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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마침내 다시 가보는 수학여행 [2/3]

자드가자(58.234) 2022.04.04 20:42:37
조회 312 추천 3 댓글 0
														

······


아침식사를 모두 마치고 난 뒤ㅡ.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 학생들은 숙소에서 1시간 정도 여유로이 쉰 뒤, 바다로 놀러나와

모두 저마다의 자유 시간을 만끽했다.


글렌의 2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한껏 들뜬 기분으로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뛰쳐나왔다.


"······으음. 이걸 위해서 바다에 온 거란 말이지~."


선글라스에 천청색 수영복을 입은 채 칠칠치 못한 한 남자가 야자수 나무에 걸터앉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ㅡ글렌 담당의 2반 여학생들이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그리며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선지 2반에는 유독 여학생들 중 미소녀들의 비중이 많았다.


곱게 자란 화초 속의 귀족 아가씨 웬디. 청초한 차림의 청순가련 미소녀 테레사 등을

비롯하여 그 외에도 여러 미소녀들이 속해있는 것이 이 곳 2반이었다. 다른 반과

비교하려 해도 오히려 초라해보일 정도였다.


"······아아, 더 이상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오늘 아침 소동의 중심 카슈가 헤벌쭉한 표정을 지은 채 파라솔에서 누워 있었다.


"확실히······ 이, 이건. 천국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겠어······."


"······우리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던 거야······."


저마다 감회에 찬 카슈와 로드도 여학생들에 대한 자신들만의 감상을 평했다.


"흥, 역시 한심하군."


파라솔 밑 해변 의자에서 편하게 누워있는 자세로 한 손을 머리 뒤에 벤 채 마술서를

읽고 있는 기블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역시 루미아지?"


"아니, 오히려 내 생각엔 테레사 쪽이 더······."


그리고 도저히 알 수 없는 대화 주제로 2반의 남학생들이 열띤 즉석 토론을 개최했다.


"훗. 저 녀석들······ 역시 제대로 즐기고 있는 모양이구만."


글렌이 남학생들을 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변변찮은 말투로 말했다.


"앗, 선생님! 이런 곳에 계셨네요."


"얘, 루미아. 같이 가야지."


두 미소녀가 비키니로 갈아입고 글렌 쪽으로 터벅터벅 뛰어왔다.


시스티나는 저번이랑 같은 장미 무늬이지만 색만 연분홍색으로 살짝 다른 튜브탑

비키니······ 왠지 모를 우아함과 기품이 넘쳐났다.


루미아는 몸의 곡선을 확실히 살려주는 모노키니였다. 가운데 두 개의 풍만한 봉우리가

무언가 알게 모르게 아찔함을 선사했다.


"······오옷?! 역시 난 더 살아갈 보람이 있겠어······!"


그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불타올랐다.


"역시······ 선생님은 변태가 맞으신 것 같네요."


시스티나가 그런 글렌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아하하."


루미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푸른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러고 보니 리엘은 어디 갔냐? 틀림없이 너희들이랑 같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만."


"아. 리엘은 수영복 때문에 아직 시간이 더 걸린다면서 좀 더 있다가 온다고······"


"흐응. 뭐, 상관없나. 곧 따라오겠지."



······



'이번 기회에 선생님께 나를 제대로 어필해야겠어. ······선생님이 나를 제대로 한 명의

여자로 봐주실 수 있도록.'


루미아가 속으로 그렇게 굳은 결의를 다졌다.



"선생님."


"왜?"


파라솔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던 글렌에게 루미아가 말을 걸었다.


"저······ 오일 좀 발라주시면······ 안 될까요?"


루미아가 글렌에게 애원하는 눈길을 보냈다.


"······으윽?!"


시스티나는 마치 자신이 그 말을 직접 들은 것인 양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확실히 '모든 학생들은 《에어 컨디셔닝》을 의무적으로 사용 후에 활동할 수 있다' 라는 항목이 규칙에 게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마술은 명백히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하여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일 뿐.


ㅡ피부 같은 겉보기엔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에선 관리가 더욱 필요했다.


여학생들도 저마다 한 명씩 선크림을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


글렌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강렬한 충격에 휩싸였다.


