가 원폭 피해자가 아니라 전쟁 가해자의 입장에서 썼다는 점이다. 


구리하다 사다코는 이 점때문에 우익은 물론 원폭 피해자들에게도 욕을 먹기도 했음


이것도 역시 지만지라 믿고 봐도 됨 ㅇㅇ 아래는 제목과 동일한 시이자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한 시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히로시마’라고 말하면

‘아, 히로시마’라며

상냥하게 대답해 줄까?

‘히로시마’라고 하면 ‘진주만’

‘히로시마’라고 하면 ‘난징 학살’

‘히로시마’라고 하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구덩이 속에 가두고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인 마닐라의 화형

‘히로시마’라고 하면

피와 불꽃의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며 상냥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시아 각국에서 죽은 이들과 무고한 백성이

일제히 능욕당한 이의

분노를 토해 낸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는

상냥한 대답이 돌아오게 하려면

버렸다던 무기를 정말로

버려야 한다

이국의 기지를 철거해야 한다

그날까지 히로시마는

잔혹과 불신의 쓰디쓴 도시다

우리들은 잠재하는 방사능에

타들어 가는 파리아다


‘히로시마’라고 하면

‘아, 히로시마’라는

상냥한 대답이 돌아오게 하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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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의 섬 미즈노 루리코


미즈노 루리코는 1932년에 태어나 전쟁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냈음. (그녀가 13살 때 전쟁이 끝남)


그녀의 오빠는 전쟁으로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양실조로 죽었음 .

 

그리움과 전쟁 같은 슬픔과 고통으로 혼재된 유년시절을 시인은 동화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환상적 공간으로 되살려냄.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가상의 유년시절을 만들어 스스로와 죽은 이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으로 느껴졌음 

 

동명의 시가 길어서 부분만 옮김 


헨젤과 그레텔의 섬 


여기저기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어갔다 어른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낯선 물고기가 계단을 올라와 문 앞에서 엿듣는 기척이 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물고기를 끌어올려 다리를 잘랐다 다리는 모두 짤막했다 창밖에서 다리와 묵은 내장 냄새가 났다 새끼를 밴 물고기 배 속에 눈먼 지도가 붉게 접혀 있었다 오빠는 어두운 타원형 접시 위에 지도를 펼쳤다 그것은 다산의 땅이었다 둘은 티 없이 맑은 상처처럼 드러누워 처음으로 낯선 물고기의 요리법을 배웠다 물고기나 사람이나 언젠가는 치유될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어른들의 비밀은 거기 있었다


깊은 숲 속에서 양치식물의 포자가 금빛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부뚜막 안에서 마녀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이의 호주머니에 더는 빵 부스러기나 조약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여름의 끝에 그이는 죽었다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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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눈송이 사이토 마리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이토 마리코는 난쏘공, 카스테라, 희랍어시간 등의 한국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고 

나카지마 아쓰시의 빛과 바람과 꿈을 한글로 번역하신 분이다. 


이 시집은 복간본인데 원래 민음의 시 시리즈로 나왔고 '입국'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음 

시 좀 읽는 독붕이들은 엥 왜 민음의 시에 번역시가? 라고 띠용할 수 있는데 이 시집은 번역시집이 아니라 


일본인인 시인이 외국어인 한국어로 쓴 시집임 


개인적으로 모어가 아니여서 그런지 조금 어설픔을 느낀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모어가 아닌 점이 특이함을 주기도 했음 


꽤나 잘 썼고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 풍경에서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음 


서시


커다란 나무는

그대로 한 권의 역사책이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한 페이지에

해마다 새로 쓰여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책.

하루 종일 바람이 읽고 있다

가끔 언더라인한다.


서울


사람이 어깨만이 돼서 거리에 넘친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싣고 달린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타박타박 걸어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으로 남아 서 있다


사람들이 어깨만이 돼서 부딪쳐 간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버리려 달려간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넘어져 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 남아 짖는다

어깨너머 잊힌 달이 헐떡거린다


이 어깨에는 그림자가 없다



-


그 외 시집 추천 받고 싶으면 스타일 말해보셈 ㅇㅇ 

시알못이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추천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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