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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다시 맑음 소녀가 돼야 하는 거야?#6

ㅇㅇ(211.200) 2019.11.10 20:06:04
조회 3226 추천 56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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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신이 있나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미츠하 씨가 슬쩍 시선을 흘려 타키 씨를 바라보았다.


“실은 타키 군이랑 내가 예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든.”


“신님한테요?”


“신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벼랑 끝에 몰려서 간절히 기도하니까 기적을 보여주는 존재가 있었어.”


미츠하 씨와 타키 씨는 마주본 채로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듣자 서글픔이 마음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제가 아는 신은……. 저랑 호다카를 떼어놓으려고 했어요.”


“호다카 군?”


타키 씨가 물었다.


“할머니가 백중 날에 너를 불렀을 때 같이 온 소년?”


“네.”


“아아, 지금은 같이 안 다니니? 착한 아이 같던데. 맑음 소녀 일 그만둬서 그래?”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요.”


“응? 왜?”


“그런 사정이 있어요.”


얼음처럼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내가 마지막으로 본 호다카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힘없이 순찰차의 뒷좌석에 타는 모습이었다.


그때 이후로 호다카를 만난 적이 없다.


조금씩 고이기 시작하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지려는데, 타키 씨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이 세상에 못 만나는 사람은 없어.”


“네?”


“나랑 미츠하도 절대 만나지 못할 사이였는데, 기적적으로 만났거든.”


아련한 추억에라도 잠겼는지 타키 씨가 옅은 미소를 띠고 잠시 침묵을 이어갔다.


이분들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사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맞아.”


타키 씨가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살아있는 사람과 망자,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네?”


뜬금없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황당한 와중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나는 타키 씨의 소매를 붙들었다.


“어, 어, 어떻게요?”


“황혼의 시간.”


“황혼의 시간……?”


“그래, 나랑 미츠하에게 내려온 기적이란다.”


그러자 미츠하 씨가 의아한 듯이 끼어들었다.


“타키 군, 그때 우리가 초월한 건 시간이었고 이번 일은 좀 다르잖아?”


“시간을 초월했는데, 삶과 죽음까지 초월하지 못하란 법은 없지.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안 떠오르는 걸. 아니면…….”


타키 씨는 갑자기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미츠하가 술이라도 만들어주……. 으악!”


갑자기 미츠하 씨는 이마에 힘줄을 세우더니 타키 씨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순하고 어질게 보이던 미츠하 씨에게도 저런 면이 있구나.


“으하악, 간만에 옛날 성격 나오네.”


“계속 안 나오게 했으면 좋겠는데.”


미츠하 씨는 눈초리를 올리고 쏘아붙이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설명해줄게.”


“네, 네.”


순식간에 친절 모드로 변하는 걸 보니 도리어 무섭다. 나한테도 이런 면모가 있을까?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사람 중에, 정말 간절히 보고 싶은 분이 있니?”


“……있어요.”


생각에 잠길 것도 없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러자 미츠하 씨는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 댔다.


“말하지 않아도 돼. 진심으로 염원하기만 해.”


“네, 네.”


“그리고 맑은 낮이 일을 끝내고 별과 달이 떠오르기 전, 세상이 주황빛의 노을로 가득 물들 때를 기다려서 속으로 빌어보렴. 그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그럼 만날 수 있나요?”


“분명히.”


미츠하 씨는 고운 손으로 내 손을 꼭 맞잡고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응원할게.”


“가, 감사합니다.”


“아참, 한 가지만 더.”


“네?”


미츠하 씨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 눈을 마주보며 조언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도 버거우면, 그땐 모든 짐을 털어놓고 너한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해.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래, 혼자 모든 걸 떠안으려 할 필요는 없어.”


많아봐야 나보다 10살 정도 연상일 미츠하 씨가 그 순간만큼은 마치 엄마처럼 느껴졌다.





“누나.”


“응?”


두 분과 작별하고 돌아가는 길, 웬일로 오랜 침묵을 지키며 앞만 바라본 채 걷던 나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만약 그 반지의 힘으로 저 세상으로 가게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그럼.”


나는 허리를 숙여 나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래는 다리까지 굽혀야했는데, 어느새 훌쩍 큰 나기가 듬직하고 기특해보였다.


