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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33권점포특전:늑대의 나라/약자는 죽어야 한다,자비는 없다 ZERO구신장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4.04 22: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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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 앞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여 있다. 그것들 중 하나를 겨우 끝낸 치샤 골드는 양손으로 인중을 주무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벌써부터 몸이 뻐근하군요.”

 

볼라키아 제국에서 강자는 우대받고, 약자는 멸시받는다.

 

엄격한 철혈의 규율이 널리 퍼진 국가였기에 모든 문제를 검이나 주먹 싸움으로 해결한다는 선입견이 외국에 퍼져 있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분쟁은 단순히 검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 , 물품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된 경우에는 처리해야 할 절차들도 생기고, 그 결과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각하께서는 문관의 중요성을 종종 얘기하시지만, 그걸 국민들에게 퍼뜨리는 것부터가 고난이니.”

 

어렸을 때부터 느껴왔던 거지만, 볼라키아에서는 물리적인 강함이 모든 걸 좌우해왔다. 따라서 싸우지 못하는 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제국의 검랑들은 똑똑한 척 하는 글쟁이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좋게 보지 않는 거로 끝나면 다행이건만, 이들은 눈빛만으로 끝나지 않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치샤의 어린 시절은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치샤는 그런 상황도 능숙하게 벗어났다. 만약 지금 당장 상대할 수가 없는 난적을 만난다면, 치샤는 온갖 지략과 술수를 동원해서 반격을 하거나, 상대를 속여서 서로 내분을 일으켰다. 그 결과, 치샤는 일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패배는 목숨을, 반격은 명예를 앗아가니. 나란 사람은 역시나 제국에 안 맞는 것 같군요.”

 

자신의 이런 성향과 대처법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보니 치샤는 수시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는 했다.

 

그래도 의미가 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니, 치샤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것만 어떻게 좀 한다면…”

 

치샤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 창 너머를 바라봤다.

 

치샤의 사무실은 볼라키아의 수도, 제도 루프가나의 수정궁의 방들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수정궁의 아름다움은 힘을 숭배하는 제국민들마저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드문 경우들 중 하나였다.

 

당연히 수정궁의 후원도 건물처럼 아름다웠다. 더 정확히는, 아름다웠.

 

아하하하하하! 잠깐, 잠깐, 아랴. 그렇게 해서 제가 잡힐 리가 없잖아요! 혹시 딴 데 정신이 팔리셨거나, 지루해져서 놀고 계신 건가요?”

 

세실스, 죽일 거야.”

 

몇 년이나 계속 그 말을 하시는데, 슬슬 지겨워지지 않나요?”

 

죽일 거야!!”

 

수정궁의 아름다운 정원에 심어져 있던 화려한 꽃과 잔디는 대지를 걷어찬 한 쌍의 다리에 뜯어져 나가고 짓밟혔다. 이어서 타오르는 불길이 하늘로 날아간 화초를 잿더미로 만들면서 뒤를 쫓았다. 화려하면서도 끔찍한 장관이었다.

 

정원을 뒤집어 엎는 두 개의 재해는 주위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날뛰었고, 누구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이게 수정궁에서 매일마다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치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느다란 눈을 닫았다.

 

――세실스 일장! 아라키야 일장! 이건 무슨 추태인가! 자네들이 지금 서 있는 장소도 못 알아보는 건가!? 빈센트 볼라키아 각하가 주거중인 수정궁 안에서 왠 경거망동을 부리나! 지금 당장 그치지 못하겠나!!”

 

분노로 가득 찬 한 굵은 목소리가 치샤의 속마음을 대신 말해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동이 소란을 오히려 가중시킬 거라는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 고즈 씨! 혹시 불만을 표하고 싶으시다면 저 말고 아랴한테 하세요! 저는 그냥 평상시처럼 행동한 것 뿐이라니까요!”

