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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왕선전일담 진영결성비화 :「피에 물든 신부와 유쾌한 하인들」 1-1

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6.11 02: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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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피에 물든 신부와 유쾌한 부하들

 

1

 

죽음은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다.

 

「―――」

 

움직이지 않는 손발을 지면에 떨구고 마른 입술로 가냘픈 호흡을 반복한다. 

 

혓바닥 위에 모래알의 감촉이 느껴지지만 침이 한 방울도 분비되지 않아 맛을 알 수 없다. 생명이 다 한 몸은 빈사 상태였고 숨이 끊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무의식적으로 목숨을 이어주는 호흡. 그것이 끊어졌을 때 목숨 또한 다할 것이다.

 

「―――」

 

죽음을 직면한 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슬펐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남은 시간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생각하는 머리가 죽어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아.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

 

육체가 죽기도 전에 감정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 죽으면 정신에 죽음이 찾아든다. 그래서 살고 싶지도,  하다 못해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제대로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칠 시간도 있었을 텐데.

 

막상 그 끝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이 몸에는 항거할 힘도 의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분명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죽어서――

 

「――흥, 이 얼마나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는 죽은 이의 공허를 짓밟는 힘이 있었다.

 

머리 위에서 던져진 목소리에 의식이 희미하게 요동친다. 그런데 고개를 들 기력도, 목소리를 낼 여력도 어떤 반응을 일으킬 힘도 모든 것이 제 역할을 그만둔 그대로라서.

 

마음이 동해 멀리나와 보니 이다지도 불쾌한 일이 일어났구나. 그럼 어디보자, 어떻게 해주길 원하느냐

 

「―――」

 

소녀의 기분을 해친 죄는 무겁다. 어린아이라도 그 죄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아

 

죽어있을 터인 존재에게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던졌다.

 

그것이 거슬린다거나 귀찮다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죽어버린 감정이 그런 것을 느낄 리는 없었기에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 목소리는 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혹은 이미 죽은 것에 고집하는가.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해서든 알고 싶어졌다.

 

「―――」

 

아주 천천히, 무겁고 딱딱한 눈꺼풀이 열리고 세계를 직시했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이 무섭도록 완만하게 세상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탁 트인 시야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밝아지자 그곳에는 그것이 서있었다. 

 

빨갛다, 아주 붉다. 붉은색의, 진홍의, 불꽃과도 같은 여자가 그곳에――

 

「――무어냐 그 눈. 소녀와 같은 붉은색이 아니더냐

 

단지 그 뿐인 사실에 지금까지의 변덕이 거짓말처럼 금세 뒤집혔다. 그리고 단 한마디, 붉디 붉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었다

 

죽을 터였을 몸이, 이미 죽었을 정신이, 붉은 눈동자를 지닌 여자에게 구원 받았다.

 

――슐트라는 이름은 이 소년이 생명 다음으로 여자에게 받은 것이었다.

 

2

 

「――후아

 

하품을 하며 소년은 기다란 속눈썹이 가지런히 난 붉은 눈을 떴다.

 

아직 이른 아침이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 그 낌새에 소년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분홍색의 머리를 가볍게 흔든다.

 

어린 풍채의 소년이다. 나이는 올해로 11살이 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다소 미묘한 느낌이지만 남들이 봐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유는 그 외모가 평균적인 11세에 비해 상당히 작고 가냘프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지내기에는 많이 빈곤한 환경에서 살아왔던 탓인지 소년의 신체 성장은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자신이기 때문에 비로소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으니까――

 

「――이제야 일어났느냐. 소녀보다 늦게 깨다니 종의 자각이 부족하다

 

「……

 

졸린듯 눈을 깜빡이는 소년의 고막을 여신의 목소리가 스친다. 여신이란 딱히 거창한 표현이 아니다. 적어도 소년에게 있어 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여신이었다.

 

생명과 목숨을 부여해 준 존재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최근 소년은 깨달았다. 

 

그래서 소년――슐트는 우물쭈물 침대에서 기어 나와 자신에게 있어 여신인 존재와 마주 보고 무릎을 꿇었다.

 

속이 비치는 붉은 잠옷을 두른 여신은 의자에 앉은 채로 긴 다리를 꼬고 어린 소년이 자신의 발 밑에 무릎 꿇는 것을 턱을 괸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적홍의 시선에 슐트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한껏 존경을 담은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좋은 아침이지 말입니다, 프리실라 님

 

좋다, 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만. 뭐 좋다. 너의 귀여운 얼굴을 봐서 넘어가주도록 하마

 

네. 감사합니다

 

여신――즉, 프리실라는 그 비정상적으로 단정한 미모의 눈을 가늘게 뜨고 슐트의 아침 인사에 살짝 턱을 당긴다. 그 태도에 고개를 숙여 슐트는 그녀의 상냥함에 감복했다.

 

배우지 못한 슐트에게는 어려운 말도 많았지만 프리실라의 발언 끝자락에는 늘 자비와 관용이 가득하다. 오늘도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충성심이 솟았다.

 

이곳은 바리에르 저택, 프리실라의 침실이다. 슐트가 눈을 뜬 것은 그녀의 침대이고 거의 매일 밤 슐트는 프리실라의 침소에서 같이 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환절기의 밤은 춥다. 슐트를 안고 자면 딱 좋은 느낌이 되지. 그 점만은 칭찬해주겠다.

 

도움이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말 기쁘지말입니다!

