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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퍼라이어 - 31화 -

ㅇㅇ(163.152) 2023.07.21 1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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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택은 피버푸그(Feverfugue)라고 불리웠다. 그것은 내가 들은 것이지 본 것은 아니었다. 검은 철문과 그 틈으로 보이는 저택의 정문 그 어디에도 명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제법 큰 규모의 저택이었고, 별관들이 여럿 붙어 있었다. 주 건물은 헤르쿨라 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 빛이 도는 회색의 석재로 지어졌다. 기후로 인해서 끈적끈적한 것들이 피어난 것 처럼 석재는 축축해 보였다. 혹은 천연적으로 뱀의 가죽 같은 광택이 나는 재질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붕에는 낮게 박공이 달려 있었고 마치 거대한 파충류의 비늘 처럼 생긴 검은색의 기와로 덮여 있었다. 그것은 유지 보수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이끼가 지붕 곳곳에 끼어 있었고, 지붕의 빗물 배수로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창문에는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으며, 칙칙한 창틀은 슾의 공기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 사방으로 잔디밭에는 잡초 투성이었고, 나무들은 시커멓게 자라나서 태양을 가리고 있었으며, 저택의 측면을 반쯤 가리고 있어서 마치 조용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부채처럼 늘어서 있었다. 피버푸그는 옛 숲을 밀어내고 지어졌지만, 숲은 이미 그곳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타고 온 마차의 작은 불빛을 늦은 저녁의 어둠이 안개처럼 감싸고 있을 무렵, 이곳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셰드레이크는 콰토르제를 “그들”이라고 불렀고 “가문”이라던지 “후원자들” 이라고 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 말한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오래된 고귀한 혈통 만큼이나 오래 전에 “그들”이었고, 지금 “그들”은 가문의 마지막 후예인 앨레이스 콰토르제(Alace Quatorze) 단 한명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하인들과 서비터들이 있었으며, 피버푸그의 저택을 꾸려나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독신이었다. 그녀는 한때 아름다웠고, 여전히 기품있었지만, 지금은 매우 늙어있었다. 연명 시술이 그녀를 오래 살게 해 주었다. 그녀는 마치 값을 매길 수 없는 골동품과 같은 존재였다. 완벽한 상태였지만, 매우 귀하고 연약했다.


그녀의 하인들은 모두 뱀의 가죽과도 같은 저택의 석재와 비슷한 푸르스름한 회색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를 마차에서 데리고 나와서 많은 양초들과 샹들리에로 밝혀진 복도로 안내했다. 비록 해질녘임에도 불구하고 슾지의 빛은 제법 분위기가 있었으나, 어둠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모든 것들이 그 일대에 넘쳐나는 물기로 인해서 씻겨져 나가거나 희석된 것 처럼 보였다.


하인들은 시무룩하고 말이 없었다. 우리에겐 따로 짐이 없었다. 우리는 거실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작고 볼품없는 난로불이 크고 화려한 벽난로 안에서 마지못한 듯 타오르고 있었다. 더 많은 촛불들이 우리 위에 켜져 있었다. 주디카는 안락의자로 부축되었고, 셰드레이크가 지시하자 하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러 자리를 비웠다.


비록 크고 화려했으나, 방 안에는 퀘퀘한 콜타르 같은 냄새가 났다. 우리가 지나온 복도와 마찬가지로, 이 장소 역시 우아하게 몰락해 가고 있었다. 카펫과 깔개들은 빛이 바랬고 해어져 있었다. 한때 윤기가 났던 마룻바닥에는 물때 자국이 나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창백한 석고칠 아래로 검은 얼룩들이 마치 수면 아래 어슬렁 거리는 물고기들의 무리처럼 곳곳에 슬어 있었다. 모든 가구들은, 비록 고급품들이었지만, 낡고 닳아있었고, 모든 접합 부위가 새로 접착해서 때려박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는 주디카를 걱정했다. 그의 기침은 악화되고 있었으며, 회복되는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반복되는 기침 속에서 들리는 무언가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비서>의 목에서 나던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기묘했다. <비서>의 기침은 헛기침이었다. 주디카의 기침은 부상이나 병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는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는 아무래도 그의 흉부에서 신호처럼 발생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트번은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루크레아는 소파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셰드레이크는 그의 마지막 술병을 다 비우고는 새로 마실 것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쓸모없는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하인들은 한동안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는 문으로 다가가서 복도를 들여다 보았다. 블랙워즈와 국교회와, 그 밖에 누구든 간에 나를 사로잡으려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실은 반가웠지만, 이 별장은 웬지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


