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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2016년 10월 코믹얼라이브『오르코스령의 적설/전편』-3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07 2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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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쾌하고, 매혹적이고,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즐겁다.

 

아아, 멋져. …오싹오싹해라.”

 

손에 쥔 곡도를 돌리면서 무자비하게 자신의 앞을 막던 이의 머리에 꽂아넣는다.

 

엘자의 소중한 곡도는 칼날이 역날처럼 반대로 꺾여 있었다. 그렇기에 칼날의 끝에는 자신이 바라는 만큼의 무게가 실려 있었고, 곡도를 한 번만 휘둘러도 무엇이든 단번에 베어낼 수 있다.

 

곡도는 앞에 있던 위병의 투구와 맞부딪히며 두개골째 이를 둘로 갈랐다. 회색의 덩어리가 머리에서 흘러나왔지만 위병은 쓰러지기 직전에 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휘둘렀다.

 

대단해, 흥분돼.”

 

머리가 반토막났음에도 전의를 드러내자 엘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두꺼운 나무를 베어낼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엘자는 그 순간, 칼을 다시 돌려 적의 손목을 말끔히 베어냈다.

 

――――

 

이미 눈의 초점이 흐려진 위병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엘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그의 가슴을 걷어차 바닥에 떨궜다. 도륙되는 동료의 시체들을 보면서도 분노를 억누른 위병들이 곳곳에서 몰려들어왔다.

 

엘자의 발 앞에는 벌써 시신이 열댓구가 넘었다. 모두가 다 엘자와 싸우고 그녀에게 베인 이들이었다.

 

그들의 투쟁심에 경의를 표하며, 다가오는 적을 마주보며, 이들의 배를 갈랐다.

 

하하, 꺄하하하하하하!”

 

살고자 발악하는 생명의 박동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양손에 쥔 칼날에는 그 사랑을 담았고, 검격 하나 하나에는 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생명이 흘러나오는 이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환희감을 느꼈다.

 

피와, 살과, 뼈와, 내장을 ――엘자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

 

“…여기구나.”

 

복도 끝의 철문에 도달한 엘자는 그 문을 걷어차 방 안으로 쳐들어갔다.

 

피로 얼룩진 곡도를 든 엘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한 노병이었다.

 

빛이 바란 갑옷을 입은 노병은 한 손에는 철퇴를 들고 있었다.

 

그의 전의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그가 이 요새에서 가장 강한 병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자를 만날 줄은 몰랐군.”

 

여자는 싫은 거야? 상대가 여자라 전의를 잃은 것이라면 실망인데.”

 

의미없는 우려다. …적이 누구든, 적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엘자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한 질문에 답한 노병의 말에서는 끓어오르는 투지가 느껴졌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엘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창자 사냥꾼, 엘자 그란힐테.”

 

악인에게 이름을 밝힐 마음은 없다. …너를 구축하겠다, 악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노병을 보면서 엘자는 웃음을 살짝 지었다. 그가 먼저 엘자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과 순발력으로 노병은 철퇴를 밑으로 내리찍었다. 빗나간 철퇴는 바닥을 내리치자 바닥의 돌들이 박살나서 튀어나갔다.

 

요새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먼지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먼지가 가시자――

 

――아아, 역시.”

 

발소리와 함께 곡도가 먼지구름을 베어냈다. 노병은 사지가 절단난 채 바닥에 엎어졌다.

 

황홀감과 환희에 찬 눈으로 죽어가는 노병의 몸을 넋을 잃고 보면서, 엘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내장은 아주 고운 색깔일 줄 알았어.”

 

그 말과 함께 이 요새의 전투는 끝이 났다.

 

△🔽△🔽△🔽△

 

6

 

방에 들어온 손님은 눈 앞의 광경을 보고 얼어붙었다. 엘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뭔 문제냐니지금 뭐하고 있는 건데?”

 

――봐도, 모르겠어?”

 

로그레스가 엘자가 들고 있는 것을 가리키자, 엘자는 아무런 주저 없이 자신이 들고 있던 실뭉치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걸 본 거인이 더 당황스러워하자 엘자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여기는 추운 곳이고, 나는 털실로 뜨개질을 하고 있어. 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뜨개질 자체야 그렇지. 하지만 그걸 당신이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워서당신 같은 여자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니.”

 

무심해라. 하지만 뜨개질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 걸.”

