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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어려진 글렌 (모작이라고 하면 될까요?)

자드가자(58.234) 2022.04.11 03: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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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이 곳은 세리카 아르포네아의 저택.


호화로운 저녁식사를 마친 세리카는 자신의 방을 정리하던 도중 액자에 껴 있는 어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이건······."


액자 속의 사진에는 낯이 익은 흑발의 어린 남자아이가 태양 같은 미소로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모습의 『나 자신』이 그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마찬가지로 씨익 웃고 있었다.



··················



······세리카 아르포네아.


불멸자(不滅者)가 된 나는 400년 전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하염없이 흐르던 시간의 바다 속에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수면 위의 허무감이 가득한 『현재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별들의 향연도, 하늘에 쏟아져 어둠의 다리를 수놓던 은하수도, 조용히 빛나며 가로등 역할을 해주던 보름달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공허감과 절망감이 조금씩 묻어나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안쪽에서부터 좀먹을 뿐이었다.


『영원히 산다는 것』.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하나의 또 다른 저주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주변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갈 때마다, 마치 자신의 뼈가 으스러지고 영혼이 갉아먹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관계를 쌓지 않으면, 영원히 혼자로 살면, 더 이상 쓸쓸해하지 않아도 될까?'


어리석었다.


그야말로 허황 좋은, 주제넘은 얘기나 다름없었다.


'반대로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세상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자신은? ······이대로 고립된 채, 누군가와 만나지도 않은 채······.'


무구한 내면의 질문이 끊임없이 멤돌았다. 하지만 결코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들어버린 꽃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이, 기대도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ㅡ.


『그 아이』와 만났다.


영원히 혼자서 살아가기로 한 자신에게 있어 그저 방해물일 뿐이었다. 세간에서 《고독의 마녀》라 칭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를 어떻게든 멀리하고 배척했다. 정말 한심스럽게도, 아무런 죄 없는 무고한 아이에게 폭력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나에게 다가와주었다. 왠지 모를 따뜻하고도 포근한 감정이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이미 『그 아이』와 가족이 된 이후로는 고독이라는 감정이 점차 자신에게서 멀어져갔다. 가슴 속을 사정없이 갉아먹는 좀먹음도 멎었다.


비록 언젠가 그와 헤어지더라도······ 그런 모순들을 끌어안고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그랬어야 하는데ㅡ.



『글렌』이라는 그 작은 소년의 실낱 같은 희망조차 "앙리에타"라는······ 한 때는 특무분실 소속이었던 외도 마술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결국 난 『그 아이』의 무엇을 보면서 같이 살아왔던 걸까······. 추억을 간직했던 그 따스했던 시간들이 이젠 허송세월처럼 느껴졌다.


······실은 『그 아이』는 그저 썩어빠진 시체이자 송장이었을 뿐이다.


'······결국, 난 또 이런 기구한 운명을 반복하는 건가.'


스스로 체념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납득해버렸다. 


새하얀 빛으로 모든 걸 집어삼키는 광선이 괴물로 변해버린 아이를 쬐여 만약 인간이었다면 한없이 순수했을 소년을 한 줌의 허무한 재로 만들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그 작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채, 피 투성이가 된 지친 몸을 바닥에 늘어뜨리고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마침내 기다리던 그 때.


세리카의 귓가에 어디선가 누군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자신이 『그 아이』에게 속죄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지하의 방 안을 가봤을 땐, 이미 그 곳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죽어있어 남아있는 건 썩는 냄새로 코를 찌르는 시체들 뿐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라곤 그 『또 다른 아이』 한 명 뿐이었다.


온갖 고문으로 생긴 몸의 흔적들······ 이미 정상인이었다면 폐인이 되고도 남기 충분했으리라.


정신력이 강한 『또 다른 아이』도 결국엔 아이. 울며불며 희망이라도 잠깐 본 듯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나에게 안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순간의 변덕이지만······ 『또 다른 아이』를 구해주었다.


왠지 모르게 이 아이는 『그 아이』와 밝고 당찬 성격, 생김새마저 똑 닮았다. 마치 『그 아이』와 겹쳐보였다. 이것 또한 우연일까?


