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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마침내 다시 가보는 수학여행 [3/3]

자드가자(58.234) 2022.04.05 03:59:05
조회 407 추천 3 댓글 4
														


[ 글쓴이의 짧은 인사 ]


흐으음~. 분량 조절을 실패했군요.


아무쪼록 재밌게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무리였다면 무리였다고 미리 말을 하셨으면 좀 좋아요?"


누가 봐도 풀이 죽은 표정으로 해변가에서 시스티나가 다시 돌아온 글렌에게 토로했다.


리제가 마지막에 방긋 웃어주면서 인사했기에 나머지는 감흥없이 터벅터벅 걸어왔다.


"미안, 하얀 고양이. 그 때는 나도 정신이 없었어."


"저는 또 다른 부분을 오해하셔서 하고 싶지 않으신 건 줄······ 앗!"


시스티나의 모기 날갯짓 같이 작은 목소리는 글렌의 귀에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으응? 방금 뭐라고?"


"아······ 아니. 잊어주세요! 잊어주시라구요! 여, 여전히 선생님은 그런 부분에서는 영

섬세함이 부족하시네요!"


"······응?! 내가 왜 이런 날벼락을 맞아야 하는 거야······? 나 울어도 돼?!"


억울하게 몰매를 맞은 글렌의 표정이 명백히 수그라들었다.


"어, 어쨌든······ 지금부터는 '수박 깨기' 할 거니까, 선생님도 참가해주셔야 하거든요?

······참고로 선생님에게 거부권은 없어요."


"도대체 네 머릿속에선 내 취급이 어떻게 되는 거냐······?"


글렌이 한숨을 푹 내쉬고, 천천히 학생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스티나는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 뒤를 졸졸 쫒아왔다.



······



"아, 선생님! 마침 잘 오셨어요. 지금 리엘 차례였거든요."


루미아가 글렌을 밝게 웃으며 성대하게 환영했다.


"아아.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글렌을 여학생들이 꺼림칙하게 노려보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정도 수모를 겪었다면 뭔들 용서를 못할까.




"응, 글렌. 잘 왔어. 이제 내 차례······ 볼래?"


"그래. 내 이 두 눈으로 톡톡히 봐 주지."


"응. 나 글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


글렌이 리엘을 격려하듯 머리를 쓰담쓰담하자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윽고 리엘이 술래가 되었고, 그녀에게 시야 차단용 안대와 수박을 가를 목검이

주어졌다.


"······."


리엘이 입을 다물더니 제자리에서 가만히 손에 쥐던 목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응? 왜 그래, 리엘?"


루미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리엘에게 말했다.


"나, 이거 불편해. 필요없으니······ 대신 이걸 쓸래."


갑자기 리엘이 초고속으로 땅에서 대검을 연성하더니 양손으로 흉악한 크기의

대검을 잡고 준비 태세를 갖췄다.


"응, 이제 준비 완료."


"잠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


글렌이 그런 리엘을 제지하며 그녀의 손에서 대검을 빼앗았다.


"야, 이 멍청아. 수박 깨기는 목검으로 하는 거야. 자, 다시 해."


그리고는 리엘의 머리에 꿀밤을 가볍게 먹여주었다.


"우우우우우······."


리엘이 입술을 삐쭉 내밀고 침묵으로 항의했다.


"아하하······ 리엘. 얼른 시작하자."


루미아가 그런 그녀를 위로하며 수박 깨기를 재개했다.



"리엘~! 왼쪽, 왼쪽이야!"


"아아니~? 분명 오른쪽이거든?! 리엘, 오른쪽으로 가 봐."


"······으으으~."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갈피를 못 잡은 리엘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하하. 리엘, 오른쪽이야."


"응, 리엘! 오른쪽으로 가면 수박이 하나 있을 거야. 그 목검을 써서 자르면 돼."


그런 불쌍한 리엘을 보다 못한 루미아와 시스티나가 리엘에게 정답을 알려주었다.


"응······. 믿을게. 여기······인가?"


그녀가 목검을 쥔 채 한 쪽 발을 뒤로 빼더니 정확히 발치에 있는 수박만을 정확하게

골라서 8등분시켰다.


그 광경을 본 2반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히 질리더니 곧 환호성과 격려로 바뀌었다.

아마 경외심이리라.


"리엘! 굉장하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음······ 과연 제국 직속 마도사 출신이네요. 과연 제가 인정한 라이벌······. 오호호호~!"


""뭐랄까. 너무 굉장해서 딱히 할 말이 없네, 역시 대단해. 리엘은······.""


환호성을 지르는 카슈, 멋대로 라이벌 선언을 해버린 웬디, 굳어버린 카이와 로드.


이미 리엘의 실력은 몇 번 봐온 적이 있던 2반 학생들이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격의 차이가 있을 줄은 아마 예상치 못했으리라.