'크윽, 확실히 해변의 메인 이벤트는 그것일 테지. 하지만······'


······여기서 더 정해진 일선을 넘었다간, 틀림없이 자신들의 관계를 의심받으리라.


'그래도······ 나는 교사야. 교사가 학생 상대로 이런 짓을 해선······.'


낮은 자존감 덕에 위험한 생각이 도를 넘어버릴 얄팍한 생각마저 하고 말았다.


글렌이 속마음으로 그렇게 또 다른 자아와 싸우고 있을 때ㅡ.


"후훗. 선생님. ······지금 교사와 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 거죠?"


마치 그런 글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루미아가 물었다.


"······그래도. 저는,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한 명의

남자와 여자이니까요."


루미아가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


글렌이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 뭣?! 루, 루미아. 너?!"


시스티나도 당황한 듯 마찬가지로 동요한 채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도 이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이윽고 파라솔 아래에 등을 위로 한 채 엎드렸다.


"자, 선생님······? ······부디."


"그, 그럼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후우. 어쩔 수 없구만······. 영광으로 알아라."


"후훗, 예. 감사드려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한 글렌이 손바닥에 오일을 쭉 짜냈다.


"······읏. 나만······."


그리고 그 광경을 왠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진 은발의 소녀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지켜보았다.


불편해진 이유가 꼭 그런 이유인 것만도 아니었지만······ 루미아 본인이 하고 싶다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



"······이, 이 정도 양이면 될까나."


"예. 충분해요. ······이제 등에 부드럽게 펴 발라주시면 돼요."


그리고 루미아가 수영복의 끈을 살짝 당겨 풀었다.


아마 루미아 본인은 자각 못하겠지만 얼굴이 마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새빨개졌다. 물론 심장이 요란하게 고동치는 극도의 부끄러움은 덤으로 말이다.


"자, 그럼 시작한다······?"


글렌이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한 채 손에 오일을 펴 발랐다.


그리고 그 크고 거친 손이 루미아의 부드러운 감촉을 가진 등에 닿았다.


"으읏?! 선생님······ 살살 좀······."


"······루미아?! 저기,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은 삼가줬으면 좋겠는데."


당황한 글렌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도 2반 학생들은 파라솔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바다 근처에서 놀았다.


아마 자기들끼리 팀을 짠 후에 비치발리볼을 하는 모양이다.


글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마음 속에는 한 켠의 작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잠깐. 그런데 왜 이 두 명한테는 같이 하자고 권유하지 않는 거지······?"



다시 그가 자세히 보니, 남학생들이 하나둘씩 눈을 치켜뜬 채, 매의 눈처럼 이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 여학생들은 무언가 감동에 찬 소녀 같은 눈길로 저 좋은 분위기를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모두가 납득한 분위기가 주위에 멤돌았다.


'아앗?! 네 녀석들······! 벌써 날 그렇게 취급하는 거냐?! 아니, 그보다······ 교사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냐아아아아아아!'


글렌이 자신의 속마음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루미아가 말을 꺼냈다.


"후훗. 주변 시선은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선생님. 전 오히려······"


"응? 뭐라고?"


"앗!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그럼 선생님······ 부디 마저 해주세요."


'후······ 침착하자. 이 애는 내 학생이야. 애당초 교사가 이런 일로 안절부절하면······

학생들이 그 교사의 뭘 믿고 따르겠어?'


그렇게 속으로 자조하듯 글렌이 그 자신을 타일렀다.


"······그럼 다시 시작한다."


"······예. 잘 부탁드려요."


이후 뭔가 둘 사이에 파라솔의 밑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와야 할 부위는 적당히 솟아올라있었고 들어갈 부위는 적당히 움푹 패여있어서

말 그대로 몸매 자체가 마치 하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피부의 부드러운 감촉. 보드라운 아기 피부를 연상케 했다.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금방 무너져버릴 듯한 새하얀 피부.


촉촉한 오일을 손바닥으로 계속 펴바를 때마다 글렌의 머릿속이 점점 아득해졌다.


그도 건장한 성인 남자였다. 이런 일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루미아, 지금 괜찮아? 불편하면 바로 말해줘."