“누나가 못 돌아올까 봐 걱정되니? 우리 나기 다 컸네.”


“걱정은 그때도 했어, 누나.”


갑자기 나기는 미간을 좁히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를 붙잡으려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땐 호다카 형이 있었잖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누나만 바라보고 목숨을 건 호다카 형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나기.”


억지로 강한 척을 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눈물 한 줄기가 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나도 너무 약해졌다. 원래는 이런 거 잘 참았는데.


“누나, 나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여자애들한테 인기 없어도 돼. 누나만 무사하면 그걸로 됐어.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발…….”


“누나가 약속할게. 꼭 돌아오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울음을 삼키면서 나기를 껴안았다. 이전보다 어깨가 넓어지고 키도 컸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손바닥에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존재로 느껴진다.


그런데,


“어?”


나기의 시선이 측면으로 돌아갔다. 무언가 감지한 듯한 움직임이다.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비켜, 누나!”


갑자기 나기가 양팔을 앞으로 내밀어 나를 거칠게 밀었다.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뒤로 나가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기, 이게 무슨…….”


빗물 범벅이 된 치마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든 나는,


“나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듬직한 동생이 파멸의 빛줄기의 제물이 되는 광경을 코앞에서 봐야만 했다.


“누나!”


“나기―!!!”


나기는 샛노란 빛에 휩싸여 마치 재처럼 검은 가루가 돼서 하늘 위로 흩날려 사라지고 말았다.


뒤늦게 뻗은 내 손은 끝내 나기에게 닿지 못했다.


“싫어…….”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무엇도 생각하기가 싫다.


“싫어―!!!!!”





한참을 우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집 근처까지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런데 눈에 익은 듯하면서도 생소한 풍경을 보자, 나는 밀려오는 허무함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황량하다.


이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너무나도 황량하다.


얼다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쿄의 한복판.


화려한 네온사인과 각지고 높은 건물들, 복잡하게 얽힌 도로들은 그대로다.


하지만,


“……?”


사람이 없다.


도쿄가 원래 이렇게 조용한 도시였나?


“저기요, 아무도 없나요?”


나는 인공조명이 모두 꺼져서 유령도시가 된 도쿄의 거리를 이리저리 달리기 시작했다.


칙칙하고 삭막해진 도시를 밝혀주는 빛이라곤 사람을 잡아먹는 그 빛줄기들뿐이었다.


소름이 돋는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다.


“설마…….”


전부 용 신의 빛에 먹힌 거야?


아니야, 아닐 거야.


남아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스가 씨! 나츠미 씨!”


나는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소를 향해 힘껏 달렸다.


영세 편집 회사 K&A 플래닝이 있는 건물의 4층.


거기선 분명히 스가 씨가 담배를 물고 귀찮은 표정으로 저리가라는 손짓을 해줄 거야.


부탁입니다, 제발 그때처럼 저리 가라고 박대해주세요…….


“아…….”


문을 열자 사무실은 어둠과 정적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파리나 모기 한 마리, 먼지 한 톨도 안 날린다.


나는 겨우 몇 시간 만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제 남은 지푸라기조차 없다.


“어?”


그때, 창살 없는 감옥이 된 사무실 안에서 나는 보았다.


창문 너머로 주황빛 노을을 비치며 가라앉는 해.


시간과 시간 사이,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그때.


미츠하 씨가 말한 기적의 순간.


황혼의 때.


나는 고개를 힘차게 내젓고 손바닥으로 뺨을 두드렸다.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조금이라도 의지와 기력이 남아있을 때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세우고 양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 순간 일어났으면 하는 기적.


호다카 말고도 내게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러나 이 순간이 아니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분.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난데없는 인기척을 느끼고 사무실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인기척의 주인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결국 하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고, 목이 메서 입술을 떼는데 수십 초가 걸렸다.


곧이어 4년 가까이 꺼내지 못한, 그리운 호칭을 입에 담아보았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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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연속 영화 달리고 돌아와서 급히 쓴거라 분량은 쪼매 적음.


대신 원래 7화로 마무리할 예정이었는데 6화가 짧은 탓에 8화까지 연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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