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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다시 맑음 소녀가 돼야 하는 거야?#3

ㅇㅇ(211.200) 2019.11.05 21:50:53
조회 3522 추천 53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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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나츠미 씨가 스쿠터를 세운 곳은 세월의 흐름이 역력한 거대 신사였다.


수백 살은 돼 보이는 고목들이 사방을 둘러싼 채 비를 막아주고 있었다.


“여기가 그 맑음 소녀 이야기가 나온 곳이에요?”


“정답! 벌써 삼 년이나 지나서 자세한 내용은 긴가민가하지만.”


나츠미 씨는 어깨를 으쓱하고 보호 헬멧을 스쿠터 운전대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폰을 꺼내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걸었다.


“여보세요? 네! 미리 연락드린 K&A 플래닝입니다! 저는 더 이상 직원이 아니지만요. 네? 네! 물론 데려왔죠!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통화가 끝나고, 뭐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나츠미 씨가 서둘러 털어놓았다.


“실은 그때처럼 쉽사리 약속을 잡을 수 없었어. 예정이 꼬였나 봐. 그런데 날씨의 무녀인 아이를 데려간다고 하니까 곧바로 OK사인이 떨어지더라.”


“저, 저요?”


“미안~ 이름 팔아먹은 느낌?”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어차피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일이 없으니까요.”





“크, 크다…….”


신사의 주인은 작은 키에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였다.


이제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손자가 불편한 거동을 돕고 있었다.


“콜록, 콜록! 이게 그 그림이여.”


할아버지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신사 내부 천장의 그림을 가리켰다.


“아…….”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정확히 두 번, 아주 잠시 봤을 뿐이지만 너무도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그 광경이 고풍스런 그림의 형태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구름 속을 헤엄치는 용과 물고기.


“그런데 말이여, 정말로 날씨의 무녀여?”


“맑음 소녀 말씀이시죠? 네.”


“신기하구먼. 사람들이 위성인가 뭔가 쏘면서 제멋대로 기상 관측을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내 얼굴과 옛날 주술사들의 그림들을 번갈아보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뭐여?”


“얼마 전부터 하늘에서 이상한 빛줄기들이 내리쬐면서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어요. 게다가 더 신기한 건 그 누구도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아요. 혹시 제가 맑음 소녀를 그만 둔 거랑 관계있나요?”


“그만 뒀다고?”


자초지종을 들은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몇 번이나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재앙이나 비극이 다가올 것을 직감한 것처럼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노선(怒選)의 제물’이구먼.”


“네?”


생소한 한자어가 귓등을 긁는다.


“노선의 제물. 한 번 선택된 날씨의 무녀는 사명을 다하고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만둘 수가 없어. 그런데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노한 용 신이 그 무녀를 대신할 제물들로 빈자리를 채우지.”


“저를 대신해서……?”


“하지만 날씨의 무녀의 공백은 커. 그 자질을 갖추고, 진심으로 하늘과 통하길 기원하는 사람만이 될 수 있지. 그러나 그만한 인재가 없을 때는 용 신이 무작위로 사람들을 제물로 데려가 그 자리를 메우게 돼.”


“몇 명이나요?”


“그건 모르지. 자질이 뛰어난 무녀일수록, 대신해서 희생될 사람의 수가 늘어나.”


거기까지 설명을 마친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어떻게 날씨의 무녀를 그만 둔겨? 보통은 안 될 텐데.”


“그건…… 죄송해요, 대답하기 힘들어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때 호다카의 애절하고 우렁찬 외침, 구름과 바람을 뚫고 내 가슴에 닿은 그 몇 마디의 말.



‘맑은 날을 두 번 다시 못 봐도 괜찮아! 푸른 하늘보다 나는 히나가 좋아! 세상 따위는 얼마든지 미쳐있어도 돼!’



그때 내 손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쇠처럼 호다카를 향했다.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과 죄책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만.


“할아버지, 혹시 이 사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요?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데려올 방법이요.”