리엘도 칭찬받은 게 내심 기뻤는지 아주 자세히 봐야만 알 정도로 희미하게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음, 수박이 달고 정말 맛있네. 고마워, 리엘."


"응, 정말! 그나저나 리엘이 이렇게까지 수박 깨기를 잘할 줄은······."


루미아와 시스티나가 가운데에 앉은 리엘을 칭찬일색하며 수박 조각을 베어물었다.



그 긴 파란색 꽁지 머리를 한 작은 체구는 사실 겉보기에는 일반 소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제국 궁정 마도사단, 암호명 No.7 《전차》.


검술과 체술만으로 놓고 보면 궁정 마도사단에서 그녀를 따라오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녀의 암호명이 《전차》인 이유였다.



"역시······. 혹시나 했지만, 리엘 네 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네."


글렌 역시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뜬 채로 살짝 놀란 모양이었다.


"보통 군에서 나오면 실력이 녹슬기 마련이거든. 이 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무언가 복잡미묘한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역시······ 마음에 두고 계신 걸까······. 그 때의 일."



글렌은 군을 한 번 나왔다. 그 결과, 자신과 수라장을 헤쳐온 동료들을 한 번 상처입힌 전적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곤 하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는 틀림없었다.


정작 소중한 사람이 위험했을 때에도, 자신은 힘이 부족해서 지킬 수 없었다.

점점 주변의 모든 것이 새카맣게 변한다. 군 시절의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분명 그의 낮은 존재감과 자존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아마 한 번 집에 틀어박힌 적이 있던 이유도 이 상황과 비슷했을 것이다. 관계를 쌓지

않으면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이 죽는 걸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생님."


진지한 표정으로 루미아가 자신을 부르자, 글렌의 의식이 과거에서 현실로 회신했다.


"군 시절의 일로 상처받으셨던 일은 잘 알고 있어요. 이미 한 번 겪어버린 과거는

분명 되돌릴 수 없겠죠. 그렇지만······"


루미아가 중간에 말을 툭 끊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 드물게 호소했다.


"······저는 더 이상 무능한 자신이라고 선생님이 본인을 탓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군 시절에도 선생님에게 구해진 많은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선생님은 훌륭한 교사가 되셔서 2반을 책임지고, 가르쳐주고 계시니까요."


그 말을 들은 글렌의 마음에 마치 어렸을 적에 요람을 탄 것 같은 따듯함과

동요가 찾아왔다.


"······루미아."


"네, 맞아요! 선생님은 늘 변변찮고 의욕도 하나없는, 교사로서는 확실히 제로인

사람이지만! 그렇지만······. 저희를 몇 번이고 목숨을 걸고 구해주셨잖아요. 그런 건

존경받아 마땅할 만해요. 그러니······ 좀 더 자신감을 가져주세요!"


"하얀 고양이······."


귀여운 애제자들의 진심을 본 글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글렌."


"응?"


감동의 물결에 젖어있는 글렌에게 리엘이 잘린 수박 한 조각을 내밀었다.


"수박이야. 먹어줄래······?"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리엘······ 요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고!"


'제자들에게까지 내 걱정을 끼치게 만들고 정말이지. 강사 실격이네. 그래도······.'


그러자 글렌이 거칠게 리엘의 머리를 문질렀다.


두 사람을 보면서 시스티나와 루미아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녀석들만은 졸업할 때까지라도 내가 전력으로 보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



수박 깨기가 모두 끝나고ㅡ.


충분히 휴식을 취한 글렌이 레모네이드를 마시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응, 글렌? 어디 가······?"


왠지 불안한 기색으로 글렌의 안색을 살피는 모양이었다.


"잠깐 옆길에 산책 좀 다녀오려고."


"······서, 선생님? 저, 저도 같이······ 다녀와도 될······"


어디까지나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호감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으리라.


"안 돼."


그런데 글렌은 조금 싸늘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리곤 일부러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여유롭다는 듯이 터벅터벅 옆길을 향해 걸어갔다.


"······?!"


그러자 당황한 시스티나가 충격을 제법 먹었는지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저, 저 인간이 모처럼 같이 가줄려고 했더니······!"


시스티나의 속이 끓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분노했다.


"아하하······. 시스티, 참아. 아마 생각을 정리하러 가신 걸 거야. 혼자 계시게 해 주자."


루미아가 방긋 웃으며 잔뜩 화가 난 자신의 친우를 격려했다.


'그, 그래도······ 이유 정돈 말해주고 가셔도 되잖아요······.'


시스티나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렌에 대한 서운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



"야, 그만 숨어있지 말고 나와. 이브."


글렌이 열대 나무 뒤에 있는 몇 가닥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으응. 용케도 찾아냈네. 그 점은 칭찬해줄게, 글렌."


