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저들을 계몽하라!"
―워마스터 호루스 루퍼칼, 댄 애브넷 저 호루스 라이징, 2006
1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독자로서 전 호루스 헤러시 시리즈에 들어가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신화적인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 반쯤 두려웠고, 그것이 여러 가지의 반만-말해진 이야기들의 충돌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호루스 헤러시가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면 다크 밀레니엄이 축소될까 우려하기도 했죠. 동전의 반대쪽 면으로는, 전 호루스 라이징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시리즈에 중독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갈등이고, 저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성공해낸 것이라면, 로마의 몰락이 규모 면에서나 소모된 시간적 측면에서나 트로이 공성전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이 있겠죠. 물론 그 방식도 달랐고 이유도 다르지만 말입니다. 전 두 사건 중 하나를 더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전 페이지의 인용문은 중요한 것입니다. 모두가 호루스 라이징을 읽으면서 곧잘 첫 문장을 인용하곤 하죠. ‘호루스께서 황제를 살해하신 그날, 나는 거기 있었다.’ 전 그게 왜 인용되는지 알겠습니다. 숙련된 문장이고, 울림이 있습니다. 음울하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설의 끝으로 향하며,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쇄된 것 중 가장 많은 워해머 40,000의 대화문들을 가지게 됩니다. 설정에 있는 모든 문명들의 핵심을 종합하고, 그 설정의 심장부에 있는 인류 제국을 가장 강력하게, 완전히 요약하는 것이지요.
저들을 계몽하라.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저게 당체 무슨 전투 함성이란 말입니까?
대다수의 전쟁 및 ‘그림다크’ 장르 픽션들이 그렇듯, 워해머 40,000 속 이야기와 정념은 보통 적을 이겨내거나 끝에 가서 회복해내는 데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바로 인간이 삶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과, 고통 속 인간성의 순간, 빛의 죽음에 맞서는 분노에 있죠. 우리는 이야기 속의 모든 이들의 믿음이 옳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해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트로이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고집과 그릇됨이 공감할 만한 것이고, 가슴 아프고,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야기하죠. 그것이 그 이야기와, 그리고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는 까닭입니다.
호루스 라이징을 읽었을 때 저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 주에 독감에 걸려서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잠시 시력을 잃지 않고 앉아 있는 것도 간신히 해낼 수 있었죠. 아무것도 읽어선 안 됐습니다. 약복용 약을 읽는 것도 제 뜨거운 눈알에는 오싹한 고통을 안겨주었으니까요. 하지만 호루스 라이징은 제가 전에 결코 읽어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 하루 동안 그것을 탐닉했고, 다음날 다시 읽었죠.
따라서 저는, 코가 꽉 막힌 두개골이 더러운 부패 속에서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느끼면서도, 결코 읽길 원하지 않았던 책을 읽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끝으로 향하며, 제국은 또 다른 인간 제국을 처리합니다. 인터렉스, 제국보다 상당히 많이 계몽되어 있었고, 외계인들을 그들의 문명의 혜택에 받아들였으며, 그 어떤 제국 캐릭터보다도 카오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망설이긴 했지만 이 문화적 박애를 갑자기 나타난 인류 제국과 공유하는 데 열려 있었죠. 대조적으로, 제국은 우주가 돌아가는 방식에 완전히 무지한 신생 제국이고, 가장 군사적인 조건으로만 다른 세력들을 다룰 수 있었죠. 제 말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성전 말입니다. 그 설정은 제국인들을 좋은 녀석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데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들은 은하계를 항해하며 다른 행성의 제국들에게 합류하거나 죽으라고 말합니다. 외계인 제국은 보통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죠. 그저 “…아니면 죽음” 옵션만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독자와 애호가와 팬들 말입니다)가 제국을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일시할 수 있는 만큼, 황금기로 여겨지는 시대에도 제국은 여전히 무지라는 절대적 미덕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요점이고, 그것이 비극입니다. 그것이 워해머 40,000의 설정이 가장 크게 어필하는 부분이죠. 누구도 옳지 않고, 모두가 조금씩 잘못되었습니다. 썩어가는 제국은 거짓, 무지 위에서, 순전히 관성으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암울한 어둠에 휩싸인 머나먼 미래엔, 오직 전쟁만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 신생 제국이 전쟁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사랑받는 제국은, 그 야만적인 시작에 취한 채, 그 자신의 무지에 빠져 있습니다… 그 워마스터는 대담하게도 이 계몽된 제국을 상대하며 그의 아스타르테스들에게 외치죠. “저들을 계몽하라!”