 

그 말과 함께 엘자는 자신이 뜨고 있던 것을 보여줬다.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한 인형이었다. 아이한테 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였고, 뜨개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봐도 세심하게 바느질을 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 생각 없이 봤다면 엘자가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인형 만들기가 그 쪽의 취미인 줄은 몰랐는데. 얼마나 오래 됐어?”

 

인형을 언제부터 만든 건지를 물은 거라면, 어젯밤부터야. 인형 만들기 자체에 대해서 물은 거라면, 10년은 넘었지.”

 

어느 쪽이든 놀랍군.”

 

엘자의 답에 로그레스는 코를 긁고 옆의 침구에 걸터앉았다.

 

엘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낮에 점거했던 요새의 방들 중 하나였다.

 

방의 주인은 검소한 편이었던 것 같았다. 엘자도 딱히 사치를 부리는 편은 아니었으니 혹시 만났더라면 친해졌을 지도 모른다.

 

이미 엘자한테 죽었겠지만.

 

――

 

엘자는 다시 별 말 없이 인형을 뜨기 시작했다. 인형을 만드는 방법은 딱히 복잡하지도 않다. 코바늘에 털실을 묶고, 그걸 잘 움직여서 머리, 몸통, 팔다리, 이런 것들은 만들고 마지막에는 하나로 합치면 끝이다.

 

그 중에서 엘자가 가장 좋아하는 과정은 솜을 채워넣을 때였다.

 

이렇게 인형 속에 솜을 집어넣다 보면뭔가 성취감이 느껴져.”

 

, 그렇군뭔가 대충 창자 사냥꾼의 취미 답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실력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감정으로 인해 칭찬을 받았다. ――엘자는 왜 그런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찌됐든, 로그레스는 인형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보고 있기만 했다. 엘자는 살짝 찝찝하긴 했지만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가 자신을 먼저 찾아왔다. 말할 것이 있어서 왔다면, 그가 말을 꺼내면 될 일이다.

 

――

 

한동안은 뜨개질 소리만이 들렸다.

 

인형이 완성되기 직전――

 

――엘자. 당신은 이 [정화] 작전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안 들어?”

 

이상하다?”

 

그냥 감이긴 한데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그 쪽도 혹시 그런 느낌이 들었나 궁금해서.”

 

 

마침내 로그레스가 자신이 온 목적을 밝히자, 엘자는 뜨개질을 하고 있던 손을 멈추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정화] 작전. ――정당성은 이 쪽에 있던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오르코스령의 외곽 요새들은 차례차례 무너졌고, 이제 내부의 도성도 코 앞이었다.

 

엘자는 이고르가 시킨 일을 거의 다 완수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리니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쪽의 피해는 적고, 연전연승을 이어가고 있으니―― 당신도 그게 좋지 않아?”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냥 술집에서 매일마다 별 걱정 없이 술을 퍼마시고 싶기는 하다만우리 남작 나으리가 정직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지. , 애초에 성교회랑 엮인 놈들은 늘 그렇긴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성교회에 분노를 표했었지.”

 

로그레스의 마지막 말을 들은 엘자는 술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기억이 흐릿하긴 했지만, 정화 작전이 시작하기 전에 들렀던 술집에서 그 얘기를 꺼냈던 것은 아마 그였을 것이다.

 

“…, 당신이었나 보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 치고는 꽤나 자신감 있게 말하시는군.”

 

내가 기억력이 안 좋기는 하지만, 냄새에 관한 것은 뚜렷이 기억나. 그 때 당신에게서 분노를 맡았어. 구스테코 성교회와 안 좋게 엮인 일이라도 있었어?”

 

――딱히 재미있는 얘기도 아니고, 애초에 당신이 관심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 쪽도 자기 과거에 대해서는 말을 딱히 안 하고 싶지 않아?”

 

로그레스는 코를 긁적이며 괜히 얘기를 꺼낸 엘자를 노려봤다. 엘자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어렸을 적에, 내 부모가 나를 노예로 팔았어.”

 

――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은 드물잖아? 자신들하고 안 닮았으니 내 부모는 나한테 애착심도 없었나 봐. 나중에, 조상 중에서 한 명이 나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엘자가 별 거리낌없이 자신의 과거를 밝히자, 로그레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놀란 것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엘자는 말을 이었다.

 

부모에게 팔려서, 차가운 세계로 내던져졌을 때의, 오싹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나는 창녀가 되기 전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탈출했어. 실패했다면 지금쯤 사창굴에 있거나, 죽었겠지. 다시 잡혀간 아이들이나, 절벽에서 추락한 아이들하고 비교해보면 나 정도는 운이 좋았던 거지.”