 

아침부터 큰 목소리로 떠들지 말거라. 정신사납다

 

네! 신경쓰겠지 말입니다!」

 

자세를 바로 잡고 힘 껏 대답한 슐트에게 프리실라는 곧장 흥미를 잃는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에 눈길을 준 채 일과인 도거에 몰두하고 있었다.

 

분방하고 총명한 프리실라는 무척이나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식사 직전까지 독서에 몰두하여 다양한 지식과 이야기를 알아가는데에 시간을 보낸다

 

프리실라 님은 훌륭하시지 말입니다……」

 

배움이 얕아 아직 저택에서 배우고 있을 뿐인 슐트는 현자나 다름없이 박식한 프리실라가 여전히 향상심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프리실라가 목표로 삼는 정상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프리실라 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 말입니다

 

그렇게 맹세하면서 슐트는 프리실라에게 묵례하고 방을 뒤로 한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 사용인들과 합류해서 저택의 일과를 다하지 않으면.

 

슐트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퇴실하려는 슐트에게 프리실라가 말을 걸었다.

 

네, 넵! 프리실라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차……차를 내올까요!」

 

마음가짐은 높이 사겠지만, 차는 필요없다. 오늘 일정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느냐??」

 

오늘, 말씀이십니까……?」

 

프리실라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한 슐트는 어깨를 좁힌다. 주인의 말에 기억을 총동원해서 도대체 오늘 무슨 특별한 일정이 있었는지 생각해――

 

「――! 프리실라 님의 기사 발탁이지 말입니다!

 

사용인에게는 그 준비를 시켜뒀다. 노력하여 너도 도움이 되도록 하여라

 

알겠지 말입니다!

 

중요한 일정을 떠올리고 프리실라의 격려를 받은 슐트는 활기차게 방을 뛰어나온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집사복에 팔을 꿰었다.

 

약간 발돋움한 느낌은 있지만 외모가 단정한 소년의 제복 차림에는 배덕한 매력이 있다.

 

좋은 아침이지 말입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리지 말입니다!

 

그 제복 모습의 슐트가 현관으로 뛰어드니 저택 하인들은 한데 모여 일과인 조회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바리에르 가문은 커다란 저택이다. 사용인의 숫자도 30명 이상이라 슐트는 처음에 그 많은 어른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느라 깨나 고생 좀 했다.

 

하지만, 프리실라에게 주워지고 난 뒤 벌써 3개월, 이미 그들의 얼굴과 이름은 외운지 오래다. 그들도 처음에는 너무 어린 동료의 존재에 곤혹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웃는 얼굴로 다가와줄 정도로 친해졌다.

 

때문에 아침 조례 장소에 온 슐트에게는 평소와 같이 인사가 맞이해줄 터인데――

 

어라……?」

 

자세를 바로 잡은 사용인들, 슐트에게 보내오는 인사는 없다. 침묵을 지키는 동료의 모습에 슐트는 순간 의문을 품었지만 그 원인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一가장 마지막으로 오다니, 꽤나 팔자가 좋아보이는군

 

……주인……」

 

정렬하는 사용인들 앞에서 언짢은듯 코를 훌쩍이는 인물은 슐트를 작게 만들었다.

 

백발에 검은 양복을 두른 노인이었다. 눈빛은 날카롭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패기 넘치는 얼굴로 그 눈동자에도 목소리에도 일절 타인에 대한 관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프바리에르――이 저택, 바리에르 가문의 주인이며 프리실라의 남편되는 왕국귀족이다. 정확히는 슐트에게 있어 주인님이라고 불러야만하는 입장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라이프의 날카로운 눈길에 슐트는 저도 모르게 목이 턱 막혔다. 어린아이의 그런 반응에 라이프는 잠시 기를 죽이고 볼을 일그러뜨렸다.

 

뭐 됐다. 사소한 일에 신경쓰고 있을 겨를은 없어

 

순식간에 슐트에게 흥미를 잃어버린 라이프는 사용인들과 마주보았다. 그 사이 슐트도 허둥지둥 대열에 합류해 헛기침하는 라이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놈들도 알고 있겠지만 프리실라의 악취미인 향락이 다시 시작됐다. 그렇기에 당가는 불필요한 행사에는 힘쓰지 않을 것이다. ――불쾌하기 때문이지

 

「―――」

 

평소와 다르게 신분이 불명확한 놈팡이도 출입하게 된다. 전원 그에 관해서는 제대로 신경쓰도록. 여기가 바리에르 남작저라고 알지 못하는 애송이에게는 상응의 대처를 보여라, 알겠나.

 

고압적인 말투로 라이프는 사용인들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그 말에 사용인들이 침묵으로 답을 대신하자 그는 혀를 차고 구두 소리를 내며 현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라이프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겨우 그 자리의 공기가 느슨해졌다.

 

고생했어요, 슐트

 

아, 아뇨 저는 괜찮지 말입니다. 주인님의 말은 지당하십니다. 프리실라 님과 이야기하고나서 저는 마지막으로 허둥지둥 내려왔으니 말입니다.

 

옆에 서 있는 묘령의 여급이 라이프의 눈총을 받은 것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슐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 그 위로를 거절했다.

 

라이프의 말투는 엄격하지만 반성하지 하면 안되는 것은 사실.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지금은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인님의 말씀대로 오늘은 분명 무척이나 바쁠 것이지 말입니다! 저도 뭐든 도와드릴테니 여러분도 힘내주시지 말입니다!

 

꾹 하고 슐트가 주먹을 쥐어 선언하자 사용인들이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미소짓고 나이 어린 동료에게 맞춰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런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슐트의 분주한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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