바로 그것이 제국입니다. 파괴적이게, 가슴 아프게, 흥미진진하게 잘못되었지만, 언제나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했죠. 그것이 향후 1만 년 동안 어떤 식으로든 모든 캐릭터들의 영혼을 관통하는 실입니다.
여러분께는 어느 것도 새롭지 않겠죠, 압니다. 설정이, 여기, 이 도입부에서도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니까요.
이제 우리는 여기, 종말에 다다랐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시작의 끝일 수도 있겠죠.
2
암울한 어둠에 휩싸인 머나먼 미래, 오직 전쟁만이 있을 뿐. 우리 모두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은 걸까요?
분명, 워해머 40,000는 우리의 머나먼 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의 두 번째 층이 존재하고, 살아 있는 것의 영혼은 반쯤 지각력을 지닌, 필멸의 것들이 행하고 느끼는 모든 행동과 감정으로 만들어진, 결국에는 그들 자신을 조각내버리는 변덕스런 폭풍에 모두 집어삼켜집니다. 이 설정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말이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약칭합니다. 워프. 카오스 신들. 악마들. 우리가 이것들을 꿈꿀 때 그 장면 뒤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은 ‘근본적으로 망가진 우주’입니다. 이 설정은 전체주의적 압제, 물불 가리지 않고 반이상향적인 폭군, 멸종에 저항하려고 시도했다가 천천히, 냉혹하게 실패하는 수많은 종족들의 형태로 주제라는 두터운 육신을 얻죠. 워프와 그 일면들이 설정의 형이상학적인 내장을 채우는 동안에 말입니다.
이제 확대해봅시다.
제국의 절반은 황제에게 반역했습니다. 그 무대는 다음 1만 년의 영광스러울 정도로 황량한 설정이 되도록 차려졌습니다.
이제 좀 더 확대해봅시다.
테라는 공격받고 있습니다. 함대에 포위되었고, 표면은 불타고 있죠. 이것이 테라 공성전의 종말입니다.
이제 멈춰봅시다. 잠시 이 이미지를 주목합시다. 지구를 봅시다. 타오르고 있네요.
수조 명의 사람들이 수십억의 전쟁 기계들과 함께, 수백만 개의 연대와 세력과 집단을 이루고, 수십만 개의 개별적인 갈등의 극을 선보이며, 궤도와 지표에 있습니다. 서로 갈등하는 이야기들과 수백 명의 인물들은 40년 어치에 달하고, 여기에, 거기에, 모든 곳에 실려 있죠. 몇몇 캐릭터들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몇몇은 미래에 정해질 것이고, 몇몇은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몇몇은 여러분이 생명을 불어넣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여러분 앞에 빈 페이지가 놓여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실 건가요?
3
자신들의 방식으로 권유, 시놉시스, 집필을 다루듯, 작가들마다 부탁받는 과정은 다 다릅니다. 언제나 전 부탁/권유 과정에서 보다 더 우발적인 면으로 향해갔습니다. 신뢰하는 편집자들과 멍청한 행운을 통해서였죠.
테라 공성전 시리즈는 달랐습니다. 전 캐릭터들이 그려갈 호와 향해갈 사선에 관한 생각을 지니고 편집자의 서류함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아니었죠. 편집자는 누가 무엇을 쓸지 결정하길 원했습니다. 아주(라고 쓰고 ‘극도로’라고 읽읍시다) 신경 쓰이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았지만, 전 마지막 호루스 헤러시 회의가 끝난 순간부터 17초마다 제 서류함을 확인했습니다.