루크레아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비비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먹을거 아직 안왔어 파드?” 그녀가 물었다.

“아니.” 나는 답했다. “여기에 예전에 온 적 있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셰드레이크만이 여기 와 본적이 있어” 그녀가 답했다. “이건 우리에겐 영광인 셈이지”

“콰토르제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말했다. “퀸마브에 사는 모든 귀족 가문들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파두아!” 그녀는 웃으며 외쳤다. “어떻게 그걸 다 알수가 있니? 그들 모두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해!”

나는 나 자신을 정정했다. 나의 부주의였다.

“내 말은” 나는 말했다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가문이라는 소리야. 셰드레이크한테서 들어본 적도 없고.”

“그 양반 그들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루크레아가 답했다. “그들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그의 눈을”

혹은 그의 돋보기가 그의 눈에 보여주는 것들이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치만 그의 작품들을 걸어놓을 정도로 그를 고평가 하진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들을 전시할 특별한 공간까지 마련했대.”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셰드레이크한테서 들었어”

나는 가문의 문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 문장은 복도에 늘어선 석고로 본뜬 방패 장식과 제소(gesso)로 만들어진 의전용 기둥(heraldic stemme)에도 새겨져 있었다.

 “이 문장은 잘 모르겠는데” 나는 말했다. “도시에 있는 여타 다른 가문들의 문장과 비슷한 부분이 없는 것 같네. 보통 다른 가문의 문장의 일부가 함께 그려져 있어서 가문들이 혼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말이야.”

그녀는 코를 킁킁거리더니 근처에 그려진 문장을 살펴보았다.


“난 잘 모르겠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마치 막 생각이 났다는 듯 덧붙였다. “하지만 위에 새로 그린 것 같긴 하네.”


“이 문장이?”


“여기 있는 모든거. 여기 덧칠해진 파란색과 빨간색의 색상과 채도를 보면 알 수 있지. 상당히 오래 전에, 아마 몇년도 더 된 예전에 칠해진 것 같네. 하지만 문장 그림 자체는 여기 있는 다른 장식들보단 최근에 그려진 거야.”


“누군가가 문장을 새로 다시 그렸다고?” 나는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그녀는 씨익 웃었다. 물론 그녀는 확실했다. 그녀는 라이칸스 거리의 공동체에 있는 물감 작업소에서 수년간 보내왔었다. 그것은 그녀가 배우고 일하던 것들 중 하나였다. 그녀에 손에 묻어있는 물감의 얼룩들이 그녀의 지식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물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들이 배합되고, 어떻게 그것들이 건조되며, 어떻게 그것들이 닳고 노화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루크레아는 낡은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 몸을 따뜻하게 녹였다. 라이트번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 곳에서 매우 안좋은 느낌이 난다. 내 생각에는 동이 트자 마자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셰드레이크는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리고 주디카를 데리고 갈 방법을 찾아야 하구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여전히 나를 안전하게 모돈트 여사에게로, 그녀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데려가야 할 의무가 있었고, 비록 계획이 매우 심하게 비틀리긴 했지만, 그는 그것을 완수할 결의로 차 있었다.

하인들이 갑자기 은쟁반에 올려진 음식과 음료를 들고 돌아왔다. 그들과 함께 앨레이스 콰토르제가 나타났다.

