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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이브의 비밀

자드가자(58.234) 2022.04.03 21:15:45
조회 948 추천 8 댓글 6
														

한 휴일의 평화로운 오후.


터벅. 터벅. 터벅.


지옥의 업화처럼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선명한 선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 여유롭게 길을 걷고 있다.


어째서인지 그녀가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최근에 이브 디스트레로 성을 개명한 이브였다.


가벼운 발을 옮겨서 걸음이 마침내 멈춰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인형 가게였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응? 이브?"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렌 레이더스라는 이름을 가진 마술학원의 의욕제로 강사가

이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본인이 이 사실을 절대 알 리 없었다.


"······저 녀석, 요즘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글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이브를 관찰하며 말했다.


도저히 평소의 그녀라고 볼 수 없는 수상한 언동이었다.


"······!"


글렌이 자세히 보니 이브가 들어간 가게 간판에는 '헤븐 돌'이라는 가게명이 적혀있었다.


아마 틀림없이 인형을 파는 곳이리라.


"이거, 왠지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걸······?"


글렌의 뺨이 씰룩거리더니 이윽고 표정에 악마의 미소가 도사렸다.


"그럼. 할 일도 마땅히 없으니 기다려보기로 할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브는 가게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브 녀석, 대체 가게 안에서 뭘 하는 거지······?"


인형을 갖고 나올 것은 틀림없을 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녀가 손에 소녀 취향의 귀염뽀짝한 인형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푸흐흐흐흡······!"


나무 뒤에서 지켜보던 글렌은 그렇고 그런 취향의 이브를 보고 무심코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



아차.



하필이면 화들짝 놀란 이브가 글렌의 웃음소리가 귀에 닿았는지 그와 눈이 마주쳤다.


"······."


이윽고 침묵하더니, 글렌에게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글렌 당신. 방금 내 모습, ······봤지?"


"아니~? 난 이브 네가 귀여운 인형을 사서 들고 나왔다는 건 눈곱만큼도······."


"응, 본 거구나."


잠시 뒤, 그녀의 양손에서


"······이렇게 된 이상 당신을 없애는 수 밖에."


"응? 방금 뭐라고······?"


쿠콰과과아아아아앙!


이브의 고유 기술 《제7원》의 수많은 불기둥과 파도가 글렌을 무서운 기세로 덮쳐왔다.


"잠깐, 이, 이브! 진정하고 대화부터······"


"내 비밀을 본 이상 순순히 살려보낼 순 없어. 그러니 당신은 얌전히 여기서 죽어야 해."


적의와 살의에 가득 찬 이브의 눈에 이미 사리분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도저히 대화로는 풀리지 않을 상대였다는 걸 망각한 글렌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지옥의 불길을 겨우 피했다.


길거리의 아스팔트가 곧 순식간에 엄청난 불길로 휩싸였다.


"······쳇. 이렇게 되면······ 《삼계의 섭리·천칭의 법칙·율법의 접시는 좌현으로 기울지어다》"


중력 조작 마술 《그래비티 컨트롤》.


중력을 줄인 글렌의 몸이 곧 가벼워지더니 지붕 쪽으로 붕 날아올랐다.


"거기 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


뒤에서 수많은 살인 불꽃으로 무장한 이브가 글렌을 철저히 죽일 기세로

쫒아왔기 때문에 글렌은 그저 살기 위해 지붕 위를 뛰어다녀야만 했다.



"헉, 헉······."


······한 건물의 뒷골목에 숨어들은 글렌이 다리의 안전은 고사하고

이미 후들거려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될 정도로 달린 끝에 그녀를 간신히 따돌렸다.


"크흐흐······ 그건 그렇고, 이브의 취향이 그렇고 그런 쪽이었다니.

정말이지······ 뜻밖의 수확이군."


지쳐서 쓰러질 기세로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다.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글렌 앞에서 그녀도 앞으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터······


그리곤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이 사실을 철저히 이용해먹기로 했다.



······



다음 날,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 2학년 2반 교실.


