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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잊혀진 나의 <느린 여름>앱에서 작성

고미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07 23: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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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3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떠오르는 건 수능 날의 흐릿한 정경이다. 허술해 빠진 기억에 어울릴 만한 허술한 경관들. 허술하게 즐겁고, 허술하게 힘들고, 허술하게 슬펐던 나의 19살. 그리고 그런 허술함의 결말로서의 유달리 추웠던 11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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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허술함은 결국 하나의 기억법에 지니지 않는다. 이후 누구나 그렇듯 대학에 합격하고 대학생활을 영위한 평범한 남성의 기억법. 길고 짧은 수험생활을 보낸 그 누구라도, 대학에 붙기만 한다면 더 냉정하고도 또렷한 현실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부질없던 우리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서서히 희미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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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다는 말의 내면 속에는, 결국 그런 자신에 대한 자조가 배여있다. 수능이라는 바보같은 성인식을 치룰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자조. 나아가 지금의 삶과는 멀찍히 동떨어진 채, 분위기에 막연히 발 맞춰 나아갔던 학창시절에 대한 야릇한 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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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박찬옥의 <느린 여름>은 그 허술한 기억 속에서도 가장 허술할, 수능을 100일 앞둔 어느 여름날의 수험생을 관조한다. 의미없이 진득하게 늘어져만 가는 나날들. 수능이 주는 긴장감도 사그라저만 가고, 고개를 내민 권태에 그저 몸을 맡겨버린 19살의 여름날. 세상이 왜 이렇게 허술한 걸까? 질문을 던질 법도 하지만 그러기엔 질문을 던질 화자조차 그저 허술할 따름이다. 그는 자신이 주유소 아이들처럼 반항적인 삶의 형태를 영위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 모든 낮간지러운 현실을 못본 채하고서 공부에 열중할만한 자질도 못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의 허술한 하루를 허술하게 감싸고 있는 그 낭낭한 무기력함만을 간신히 이어나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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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로지 그 허술함에만 온전히 초점을 맞춘다. 문제의식도, 고통도, 슬픔도 그저 허술해보이기만하는 어느 여름날. 늘어지는 음악에 맞춰 카메라는 파리처럼 교실을 돌아다닌다. 뒤이어 이어지는 허술한 집안 풍경과 허술한 나래이션. 허술한 반찬들에 어울리는 허술한 가족들의 대사들. 허술한 여름의 지하철, 허술한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 허술한 낮잠에 어울리는 허술한 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허술하게 끝맺어버리는 허술하게 희망찬 신해철의 노래까지.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오로지 그 허술함에 기대어 연결되어있다. 짐짓 무의미해보이는 씬들도, 혹은 무언가 더 나아가야만 할 모습들도, 향해있는 것은 허술함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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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잊혀진 어느 허술한 나날을 기억하는 가장 정당한 방법은, <느린 여름>이 그러하듯 결국 그 모든 것을 허술한 채로만 남겨두는 것이다. 어쨌든 그 시기가 결코 이어지지 않을, 딱 백 일만 기다리면 언제 그랬냐는듯 흐릿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너무도 잘 아는 이십대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어떠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거나 거창한 감정을 덧데는 미련한 짓은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생체기를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여남은 미련이 도사린다면 , 그 허술했던 우리의 <느린 여름>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자. 그 앳된 허술함만을 하염없이 덧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당한 대처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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