그것이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키의 여성으로, 날씬한 체격을 갖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녀는 키가 커 보였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그녀의 매우 오래된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도 검었으며, 마치 소년과도 같이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녀는 매우 늙었지만, 창백한 피부 위로는 주름 한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크고 검었으며, 마치 고양이의 눈과도 같았다. 내가 언급했던 대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그것은 평범하게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별 처럼 아름다웠고, 마치 카르노돈(carnodon, 사자와 검치호를 섞은 것 처럼 생긴 거대한 맹수) 처럼,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깊은 바다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는 길고 쭉 늘어진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마치 어떤 큰 모임의 연회장에 가려던 도중에 급히 우리를 만나러 온 것 처럼 보였다.

“콘스탄트”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숲속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았다.

“내 친애하는 벗이여”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부하듯 그가 대답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오셨구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허락하신 대로지요” 그가 답했다. “제가 설명한 것 처럼, 중간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도움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마차를 빌릴 수 있게 해 준것과, 우리를 이 저택으로 초청해 준 것들이--”

“피버푸그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많이 없다오” 그녀가 말했다. “이곳의 기후는 많은 이들에겐 좋지 않기 때문이오. 아주 음울하다고들 하지. 하지만 이 곳은 숨어 지내기엔 좋은 곳이라오. 저 하수지 너머 있는 이 곳은 말이오.”

그녀는 셰드레이크의 그림자 뒤에 서서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는 루크레아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바로 그 아이요?” 앨레이스 콰토르제가 물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셰드레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나를 가리켰다. “이 쪽이 그녀입니다. 파두아지요”


앨레이스 콰토르제는 고개를 돌려 나를 그녀의 비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러하겠지.” 그녀가 말했다. “진작 눈치 챘어야 했었는데. 아주 아름답구나. 안녕, 파두아.”


“마님”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콘스탄트가 내게 너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알 것 같구나. 그는 네가 그의 작품에 가장 뛰어나고 영감을 가져다 주는 모델이라고 칭찬했단다. 그에겐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가장 뛰어난 모델만이 그의 손과 눈에서 최고의 결과를 이끌 것이야”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몰랐다.


“그가 말하길 너는 퍼라이어라고 하더구나.” 그녀가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올리며 나를 진정시켰다.

“자, 자, 놀랄 필요는 없단다.” 그녀가 말했다. “비밀인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셰드레이크는 그런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갖고 있지.”

“눈이 아니라 돋보기입니다” 나는 말했다.

“돋보기가 맞다.” 앨레이스 콰토르제가 말했다. “내가 수년 전에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가 예술가로 고군분투 하고 있을 때,  오직 나만이 그의 가능성을 봤을 때 건네 준 것이지.”

“혹시 그 돋보기를 통해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물어보았다. 아마도 비꼬는 말투였다. 그녀는 마치 그것이 충분히 할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듯 웃었다.

“그랬다! 나도 보았지.” 그녀가 시인했다. “나는 그것을 통해서 그를 보았다. 그래서 그가 나보다 그것을 더 유용하게 쓸 것임을 알게 된 것이지. 그 이후로 그는 나를 위한 그림들을 그려 주었다. 내가 커미션한 그림들을 여러개 소장하고 있단다. 너도 한번 봐야 할 거야.”

“저도 보고 싶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네 상태로는” 그녀가 다시 진지해지며 말했다. “너는 지금 리미터가 걸려 있느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팔찌더냐? 목걸이? 아니면 임플랜트냐?”

“수갑입니다” 나는 답했다. 머뭇거리면서 나는 손목을 들어올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저희 동류에 대해서” 나는 말했다.

“나는 공부를 한 적이 있었지” 그녀가 말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비록 아마추어의 호기심이었지만, 그래도 난 언제나 한명 만나보고 싶었다.”

“저의···동류들에 대한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을 거에요.” 나는 말했다. “공개된 자료들은 말이죠. 대부분의 경우 접근이 금지되었거나 제한된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저와 같은 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희귀한 것들 중에서 가장 희귀한 것들인 셈이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두 명이나 있다니.”