교실 안은 아직 수업종이 울리기 전이라 교실 안은 아직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글렌이 교탁 위에 저자세로 엎어져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크흐흐흐~."


그런 그를 시스티나가 경멸하듯이 차갑고 꺼림칙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글렌과 오랜 시간 지내온 그녀도 이번만은 글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


"······선생님은 왜 아까부터 계속 히죽거리시지?"


"아하하, 그러게.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


루미아가 교과서를 편 채 시스티나의 바로 옆에서 리엘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저 인간이 저러는 거면 분명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응, 확실해."


그게 자세히 뭔지는 몰랐지만,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로운 감을 가진

그녀는 틀림없이 눈치챘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느닷없이 이브가 2반 교실문 앞으로 찾아왔다.


"어라? 시스티, 저거 이브 씨 아냐?"


루미아가 교실 문 앞에 있는 이브를 눈으로 가리켰다.


"어라, 정말이네. ······이브 씨가 교실에는 웬일로?"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불온한 감각이 시스티나의 뇌 속을 뒤덮었다.


"글렌, 당신. ······잠깐 이리 와 봐."


이브가 망설이듯 손짓으로 교탁 위에서 마치 코흘리개처럼 웃고 있는 글렌을 불렀다.


"호오, 혹시 그 건 때문에? 크큭······."


"시끄러. 닥쳐."


눈을 부릅뜨는 이브 앞임에도 글렌은 전혀 주눅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한테 ······하면 알지? 처신 잘하라고, 이브."


"크윽. ······말하기만 해 봐."


분한 듯 이브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시스티나의 귀에 첫 단어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비밀 비스무리한 것 같았다.


딩동♪


수업종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수업 내내 시스티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수상쩍은 글렌의 언동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더욱 수업에 집중은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



방과 후.


시스티나가 글렌을 불러세웠다.


루미아와 리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시스티나가 별 거 아니라는 둥

둘러대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선생님."


"응?"


"오늘 이브 씨랑······ 무슨 대화하신 거에요?"


"아, 그게 말이지······ 실은 어제 말이야, 이브가 어떤 가게 안으로······."

글렌이 전혀 아쉬운 기색 없이 시스티나에게 귓속말을 하려고 귀에 가까이 댄 순간ㅡ.


"그으으으으으으을레에에에에에에에엔!"


누군가의 성화에 가득 찬 고함이 울려퍼졌다.


잠시 후ㅡ.


2반 교실 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이브가 성에 가득 찬 모습으로

씨익씨익거리며 서 있었다.


"글렌, 당신?! 내가 아까 귀가 딱지가 앉도록 얘기했을 텐데?! 그새를 못 참고, 이익!"


당장이라도 글렌을 죽일 것 같은 살의에 가득 찬 눈으로 글렌을 노려보았다.


"이브······?!"


"······이브 씨?"


평소에는 냉정하고 차분한 그녀가 보기 드물게 성난 모습을 보고 시스티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브를 보고 당황한 글렌이 허둥지둥 그녀에게 물었다.


"여, 여긴 어떻게?! 설마······ 교실 뒤에서 엿듣고 있었냐······?"


그러자 이브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아무리 네가 그런 시덥잖은 인간이라도, 내가 뭐하러 시간 아깝게 그런 짓을 할까 봐?

《이라의 불꽃》······ 벌써 내 오리지널을 잊은 건 아니겠지?"


'아뿔싸!'


한 순간 잊고 있던 사실이 글렌의 뇌에 스쳐지나갔다.


《이라의 불꽃》.


일정 영역 안에서 인간의 악감정 그 중에서도 살의나 악의 등을 탐지하여

불꽃으로 탐지화해 잡아내는 이브만의 탐색 특화형 고유마술이었다.


불꽃을 시크릿 비전으로 가문 대대로 전수하여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브나이트 가문에서도 그녀 또한 특출난 인재인 것이다.


"자, 그럼 순순히······ 응?"


이브의 손에 모든 것을 태우는 살의의 불꽃이 깃들자, 글렌은 이미

전방의 창문을 깨고 달아난 뒤였다.