그리고 '이 아이'의 이름에 이미 떠나 지금은 없는 인간 시절 『그 아이』의 유품이자 이름, "글렌 레이더스"를 붙여주었다.


ㅡ그것이 다름아닌 글렌과 나의 첫 만남.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영원히 흐르지 않아 결국 시곗바늘이 멈춘 것 같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희망의 바람을 불어주었다.



··················


··················



새로 주워온 이 아이와 가족으로 가장 가까이서 지내면서 보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이런 아무렇지도 않은 소소한 일상들이 나, 세리카 아르포네아에겐 너무도 따스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글렌에게 '멜갈리우스의 천공성'이라는 『정의의 마법사』가 마왕을 무찌른다는 내용의 평범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마치 그 이야기를 듣고 감회에 젖은 듯, 자신은 자신도 언젠가 반드시 『정의의 마법사』가 되어보일 거라고 거라고 했다.


비록 글렌 앞에서는 비웃어주었지만, 어째선지 그 아이도 나를 따라 같이 웃어주었다.


비록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희망을 결코 잃지 않고 『정의의 마법사』처럼 씩씩하게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저 기특했다.


가끔은 이럴 때 나 자신이 좀 더 솔직해줬으면 했다. 말 없이 그저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에게 새로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그 아이를 언제까지고 지켜볼 수 있도록.


······옛 추억이 되살아난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하하. 확실히 그랬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이라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에겐 【글렌】이라는 자랑스러운 제자이자, 아들이 있어.'



··················



과거의 아련한 기억들을 회상하고 있으니, 세리카의 의식이 어느새 컴컴한 한밤중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다시금 보니, 사진 속의 아이에는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가 얼굴에 한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이 시절의 순수하고 밝은 글렌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그렇게 마음 속에는 작은 소망의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게 무척 잔인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도······ 어찌 보면 자신이 원인이다.


'그래도 이 주책없는 늙은이의 어리광이라고 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주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지금 글렌이 싫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저 나 때문에 꺼림칙한 과거를 걸어와야 했던 그의 과거를 이렇게라도······



글렌이 묵고 있는 자신의 서재로 홍차 티세트를 갖고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방문 앞.


세리카는 여느 때처럼 스스럼없이 노크를 몇 번 한 후, 대답은 듣지 않고 방문을 멋대로 열었다.


덜컥!


"여어, 글렌."


"······."


글렌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말 없이 술식 연구를 짜며 마술학원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훗······ 글렌, 이젠 너도 이젠 열혈 교사가 다 됐구나."


"······시꺼, 냅둬."


글렌은 방에 들어온 세리카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홍차를 타 왔어. 모처럼이니 같이 마시자고."


"하아······. 정말이지. 이 할망구는 정말,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까."


"후후······ 확실히 그럴지도······."


······후루룩.


은은한 조명이 천장에 불빛 가득 채워진 이 방엔 오직 두 사람의 말 없이 홀짝거리는 홍차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저 여운을 남기듯 밤하늘의 쌀쌀한 바람을 함께 타고 날아가는 경쾌한 소리.


이윽고 침묵을 깬 세리카가 글렌에게 말을 꺼냈다.


"······글렌."


"응, 왜."


뒤돌아보지도 않고 마저 대답했다. 아마도 집중해서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실은 네게······ 부탁이 하나 있다." 


웬일로 그녀답지 않은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에 글렌이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세리카를 향해 뒤돌아본 순간ㅡ.


"······."


그녀가 약간 슬픈 듯이 눈을 내리깔며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야, 야. 왜 그래?"


그러자 글렌은 드물게 보이는 세리카의 연약한 모습에 당황했다.


"저, 그게 말이다. ······옛 사진을 보니, 어릴 적의 네가······ 갑자기 그리워지더군."


"······하아, 그런 거였냐······. 난 또 뭐라고."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그렇게도 할 수 있는 제7계제(Septende) 마술사······ 아니, 대륙의 최고 마술사, 세리카였다.


······허나,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의사 뿐.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하루 정도만이라면."