“있기야 당연히 있지.”


“저, 정말요? 뭐예요?”


나는 다급하게 톤을 높이며 할아버지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씁쓸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다가 혀를 쯧쯧 차며 돌아섰다.


“뭐긴 뭐겠어. 공백이 생기면 그 공백을 다시 메우면 될 일. 다시 날씨의 무녀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다.”


“…….”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자 딱딱한 나무 바닥의 감촉이 몸을 때렸다.


아득해진 의식 너머로 할아버지의 손자가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뭐라고 외치는지는 귀가 먹먹해서 들리지 않았다.





“이야기 끝났어?”


나츠미 씨가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고 있다가 내 모습을 보자 반갑게 다가왔다.


장난기는 있지만 비밀스런 이야기라는 말을 듣고 기꺼이 자리를 비워주는 고마운 분이다.


아까보다 빗줄기는 조금 약해져있었다.


“어라, 표정이 왜 그래? 뭔가 잘 안 풀렸냥?”


“아, 아니요. 궁금한 건 모두 알았어요.”


“그래? 잘 됐네! 의외로 빨리 끝났는걸. 케이 짱 눈치 안 봐도 되잖아, 이제!”


“……네.”


억지로 밝은 척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내 특기였는데, 호다카와 만난 이후로 투정 부리는 법을 배워서 그런 걸까?


“히나 짱.”


“네?”


“진지하게 얘기해 봐.”


별로 안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씀을 하셔도.


“의문이 풀렸다면서 아까보다 안색이 훨씬 안 좋잖아.”


“아, 아하하. 아니에요. 보세요, 저 웃고 있어요.”


“흐~응. 히나 짱, 예전에 알바했다고 하지 않았어?”


“네.”


“역시 그 버릇인가, 영업용 미소 티가 팍팍 난다고.”


“…….”


말문이 막혔다. 식은땀 한 줄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역시 태연한 연기는 평생 할 것이 못 된다.


다행히 나츠미 씨는 그런 나를 너무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는지, 기지개를 켜면서 화제를 돌렸다.


“뭐, 좋게 끝났다니까 그럼 됐지! 돌아가는 길에 저녁이라도?”


“괜찮아요, 더 신세 지는 건…….”


“됐다니까. 어차피 이제 케이 짱이랑 같이 지내는 것도 아니고, 혼자 밥 먹는 것도 외로운걸.”


“그,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간만에 패스트푸드가 끌리는데? 빅맥 세트 어때?”


“아, 그건 좀…….”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응, 왜? 의외로 고급 입맛?”


“다, 다이어트 중이라.”


“하아? 다이어트? 그 몸에? 여고생들의 가녀린 몸매 지향은 끝이 없구나~ 그거 알아? 남자들은 너무 마른 것보단 살이 좀 붙은 여자를 좋아하거든?”


“조, 조언 감사합니다.”


나츠미 씨는 힘차게 운전대에 앉아 스쿠터 페달을 밟았다.


곧이어 세찬 바람과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며 체온을 앗아갔다. 내 착잡한 마음도 덩달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너는 맑음 소녀가 아니야. 자신을 위해 기도해, 히나.’


‘응!’


호다카.


호다카, 호다카, 호다카…….


처음으로 내 의미를 찾아준 사람, 영원히 빗방울의 감옥에 갇혀있을 내게 손을 뻗어준 은인.


그런 호다카가 말했다. 더 이상 세상을 위해 살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살라고.


호다카의 조언, 아니 부탁이기에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정말 행복했다. 다시 사람들의 활기를, 나기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호다카의 따스한 온기.


구름에서 떨어지다가 아주 잠시나마 손을 맞잡으며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워준 그 감촉.


아무리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도, 신은 아직 그 소원만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자 다시 가슴속 깊이 파묻혀있던 그 의문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정말 나 하나의 희생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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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어들 주셔서 매우 감사.


완결까진 어떻게든 내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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