"이익! 두, 두고 보자, 글렌. 반드시 복수해주겠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하하."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무는 이브 앞에서 시스티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다음 날 점심 시간.


시로테 나뭇가지를 쪽쪽 빨면서 글렌이 여유로운 정오의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하아······. 이번에도 또 왜 나인 거야 대체?! 대체 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탓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글렌이었다.



글렌이 연구실의 문을 일부러 세게 열었다.


"······야. 너 이번엔 또 날 왜 부른 거냐?"


짜증스러운 눈으로 글렌이 노려보는 곳에는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린 데에다,

머리를 뒤로 넘긴 얼핏 보면 미남일 법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흠하하하하하하하하! 내 호적수이자 마음의 벗이여! 소식은 다 들었다.

이럴 때는 날 조금 더 의지해주도록. 내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도와주지!"


"퍽이나 의지되시겠다."


어딘가 뇌에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광기에 물든 천재(天災) 교수, 오웰 슈더였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마법사 제5체계에 도달한 천재 마법사.


세간에서는 그를 초신성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토록 다방면에서 뭐든지 뛰어난 그가 정말로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는

다름아닌 마도공학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혁명을 일으킬 만한 발명품들을 발명해내면서도 그저 그것들이

심심풀이로 만든 것들이니 틀림없었다.


하지만 글렌은 이미 여러 번 그에게 수모를 겪어서인지 그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기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소식을 말하는 거지? 난 당최 모르겠다만."


글렌이 오웰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핫핫핫! 숨겨도 소용없네, 이브라는 젊은 여성과 사소한 다툼이 있던 모양이더군.

그래서 내가 당신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거네. 영광으로 알도록!"


마침 이때다 싶어서 새로운 발명품의 시험 기회를 덥썩 문 오웰 슈더였다.


"들어나 보지. 이번엔 또 어떤 쓸데없는 걸 만들었을지."


"역시 글렌 선생! 내 호적수답구나! 사실 지금 내 발명품을 얼른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이 틀림없어!"


"······그래서 발명품 이름과 효과는 대체 뭔데? 그것부터 말하라고."


여기에서 말꼬리를 물면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에 글렌은 이야기를 최대한 간축했다.


"이름하여 『시크릿이 입에서 술술』 향수! 이 향수의 냄새만 맡으면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비밀 한 가지를 입 밖으로 술술 말하게 되지! 음하하하하! 내 자신의 재능이 두렵구나!"


"······!"


글렌이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훗. 오웰 슈더, 내가 당신을 잘못 보고 있었군. 협력 요청을 제안하지."


그리고 곧장 화해의 악수를 내밀었다.


"크하하하! 걱정하지 말도록, 내 마음의 벗이여. ······세상은."


""모두 우리의 뜻대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사악한 표정을 짓고 마침내 교내 최고의 괴짜들이 사악하게 웃었다.



······



또 다시 다음 날ㅡ.


"흐흐흐······. 이것만 있으면."


글렌이 꺼림칙하게 웃으며 바지 앞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어제 오웰 교수이 새롭게 발명한 발명품

『시크릿이 입에서 술술』 향수였다.


"루미아. 저 인간, 또 변변찮은 짓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응? 글렌 선생님 말이야?"


"어제 선생님이 나에게 귓속말을 했는데, 이브 씨가 어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같아. 그것 말곤 더 못 들었지만."


"으음. 그렇구나,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네. 확실히. 물증도, 증인도 없어."


"응, 확실히. 나도 루미아도 잘 모르겠지만."


세 소녀가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데 글렌이 갑자기 그녀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야, 너네들. 끝내주는 거 알고 싶지 않냐?"


무언가 간사한 계략을 꾸미는 표정으로 글렌이 씨익 웃더니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에게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읏······."


당황한 루미아가 뭔가 그 발언을 오해한 듯 했다.


그녀의 머리가 귀까지 새빨개지면서 수증기가 새어나올 것처럼 푸욱 식었다.