글렌이 금방 토라진 듯 세리카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분명,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뭐······ 우리에겐 몇 없는 추억팔이잖아. ······그 정도라면 어울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그 말을 들은 세리카의 눈가에선 눈물이 아주 조금 맺혔다.


'역시, 넌 너무······ 착해빠졌다니까······. 글렌.'


그녀는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 말 없이 그를 향해 방긋 흐뭇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



잠시 후ㅡ.


"······시작할게."


"그래."


세리카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셀프 폴리모프】의 즉흥 개변을 시작했다.


"시간 설정은······ 10년 전쯤이 좋겠어. 기억은······ 잃는 편이 너도 편할 테지······?"


"······응."


"하루만 지나가면 금방 원상복구시켜주마."


뭔가 그리움과 걱정이 공존하는 복잡미묘한 눈을 한 세리카가 정신 통일(컨센트레이션)을 끝낸 뒤, 주문을 영창했다.


"······시공간 축은 음수 전개. ······확정성 원리에 의한 인과율 중, 과는 7년 전······. 범위 대상은 고정······."


ㅡ설정을 구축하고, 위력을 조정하여 주문을 개변한다. 마침내ㅡ.


"《대자연의 순리는·나에게 있으니·다시 돌고돌아·역행할 지어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러자 커다란 2중 마술 법진이 세리카의 앞에 생기더니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고음을 내는 광선들이 글렌을 퍼붓기 시작했다.


글렌의 몸이 영롱한 자색 불빛으로 둘러싸이더니, 이윽고 그 빛줄기들에 몸이 완전히 가려졌다.


"음······? 왠지 눈높이가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


잠시 후, 그를 감싼 빛줄기가 하나 둘씩 공중에 산란되며 없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으응······? 뭐야, 벌써 끝난 건가. 싱겁구만."


그렇게 말하면서 글렌이 자신의 몸을 본 순간ㅡ.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몸도, 키도, 그 외의 모든 것도, 전부 작아져버린 글렌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어려지는 데에는 제대로 성공한 모양인 듯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야······ 세리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기억은 전부 까먹는 거 아니었냐고······?!"


기억이 그대로 보존된 아연실색한 표정의 글렌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세리카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설명을 요구했다.


"음······. 미안하다. 글렌. 아마······ 【셀프 폴리모프】의 부작용으로 기억은 그대로 유지된 채로 어려졌나봐."


"너······ 제7계제 마술사잖아, 대륙 최고봉의 마술사잖아······! 너 정도의 마술사가······."


"······【시간 역행 마술】. 마술들 중에서도······ 아마 난이도가 가장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음, 뭐······ 그렇게 된 거다."


그렇다. 【시간 역행 마술】은 시공간의 변수에 간섭하여, 시간의 흐름······ 순리 그 자체를 어긋나게 하는 마술. 


요컨대, 마술들 중에서도 의식 변혁이 가장 어렵고 술식이 복잡해서 세리카와 같은 제7계제 급의 마술사가 아니면 도저히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마술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역시 너 따윈 믿는 게 아니었는데, 물어내······. 내 몸값 물어내란 말이다아아아아아아!"


"뭐, 나 같은 마술사도······ 살면서 실수 한 번 정돈 할 수 있잖아? 이 정돈 너그러이 봐 달라고."


세리카가 머리를 주먹으로 조그맣게 때리면서 혀를 내밀고 귀여운 척 포즈를 취했다.


"그딴 걸로 퉁칠 수 있겠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글렌은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세리카를 향한 허무한 원망을 실어 비참한 절규를 내질렀다.


게다가 이미 몸은 작아질 대로 작아져버린 글렌은 원래 입던 와이셔츠조차 헐렁해져 옷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야, 내일 학교에 출근해야 한단 말이다······. 이딴 꼴로······ 그 애들을. 아니······ 하다 못해 기억의 일부라도 지워줬으면 좀 좋아?!"


그리고 글렌은 언짢은 표정으로 따지듯 세리카를 마구 비난했다.


"흠, 뭐. 상관없지 않겠어······?"


"뭐?"


그러자 세리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기새의 날갯짓을 가르치는 어미새처럼 글렌에게 차선책을 제시했다.