그 후, 테라 공성전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공포감이 싹트면서, 우리는 10년 동안의 호루스 헤러시 회의가 연습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보조 바퀴를 떼니, 새로운 맹세의 검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전 이 작품 이전의 여섯 편의 소설에서 후기를 읽었고, 이 소설 다음 작품이 뭐라고 말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일생 동안의 팬심, 테라 공성전을 써달라고 요청받은 영광, 마감까지의 압박, 넣고 빼는 집필 과정 등으로, 하나의 문장이었던 개요들이 이야기들의 실타래로 뒤얽힌 전체 소설들로 진화한 방법으로, 이야기, 로어, 연속성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논의했던 수많은 회의와 많고 많았던 이메일 스레드의 무게감과 격렬함으로 채웠더군요. (오직 공성전 소설들과 관련된 이메일만 세어보았는데, 1000개쯤 세고 지루해서 포기해서 최종 합계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 동안에만 200개가 넘게 있었습니다.)
또한 마지막에 왔다는 침울함 같은 감정적인 요소들로도 채웠더군요. 그리고 그건, 잠깐 아칸 랜드처럼 말해보자면, 놀라울 정도로 심오한 겁니다. 이 일이 끝나면 우리는 결코 다시 이런 꼼꼼하고, 헌신적이고, 단체적이고, 창조적인 팀으로 작업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분들이 이미 그 팀에서 모든 자아가 완전히 사라졌고(말씀드리자면, 작가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든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을 지지했으며, 수백 개의 모순되는 묘사들을 워해머 40,000의 혼돈스런(그리고 어떨 땐 위태로운) 기반으로 향하게끔 기획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즐거웠고 즐거우면서도 숙고하느라 스트레스 받았다는 걸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여러분들도 읽으셨으니 이미 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대목이 많은 독자들이 무대 뒤에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오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여러분의 손에(아니면 태블릿에, 아니면 이어폰에) 들린 이 짐승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이 이 모든 문장들을 눈이나 귀로 힘겹게 집어넣어 끝에 도달해주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전 영원의 메아리에서 실제로 무엇을 쓴 걸까요? 여러분이 읽으신 이 책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렇게 된 걸까요? 왜 이렇게 되었고,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4
모든 소설에는 각자의 맛이 있습니다.
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운이 좋았습니다. 이 작품을 얻었으니까요. 제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처할 정도의 열정을 지니고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다른 작가들 모두의,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들 모두의 어깨 위에 서는 사치를 얻었기 때문이었죠. 전 그들의 책을 읽고 제 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다룬 규모를 보고 제가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 결정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기의 책들은 캐릭터들이 그려온 호를 완결한다는(언제나 독자들을 나래티브적으로 가장 많이 만족시키는 요소지요) 측면뿐만 아니라, 그 행운과 사치를 얻었다는 점에서 진정 감사의 빚을 진 것입니다. 실제로 마무리를 맡은 크리스/저/댄 이 세 명은 그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죠.
하지만 그건 제게 딜레마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전 저 이전의 여섯 권의 책을 읽었고, 그 웅장한 규모와 캐릭터들의 막대한 배역에 이끌렸습니다. 그리고 제 뒤로 공성전#8이 어떤 형태로 다가오고 있는지 알았죠.
여섯 권의 소설에서 우리는 세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쟁을 보았습니다. 수백 명의 캐릭터들이 테라 표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이것을, 저것을, 그 밖의 모든 것을 하는 서사시를 만났죠. 스토리와 규모가 요구하는 대로 확대하고 축소하는(그리고 축소하고 또 축소하는…) 아름다운 전체상의 작품을 꽤 많이 마주했습니다. 그건 위대했지만, 너무 많았습니다. 제가 제 소설에선 톤을 바꾸자고 제안하자, 팀은 전적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전 확대해서 거기 머무르기를 원했습니다. 가능한 한 깊이 잠수해서, 마지막 화염에 휩싸인 한 줌의 사람들의 눈으로 전쟁의 마지막 나날을 보여주기를 시도했죠.
