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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 xvi 희생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3.29 10: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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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xvi

희생



솔직히, 생귀니우스의 의아한 침묵을 추궁할 시간도 인내심도 없다. 나는 무표정한 나의 군주에게 몸을 돌린다.


“지금이나이까?”


나는 묻는다. 그리고 그는 그렇노라고 답한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이까? 하.”


나는 한숨을 쉰다. 어리석은 일이다. 마그누스가 더 이상 가능한 선택지가 아님을 알게 된 이래, 나는 이 순간을 준비해 왔다. 내 주군은 확고하게 자신의 확신을 덧붙여 왔다. 그는 내가 능력이 있다 믿었고, 나 역시 그를 믿는다. 그가 황제가 되기 전부터, 내가 그의 인장관이기 전부터 우리의 정신은 긴 시간 동안 기이하게 얽혀 있지 않았던가.


더 여유가 있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내게 주어진 몫 이상을 누렸은즉.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솔직히, 늙고 지친 지금이 아니라 젊음의 무모함 속에서 더 강하고 무적이라 느껴졌던 시절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렇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으리라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에 잠긴 채 거대한 연단을 절뚝이며 오른다. 내 정신을 가다듬고, 유산을 정리한다. 마지막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을 정리한 메모들,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표화한 상징들, 알림과 지침을 필사적으로 내보낸다. 인장화된 메시지들이 벌집에서 쫓겨나 새집을 찾는 벌떼처럼 내 주변을 소용돌이치듯 움직이며 사방으로 날아간다. 엉성하고,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일이다.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혹은 예의 바르게 무언가를 할 시간 따위는 이제 없다. 모든 것이 흡사 바닥짐을 쏟아내는 함선처럼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생각에 깊이도 잠겼기에, 나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신경쓸 수가 없다. 헐떡이는 소리가 들린 순간 잠시 멈춰설 따름이다. 프라이마크가 헐떡이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이 무릎을 꿇고 스스로를 내던진 복종을 표하는 순간에, 놀라움과 두려움에 멈추지 않는 이가 있겠던가.


빛나는 연단 아래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오른 후 다시는 내려올 수 없을 섬세한 계단을 바라본다.


태양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나의 주군이여. 나의 삶의 왕이시여. 나의 벗이여. 나의 인류의 주인이시여.


그가 일어선다. 그가 황금 옥좌에서 일어선다. 결코 신이 아닌 그가, 신과도 같은 형체가 내 위로 일어선다.


그가 일어선다.


그 자체가 작은 기적이다. 긴 시간 동안 일어선 바 없기에 그가 설 수 없을지 두려움이 치밀었다. 그의 몸과 팔에 황금의 빛이 천이 되어 매달리고, 진홍빛 석양과 주홍빛 새벽의 흔적이 줄이어진다. 그를 둘러싼 작은 날씨의 흔적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전율을 일으키고, 등 뒤의 옥좌 팔걸이에서 푸른 얼음처럼 엉긴 성 엘모의 불이 일어난다. 고귀한 머리 뒤로 보름달처럼, 굳건한 별처럼 밝고 하얀 광채의 후광이 드리운다. 얼굴에는 후광 앞에 맺힌 그림자의 일식이 일어나지만, 눈의 광채는 형형하게 빛난다.


대체 얼마나 되는 힘인가! 그의 이런 위엄을 잊고 있었다니! 그가 얼마나 거대한지, 얼마나 천문학적인 잣대로 재야 하는지, 얼마나 경이로운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얼마나-


어떻게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 취할 수 있다 여겼단 말인가? 이 늙고 지친 멍청이가?


절을 해야 한다! 절을 당장 해야겠어! 나를 낮추고, 바닥의 돌에 얼굴을 묻어야 한다. 너무 밝아서 볼 수조차 없다! 나는 소란스럽게, 더듬거리며 서툴게 움직인다. 내 늙은 사지는 너무 뻣뻣해 내 말을 듣지조차 않는다. 나는 비틀거린다-


손들이 나를 잡는다. 단상 아래 계단에 얼굴을 갖다 박기 직전, 넘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경계를 서고 있던 우즈카렐과 카이칼투스가 내가 발을 헛디딘 순간 제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제때 닿은 것은 아니었다. 나를 돕는 손은 로갈과 생귀니우스, 그리고 불칸의 것이다. 그들의 손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콘스탄틴이 그들의 뒤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보인다.


“돕겠습니다.”


생귀니우스다.


“오, 이 노인의 주책을 용서하려무나.”


내가 웅얼거린다.


“진정하십시오.”


이번에는 로갈이다.


“여기 비할 만치 진정한 바가 없도다, 아이야.”


나는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들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불칸이 지팡이를 건넨다. 내 시선이 그들에게 닿는다. 나를 둘러싼 그들의 얼굴에서 걱정이 느껴진다.


나는 그들을 밀어낸다.


“괜찮은즉.”


나는 그들을 안심시킨다.


“내 다리는 너무 낡았구나. 너희도 내 나이가 되어 보려무나. 하?”


생귀니우스가 나를 바라본다. 그가 턱을 앙다문다.


괜찮다 하지 않았더냐.”