"『연기』라는 좋은 방법이 있잖아, 너에게는."


"······정말 내가 그런 걸 하라는 거냐······?"


글렌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세리카를 째려보았다.


"뭐, 군인 시절 때 잠입 임무로 익숙해진 탓에 지금은 연기가 거의 특기가 되어버렸잖아. 별로 상관없겠지?"


잠입 임무 특성상, 적지에 몰래 침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서 들어가는 탓에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연기가 느는 구조였다.


"그리고······ 지금 네 모습 그대로 평소처럼 행동하면······ 아마 큰일이 일어날 거다. 


"······."


정곡을 찔린 글렌은 그만 할 말이 없어졌는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뭣하면 내가 나서줄 테니까."


"으음······ 그렇다면야······. 그리고 애시당초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네 탓이거든?!"


그러자 글렌은 토라진 듯 입술을 삐쭉 내밀고 세리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으음······. 그건 그렇고······."


그리고 갑자기 세리카는 9살의 어려진 그를 아들바보 같은 눈으로 쳐다보더니 글렌 근처로 먹잇감을 포착한 야수처럼 천천히 다가갔다.


"······."


"야······ 어이, 세리카······?"


이미 자신보다 커져버린 세리카가 눈을 반짝거리며 접근하자, 아무리 글렌이라도 발걸음을 뒤로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다.


"······글렌, 너. 너무······ 귀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곤 풍만한 자신의 두 골짜기로 몸만 작아진 글렌을 그대로 품 속에 끌어앉고 그의 머리를 질리도록 쓰다듬었다.


"실은 너도 이게 좋은 거지······? 그럼······ 사양 않고 맘껏 쓰다듬어주마. 에잇!"


"아잇, 진짜! 좀 떨어지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한없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에게 달라붙는 세리카에게 글렌은 황급히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그저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수없이 헤집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기에 하는 수 없이 하루만 이대로 지내보기로 한 글렌은 하루 종일 초로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물론 세리카는 팔불출 아니랄까봐, 그 후로 머리를 10분은 더 쓰다듬고 난 후에야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몸이 작아지니 평소에 잘만 사용하던 이불과 베개도 오늘따라 덧없이 크게 느껴졌다.


"이 상태로······ 하루 동안인가······."


아무튼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누운 채 내일 아침이 되면 어떻게든 되어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곤한 눈을 천천히 감기려던 순간ㅡ.


"······글렌······."


"세리카······?!"


갑자기 세리카가 방문을 열더니, 살갗이 보일듯 말듯한 연분홍색 네글리제 차림으로 자신의 침대로 다가왔다.


"야······ 너, 진짜······."


"미안, 글렌······. 하루만 이대로······ 자게 해 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걸어오는 아련한 그녀의 표정을 처음 본 순간, 글렌도 차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아."


마지못해 글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성의 미모를 가진 금발 여인이 자신의 옆자리에 누웠다.


기분 좋은 라일락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겪어보는 이런 광경이 그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 잠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글렌은 천천히 눈이 감겼다.


어렸을 적······ 이렇게 같이 누워서 자곤 했었던 그리운 추억.


가족이란 존재마저 잃어버린 천애고아인 자신을 유일하게 안식처로 받아준 어머니이자 스승인 세리카.


어째선지 글렌의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고맙다. ······네가 없었다면 난 지금쯤······."


그렇게 나즈막히 들릴듯 말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그대로 의식이 수면의 바다 깊숙히 빠져들었다.



··················



다음날,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


학원의 경비에겐 사정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세리카가 멋대로 【암시 마술】을 걸어 무사히 교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 곳은 현재 2학년 2반 교실······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교실에서 2반 학생들 전원의 목소리가 맹렬하게 겹쳐울렸다.


왜냐하면 교탁 옆에는 금발이 나부낀 마성의 미모를 가진 여자ㅡ 세리카 아르포네아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마술 부작용으로 글렌이 그만 어려졌지 뭐냐······ 그래서 하루만 신세를 지마."