이것은 먼지로 눈 먼, 뒤처진 군대의 지성으로 분투하는, 질 낮은 장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전쟁이 될 것이었습니다. 카오스는 고조되고 있지만, 바깥의 혼란스러운 공포가 테라를 집어삼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으로 아는 이는 없습니다. 누구의 연대도 아직도 완편된 채 모여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지쳐 박살났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내가 전부입니다. 놀랄 것도 없지만, 제 평소 연구 과정에서, 저는 상당량의 역사 전쟁 소설만큼이나 2차 세계대전의 베테랑들과 나누었던 옛 대화들을 제법 많이 참고했습니다. 먼지와 소음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진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전장 한복판에서 더 넓은 전쟁에 대해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것을요.
“적은 캐릭터들로만,” 가장 초기 회의 중 하나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평상시 제가 글로 쓰는 대신 큰소리로 아이디어를 말할 때의 어색한 방법으로요. “벽을 등진 소수의 캐릭터들로만 해야 합니다. 그들의 정체, 그들이 거기로 간 방법도요. 그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 회의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이 훨씬 더 조용해져야 제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얻죠. 그래도 저는 공성전#7이 확실한 길을 가야 할 것 같다고 느끼며 공성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전 몇 주고 계속되는 세계적인 전쟁은 피했습니다. 많아 봤자 며칠 정도였죠. 수많은 배역의 캐릭터들은 없었습니다. 영속자들도요. 호루스의 독백도 제외했습니다. 미래의 워마스터로서 날개를 접고 기다리고 있는 아바돈도요. 거대한 음모에 대한 설명도 넣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런 것을 위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이 얻을 것이지만, 이건 싸우는 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쟁의 끝이었습니다. 카오스에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과 제국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전쟁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과 그들 자신에 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고, 이것은 승리와 패배 끝자락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조금 더 친밀하게 느껴지길, 다른 방식으로 몰입하길 원했습니다.
5
블러드 엔젤과 망령 군단에 관해:
‘블러드 엔젤의 씨앗에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변이의 저주가 새겨져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불결함은 이 가장 고귀한 챕터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은혜, 지성과 드높은 업적으로 가려졌다. 하지만 이 생귀니우스의 아들들의 눈 뒤에서 타오르는 밝은 불꽃은 인간의 피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갈증을 품고 있다. 그렇다, 무거운 시대와 두려움의 시간으로부터 내려오는 이름을, 블러드 엔젤의 행군 속에서 메아리치는 이름을, 다만 속삭이기만 하는 것이 현명할 터이다… 흡혈귀의 이름을.’
―코덱스 임페리알리스, 1993년 발매
블러드 엔젤은 매력적인 과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 붉은 세라마이트는 망령 군단의 오랜 회색을 얇게 덮은 층에 불과하죠.
우리는 종종 블러드 엔젤을 ‘파워 아머를 입은 르네상스’라고 일컫지만, 그들은 아직 거기까지 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식인 문화는 이 시점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귀니우스의 기대와 희망을 충족하는 데에 열정적이죠. 훗날 그들은 더욱 내면에 집중할 것이고, 그들이 지금 표현과 야망 바깥으로 하고 있는 것들을 깊어지는 레드 써스트와 갑자기 나타난 블랙 레이지에 맞서는 보루로서 하기 시작할 겁니다.
대성전 동안, 그들의 예술은 그들이 그들의 인간성과 연결되고자 노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훗날, 그것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이 되죠.
알란 블라이, 닐 와일리, 아누즈 말호트라와 포지 월드는 블러드 엔젤의 게원과 관련해 산더미 같은 작업을 수행했고, 그중 대부분을 영원의 메아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황제와 생귀니우스의 바알포라에서의 첫 만남은 그들의 비전에 기반해 쓸 수 있었던 선물이었습니다. 프라이마크를 만나기 전 피투성이의 IX군단을 탐험한 것처럼요.
어떤 면에서 블러드 엔젤은 정체정을 찾는 군단입니다. 그들은 과잉된 식인이라는 최악의 과거는 극복해냈지만, 그들을 정의할 예정인 상처들을 아직 겪지 않았습니다. 비록 훗날 챕터로서 그들을 정의해줄 시금석은 부족하지만, 그들이 군단으로서의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놓여 있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죠.