"아, 아뇨······ 지금이 좋아요."


애써 마음을 억누르고 동요하지 않은 채 등의 뒷부분을 골고루 발라나갔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ㅡ.


계속된 불편한 침묵 속에 드디어 루미아의 등에 오일을 다 펴 바른 글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잘 버텼다. 나 자신······'


겨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글렌이 스스로를 위로하듯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음?"


그가 자세히 보니 루미아는 이미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새근새근새근······."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하여간······ 마지막까지 귀찮게 한다니까."


글렌은 그런 루미아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입고 있는 겉옷을 조심스레 깨지 않도록 덮어주었다.



ㅡ루미아의 의식이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을 때······


누군가의 자신을 자상하게 돌봐주는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자라, 루미아.'


마치 정다운 사람을 그리는 친숙한 목소리.


어째선지 그 목소리가 소중한 누군가의 목소리와 겹쳐보이기도 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곤히 잠든 루미아는 알 수 없었다.



······



ㅡ터벅터벅터벅.


ㅡ흔들흔들흔들.


모래사장 위에서 천진난만한 자세로 자는 글렌을 누군가 걸어오더니 흔들어 깨웠다.


"으음······? 대체 누구야? 감히 이 글렌 레이더스 대선생님의 낮잠을 방해하는 게······."


자고 일어나서 짜증이 확 난 표정으로 눈을 반쯤 뜬 글렌이 주위를 탐색했다.


그러자 그 곳에는 과감한 형태의 비키니를 입은 리엘이 졸린 눈으로 서 있었다.


"글렌. 나 수영복 힘내서 입어봤어. ······어울려?"


"······으음. 글쎄다."


글렌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자,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은발의 미소녀시스티나 피벨이 터벅터벅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서, 선생님! 저, 저도 선크림을 발라······ 리엘?! 아니 그, 저기······ 이, 이건!"


글렌이 혼자 있는 줄 안 그녀가 리엘의 모습을 보자 평정심을 잃고 허둥지둥 당황했다.


"시스티나······ 이거 나한테 잘 어울려······?"


"······응? 이 수영복 말이니?"


"응. 나 글렌이랑 루미아, 시스티나에게 보여주려고······ 입고 와 봤어."


아주 뚫어져라 봐야 겨우 알 정도로 희미하게 리엘의 볼이 상기됐다.


"응, 뭐. 귀엽네······ 잘 어울려."


글렌이 시선을 회피하더니 곧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응, 고마워. 글렌."


그러자 기쁜 듯이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것이

시스티나의 눈에 아주 잠깐이지만 간신히 보였다.


"응? 루미아? 아까 분명히 선생님이······"


"아아, 이 녀석······. 글쎄, 자기가 발라달라고 해 놓고 다 끝나니 자고 있지 뭐냐.

나 원 참······."


"으음. ······나도 루미아 옆에서 같이 잘래."


파란 머리를 가진 작은 체구의 소녀가 그렇게 말하고 루미아의 옆으로 가서 새우잠

자세로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새근새근 잠자기 시작했다.



······



"······선생님."


잠시 뜸들이듯 시스티나가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응? 하얀 고양이······?"


"그게 말이죠. ······혹시 선크림을 제 등에 좀······"


"······뭐?!"


그리고 시스티나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진 글렌이 그 자리에서 굳었다.


"저, 정말 다른 목적은 없으니까요! 다, 단지 등에 손이 안 닿아서······ 부탁할 사람이

선생님 밖에 없으니까요!"


굳이 묻지 않은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 그녀의 얼굴이 타오를 듯 달아올랐다.


"그래서, 선생······"


"하얀 고양이······ 다른 사람에게 알아봐라."



쌔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더 이상 엮이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한 글렌이 줄행랑을 쳤다.


솔직히 말하면 루미아 하나만으로도 이미 벅찼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손을 댔다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무너질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앗?! 사람이 일부러 부탁하는데······! 서, 선생님?!"


시스티나 또한 넋이 나간 것처럼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



"하아······. 하아······."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도망친 후 글렌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얀 고양이 녀석, 정말로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저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미운 거지?!"