학생들에겐 굳이 기억이 그대로란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혼란의 풍파가 다른 반까지 퍼져나갈 것은 이미 불보듯 뻔한 데다가······


"안녕······하세요······. 글, 글렌 레이더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녀 옆에는 몸만 어려진 글렌이 (필사적으로 연기하며) 몸이 굳은 채 말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세리카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그, 그건 반칙이잖아······!」


연기라곤 하나, 몸뚱아리만 어려졌기에 겉모습은 9살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세리카는 끌어안고픈 감정을 필사적으로 꾹꾹 참았다.


머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흑발이었지만, 평소의 변변찮은 행색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생기에 가득 찬 눈.


그만 키가 작아지는 바람에 체격에 딱 알맞도록 맞춘, 제나이에 걸맞는 귀여운 사복.


"저, 저게······ 진짜 선생님이야?!"


남학생 카슈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려진 글렌을 다른 사람 보듯이 말했다.


"······글렌 선생님의 어릴 적은······ 조금 깜찍하셨군요······."


손에 머리카락을 빙빙 꼬며 볼이 살짝 붉어진 웬디가 말했다.


"나······ 뭔가, 취향이······ 이상해질 것만 같은······. ······대체 이 기분은 뭐지······?!"


"루제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엘! 돌아와!"


일부 이상성벽을 가진 학생들은 현실의 벽을 괴리한 채 점차 이상한 충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귀여워······."


하물며 청초한 성격을 가진 금발의 소녀 루미아도 그런 글렌을 바라보며 두 손을 양볼에 갖다댄 채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지, 시스티? ······응?"


"······."


시스티나는 루미아의 물음에도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안 보이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저게 그 글렌 선생님이라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광대가 이미 달아날 듯한 흐뭇한 표정을 숨기려고 최대한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시스티? 어디 아프니?"


"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응!"


대답이 없자 루미아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시스티나에게 물었지만 이내 시스티나는 두 손을 저으며 황급히 부정했다.


"저게 글렌의······ 어렸을 때······."


졸린 듯한 무표정을 한 리엘은 신기하다는 듯이 단상 위에 선 글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고 당사자 글렌은 그들의 광채가 빛날 듯한 눈빛 공격에 정신이 아늑해졌다.


학생들이 저마다 처음 보는 글렌에 대한 감상평을 나누고 있자ㅡ.


덜컹!


1반의 담임강사 할리가 느닷없이 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큭큭······ 2반 제군들. 오늘 담임 글렌 레이더스가 경사스러······ 아니, 유감스러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오늘만은 

이 천재강사 할리가 수업을 진행토록 하겠다."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전혀 예상치 못한 할리의 발언에 2반 학생들 전체가 술렁였다.


"실은 내가 부탁했거든. 할리는 마술 지식만큼은 탁월하니까 말이지. 햐, 정말 이럴 때 써먹기 적합하다니까~."


아무래도 세리카가 할리에게 모종의 조건(아마 효능 좋은 발모약)으로 거래를 제안한 듯 했다.


"『만큼은』은 뭐냐, 『만큼은』은······?! 아니, 그보다 왜 내가······ 도구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후우. ······여하튼 그 말대로다."


관자놀이에 시퍼런 핏줄이 돋은 할리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짓누르고 있자ㅡ.


"······으음?"


마침 옆에 쭈뼛쭈뼛 서 있던 어린 시절의 글렌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흐응. 네가 어려진 글렌 레이더스인가······. 마치 다른 사람 같군."


할리가 턱을 손으로 괸 채로 조그만한 꼬마가 된 글렌 레이더스를 유심히 관찰했다.


"응, 할리 선······ 아저씨······! 아저씨, 마술 강사지?! 우와······ 대단한걸!"


한 순간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할 뻔한 글렌이 입을 틀어막고 겨우 화제를 돌렸다.


"아저씨이이이이이이이?! 20대 중반의 파릇파릇한 나이인 나에게 감히······ 아저씨라고라······?!"


"······뭐, 진정해라. 할리. 아직 글렌은 원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어. 설마······ 아무리 글러먹은 너라도 속, 좁, 게, 애 상대로 화내진 않겠지?"


분통이 제대로 터질 듯한 할리 앞에서 글렌과 세리카의 합동 도발 콤보로 점점 할리의 인내심이 한계까지 올라갔다.