 

다시 잡힌 아이들은 본보기용으로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눈보라 속에서 조난된 아이들은 동상으로 사지가 얼어붙으면서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거나, 설원의 짐승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다.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 말고는 다 사소한 일들 뿐이었어. 떠돌이 고아다 보니 별의별 이상한 일에 휘말리기도 했고, 그러던 중에 칼을 쓰는 법을 배웠고. …이걸로 끝, 인 것 같은데?”

 

내용을 상당히 많이 생략하긴 했지만, 딱히 말할 거리도 없는 사소한 일들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로 끝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겨우 몇 분만에 인생사를 다 털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공허한 인생을 살긴 했다.

 

엘자와 달리 로그레스는 뭔가 불편해 보였다. 로그레스는 코를 긁적였지만, 도저히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다.

 

――왜 이 얘기를 나한테 해주는 거야?”

 

――?”

 

아니, 내가 뭔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여?”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더라면, 말하지 않았겠지. 숨길 만한 일이 아니니 숨기지 않은 거고. 질문은 그걸로 끝?”

 

 

가치관의 차이가 심하구만…”

 

로그레스는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린 후,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는 원래 성교회에서 나름 높은 관직을 맡고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는 부잣집이었지. 하지만 내가 열다섯이 되던 해, 내 부모님께서 권력에서 밀려나셨고, 그대로 우리 가족은 무너져 내렸지. 전재산은 압류당하고, 내 아버지는 처형당하고, 내 어머니는 어떤 교단에 끌려갔지. 길바닥으로 내쫓긴 열다섯 살짜리 꼬마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했고, 그 결과는 지금의 주정뱅이지.”

 

그가 말을 마치자, 엘자는 다시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한 쪽 눈을 감았다.

 

딱히 숨길 만한 인생은 아니잖아, 안 그래?”

 

그건 아니긴 한데. 그냥 듣는 사람이 지루해진다는 게 문제인 거지. ――그래, 뭐 솔직히 말하는 나도 재미없다고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핵심은 그게 아냐. 지금 이 작전과 내 인생 사이에서 뭔가 공통점이 느껴진다는 거지.”

 

――당신의 아버지가 밀려나갔다는 권력 투쟁?”

 

권력이 있는 구스테코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성교회와 엮여 있어. 우리를 고용한 남작 나으리도, 그 빅터 오르코스라는 자도.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진짜 핵심이야.”

 

로그레스는 침대에서 일어선 후, 살짝 잘난 체하는 듯한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이었다.

 

빅터 오르코스 그 자가 정말로 소문대로 자기 영민들을 노예로 갖다 파는 그런 역겨운 놈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왜 오르코스령의 병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맞서 싸우는 거지?”

 

――

 

왜 모든 병사들이 그딴 벌레 같은 놈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 각오로 맞서 싸우는 거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

 

충돌하는 요새 한 곳 한 곳 다 똑같았다. 빅터의 사병들은 전세가 열악해짐에도 도망가기는 커녕 끝까지 맞서 싸웠다. 엘자도 로그레스의 말을 듣자, 반나절 전에 죽였던 그 노병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 노병한테서는 뚜렷한 전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알바가 아냐.”

 

――지금 내 얘기를 다 듣고 내린 결론이 그거야?”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곧바로 행동하는 걸 선호하거든이런 것처럼.”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는 로그레스 앞에 엘자는 방금 전에 뜨개질을 마친 인형의 팔다리를 잡고, 좌우로 살짝 땡겼다.

 

취미 치고는 잘 만들었지?”

 

, , 잘 만드셨습니다. 나는 아마 못 만들겠지.”

 

코바늘과 털실이면 끝. 이번 임무 중에 벌써 열몇 개를 넘게 만들었는 걸. 예쁜 내장들을 보고 나면, 뜨개질이 잘 되더라고.”

 

안 물어봤수.”

 

엘자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로그레스의 눈에는 매력적인 여인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장벽만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방문으로 향했다.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한 말은 잘 기억해놓는 게 좋을 거야. 네 감을 믿어.”

 

뭐라 말했었더라…?”

 

이봐, 잠깐만, 뭐라고?”

 

농담이야.”

 

까먹은 것처럼 답하자 로그레스가 당황하는 걸 본 엘자는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로그레스는 한숨을 쉬고 다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방문을 닫으려던 찰나에, 거인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만, 적어도 열 개 이상은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이 방에는 안 보이는데.”

 

로그레스의 말에 엘자는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엘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입술을 핥은 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건 알려줄 수 없는 걸.”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로그레스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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