 

고즈, 방해.”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그러고도 제국의 장이라고 칭할 수 있나!!!!”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기만 하는 상황을 본 치샤는 조용히 창가에서 등을 돌렸다. 그는 다시 인중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하아…”

 

그렇게 그는 다시 익숙한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2

 

치샤 골드는 구신장 중에서도 ‘4’의 자리를 받았다.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치샤는 자신이 구신장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자리를 원하던 것도 아니었다.

 

구신장은 군의 정점을 상징하는 자리로, 일장의 자리에 걸맞는 무인들이 가져야 할 칭호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나운 노인이 아니라 제가 총리 자리에 올랐어야 했다고요.”

 

작작 좀 징징거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때, 치샤?”

 

치샤가 읊은 넋두리를 들은 손님은 천박한 말로 비꼬았다.

 

치샤의 무례하게 끼어들은 그 손님은 소파에 걸터앉은 작은 하이에나 아인――,

 

――그루비 검렛 일장, 아직도 불만이 있는 겁니까? 저 또한 구신장 중 한 명이며, 당신보다 더 높은 지위인 것은 기억하시는 지요.”

 

뭔 개소리야!! 네가 어떤 숫자를 가졌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가장 위에 있는 게 세실스라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게 변하지 않는 한 나머지 여덟 명의 순서가 어떻게 뒤바뀌든 큰 의미가 없다고!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시발.”

 

외모, 말투, 행동거지와는 다르게 역시나 머리가 돌아가는 군요. 감명받았습니다.”

 

내가 돌대가리처럼 보인다는 거지, 치샤 이 새끼야.”

 

그루비는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면서 귀엽고 둥그런 눈으로 치샤를 노려봤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그는 구신장 중에서도 ‘6’이었고, 치샤와 달리 구신장이라는 지위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치샤의 사무실까지 찾아온 것은 같은 구신장끼리 제국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실스랑 아리키아 이 두 새끼들이 내가 힘들게 가꿔 놓은 정원을 망가뜨리고 있잖아! 치샤, 네가 저 새끼들을 관리해야 할 거 아냐!”

 

엉망진창이 된 정원에 대한 하소연 겸,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루비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전사 중 하나였는데, 뛰어난 손재주와 미술적 감각으로도 유명했다. 수정궁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는 정원을 가꾼 것도 그루비였다.

 

[주구사]로도 알려진 그루비는 사람을 해하고, 죽이는 무기나 주구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옛 유적이나 유물의 복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치샤도 그루비가 정원에 들인 노고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먼저, 그루비―― 미리 말해두지만 저도 당신이 이 정원이 망가져서 기분이 매우 언짢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할 얘기가 있습니다…”

 

, 뭐를 말하시고 싶은데. ~주 화려하고 내용은 좆도 없는 거창한 사과를 하시게요?”

 

먼저, 제가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세실스를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일을 맡은 사람도 없고요.”

 

?! 네가 걔 목줄을 잡고 있잖아! 장난해!?”

 

그루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적반화장으로 화를 내면서 치샤를 바라봤다.

 

세실스랑 알고 지낸 지 꽤 오래 되긴 했지만, 치샤는 세실스의 부모나 형제 같은 가족이 아니었다. 당연히 세실스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없었다. 게다가――,

 

그루비, 비합리적. 세실스, 교육, 아무도, 불가.”

 

옆에 앉아 있던 모그로 하가네가 치샤가 하고 싶던 말을 대신 해줬다.

 

모그로는 [강인]이라 불리는 금속과 광석의 몸을 가진 특이한 일족 출신이었다. 강인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강인을 독특한 예술품이라 착각할 정도로 이질적인 육체를 가진 자들이다.

 

치샤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정원의 풀을 다듬고 있던 그루비가 바닥에 앉아 있던 모그로를 장식품이라 착각하고 창고에 넣으려고 했던 게 이들의 첫만남이었다고 한다.

 

썩 좋지 않았던 첫만남과는 달리, 지금은 기묘할 정도로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친한 건 친한 것이었고, 그루비가 하는 행동에 동참할 것인 지는 별개의 문제다.