"······으으으으으으윽······. 정말······ 이 사제지간이······"


그러자 이미 할리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개져 있었고, 결국 참다못한 할리가 따끔한 오른주먹으로 꼬마 글렌의 꿀밤 훈육을 하려 하자ㅡ.


찌릿!


"뭐, 뭐냐······? 이 한기는 대체······. ······히익?!"


주먹을 굳게 쥔 할리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져 교실을 뒤돌아보자, 성난 학생들이 자신을 죽일 기세로 째려보고 있었다.


'······흐응, 어디 해보시죠. 그러기 전에 당신이 먼저 싹싹 빌 테지만.'


'아하하······ 할리 선생님. 저도 이건······ 좀 아니네요."


'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치기만해봐.'


'《거절하고 가로 막아라·폭풍의 벽이여·그 다리의······'


'감히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미는가? ······훗, 좋아, 그 도전 받아주지.'


'그 애를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 알지? 당신은 더 이상 무사하지 못할 거야.'


마치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눈길로 반 전체가 할리를 노려보았다.


"······아, 예. ······죄송합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할까요······?"


그 매서운 기세에 순순히 꼬리를 말아든 할리는 주먹을 풀고 다소 얼어붙은 분위기의 1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



마침내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꺄아아아아아아악! 네가 그 글렌 선생님이라고······?! 마치 딴 사람 같다, 증말!"


"으흐흐······ 얘야, 내가 한 번만 만져봐도 되겠니······?"


"루제에에에에에에에에엘! 안 돼, 그 쪽 세계로 가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


억지로 학생들에게 끌려온 글렌은 현재 리엘의 무릎 위에 앉은 채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글렌, 귀여워. ······쓰담쓰담쓰담."


그런 반응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리엘은 작은 글렌의 정수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문질렀다.


"선생님이 어려진 건 좋지만, 다들 너무 오바하는 거 같지 않니? 저 정도까진······. 힐끔."


시스티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무관심한 듯하더니 5초마다 한 번씩 글렌을 바라보았다.


"아하하, 그러게. 정말······. 힐끔."


그것은 루미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런 글렌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사정없이 글렌의 머리 위를 벅벅 헤집었다.


그렇다고 만약 화를 낸다면 약간은 의심받을 여지가 있고, 도망친다면 이런 꼬마의 몸으로 뭔들 하리.


이미 그의 머릿속은 혼란과 한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사랑스럽구나······. 내 제자는······ 훌쩍."


그 와중, 풍만한 두 계곡 사이에서 세리카는 티슈를 꺼내더니 제자가 사랑받은 나머지 찔끔 나오는 기쁨의 눈물을 닦았다.


'아니, 좀 말리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글렌이 세리카에게 온갖 SOS 구조요청을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영기로 찍히는 사진 뿐이었다.


"······글렌 레이더스. ······나도 이번만큼은 너를 동정해주지."


평소에 할리는 글렌과 자주 투닥거리는지라 글렌의 속사정을 아주 잘 알았다.


수십명의 남녀노소 할 것 없는 맹렬한 인파에 둘러싸인 글렌을 할리가 조금은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그리고 2교시 후의 점심 시간.


"진짜 이러기 있기야······?! 너희들은 평소에도 선생님과 같이 먹었잖아? 오늘만은 양보하지 그래?"


"······아니, 나도 오늘만은 포기 못 해. ······쓰다듬지도 못했는걸······."


"얘들아······. 싸움은 좋지 않아. ······응? 시스티도 그만 진정하고."


시스티나와 여학생들이 어린 글렌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서 루미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곤란한 표정으로 둘을 말렸다.


그러자 어려진 글렌이 둘 사이를 파고나오더니 말했다.


"······응? 누나들? 왜 싸우는 거야······ 싸우는 거 싫어······."


정말 신들린 연기처럼 정말 딴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마 배우로 데뷔했으면 이미 상은 휩쓸지 않았을까.


'······우우우우우우욱······. 토 나올 것 같아, 메스꺼워······.'


