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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언어의 존재 방식: <헤어질 결심>(스포)앱에서 작성

토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6.30 16:04:21
조회 3529 추천 1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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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기의는 여러 개의 기표를 갖는다. 사과(라는 물체)는 '사과'라고 불릴 수도 있고 'apple'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이 당연한 상식은 <헤어질 결심>에서 다양한 범주로 확장되며 비유적인 테마로 작동하게 된다. 서래(탕웨이)가 입었던 옷의 빛깔이 초록색으로도, 파란색으로도 불리는/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벌써 이 작품을 다 이해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가 'I love you'로도 '워 아이 니'로도 말해질 수 있는 것처럼, 결국 해준(박해일)이 말한 적 없(다고 생각하)는 '사랑해요(기의)'는 '당신 때문에 나는 붕괴되었고 바다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휴대폰을 던져라'라는 대사(기표)로 표현된 것이다. 마치 소세키가 일본인은 'I love you' 같은 (노골적인)말을 쓰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 영어 문장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진위 여부는 불분명한)일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이 영화가 준 감흥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헤어질 결심>이 오래도록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유는, 이런 일상적인 기의-기표 관계의 역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해준은 아내 정안(이정현)의 말에 따르면 '살인과 피가 있어야 행복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녀와는 주말부부로 지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오직 일만을 사랑하고, 아내를 향한 사랑은 식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녀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요리를 굳이 손수 해주듯이, 해준은 일도 사랑하고 정안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요리를 해주는 또 다른 여성, 서래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한 사람이 두 사람(혹은 그 이상)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다고, 정안과의 사랑은 가짜고 서래와의 사랑만이 진짜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순진한 견해는 바로 그 '진정한' 사랑의 대상, 서래의 대사를 통해서 반박된다: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극의 전반부가 종료될 즈음, 해준은 서래의 '진짜' 동기를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가 그녀에게 다그치자, 서래는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수사의 종결로 이어지듯,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라는 분석은 "우리 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든다. 해석된 기의는 기표를 무화시키는 것이다.

해준이 할머니의 스마트폰을 둘러보며 '사용하지 않는 앱은 종료하셔야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도구(기표)가 하나의 목적(기의)만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다시 만난 서래에게 그는 이포에 온 의도를 묻는다. 여기서 해준이 몰랐던 그리고 영화가 마침내 보여주는 진실은, (하나의 기의에 여러 개의 기표가 있다는 상식과 달리)하나의 기표에도 여러 개의 기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단일한' 행동에 복합적인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서래는 왜 이포에 왔을까. 남편을 죽이기 위해서일까, 해준을 만나기 위해서일까. 둘 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해준과 마지막 통화를 하며 서래는 다소 장황한 대사("당신이 나를 사랑하나고 말을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나게 되었고 당신이 사랑이 끝이 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를 중국어로 말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관객에게는 자막으로 전달되지만)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한국어로 말해달라고 요구한다(해준에게 중국어란 한국어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또다른 기표가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되어야 할 타자의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번역해주지 않고 다른 말을 전한다. 서래의 언어는 해석되지 않기에, 기의에 소멸되지 않은 기표로 남는다. 수많은 미결 사건들 때문에 그가 잠들지 못하듯이, 해준은 침몰되지 않는 감정들 사이에서 표류한다. 종료되지 않은 앱들이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소모시키듯이, 번역되지 않는 고백은 그의 내면을 잠식한다. 양가성-당신의 마음을 갖고 싶은 만큼이나 당신의 심장을 갖고 싶은 것,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당신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 사랑과 그 언어의 존재 방식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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