아밋과 제폰은 블러드 엔젤이라는 같은 보석의 다른 측면을 상징합니다. 변화하는 단계에 놓인 군단의 다양한 양상을 구체화한 것이죠. 많은 독자 분들이 이 두 인물이 그들이 살아남아 만들 챕터의 테마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셨을 겁니다. 각각, 플레시 테어러와 챠넬 가드죠. 지금은 그들 둘 다 블러드 엔젤이지만, 다른 아스타르테스 전사들처럼 그들의 군단의 문화가 그들을 확실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죠. 아밋은 새로운 블러드 엔젤이 더욱 강하게 억누르며 싸우는 광전사적 면모를 지니고 있고, 그의 천사로서의 재탄생이 과거의 식인을 어떻게 덮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폰은 찬사의 이상향에 더욱 가깝지만, 환경이 더 어두운 그의 혈통의 일면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군단의 올드 가드의 야만적인 핵심에 저항했을 수도 있지만, 천사인 만큼 흡혈귀이기도 합니다.
신이시여, 블러드 엔젤에 대해 쓰려고 했던 건 너무 성급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원해온 일이었고, 매 순간이 너무 사랑스러웠죠.
카'반다에 관해:
하지만 그 과정에 문제가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팀이 연구하고 테라의 지도를 그리면서 무척 혼란스러워했던 순간 중 하나는 영원의 문이 무엇이고 어디 있는지에 대한 9백 개의 보고서가 서로 모순될 때였습니다. 테라의 지리가 보다 더 조잡했을 때 그것은 궁극의 문과 영원의 문이라고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어떤 자료는 지상에 있다고 했고, 다른 것들은 지하에 있다고 했습니다. 몇몇은 생텀 임페리알리스로 가는 문이라고 했고, 일부는 제국의 던전으로 가는 문이라고 했죠. 그것이 황제의 옥좌실로 가는 문자 그대로의 문이라고 언급된 적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회의에서 가끔 나오곤 했습니다. 우리는 테라 공성전 시리즈와 함께 다가온 그 문제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가이드북 같은 디테일을 지닌 테라의 넓은 지도를 그리며, 우리는 결국 가장 타당하고 가장 적은 자료와 모순되는 위치에 배치했습니다. 그 부분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그 다음엔 카'반다가 있었습니다.
공성전#7이 실제로 논의되기도 전, 우리의 가장 초기의 문제 중 하나는, 카'반다로 무엇을 하느냐였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카'반다 없이 무엇을 하느냐였죠. 그 유명한 싸움은 이미 있었던 설정이니까요.
더 오래된 로어에서, 카'반다는 시그누스 프라임에서 생귀니우스를 이기고, 영원의 문에서 다시 만나 생귀니우스가 자신의 복수를 이룹니다. 호루스 헤러시 시리즈는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생귀니우스는 카'반다를 시그누스 프라임에서 두 번 만나고, 처음엔 졌다가 두 번째에는 악마를 패배시킵니다.
팀은 카'반다를 다시 그 역할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뭐, 공식 설정이 공성전이 아니라 호루스 헤러시 초반에 다시 붙는 걸로 바뀌어서 그는 이미 대천사에게 졌으니까요. 다른 작가들이 언제나 원문에 충실하기보다 신화적이고 우화적이라고 여겨졌던 예전 로어들을 하나로 맞추는 것의 어려움을 후기에서 묘사했는데, 이것도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부류입니다.
한편, 그것은 영원의 문이었고, 생귀니우스는 정말로, 정말로 코른의 고위 데몬 프린스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중요해야 했습니다.
“앙그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인정하건대 그건 주제적인 만큼이나 노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기에 토론은 없었고, 묘사해보자면 그저 테이블을 둘러싸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로마의 원로원처럼 동의를 속삭였을 뿐이죠.
앙그론과 월드 이터에 관해:
강대한 자들은 어떻게 몰락하는가. 몰락한 자들은 어떻게 강해지는가.