나는 또다시 그녀의 통찰력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구석의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주디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수갑을 봤단다. 너희 둘은 친구로구나. 아마 둘이 같은 학교 출신이더냐?”

“학교라니요?” 나는 반복했다.

앨레이스 콰토르제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학교를 잘 알고 있단다 파두아. 그리고 파두아가 너의 본명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 나는 지독한 미궁에 대해서도 알고 있단다, 아이야, 그리고 며칠 전 밤에 벌어진 끔찍한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가장 귀중한 영혼들을 위한 비밀 학교로 오랜 세월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 곳에 계셨었나요?” 나는 물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다” 그녀가 답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곳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도시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걸 내 직업으로 삼는단다. 그것은 내가 쓰려고 했던 자원이었고, 그것을 쓸 기회는 없었지. 이제 그것은 진정한 인류의 잔혹한 적들에 의해 사라졌지.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그 곳의 길 잃은 영혼 둘을 구하게 된 것이지.”

“그리고 구해주신 것에 대한 답례로 무엇을 원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필요없단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아니면 아주 사소한 것 뿐이야. 나는 네 아픈 친구를 낫도록 도와주고 싶구나. 그는 싸이코매직(psychomagic)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단다.”

“그걸 아시나요?”

“그것의 효과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단다. 그리고 콘스탄트가 네 그림을 그려주길 바란다.”


“절 그려요?”


“그래, 여기서, 이 피버푸그에서. 화구들은 이미 준비해 두었단다. 난 그가 날 위해서 너를 그리길 원한다. 너의 리미터가 꺼진 상태에서 말이야.”


“어째서죠?”


“왜냐하면 그렇게 유일한 작품을 소장하는걸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외에는요?” 나는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외에는 필요없단다. 아무것도. 나는 그 외에 다른 것도 네게서 요구하지 않겠다. 만일 네가 네 본명을 말해준다면 정말 영광이겠지만, 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난 네가 잠시 동안 리미터를 꺼주길 바라지만, 네가 그러던지 말지는 순전히 너에게 달렸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크고 비범한 눈에는 친절함과 솔직함 이외에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거기에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 거죠?” 나는 질문했다.


“누구를 위해서 일하다니?”


“누구를 대변하고 계신 거지요?”


“아무도 아니야. 오직 내 가문 뿐이다.”


“댁의 가문은 이름을 바꾸고 문장을 바꾸지 않았나요?” 나는 질문했다. “예전부터 콰토르제라고 불리우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래. 나는 훨씬 오래된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란다. 내 가문은 타 행성에서 온 가문이고, 역사와 얿힌 가문이지. 그래서 예전에 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단다. 골칫거리가 우리를...따라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지.”


“우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마님 한분 뿐이지 않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지막이다.”


“마님을 위해 수갑을 끄겠어요.” 나는 말했다. “제게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신다면 말이죠.”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미소를 짓고는 내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보이지 않는구나.”


나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말 없이 내 수갑을 비활성화 시켰다. 주디카는 반응이 없었다. 셰드레이크와 라이트번은 불안한 듯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루크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파두아!!” 그녀가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나는 그녀의 공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었다.


앨레이스 콰토르제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서 물러서지 않았다.


“얼마나 감미로운지.”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모든 것들이 잠잠해 진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더냐”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내 수갑을 다시 작동시켰다. 그녀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고맙구나”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당신 차례에요” 내가 답했다.


“좋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누구인 것 같으냐, 파두아야? 너가 짐작한 것이 있는것 같은데, 그것이 옳은지 한번 보고 싶구나.”


“혹시 당신의 가문의 진짜 이름은·····체이스인가요?” 나는 물었다. “당신은 혹시 릴레안 체이스(Lilean Chase)인가요?”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오, 아니야!” 그녀는 웃었다. “난 그녀가 아니란다. 넌 잘못 생각했구나.”


“그럼 누구신가요?”


그녀는 웃으면서 내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가문의 이름은 글로우(Glaw)란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실망했다. 그 이름 역시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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