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총(한국경영자총연합회)과 재계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파업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불법“파업을 조장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라며 시대를 역행하는 사회주의 법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경총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프랑스의 입법 사례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프랑스 하원은 1982년 ‘노동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를 채택,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집단적 노동분쟁 시 발생한 손해배상에 관해선 사용자가 어떠한 소송도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곧바로 위헌 판결을 내렸는데 “프랑스법은 사법상의 자연인·법인의 민사적 귀책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그 귀책행위의 중대성에 관계없이 모두 면책하는 제도를 어떤 분야에서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 가 그 이유였다.
그럼 정말 경총의 말대로 우리들에게 노동권 선진국으로 알려진 프랑스가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독려하고 조장하고 있는걸까?
먼저 파업의 개념을 알아보자.
파업이란 무엇인가? 어렵게 말하면 ‘노동의 부작위’라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하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에는 파업뿐 아니라 무단결근도 있다. 개념상으로만 볼 때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무단결근을 하면 그것이 곧 파업이다. 사적인 이유로 무단결근을 하면 징계 사유가 되지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서 무단결근을 하면 파업권 행사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는 파업권이 폭넓게 인정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사업장의 근로조건만 뿐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등 국가정책이나 정리해고 등 경영상의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목적이 ‘직업적 요구’라면 정당한 쟁의로 본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벌이는 쟁의도 정당한 쟁의에 포함된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청에 대한 하청노동자의 쟁의, 정리해고 등 경영상 결정에 대한 쟁의는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대비된다.
노조가 주도한 쟁의만 인정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노조가 주도하지 않아도, 노조 없이 해도 ‘직업적 요구’에 관한 것이면 정당한 쟁의로 본다. 파업권을 ‘개인의 권리’로 보기 때문이다. 파업권은 단체협약으로 제한할 수 없다. 오직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거의 없다.
프랑스 대법원은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선 3가지 요건을 지켜야한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첫째, 파업이 아니라 폭력이나 파괴 등 그 자체로 불법인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둘째, 파업권의 행사, 곧 단순한 노동의 부작위로 인한 손해가 아닌 다른 손해가 있었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셋째,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법원은 안타깝게도 프랑스 대법원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른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산정할 때 그 비교 대상은 무엇인가? 파업이 없는 상태인가, 아니면 파업이 적법한 상태인가? 예를 들어, 파업이 없는 경우에 손해가 ‘0’이고, 합법 파업의 경우에 손해가 ‘70’이며, 불법 파업의 경우에 손해가 ‘80’이라고 하자.
법원은 파업이 없는 경우인 0을 기준으로 삼아 80의 손해 전체를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로 보고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합법 파업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손해 70까지도 모두 배상하라는 것이어서 파업 그 자체를 처벌하는 것과 같다. 이는 파업을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법원이 파업 자체를 회사의 손실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같은 참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파업이 대부분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정당한 노동쟁의가 아니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문제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법원은 이 또한 이렇게 얘기한다.
“가령 법원의 판단대로 그 목적이 정당하지 아니한 파업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노동의 부작위’라고 하는 파업의 속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비교해보면, 파업의 목적만 다를 뿐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상태는 똑같다.
일을 하지 않는 상태, 즉 노동의 부작위라고 하는 바로 그 상태가 두 경우 모두에서 파업권으로 보호되는 것이다. 그 부분은 헌법상 권리이므로 위법이 아니다. 그 영역에서 발생하는 손해, 즉 순수하게 노동의 부작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불법 파업’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불법 파업 안에서도 파업은 합법이기 때문이다. ‘파업’과 ‘파업이 아닌 불법행위’로 구별해야 한다.”
프랑스의 대법원은 ‘불법 파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불법 파업이란 ‘불법+파업’인데, 파업은 권리이므로 손해배상은 ‘불법’에 대해서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영국은 어떨까?
영국은 노조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것도 노조 규모에 따라 상한액이 정해져 있다. 조합원 수가 5000명 미만이면 1000파운드(1500여만원)이다. 10만명 이상이라고 해도 25만파운드(4억여원)가 최대치다(2014년 기준).
견제는 해도 와해시키진 않는다
다른 나라의 사용자들도 노조를 견제하고 쟁의를 제압하려 한다. 노동자들이 손해를 배상하거나 과격한 행위로 처벌받기도 한다. 때로는 직장도 잃는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손배폭탄’을 맞아 평생을 저당잡히지는 않는다. 노무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지도 않는다. 노조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다 따랐더라도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했고(전격성) 사측 손실이 클 경우(중대한 손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조경배 순천향대학교 법대 교수는 지난달 18일 ‘대우조선해양하청투쟁과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에 관한 국회토론회에서 “오늘날 군인, 경찰 등 직무의 성격상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특수 직역을 제외하고는 평화적인 쟁의수단인 파업 자체에 대해 형벌을 직접 적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며 “파업이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을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더 나은 이유는 이해관계의 다양성과 대립을 인정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노동조합과 파업에 대한 태도는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파업은 가장 대표적인 단체행동권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노동자들이 파업권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조건이 확보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 파업’이라 낙인찍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또 그것이 손쉽게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때, 반세기도 더 전에 국내외에서 천명되었던 ‘사회정의’의 원칙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파업이 권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프랑스처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파업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여러 규정들은 파업을 ‘권리’가 아니라 일종의 ‘범죄’라고 보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 파업이 권리라면 그것을 고무하고 촉진하지는 못할망정 족쇄를 채워서 법전 속에 죽은 언어로 가둬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더 이상 경총과 재계는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
진지하게 경고하는 바이다.
노란봉투법은 보수적인 한국 사법부에 가이드를 마련해주는 파업권리 보장법이다. 위헌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 된 파업의 권리를 판사들에게 상기시켜주는 법이므로 위헌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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