영원의 메아리는 테라가 카오스로 썩어가며 잠식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만신전은 이곳에서 거의 정점에 이르렀고, 여러분은 황제의 방패가 약해지고, 하늘이 더러워지고, 앙그론이 끝없이 부활하는 것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카오스의 완전한 지배가 가까워졌죠. 하늘을 보면 신들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나쁜 녀석들에겐 좋은 시간입니다, 안 그런가요?
글쎄요…
워해머 판타지 배틀과 워해머 40,000의 첫 등장 이래로, 영광의 길은 뚜렷한 개념이자, 설정(들) 내에서 실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카오스의 손길을 받은 한 캐릭터가 형이상학적-영적으로 경험하는 여정을 묘사한 걸 약칭한 것이었죠. 어떤 이들은 영원히 첫 발만 내디딘 채 결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죽음과 스폰의 반열이 절대다수를 기다리고 있죠. 그들이 알든 모르든 상관은 없습니다. 극소수만이 최종 단계―데몬 프린스의 반열, 불멸!―에 다다르고, 자신들이 이제 반쯤 지각력을 지닌 신의 불가분의 조각이 되었다는 걸 깨달을 뿐입니다.
우주(명심하세요, 근본적으로 망가진.)는 당신의 영혼을 먹어치울 겁니다. 몇몇 사람들은 위대한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그 운명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게임은 부정합니다. 패배하면,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것보다 더욱 강한 패배를 겪죠. 이기면, 다른 방식으로 패배합니다.
정체성은 제가 좋아하는 테마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입니까…?”는 고전 장르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철학에 걸쳐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무대에서, 앙그론은 미친 신의 분노의 화신입니다. 문자 그대로 코른의 일부지요. 그는 과연 얼마나… 그 자신인 걸까요?
신의 변덕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답은 ‘충분히는 절대 아니다’입니다. 그것이 비극이지요.
카르고스는 전쟁이 월드 이터에게 끼친 영향의 한 예시입니다. 대못은 그에게 남은 것을 먹어치우며, 월드 이터의 운명대로 가는 길에서 그를 파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인자르에게서 (누군가는 조작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요…) 안내를 받습니다. 두 군단 간의 유대의 어두운 반향이죠. 칸과 아르겔 탈 간의 우애의 공성전 시간 동안의 메아리이지만, 비뚤어져 있습니다. 시간과 환경에 비뚤어진 거죠.
그리고 로타라…
전 점차 타락해가는 카오스 전함들을 본다는 생각이 좋지만, 한 번 꼬아줘야 했습니다. 바로 갑판에 있는 괴물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떠돌 운명인 유령의 눈을 통해서였죠.
로타라는 검은 옥좌에 묶여 정복자를 지휘하는 괴물이 된 걸까요? 그녀는 그녀 자신의 배에 떠도는 망령의 형태(들)이 된 걸까요? 두 상태로 나뉘어져 둘 다 된 걸까요? 둘 다 아니고, 사실상 죽어서 그녀의 이 괴물 같은 메아리만 남은 걸까요?
전 이런 종류의 질문을 좋아합니다. 특히 네 가지 질문의 답이 모두 “뭐, 맞아요.”일 땐 말이죠.
불칸과 마그누스에 관해:
붉은 마그누스는 로어 극초창기부터 인기가 있었습니다. 마그누스와 사우전드 선은 언제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반역파 군단이었죠. 그건 모두 제국의 잘못이었고, 최소한 독자들과 팬들의 눈에는 그들이 정말로 좋으면서도 나쁜 자식들로 보였겠죠.
그리고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하지만 동시에 거짓입니다. 그게 스토리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워해머 40,000은 설계상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설정을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캐릭터를 믿을 수 있되 옳지는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도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내러티브적으로든 옳은 세력이나 캐릭터를 원한다면, 이건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 설정입니다. 워해머를 작동시키는 것은 누구도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떨 땐 기만당하죠. 그들이 이해한 현실이 그들을 믿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파멸로 향하는 길로 인도할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땐 (제기랄, 거의 항상)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죠. 그건 캐릭터를 정의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항상 옳기만 한 건 지루합니다. 누구도 똑똑한 멍청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팀은 마그누스의 수많은 죄(그레이엄 맥닐이 시기적절하고 장려하게 숙고하신 문제들도 포함입니다. 감사해요, 맥닐.)에 대해 논의했고, 불칸은 그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마그누스를 상대하기 위해 웹웨이로 향합니다.