ㅡ이브 디스트레가 갑자기 야자수 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너야말로. 여기는 도대체 왜 온 거야? 애시당초 전 군사 교관인 이브 네가 여기에 올

이유 따위는."


"최근에 글렌 당신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말이지. 눈가에 다크 서클이 깊숙히 내려와있지 뭐야. 그래서 지금쯤 헤벌쭉한 표정으로 풀어진 당신의 모습이 재밌을 것 같아서."


"흐응~. 그 말은 날 걱정해줬다는 말?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벼, 별로······."


"정말로 쑥스러워할 필요 없다니까, 이브. 아,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는 괴롭네~."


도발하듯 말하는 그에게 마침내 이브의 이마에 힘줄이 생겨났다.


"내가······."


"······응?"


"아니라고 했지이이이이이이이이!"


이브가 《제7원》을 발동해 맞으면 전치 4주로는 안 끝날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불꽃을

글렌에게 사정없이 던졌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근처 야자수에 불이 옮겨붙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마술로 소화했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안 좋은 둘이었다.



······



점심시간ㅡ.


부득이한 학원의 금전 사정으로 마술학원 학생들은 해변가 주변 노점에서 예기치 못한

살짝 늦은 오후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해변의 바닷물 라인을 따라서 노점들이 마치 일렬로 장대한 줄을 자랑이라도 하듯

늘어서있었다.


노점의 특성상, 허니버터 포테이토, 피쉬 앤 칩스, 로스트 폭찹 같은 대중적인 음식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브는 글렌을 추격전을 하면서 망가진 지형을 복구시킨 뒤, 어디론가 혼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여기 한 남자가ㅡ.


"역시, 노점상에 오면 가장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음식을 모조리 쓸어담는다!

이건 기본 상식이지."


글렌을 끄덕이며 스스로 납득시킨 그의 양손에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들이

쥐어져있었다.


ㅡ각종 꼬치구이부터 시작해서 감자튀김, 핫도그, 스페셜 토스트 디럭스 등등······.


"맙소사······ 저걸 진짜로 다 드실 작정인 거야? 저 사람······"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시스티나가 그런 글렌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하하, 그러게······ 저건 좀 많아보일지도."


루미아도 쓴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훅제와 여흥의 홏은, 우걱······! 아로 음힉! 어에들도, 쩝······! 그 하힐을 똑똑히, 쩝······! 영힘해두도록······!"


글렌이 콧방귀를 뀌며 입 안에 허겁지겁 음식을 욱여넣으며 말했다.


"저기요······? 먹거나 말하거나, 둘 중 어느 하나만 해 주실래요? 발음이 뭉개지잖아요!"


그런 글렌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스티나가 일침을 가했다.


"아하하······ 많이 배가 고프셨나 보네."


루미아는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글렌, 많이 먹어."


리엘도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며 글렌을 쳐다보았다.



돗자리에 깔고앉은 네 사람이 식사 도중ㅡ.


적발의 누군가가 이 곳을 빤히 응시했다.


"······흥."


그러면서 코웃음을 치더니.


"당신이 그렇게 먹는 걸······ 얼마만에 보는 걸까."


뭔가 감회에 찬 표정으로 마저 이 곳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 점심을 다 먹고 어느 정도 쉰 다음에 출발하는 거죠?"


루미아가 글렌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확인 차원에서 한 번 더 물었다.


"······으응. 그렇지 뭐."


튀김 세트를 먹는 데에 정신이 팔린지라 대답도 대충 한 글렌을 시스티나가 도끼눈을 뜨고 실컷 째려보았다.


"저 덩치에 저 많은 음식들이 다 들어간다니······."



글렌은 의외로 대식가인 사내였다.


아마 군인 시절의 혹독한 훈련이 분명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알게모르게 틀림없이 그는 군으로 많은 것이 바뀌어버린 남자였다.



······



"크아······. 잘~ 먹었다!"


"후훗. 만족하셨나 보네요, 선생님."


"노점상은 웬만하면 이런 곳이나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구경조차 할 수 없으니까."


"음. 그건 그렇네요."


루미아가 식사를 모두 마쳐서 배가 부풀어오른 글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스티나와 리엘은 못 가본 디저트를 파는 노점으로 가서 돗자리에는 오직 글렌과

루미아, 2명만이 남아있다.



점심 식사를 마쳤다고는 하나 앞으로 출발 시간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마술학원 학생들은 다시 집에 돌아갈 채비나 짐을 싸야만 했다.



"선생님."


한가로이 누워있는 글렌에게 루미아가 말을 걸었다.


"응?"


"······잠시만 실례할게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루미아가 명상하면서 정신 집중을 시작했다.