"자, 잘 들어 한 번만 말해줄 테니. 사실 어제 이브가······."


글렌이 세 소녀에게 3일 전의 이야기를 풀어내려던 찰나였다ㅡ.



"적당히 하라고오오오오오! 당신!"


"쿠헉······?!"


이브의 돌려차기가 글렌에게 직격했다.


글렌은 그 자리에서 뒹굴러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서, 선생님?! 이브 씨?! 이건 대체 무슨······."


눈 앞에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루미아가 당황했다.


"······흐흐흐."


"뭐, 뭐야?! 마, 맞는 게 그렇게 좋아? 당신······ 그런 쪽 취향이었어?!"


"아쉽지만, 오답이야 이브. 뭐, 보면 알게 되겠지, 후후후······."


그렇게 말하곤 사악한 표정으로 웃는 글렌이 왼손으로 맞은 부위를 움켜잡고

남은 한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슥 오웰의 발명품을 꺼냈다.


"이름하야 『시크릿이 입에서 술술』 향수!"


그렇게 선언하곤 분홍색 유리로 되어있는 세련된 향수병의 마개를 뺐다.


그리고 글렌은 자세를 곧장 일으켜세우더니 마개가 있던 입구 부분을

이브의 얼굴 쪽으로 가까이 가져다댔다.


"······."


그러자 이브가 곧 입을 다물더니 허공을 바라보는 공허한 눈이 되었다.


이후 불편한 침묵만이 계속 흘렀다.


"어라······? 왜 효과가 없지?"


"여, 역시! 뭔가 선생님이 또 꾸민 짓이셨군요?! 이번에는······ 꺄악?!"


다시 한 번 이브 앞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이브가 간신히 입을 열고 영창했다.


"《십자성화》."


《십자성화》(十字聖火).


부정을 정화하는 불꽃을 소환하는 이브만의 퍼스널리티였다.


당연히 그 부정에는 틀림없이 정신적 지배를 벗어나는 효과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하아. ······하아."


이브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십자성화의 효과는 확실히 굉장했지만, 그만큼 소모하는 마력도 많았다.


특히, 이번에는 건물 안이라 효과와 범위를 조정해서 사용한 듯 했다.


"잘도 해주셨겠다? 글렌, 당신. 각오는 되어있겠지?"


"사, 사, 사람 살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


글렌이 36계 줄행랑을 치자 이브가 악마가 강림한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뒤를

매서운 기세로 쫒아갔다.


"우, 우리도 쫒아가자, 루미아."


"으, 응. 이건 대체······."


"응, 나도."


2반 학생들은 이미 수업종이 울렸음에도 그 흥미로운 광경에 대부분

교실에서 발을 떼고 앞마당으로 튀어나갔다.



······



"거기 서어어어어어어! 오늘 당신은 죽었어!"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역시 오웰 교수를 믿은 내 잘못이지, 두고 보자아아아아아아!"


사실 『시크릿이 입에서 술술』 향수에는 맡은 사람의 정신력이 뛰어날 경우,

효과가 적용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오웰 교수가 글렌 레이더스에게 깜박하고 말을 안 했던 것이리라.



"엣취이이이이! 킁······. 어디서 또 내 얘기를 하나 보군. 자랑스럽구나! 흠핫핫."


여전히 마이 페이스에 강한 남자, 오웰 슈더 교수였다.



"미안하다고오오오오오! 한 번만 봐주라! 내가 잘못했어, 이브!"


"아니, 난 이미 글렌 당신을 없애기로 결심했어. 그러니 곱게 죽어."


지옥에서나 타오를 듯한 겁화들이 거대한 운석 형태로 글렌에게 수차례 날아왔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함께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 앞마당에 크레이터가

수십 개 생겨났다.


그런 경악스러운 죽음의 술래잡기를 2반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듯 흥미로운 듯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수많은 폭발음과 마찰음.



앞마당은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 흔적들과 지옥 불길들이

이미 쑥대밭을 만들었다.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런 시끄러운 소란 도중······ 본관 앞에서 할리 아스트레이가 불쑥 튀어나왔다.