ㅡ물론 어느 정도 사교회 임무로 다져진 경력도 있기에 이 정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겨움은 표정에 전혀 묻어나오지 않았다.


"""귀여워어어어어어어어어!"""


어린애의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본인들 시점) 그 순수한 파괴력에 싸우는 학생 전원의 표정이 곧장 풀리더니 누그러졌다.


"으음, 확실히······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늘은 평소처럼 시스티나가 함께 드셔주세요. 말해두겠지만······ 내일은

무, 슨, 일, 이, 있, 어, 도, 선생님은 우리랑 같이 먹을 거니까요. 아시겠어요?!"


"······으, 응. 물론이지. 양보해줘서 고마워, 웬디."


여학생들 중 대표로 웬디가 시스티나에게 한 걸음 양보하는 동시에 양쪽 모두는 평화 협약을 맺었다.


일촉즉발의 싸움으로 번질 위기는 이렇게 잘 마무리되는 듯 했다.


'······다시는 그 녀석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들어줄 거야. 응, 절대로.'


그리고 글렌은 남몰래 마음 속으로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



점심 시간, 학교 뒷뜰.


"으응. 이름이 글렌 레이더스라고 하는구나. 멋진 이름인걸?"


루미아가 글렌을 무척이나 긍정하듯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깔고앉은 돗자리 위에선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 글렌이 네 명이서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루미아 누나······."


어린 글렌은 스스럼없이 루미아에게 태양 같은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강렬한 인상을 주는 파괴력에 사춘기 소녀들은 전혀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흐으. 시스티······. 나 지금, 엄청 행복해······."


루미아는 얼굴을 수줍게 붉히더니, 곧 뺨을 제 두 손으로 가렸다.


"아하하······. 응, 잘 됐네."


시스티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루미아의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응. 그걸로······ 잘 됐어."


그런 루미아를 본 리엘은 여전히 졸린 듯 무표정이었지만 평소보다도 동공이 커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어려지셨으니······. 평소에 좀처럼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물어봐도 괜찮겠지?'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시스티나는 꼬마 글렌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저기, 글렌. ······혹시 나중에 크면 마술을 배울 거야?"


"······네, 물론이죠! 저는 마술이 좋아요! 그 신비한 힘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린애 같지 않은 내심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어린 글렌은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멜갈리우스의 마법사』라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노력하면 『정의의 마법사』가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앗!"


자기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이상한 말을 해버린 글렌이 황급히 얼버무리며 두 손을 저었다.


"후훗, 순수하구나. 글렌은."


루미아가 그런 글렌을 흐뭇한 표정으로, 마치 누나처럼 지켜보았다.


"응, 글렌 순수해. ······그리고 귀여워. 쓰담쓰담쓰담······."


그리고 눈을 반쯤 뜬 리엘이 또 다시 글렌을 머리 맡에 둔 후 쓰다듬기 시작한 순간ㅡ.


"······이봐, 얘들아. 혹시 글렌 못 봤니?"


매혹적인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모의 여성이 세 미소녀 앞으로 다가왔다.


""이브 씨······?!""


시스티나와 루미아의 목소리가 동시에 겹쳤다.


'······이, 이브?! ······저, 저 녀석이 여길 어떻게······.'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어려진 글렌의 머리에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흥, 착각하지 말아줄래? 단순히 영양 실조에 걸리면 아무 죄도 없는 2반 학생들이 불쌍하니 내가 친히 도시락을 싸준 것 뿐이야."


이브가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코웃음을 치곤 두 손으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시스티나가 루미아와 리엘을 양손으로 자기 쪽으로 끌고 오더니 귓속말을 시작했다.


"이, 이브 씨?! 저, 저 분한테도 역시······ 사실대로 말씀드려야겠지?! 어떡할까, 루미아······?!"


"지, 진정해. 시스티. 일단 말해드리지 않을래······? 최소한 잃는 건 없을 거야."


"응. 나도 역시······ 그러는 편이 글렌에게도 좋다고 생각해."


그렇게 세 소녀들이 입을 모았고, 작전 회의를 끝낸 시스티나가 이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그게, 선생님은······ 보시다시피······ 이 아이예요."