잠시 후 《은 열쇠》가 그녀의 품 안에서 소환했다.


그녀의 정신세계 그 자체인 이공간을 만드는······ 사실상 마법에 가까운 열쇠였다.


루미아가 최근 자신의 힘만으로 쓸 수 있게 된, 자신만의 《은 열쇠》였다.


"뭣······?! 그걸로 뭘 하려고······?"


그리고 왠지 모를 기묘한 위화감에 쌓인 글렌이 아연실색했다.


"······."


입을 꾹 다문 채로 루미아가 두 손으로 《은 열쇠》를 꼬옥 쥐고 있자ㅡ.



두 사람의 눈 앞에 시공간의 개념이 없는······ 물리 법칙을 완전 무시한······ 오직 새하얀

공간만이 끝없는 지평선만을 비추며 한없이 생겨났다.


······루미아의 정신 세계였다.


"······!"


글렌이 움직이려고 모든 신체를 움직여봤지만 자유로이 움직이는 부위는

한 개도 없었다.


그저 눈썹을 언짢기만 할 표정으로 루미아를 가만히 노려볼 뿐이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조금만 참아주세요."


루미아가 그에게 사과하더니 백마 《슬립 사운드》의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육체에 휴식을·마음에 평안을·그 눈꺼풀은 내려앉으리라》"


"······Zzz."


글렌의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루미아는 글렌에게 가까이 가서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그를 자신의

무릎을 베개 삼아 앉혔다.


"주무시고 계시는 선생님은······ 그 모습도 귀여우시네요."


뺨을 붉게 물들이고 수줍은 표정으로 글렌을 계속 관찰했다.


"딱 하루만이라도, 제 응석을 받아주실래요······?"


무릎 맡에 있는 그의 머리를 루미아가 부드럽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요란한 두근거림에 선을 넘어버릴 것만 같다.


'내, 내가 이렇게 과감한 여자애였다니······.'


속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속의 무언가가 툭하고 실처럼 끊어졌다.


그리고ㅡ.



"······선생님. 조금은 저도 제 감정에······ 솔직해져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루미아가 자신의 입술을 자고 있는 글렌의 뺨에 가까이ㅡ.



쿠과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어마어마한 성량의 폭발음이 들리더니, 이내 《은 열쇠》의 공간이 왜곡되면서 일그러졌다.


"앗, 당신은······?!"


"응······? 아아, 글렌을 끌고 간 범인이 당신이었어?"


당황한 루미아는 태연한 표정의 빨간 머리를 가진 글렌 또래 여성을 보며

식은땀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브 씨?! 여, 여긴 어떻게 아시고······."


"【화환술】이라고. 흥, 이런 가짜 세계 따위는 얼마든지 환술로 조작 가능하잖아."


"으읏?!"


이미 이브는 글렌 일행을 지켜보면서 환술을 걸었던 모양이었다.


"아하하······. 죄송해요······ 흐윽."


보기 드물게 사춘기 소녀처럼 눈물이 눈가에 고인 그녀가 이브에게 솔직하게 사과했다.



······



"뭐시라고라아아아아아아아아?!"


백마 《슬립 사운드》에서 깨어난 글렌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그도 차마 루미아가 이런 대사건을 저질렀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단 둘이 같이 있고 싶어서······ 그만······."


눈을 슬프게 내리깔고 고개를 푹 숙인 루미아가 풀이 죽어 있었다.


"휴우. 루미아.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응, 루미아······ 걱정했어."


"미, 미안해, 시스티, 리엘······. 진심으로 사과할게."



루미아가 다시 한 번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서 사과했다.


"다음부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응? 시스티, 방금 뭐라고······"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하하하······."


뭔가 시스티나의 말 중 불온한 단어가 들린 것 같지만 모른 척 넘어가주도록 할까.


"예끼, 이 녀석이."


괘씸했던 글렌이 루미아의 정수리에 딱콩을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조금 세게 때렸다.


"평소에 워낙 착했던 너라서······. 이 정도로 봐주는 거다."


그리곤 그는 입을 다물더니 곧 시선을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면서 루미아를 용서했다.


"다음에 이러면 이 정도론 안 끝날 거야.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라고."


"네에······."


글렌이 풀이 죽어있는 루미아의 머리에 손을 올려주었다.


"뭐, 됐다······. 그만하면. 자, 그럼 출발할까?"


"""네에에엣~!"""


다시 한 번 준비된 귀환용 마차 앞에서 2반 여학생들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머지 남학생들이 글렌 자신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애써 무시해주기로 했다.



"뭐랄까······ 참으로 터무니없는 사람들이네. 무모하기 짝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런 글렌 일행들을 이브가 재밌다는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역시 글렌 당신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네."


"그럼 나도 조금은······ 달라져도 될까? ······글렌."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이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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