 

? 지금 농담하자는 거야? , 모그로! 아니 시발 그 새끼들이 정원을 아주 조져놓고 갔는데, 여기서 내 편을 안 든다고?!”

 

정원, , 초대받음. , 불평, 도움, 틀림.”

 

, 미친, 이게 시발 말이 되냐고! 이렇게 통수를 얻어맞는다고!?”

 

그루비가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 소란을 피우자 털이 방 구석구석에 날아다녔다. 치샤는 머리의 가르마를 손보고 바로 그겁니다.”라고 말했다.

 

. 그게 뭔데.”

 

모그로 일장이 당신의 말에 동참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루비 일장. 세실스는 제가 뭐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한테 하소연해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라는 거야 그럼 시발! 내가 개고생하면서 정원을 쳐 가꿀 때마다 그 새끼들이 정원을 박살내고 가는 걸 그냥 구경만 쳐하라는 거야?! 이럴 거면 그냥 시발 모래로 채워놓지 그래, 안 그래?!”

 

――마음은 이해됩니다. 각하께 건의해보겠습니다. 지금은 이것으로라도 만족해주셨으면 하는군요.”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 답이었지만, 치샤는 더 이상 양보해줄 마음이 없었다.

 

그루비는 벌레를 씹은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지만,

 

그루비, 포기.”

 

친구의 직설적인 말을 듣고 이를 앙다물었다.

 

3

 

성에 눌러앉은 그 [별점쟁이]말이야, 그냥 죽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만날 때마다 두통을 주는 걸까. 머리가 지끈거려서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별점쟁이]는 군인도, 관료도 아니었지만 수정궁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었으며, 치샤조차도 그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가져오는 정보는 유용하게 쓰이니까요. 오르바르트 경, 당신도 이미 알고 계실텐데.”

 

알기야 알지. 하지만 그 [별점쟁이]인가 뭐신가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잖어? 그렇다면 바꿔도 별 문제 없겠구만.”

 

우비르크 공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다 그것처럼 행동한다면 모를까, 고문해보니 다들 그런 건 아니더라고.

 

오르바르트는 의자가 아닌, 탁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등을 긁적였다.

 

말투나 겉모습만 봤을 때는 성격 좋은 노인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시노비라 불리는 초인들의 수장이었으며, 제국의 암지에서 더러운 일들을 해왔었다.

 

별점쟁이―― 이들은 별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자들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우비르크도 이들 중 하나였다. 그 말고도 다른 별점쟁이들도 있었고, 우비르크가 하는 말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대다수는 감옥에 갇혀 저 시노비에게 고문받았다.

 

그렇게 한 결과, 결국 우비르크 공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지 않습니까.”

 

캬캬캬캬. 그러니까, [별점쟁이]를 다 없애자는 게 아니지. 저것만 없애자고.”

 

오르바르트 경, 그것이 황제 각하를 위한 최선의 방안입니까?”

 

? 그냥 장의 의무를 다해서 기뻐서 웃은 거다만. 나도 좋고 각하도 좋고, 안 그래?”

 

오르바르트는 아주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 태도가 놀랍긴 했으나,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했다.

 

특히, 이 자가 황제를 양심이나 충심 같은 거로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자신의 욕망을 쫓는 것에도 정점이긴 했지만, 빈센트는 오르바르트가 괜히 이상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그를 잘 대접해줬다.

 

그러나――,

 

자신이 장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각하의 의지를 꺾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게 당신일지라도.”

 

이런이런, 예상은 했다만, 역시 네가 구신장 중에서 가장 무섭구만.”

 

[악랄옹]에게서 그런 평가를 받다니, 놀랍네요.”

 

단순히 센 것만으로만 따진다면 세시나 아라키겠지만, 캬캬캬캬!”

 

“――――”

 

이 나라에서 가장 상대하기 골치 아픈 건 아무래도 너 같은 녀석이라.”

