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으으으읍..........."
머리가 아프다.
정말로 머리가 아프다.
"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로나...... 총학생회에 나 오늘 하루만 쉰다고 이야기해줄래?"
급작스러운 편두통 때문에 드러누운 선생의 말에 아로나는 즉답했다.
"네,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구호기사단 쪽에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이거 그냥 피곤해서 그래, 한숨 자면 낫기는 할 텐데........"
문제는 머리가 아파서 잠들기도 힘들다.
"누가 날 한 대 쳐서 기절시켜주면 편하고 좋을 텐데........"
그런 생각까지 할 만큼 머리가 아팠다.
그때였다.
"빠밤빠밤!"
아리스의 소리를 들은 선생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리스, 왔니?"
"선생님? 디버프 포션을 맞은 것입니까?"
"으응.. 선생은 <두통> 상태이상에 걸렸단다. 그래서 휴식을 취해서 디버프를 해제할 생각이야."
"그렇습니까?"
"아, 아리스."
"네?"
"퀘스트를 하나 부여하겠다. 지하 가보면 크래프트 챔버란 게 있을 거야. 거기서 지금쯤 뭐 하나 나왔을 텐데 먹을 거면 그냥 너 먹고, 아니면 가져와서 탁자에 좀 놔주렴?"
"빠밤빠밤! 아리스는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아리스 출동합니다!"
아리스가 나간 뒤, 선생은 끙끙 소리를 내며 앓다가 죽은 듯이 잠들었다.
*
"아리스? 너 오늘 당번 아니었어?"
유우카의 말에 아리스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선생님의 퀘스트입니다! 지하에 있는 크래프트 챔버에 가서 완성된 걸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만약 먹을 거 나왔으면 먹어도 되지만 못 먹는 거면 가져와서 사무실에 두라고 하십니다!"
"선생님이 사무실에 안 계셔?"
"선생님은 두통 상태이상에 걸려서 침대에서 휴식 중이십니다!"
"심하신가 보네......... 그럼 오늘 일은 쉬시려나?"
사실 쉬는 게 맞다.
"그나저나 크래프트 챔버인가요?"
이로하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는 봤는데 실물을 본 적은 없죠. 총학생회장의 오파츠랬나......"
"선생님이 가끔 투덜거리면서 하는 말씀으로는 요즘 이상한 게 자꾸 튀어나온다고 하시던데... 혹시 모르니 아리스 따라가 봐야겠다."
학생들 여럿이 몰려다니는 건 그것만으로도 할일 없이 카페에 모여 있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몇몇 학생들이 아리스의 파티에 일행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빠밤빠밤! 최종장 보스가 있을 법한 문입니다!"
"저게 크래프트 챔버인가 보네요."
"어디보자, 이걸 이렇게 여는 건가?"
크래프트 챔버가 열린 순간, 마치 슬롯머신 터져나오듯이 뭔가가 쏟아졌다.
"뭐, 뭐야? 엄마야!"
"앗 따가!"
"어후, 고장난 것 같다더니 진짜 고장이었구나."
잠시 아우성이 터져나온 뒤, 아리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체를 집었다.
"빠밤빠밤! 아리스는 반지를 획득했다!"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쏙 끼운 아리스는 헤헤 웃었다.
"우와! 딱 맞습니다!"
"이게 뭐야......."
방금 반지가 쏟아져나온 곳을 들여다본 유우카는 뭔가 종이들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스테이플러로 고정된 종이 서류 비슷한 것, 왜인지 모르게 처리해야 하는 서류일 것 같아 뽑은 그것은.......
<혼인신고서>
"에에? 에에에에에에에에?"
"유우카, 무슨 일인가요?"
"혼인.....신고서?"
"우와! 선생님의 이름과 사인이 있습니다!"
"신부 이름은...... 공란이네요?"
"자자자자자자잠깐, 잠깐, 이거 크래프트 챔버에서 나온 거야?"
"크래프트 챔버가 어떤 원리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신부 이름이 공란이란 것에 마음이 놓인, 혹은 새로운 욕심이 생긴 학생들이 서로를 경게하면서 돌려보던 와중,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이거 늘어납니다!"
"??????"
아리스가 터치스크린을 만지듯 신부 이름란을 슬라이드하자 신부 이름 칸이 주르륵 늘어났다.
이제 신랑은 하나인데 신부 이름이 넷인 요상한 혼인신고서가 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서 신부 서명란도 늘어나 있었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학생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뭐야?"
"신부 이름칸이 늘어났어."
