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홍상수 영화를 연속해서 보다보면 90년대 홍콩 영화가 떠오른다. (이를테면 주성치와 오맹달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김의성, 기주봉처럼 같이 작품활동을 했던 배우를 자꾸 쓴다는 뜻인데, 마치 잊혀진 자아를 소환하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의 나 같은 잊어버린 나에 대한 기억이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니체

또 다시 주인공인 영화감독 성준(유준상 분)은 아는 형을 만나러 북촌에 간다.

전에 잠깐 작품을 같이 했던 여배우(<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조), 영화판에 막 발을 디딘 젊은이들(정봉!)을 만나고,

예전에 가출까지 했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쳐 가정을 선택하여 헤어진 애인(김보경 분)을 만난다.

선배(김상중 분)를 만나게 된 성준은 그가 호감있는 동료 여교수(송선미 분)와 소설이란 술집에 가는데,

여교수는 술자리에서 20분 만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넷이나 만났다고 놀라하고 이에 대해 성준은 우연과 필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3종인식을 이야기한 스피노자 철학을 연상케 한다.

(이전 글 참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ightnow_wrongthen&no=31&_rk=tDL&page=1)

이 술자리의 말미에서 헤어진 애인과 닮은 술집 여사장(김보경 분)과 몰래 키스를 나눈다.

사실 여교수도 노골적인 호감을 성준에게 보이지만 애써 외면한다. (선배와의 최소한의 의리 때문인가?)

홍상수 특유의 차이와 반복,

다시 성준은 선배, 여교수, 그리고 그의 예전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중원(김의성 분)와 술자리를 갖는데,

중원은 양 극단을 짚어주면 어떤 여자든 먹힐 거라고 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강단있어 보이지만, 속은 여려요."

그런데 이 화법은 사실 홍상수 그 자체이다.(이를테면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정직과 순수를 논하는 초반 씬)

또다시 술집주인과 키스하고 잠자리를 갖는 성준.

세 가지 실천(좋은 사람을 많이, 술은 적당히, 일기는 매일)을 여사장에게 부탁하고 연락처 없이 헤어진다.

고통을 반복할 자신이 없어서.

영화 말미에 그는 영화제작자(기주봉 분)을 만난다. 그리고 영화음악 감독도 만난다.

체호프의 권총은 발사되었다.(여교수의 이야기)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홍상수는 지난 모든 영화를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억압하는 불륜이라 불리는 사랑에 대해 비난하는게 얼마나 촌스러운지,

사랑의 본질은 순수하다고.

그런데 벽은 순수함으로 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