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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갤러(14.40) 2024.04.07 12:55:37
조회 308 추천 7 댓글 1
														

 하마구치 류스케의, 어쩌면 다음 단계. 여기까지 와서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는 하마구치 류스케.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하마구치 류스케 팬들에겐 꽤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만한 영화다. 우열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영화적 스타일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의 존재감'이다. 지금껏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의 대표작인 <해피 아워>,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물론 그 이전에 <열정> 같은 영화들에서도) 에서 <우연과 상상> 1부의 그 장난끼 넘치는 줌인(마치 홍상수를 연상케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카메라의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고전 헐리우드 영화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카메라의 존재는 이야기 안에 녹여 관객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에 반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하 <악존않>)는 어떠한가. 이 영화는 하마구치에 대한 인식에 완전히 반한다. <악존않>은 그 오프닝부터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카메라가 천천히 트래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숏이라기엔 발걸음 소리, 숨소리, 흔들림도 없고, 속도도 아주 일정하다. 이것은 명백하게 '카메라'의 존재다. 4분이 넘는 롱테이크. 크레딧을 오프닝으로 옮겨둔 선택 역시 이 오프닝을 길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까지 느껴진다. 질문할 가치가 있다. 왜? 두 가지 대답이 떠오른다. 


 첫번째는 <악존않>은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일종의 선언이다. 고다르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색/폰트의 제목과 고전 헐리우드 양식에서 벗어나 확실히 카메라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촬영 방식. 하마구치 본인이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것. 하마구치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무려 4분 동안 <악존않>은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자신의 영화를 보던 방식으로 따라오면 안될 것이라고 가이드한다. 

 두번째, 이 긴 시간동안 관객이 보는 것은 하늘과 나무다. 그리고 움직임의 벡터(방향과 속도)다. 하늘과 나무는 '자연'이다. 이것은 <악존않>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자연/인간의 대비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명백하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움직임의 벡터 쪽이다. 앞서 적었듯 이 오프닝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는 일정하다. 인간의 움직임인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이 속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4분 동안 관객이 보는 것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자연의 풍경이다. ↓방향은, 이후 마을회장 스루가의 대사를 통해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물은 낮은데로 흐른다. 물은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말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자, 이제 두 가지를 합칠 차례다. 일정하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풍경. 이것은 강의 모습과 겹쳐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오프닝 이후 처음 '타쿠미'가 등장할 때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때 카메라는 명백하게 → 방향으로 트래킹한다. 자연/인간의 대비. 수직/수평의 대비. 하마구치는 이렇게 간단하게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자연과 인간의 대비 구조를 보여준다. 수직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에 인간이 수평으로 침입하는 이야기.


 * 오프닝 외에도 독특한 숏들이 많다. 예를 들어 땅 와사비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 사슴의 시체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 유독 자연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바라보는 듯한 숏들. 또 자동차 씬도 자동차 후면, 측면의 독특한 숏들. 이것들은 어떤 시점 숏이라기보단(자연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관점을 요구하는 하마구치의 제안처럼 느껴진다. 인간 바깥의 시선의 요구.


 * <악존않>을 보며 많은 관객들이 가장 당혹스러워 할 부분은 단연 엔딩일 것이다. 거의 다큐멘터리적인 터치(논픽션적인)로 시작한 이 영화가 끝에 가선 너무나 픽션적인 장면을 선보이는 것. 이 엔딩은 100명의 관객이 100개의 자신만의 결론을 떠올릴 만한 것이다. 내가 적으려는 것은 그 100가지 중의 1가지의 내 생각일 뿐이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이 마지막 시퀀스가 벌어지는 공간에 대한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공간은 영화가 지금까지 펼쳐진 곳들과 동떨어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현실 바깥 어딘가에 놓인 곳처럼.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지금껏 자연광의 톤으로 진행되던 영화가 엔딩 시퀀스에서만큼은 블루 톤으로 보정이 된 듯한 화면이다. 파란색. 이 영화가 몇 차례 언급한 '물'의 이미지. 어쩌면 이 공간은 영화가 지금껏 보여줬던 시간들(상류)에 대한 결과가 맺음하는 공간(하류)이라고 볼 순 없을까. 


 떠오르는 질문들. 그렇다면 왜 희생은 '하나'가 치뤄야만 했을까. 아무 잘못 없는 하나. 그리고, (아마 가장 많은 관객들이 가장 즉각적으로 떠올렸을 질문) 왜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죽여야만 했을까.


 다시 한 번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야 할 것 같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상류에서 벌어진 일들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끼친다. 상류에서 저지른 작은 일이 하류에선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버지들(상류)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책임이 자식들(하류)에게 전가되는 상황. 그렇다면 가장 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가 대상인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 가지 더. 이번엔 타쿠미의 대사를 가져와서 이야기하자면 타쿠미는 설명회에서 이 땅은 패전 후 개척민들에게 주어진 땅. 이라고 설명한다. 패전. 전쟁. 아버지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책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라고 하마구치는 생각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이 이 땅에 인간의 침입을 허용하게 한 것이다.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죽인(최소한 공격한) 이유. 이 영화는 마치 그의 전작 <아사코>가 그랬듯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장면들이 많다. 예를 들어, 타쿠미의 행동과 상황(물 길어오기, 캠프 관리인 제안, 하나 찾기)은 후반부 타카하시가 그대로 반복한다. 가장 타쿠미의 자리에 근접한 존재가 된다. 여기서 타쿠미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견 가장 자연의 입장에 가까운 인간처럼 보인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땅 와사비를 발견하고, 나무들의 차이를 알고, '그럼 사슴은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다만 그런 타쿠미조차 자연의 법칙이 '만물을 추구 대하듯'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선 간과한 듯 하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딸에게 벌어진 일을 보았을 때, 더 이상의 반복이 있어선 안된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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