내가 고집하고, 발도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프로콘술이 프라이마크들을 지나 내 양옆에 선 채 계단 위로 나를 안내한다. 그들이 나를 지탱해 주기 위해 팔에 손을 뻗는다.


“아, 그만두어라!”


내가 소리친다.


“이 망할 계단 정도는 직접 오를 수 있음인즉.”

“최소한 그대를 호위할 수 있는 영예를 주십시오, 전하.”


우즈카렐이 조용히 말한다.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허락한다. 눈부신 빛을 보여 눈을 찌푸린 채,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서 한 계단씩 힘겹게 오른다. 힘겨운 일이지만, 그 뒤에 이어질 투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위에, 내 삶의 왕께서 기다리고 있다. 옥좌실을 가득 메운 경외심,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무시한 채, 침묵 속에서 서 있을 뿐이다. 모두가 그가 다시 움직이거나 서는 것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으리라. 모두가 그가 일어나기를 갈망했지만, 이제 저들은 그가 일어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두려워한다.


그는 오직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내 심중에 그의 시선이 들어와 박힌다.


계단 중간쯤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멈춰선 나는 내 양옆에 선 그의 충실한 호위병들을 바라본다.


“이 정도면 충분하도다.”


나는 말한다.


“남은 길은 내가 홀로 갈 것인즉.”


그들의 황금 가면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둘 다 헤타이론 동행대의 소속이렸다? 그러하더냐?”


내가 조용히 묻는다.


“그렇다면 너희 중 하나, 혹은 둘 다 최후의 싸움에서 그의 곁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할 것인즉. 이렇게 부탁하노라. 그를 결코 실망시키지 말지니.”

“저희는 실패하도록 훈련받지 않았나이다, 섭정이여.”


카이칼투스가 답한다.


“오, 나도 그건 알고 있노라, 아이들아! 나도 그건 알고 있도다! 너희가 비길 데 없이 고강함을 알고 있느니! 나는 지금 헌신이나 의무,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로다! 내가 하고자 한 말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분을 이곳까지 모실지어다. 알겠더냐? 그의 생명을 지키라는 말인즉슨. 그분을 위해 너희가 하지 못할 바는 전혀 없겠다만, 나를 위해서라도 해 다오. 여기, 여기…”


나는 왼손 검지 끝에 침을 묻혀 카이칼투스의 흉갑 위로 내 인장을 그린다. 그 자국은 만들자마자 사라진다. 한 번 더 침을 발라 이번에는 우즈카렐의 흉갑에 똑같이 한다.


“나는 내 계획에 나의 상징을 남기노라.”


속삭이며 인장을 그려낸다.


“이것이 일어날 일인즉, 나는 내 손으로 거기 확신을 부여했도다. 되돌릴 수 없은즉, 나를 위해 이리 해 다오.”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지팡이를 쥔 채,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겨 오르기 시작한다. 프로콘술들은 내 부탁을 존중해 그들이 선 자리에 머문 채다.


정상에 가까워지고, 빛이 나를 감싼다. 나의 주군이자 주인이 움직인다. 그가 내게로 내려와 손을 내민다. 격려의 의미가 담겼으리라. 그 손, 온 은하를 손에 쥘 수 있는 위대한 권능을 품은 손. 나는 그가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놀랍게도, 그는 그의 정신의 가장 내밀한 곳을 나와 나눈다.


거기서 읽은 신호는 분명하다.


“슬퍼하지 마소서.”


그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욱 큰 고통이 읽힌다. 그는 다시는 나와 말을 할 수 없을 것을, 인류에게 주어질 최선의 운명을 함께 고민하며 생각과 말을 나눌 수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가 옥좌를 내게 처음 보이고 그 기능을 설명하자 내 눈에서 불신이 빛나던 날, 나의 정신도 그와 마찬가지로 옥좌를 다룰 수 있고 그렇게 행한다 하여 즉시 소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저녁,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내가 그를 대신할 순간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던 밤, 우리가 설계하고 내다본 거의 모든 미래의 구성에서 누군가는 이리 행해야 할 것임을 깨달은 날까지, 그의 기억들이 남극의 빛처럼 빛난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언젠가 필요하다면, 일어나야 할 일’로 대수롭지 않게 치워 놓았을 뿐. 그 역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비상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던가. 마그누스라는 이름의 비상 계획이었지.


이제 때가 왔고,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옥좌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미소를 지으며 누구도 들을 수 없을 목소리로 속삭인다.


“슬퍼하지 마소서.”


그리고 나는 자리에 앉을 채비를 갖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세기와 세기에 걸친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해부하고 공유했기에, 더 이상 남은 말이 없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남고, 우리 사이로 지난 모든 것에 대한 무언의 이해가 남으며, 서로에게 진 빚이 남을 뿐이다. 이 행위는 내가 인류와 미래, 그리고 벽 위에 그려졌던 계획에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자 영원히 남을 선물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내가 그를 위해 이것을 행하고 있음을 아노라는 뜻이 전해진다. 나는 알 수 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만국을 위한 행동은, 언제나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된다.


나는 늙은이다. 나는 지친 채다.


나는 황금 옥좌 위에 앉는다.





황금 옥좌에 앉는 인장관.


솔직히 번역하면서 즙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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