그들 각자의 진영의 화신들 간의 대립이 모두 그랬듯, 둘 다 어떤 면에는 옳고, 다른 면에서는 잘못되었고, 그들의 시각은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 정당화됩니다. 거의 틀림없이, 둘 다 패배했습니다. 마그누스는 자신의 거대한 망상에 직면했지만, (중요한 ㄱ) 비극이라는 테마에 일치하는 것이지만, 결코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불칸은 제국이 그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를지 모르며 황제의 계획은 언제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증거가 천천히 모이고 있다는 것에 직면했습니다.
눈 먼 자는 자신의 결점을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선한 자는 결함투성이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그들의 관점을 완전히 바꿀 정도였을까요? 아니오, 결코 아닙니다. 불안정한 의심의 여지를 주는 정도였을까요? 오, 맞습니다.
생귀니우스에 관해:
그의 머릿속으로 책 전체를 채우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소설 내내 그의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블라 블라 블라.
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으면 인기작이 됐을 거라는 거,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을 테지만…
…부정행위가 되었을 테지요.
전쟁의 막바지에, 생귀니우스는 그 누구보다도 더 지쳐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계속되는 저항은 우리에게 그토록 강하게 반향을 일으키고 방어자들을 일으켰죠. 그가 불굴의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른 이들처럼 부서지고, 멍들고, 그리고 여전히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필멸자 방어자들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고결함만을 간단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그들을 고무하는 방법이라는 걸요.
저는 역사소설을 꽤 많이 읽는데, 최고의 소설들은 대부분 유명한 인물과 가까이 있는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위대한 자 알렉산더와 아서 왕과 아킬레스와 레오니다스 왕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죠. 그들은 그 위대한 인물들의 존재 곁에 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독자들에게 몰입시킴으로써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 획기적인 순간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증오하고 그들에게 맞서 싸우거나 그들의 편에서 버티는 순간들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보여줍니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눈을 통해, 주목받는 신화의 인물들 뒤에 선 남녀들의 일별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죠.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항상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니까요.
영원의 메아리는 생귀니우스를 그의 문제적인 두 아들의 눈을 통해, 프라이마크들을 싫어할 모든 이유와 권리를 지닌 어뎁투스 메카니쿠스의 대리인들의 눈을 통해, 그를 사실상 숭배하는 군단 노예와 군인들의 눈을 통해, 그의 완벽함을 질투하고 경멸하는 반역자 형제들과 사촌들의 눈을 통해 보여줍니다.
따라서 저는 뜻밖의 사실이나 취약점이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순간을 제외하면 생귀니우스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황제를 만났을 때, 영원의 문을 등졌을 때, 문을 닫을 때 정도만 있었죠.
영원의 메아리는 영원의 문 하나보다 더 많은 것을 다루었고, 이 소설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문이 닫히는 소리였죠.
그것으로 우리가 도달한 곳은…
6
퍼스트 헤러틱. 비트레이어. 인류의 주인. 영원의 메아리.
아우렐리안. 까마귀들의 왕자.
나쁜 여정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호루스 헤러시와 테라 공성전 시리즈를 달려오며 제가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네 편의 장편과 두 편의 중편으로 50만 개 이상의 단어를 인쇄했습니다. 혼란스러웠고, 겸허해졌고, 어려웠고, 놀라웠고, 감정적이었던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최종장에 도달했네요.
아칸 랜드가 “짜증날 정도로 감정적”이라고 여길 만한 상태에 들어가려고 하니, 이제 크레딧을 끝낼 때입니다. 제가 여러분이 즐거워하는 방식으로, 여러분들이 만나고 싶은 캐릭터들로, 제가 들려줄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스토리들로 신화를 잘 덧붙였길 바랍니다.
제가 이 여정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론 뎀스키-보우덴
아일랜드, 티론 주
2021년 10월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