뭔가 다른 방향으로 오해를 한 듯한 글렌이 반댓편 해안가에서 투덜거렸다.



숙소 아랫쪽에 위치한 해안가는 C자 모양인 굽은 형태의 구조였다.


2학년 숙소의 바로 옆에 1학년 숙소가, 건너편에는 3학년 숙소가 위치했다.


따라서 해안가도 공유하지 않고 2학년과 3학년 모두 각각 반대 방향의 해안가를

사용했다.


2학년과 1학년은 같은 해안가를 공용으로 쓰긴 했지만, 시간대를 조율해서 각기

다른 시간에 썼기에 겹치는 경우는 없었다.


아마도 글렌이 지금 있는 곳은 3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는 해변일 것이다.



"······."


아무 말 없이 글렌이 선명한 파란색을 띠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분명 이 곳에는 오랜 시간 여러 일에 치여서 그 동안 삶의 여유가 없었던 자신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었다.


넓디넓은 바다가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났다.


그 풍경을 보자 서로 처음 만난 「그 날」이 떠오른다.



처음 글렌의 눈에는 그저 마술의 위험성을 모르는 2반의 학생들이 어리석고 멍청하게만

보였다.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대량 학살용 무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것들의 무시무시함을 여러 사투와 고전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느꼈을

그들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결코 마술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마술이 그 난제를 내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머리를 감쌌다.


ㅡ일개의 삼류 마술사인 데다 기회주의자 행세를 하는 자신과는 너무도 달랐다.


아마 자신은 은연 중에 질투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반 학생들을······



그런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의 근처로 다가왔다.


"글렌 선생님."


"······응?"


곰곰히 생각에 잠겨 수면 중에 떠 있던 의식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아아, 여우. 너였냐."


"후훗, 여전하시네요. 선생님은."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에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아우라.


그것들이 모두 그녀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케 했다.


ㅡ학생 회장, 리제 필마였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죠?"


"뭐어, 그냥. ······오늘 점심은 뭘 먹어야 할지 떠올린 것 뿐이야."


"흐응~ 이미 선생님 얼굴에는 그렇지 않다고 적혀 있지만요."


"······윽. 난 이래서 네가 싫어, 여우."


정곡을 찔린 글렌이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저는 그런 선생님이 좋지만요~."


마치 암여우처럼 그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요사스럽게 웃었다.


놀리듯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동요한 글렌은 마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저는 이래봬도······ 선생님을 꽤 존경하고 있답니다."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인데? 내 어떤 점이 좋은 거지?"


"그런 변변찮은 사람 됨됨이에 감동했달까요? 제가 여태 봐온 사람 중 선생님이

가장 특별할지도요."


"······역시 기대한 내 잘못이지."


"그래도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다는 행위는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닐

거예요. 저는 그런 선생님의 용기 있는 점에도 감동했어요."


"관둬. 어차피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아뇨. 이것만은 진심이예요, 선생님."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글렌도 더 이상 반문할 수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입을 계속 다문 채로 맞은 편에 있는 등대를 동시에 응시했다.


""······.""


둘 사이의 긴 침묵이 흘렀다.


분명 밝은 낮인데도 분위기가 어색해서 두 사람의 주변이 우중충하게 느껴졌다.


"저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와서 생각에 잠기곤 하거든요."


그러자 침묵을 깨고 리제의 입에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냐."


"뭐, 오늘은 풍경을 감상하시는 선생님의 옆모습을 보러 온 거지만요."


"······어른을 놀리면 못 쓴다."


정말 악녀 같은 그 모습에 글렌은 어찌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


"뭐야? 여우."


"저번 일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리제가 글렌에게 감사 표시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뭘. 나도 할 일이 없으니까······ 도와준 것 뿐이야. 착각은 하지 말아줄래?"


글렌이 토라진 듯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


그러더니 갑자기 말 없이 글렌의 옆으로 다가와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너, 너······ 이게 무슨?!"


당황한 글렌이 아연실색하자ㅡ.


"······잠시만 이러고 있어도 될까요?"


"뭐······ 맘대로 해라."


"후훗. 고마워요, 선생님."


그리고 두 사람은 말 없이 머나먼 바다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ㅡ······2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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