 

예상치 못한 칭찬을 받은 치샤는 진심으로 놀랐다. 오르바르트는 또 캬캬캬캬!”하고 웃으면서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착지한 후 그는 등을 돌리고 손을 흔들며 문 밖으로 걸어갔다.

 

혹시 될까 싶어서 찔러본 거겠지만, 납득을 하면서 말끔하게 포기하는 돌아가는 점만큼은 상남자 같았다. 오르바르트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유는 강하기도 했지만 호탕한 면도 있어서였다.

 

다만, 저는 여전히 제가 가장 무섭다는 건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마음대로 생각햐. 나는 내 마음대로 생각할 기니.”

 

자신의 의견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것 또한 오르바르트의 특징 중 하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겠지만, 그는 타인을 이해할 마음이 없었다.

 

그 노인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은 다음에 자리를 떴고, 치샤는 다시 인중을 주물렀다.

 

서류 작업을 하느라 어깨가 굳은 건 둘째치고, 이렇게 구신장들이 계속 찾아와서 골치가 아팠다. 애초에 왜 다들 자신한테 오는 지부터가 납득이 안 갔다.

 

각하에게 직접 말하기 힘들다고 나한테 들고 오는 거는 좀 멈췄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물론 모두 다 빈센트 황제가 바쁘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그렇다고 대신 자신한테 몰려오는 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말 걸기가 편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 각하가 다른 사람의 말은 안 듣고 치샤 일장님의 말만 듣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요.”

 

――발로이 일장.”

 

한 품격 있는 남자가 열려 있는 문에 기대고 있었다. ――발로이 테메그리프였다.

 

치샤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는 걸 본 발로이는 한 쪽 눈을 슬쩍 감고,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나요?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오늘 유난히 다른 구신장분들과 엮이는 것 같아서 말이죠. 당신까지 봤으니, 이제 요르나 일장을 제외한 모든 구신장을 봤거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군요.”

 

저도 오늘 이상한 일들을 겪긴 했습니다요. 잠깐 쉬는 셈 치고 오늘 있었던 이상한 얘기도 나눌 겸,  같이 비룡이라도 타고 올까요?”

 

발로이의 제안을 들은 치샤의 얼굴이 더 찌푸려졌다.

 

각양각색의 고집불통들로 가득 찬 구신장들 중에서 발로이는 유별날 정도로 유순한 편이었다. 하지만 치샤는 발로이와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다.

 

아마 세실스가 해달라고 부탁했나 보군요.”

 

이야, 역시 알아차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요.”

 

발로이는 이마에 손을 짚고 웃었다.

 

, 세실스가 저한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아라키아랑 같이 정원을 엉망으로 만든 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긴 하던데…”

 

발로이 일장, 장이라면 모름지기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치샤 일장, 아무래도 정원이 엉망이 돼서 당신의 얼굴에 주름이 생긴 것 같다고 세실스가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제 비룡에다가 태워서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 같으니 한 번 그렇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요.”

 

늘 그렇지만, 그가 가끔씩 이런 배려심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랍군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발로이에게 의지한 것은 세실스가 성장하고는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세실스가 이해가 안 되는 자신만의 신념을 따랐다면 아마 치샤의 기분을 풀어주겠다고 직접 나서서 치샤랑 같이 하늘로 날아올랐을 테니.

 

그럼, , 어떻게 할까요? 칼리용을 타고 잠깐 기분전환이라도 하실래요?”

 

제안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아이고, 저런도와드리고는 싶은데, 제가 이런 쪽의 일에 대해선 워낙 잼병이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종이를 본 발로이는 볼을 긁적였다. 하지만 돕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다른 일장들에 비하면 훨씬 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루비나 모그로, 오르바르트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얘기는 꺼낸 적이 없었다. 세실스나 아리키아였다면 종이더미를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면서 아마 온 몸으로 거부감을 표할 거고.

 

어쨌든――,

 

――당분간은 제가 맡아서 일을 계속 해야겠죠.”

 

세실스와 동급으로 가장 중요한 구신장인 이 남자는 다시 인중을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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