"글렌 레이더스······. 네 이노오옴! 적당히 좀 해라! 시끄러워서 수업을 진행할 수가······ 음?"


글렌의 선배 강사인 할리 아스트레이가 이브와 글렌의 꼴을 보고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하! 보나마나 삼류 마술사인 네놈이 분명 무언가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어!

얌전히 업보를 받고 마술사로서의 긍지를······."


"얌전히 있어! 하······ 뭐시기 선배. 안 그러면 지옥 끝까지 쫒아가줄 테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도 글렌은 하 뭐시기 선배를 향해 온갖 독설을 퍼부었다.


독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네 놈은 이제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생각이 없는 거냐? 아니······ 그보다

선배로서의 위엄이 전혀 없어?!"


할리 아스트레이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큭. ······오냐.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나도 같이 거들어주마아아아아아아아!"


제대로 화가 난 할리 또한 주문을 영창하며 글렌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얀 겨울의 폭풍이여》"



할리가 냉기 마술 《화이트 아웃》을 주문 영창했다. 수많은 냉기의 폭격들이

글렌 주위를 덮쳤다.


"크하하하하하하! 선배의 위엄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너에게 주입시켜주지!"



"《홍련의 염진이여》"



이번에는 불꽃의 벽 《파이어 월》이 글렌의 발을 묶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2명의 화력을 견디지 못한 글렌이 실컷 얻어터지고 난 후에야 사건은 결론이 났다.


물론 후에 루미아가 《치유 마법》으로 치료시켜줬지만. 이미 글렌은 상처투성이에

온몸 곳곳에 멍자국이 생겼다. 본인의 업보이리라.



······



"으음. ······글렌 레이더스 선생?"


보기 드물게 약간 화가 나보이는 학원장실에서 학원장 릭이 눈썹과 뺨을 씰룩거렸다.


"그래서, 저 앞마당의 수많은 흔적들은, 다 무엇인고······?"


발을 디딜 틈도 없이 수많은 구멍과 파열된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학원장님, 억울합니다······. 저는 피해자라구요······! 불합리하게 당하기만 했단 말입니다!"


글렌이 필사적으로 호소했지만 각종 시설 파괴에 기물 파손 등등.


아마 이 피해는 전적으로 쉽게 복구하기 어려워보였다.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감봉 예정이네만."


"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악! 하게 선배, 이브, 둘 다 두고 보자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찬 글렌의 절규가 학원 전체에 메아리쳤다.



······



또, 또, 다음 날.


"하아.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건가~."


글렌이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로테 나뭇가지를 쪽쪽 빨면서 나무에 걸터앉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의 돗자리에는 세 소녀ㅡ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이 앉아있었다.


"전부 다 선생님의 업보예요. 남탓으로 돌리지 말아주실래요······?"


도끼 눈으로 그를 은발의 소녀 시스티나가 지긋이 노려보았다.


"아하하······. 걱정 마세요, 선생님. 당분간 도시락은 제 거를 나눠드릴 테니까요."


천사 같은 루미아의 따듯한 호의에 글렌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응, 글렌. 기운 내, 나도 열심히 도와줄게. ······잘 모르겠지만."


리엘 또한 글렌을 위로해주었다.


"으음, 별 수 없구만. 미안하지만······ 당분간 신세 좀 지마, 루미아. 고맙다."


"예, 저한테 맡겨주세요."


루미아가 글렌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 결국 이브 씨의 비밀은 뭐였던 거예요?"


시스티나가 의아한 듯 글렌에게 물었다.


"아아, 그거? 그냥 말 안 하려고. 그 녀석이 싫어하니까 말이다.

나도 싫어하는 걸 굳이 할 정도로 매정한 인간은 아니라고~."


루미아는 그런 글렌을 보더니 한 층 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후훗. 역시 솔직하지 못하시구나. 선생님다우셔.'


속으로 그렇게 흐뭇하게 웃는 루미아였다.


여느 때처럼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에 평화로운 점심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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