난처한 듯 뺨을 긁적이며 시스티나가 겨우 말을 꺼냈다.


"흐응, 저 아이가······ 으읏······?!"


"왜,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그러던 중 이브가 갑자기 심장 쪽을 움켜쥐며 허리를 숙이자 루미아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했다.


'저 아이가······ 그 글렌이라고?! 마치 다른 사람 같잖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이브가 글렌을 바라보고 있자니ㅡ.


"거, 거기 누나는 누구세요······?


글렌이 필사적으로 연기하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으응, 꼬마야. 난 이브라고 해. 네가 글렌이구나?" 


"네······. 그런데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이브가 글렌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자, 꼬마야. 이거 먹으렴."


그리고 이브가 어째선지 도시락에 있는 군고구마를 반으로 나누더니 하나를 글렌에게 줬다.


"와! 나눠주시는 건가요······?! 제가 군고구마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방긋 웃으며 군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글렌을 보고 있자니 이브의 마음도 꽤나 누그러졌다.


'이런 귀여운 애가 자라서······ 그런 벽창호가 된다니······ 충격이야······.'


"으음······. 그럼 나도 조금 자리에 앉아도 될까? ······서 있더니 다리가 아프네."


"예, 이브 씨. 사양할 필요 없어요. 편하게 앉으세요."


"네, 맞아요. 선생님 같은 변변찮은 사람을 챙겨주시는······ 정말 친절한 사람이시니까요!"


'네 머릿속엔 대체 내 이미지가 어떻게 잡혀있는 거냐······.'


글렌이 속으로 조용히 시스티나에게 항의했다.


"······그래. 뭐 그렇다면야 사양 않고······."


이브도 입가에 희미한 호선을 그리더니 이내 자리에 참석했다.


"그래서요! 그 『정의의 마법사』가 있잖아요! 사악한 마왕을······ㅡ."


신나서 동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글렌을 네 사람이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훗, 가끔은 이런 휴식도 필요하겠지? 안 그래? 글렌.'


그 훈훈한 광경을 근처의 나무 뒤에서 세리카가 마치 제자가 성장해서 뿌듯한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



방과 후ㅡ.


"두 번 다시 할까 보냐······. 쳇쳇!"


글렌이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토라진 듯 말했다.


마술학원이 모두 끝난 후, 마침 시간에 딱 맞춰 마력이 떨어진 글렌의 몸은 성체(成體)로 되돌아왔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글렌과 세리카가 노을에 반사되어 붉은 빛을 띠는 페지테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도 네 연기 실력은 여전하더군, 글렌.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어."


"······그 얘기만 오늘 하루 몇 십번은 듣는 것 같네······. 하아······."


"어쨌든 수고했다······ 글렌.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세리카가 조금 감동한 듯 손으로 촉촉해진 눈가를 살며시 닦았다.


"벼, 별로 널 위한 건 아니야. 나는 단지······."


그리고 글렌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ㅡ.


"앗, 선생님······! 저희랑 같이 가요!"


글렌의 힘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발견한 시스티나, 루미아, 리엘이 글렌 쪽으로 다가왔다.


"······흐응, 하얀 고양이. 이제 보니······ 너 나랑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글렌이 일부러 시스티나를 놀리듯 말했다.


"그, 그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 제가 뭣하러 선생님이랑 같이······."


"후훗, 시스티도 참.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그 광경을 본 루미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으윽. ······노, 놀리지 마! 루미아······!"


"내가 그렇게 좋은 거냐, 하얀 고양이? 이야~ 역시 이래서 인기남의 삶이란 피곤하다니까~."


글렌이 한쪽 손을 머리 위로 올리더니 허리를 굽힌 채 괴상한 포즈를 취했다.


"그, 글쎄······ 그, 그게 아니라구요! ······요새는 좀 더 강사로서 성실하게 해 주셔서······."


시스티나가 두 검지를 두드리며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루미아와 리엘이 그 광경을 보곤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물론, 꼭 나를 위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지······. 글렌."


그런 글렌 조금 뒤에서 세리카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네 사람의 행복한 광경을 눈에 담고 살짝 기쁜 표정으로 저택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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