"이거.... 종이가 아니라 플랙서블 디스플레이 아냐?"
"스마트 페이퍼였나? 그거일지도......."
"아리스! 더 해봐!"
"네!"
아리스가 슬슬 손가락을 움직이자, 종이의 끝까지 채우고도 뒷장으로 넘어갈 정도로 신부 이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다들 멈춰봐! 이게 뭔지 알고 만지는 거야? 이거 폭탄이나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유우카가 학생들을 말리면서 혼인신고서를 확 뺏어들었다.
"애초에 이거 양식도 좀 다르고! 내용부터 꼼꼼히 읽어봐야지!"
"그럼 유우카 씨가 낭독해보는 건 어때요?"
"내.... 내가?"
"네."
이미 소리를 너무 시끄럽게 질러대고 몇몇 학생이 SNS에 촬영해 올리는 바람에 지하실은 점점 발디딜 틈도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나가자, 여긴 너무 좁아. 카페에 가서 읽을 테니까...... 다들 길 좀 터봐!"
*
"혼인신고서...... 신랑........ 신부......... 신랑과 신부의 혼인관계 성립........"
유우카가 낭독한다고는 해도 내용 자체는 별게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짧은 문장을 빼고.
"신부가 서명한 뒤 제출하기만 하면 한 명이든 여럿이든, 성인이든 미성년자든 간에 확실하게 호적에 올려드립니다?"
"........?"
"............!"
"!!!!!"
학생들의 눈이 점점 사냥감을 보는 사냥꾼의 눈빛으로 변해가는 걸 인지한 유우카는 급히 나머지를 읽었다.
"다만 억지로 서명하게 하거나 도장을 훔쳐와서 찍는 행위는 인정되지 않으며, 신부 측이 서명하려면 신랑의 암묵적/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신부가 신랑의 동의를 받으면 신부의 이름란이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동의...... 동의라......"
학생들은 조용히 서로를 돌아보았다.
물론 당장 달려들어서 자기 이름을 적고 서명까지 해버리고 싶은 학생들이야 넘쳐났다. 당장 유우카 본인조차도 당장 저 첫 번째 공란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견디는 판인데 누군들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것.
신랑의 동의.
어차피 선생의 서명은 이미 되어 있으니만큼 전자의 문제는 상관없지만 선생의 암묵적 동의든 명시적 동의든 받아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이..... 일단!"
유우카가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 타협안을 내놓았다.
"이 종이는 여기 놔두겠어, 어차피 선생님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건 그냥 종이 쪼가리야, 다들 인정하지?"
모두가 침묵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솔직히 선생이 학생들이 결혼하자고 덤벼들 때 OK를 할 사람인가?
"어........ 음..... 지금은 몸도 안 좋으시고 피곤하셔서 주무신다니까 괜히 깨우지 말자고, 응?"
선생님의 건강이 우선이다. 이 대전제에 반박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제서야 조금 분위기가 식은 걸 느낀 유우카는 벽에 종이를 걸어두었다.
"누구든 간에 선생님에게 동의를 받아내면 와서 서명할 수 있도록 놔둘 거야. 그래야 공평하지, 다들 동의하지?"
누구든 간에 선생님에게 고백을 받은 학생이, 혹은 고백해서 OK를 받은 학생이 승리한다. 다들 동의할 만한 말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미 그들 모두는 선생님이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게 할, 혹은 결혼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OK를 하게 만들 상황을 궁리하고 있었다.
*
다음 날.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은 밀레니엄으로 향했다.
"빠밤빠밤! 아리스는 선생님을 발견했다!"
"아리스, 어제는 잘 들어갔어?"
"네! 유우카와 노아가 데리러 와 주었습니다!"
"그래?"
"오늘은 신작 게임을 하는 중인 것입니다!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해주는 것입니다!"
"뭐...... 뭐?"
"결혼을 하면 스킬 상승 속도가 15% 늘어나는 것입니다!"
"아."
게임 얘기였구나.
그 말에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줄게."
짙은 눈웃음을 짓고 있어 보이지 않던 아리스의 눈이 그때 살짝 떠졌다. 그 눈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케이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작전 성공.'
---
다른 학생들도 써볼 생각인데 너무 길어져서 짤랐음.
아무튼 선생이 어떤 정황이든 간에 결혼해주세요! 하는 말에 긍정적 대답을 하면 조건 성립임.
즉 센남은 또 속았습니다.
다음화 : 소설)선생님! 잠깐 결혼해주세요! - 01 - 블루 아카이브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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