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퍼케이스.
비주얼노벨 하면 미연시만 계속 해보던 내가 해 본, 첫 번째 추리 장르 비주얼노벨.
역전재판에서도 이의있음밖에 모르는 순백의 뇌가 후기를 써서 올립니다.
1. 초능력이 판치는 세상에서의 절묘한 추리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초능력으로 인해 생겨나는 기묘한 사건들을 초능력으로 푸는데, 그 과정을 얼렁뚱땅 해놓지 않았다는 걸 꼽고 싶다.
우선 관리국의 통제라는 이름 아래에 모든 스테퍼들은 관리카드를 받는데, 여기서 초능력, 즉 스킬의 영향 범위와 한계가 처음부터 정해져서 나온다. 이 때문에 사건을 풀어나갈 때도 각성 등으로 뜬금없이 일이 엎어지는 경우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카드 안에 적힌 범위 안에서만 흘러가지. 스킬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더라도, 관리카드를 보고 정리할 수 있어서 참으로 편안했다.

또한 우리의 마나사건 전담반 멤버들의 스킬들도, 능력 자체는 뛰어나되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단서만 던지도록 밸런스 조절이 잘 되어있다. 예를 들어 테나와 브리안은 각각 거짓말 탐지기와 CCTV보다 사실은 조금 더 나은 수준이려나. 파니는 사이코메트리라는 씹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시각 정보가 보이지 않으며 사람에게는 못 쓴다는 식으로 적절하게 제한을 걸어 줬고.
이 때문에 초능력으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초능력으로 단서를 얻어서, “플레이어가 추리를 하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는 절묘한 선이 지켜졌다. 범죄 현장이나 범죄 트릭이 죄다 비현실적인지라 사건 자체도 흥미로운데, 이러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납득이 가게 풀어가는 게 참 인상적이었음.
비록 내가 주체적으로 추리를 한 건 1, 2장뿐이고, 3, 4장에선 힌트 보고 찍기신공을 쓰긴 했다. 그래도 찍기라도 해서 맞추면,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 재밌었지. 덤으로 4장은 후반까지 하면서 이게 그렇게 다른 장에 비해 빨릴 만한가 싶었지만, 후반부에 뒤통수를 세게 맞고 납득을 해버렸다. 넋이 나갔음.
2. 비주얼노벨스러운, 꽤 여운 있는 이야기
이 게임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와중에도 마나사건 전담반 멤버들의 성격이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깨알같이 넣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5장을 풀어나가는데, 5장의 이야기는 참 재밌었다. 왜냐? 4장까지 보면서 멤버들에 대하여 눈에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에.
이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캐릭은 다름아닌 테나였다. 이유야 간단했지. 개그캐니까.
이렇게 테나가 끊임없이 고통받는 모습에 낄낄대다 보니,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을 파봐야겠다 싶었다. 1장부터 4장까지 보면서 멤버들의 깨알같은 이야기를 꼼꼼히 챙겨봤지. 확실히 마나사건 전담반 멤버들은 하나같이 괴짜같으면서도 호감가는 구석이 있더라. 2차창작을 퍼먹고 싶어졌던 게 그야말로 얼마만인지.
재미가 뭐 별거 있나? 내가 알고 싶은 애들의 이야기를, TMI스럽지 않게 짜맞춰서 술술 풀어나갔기에 생겼다 봄. 게다가 1~4장의 사건도 잘 엮어서 섞은 탓에, 하이라이트 및 엔딩크레딧 때 여운이 참 깊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면 스포일러니까 말을 아낄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추리 파트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는 것 정도? 3, 4장에서 찍기신공을 썼다 했건만 찍고 나서 나오는 추리를 이해는 했는데, 5장에서는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이해 못했는데 노트는 급발진을 하고 범인은 술술 불고. 그나마 5장이 추리의 비중이 적어서 망정이었구나 싶다.
그리고 대놓고 후속작을 노린 떡밥이 자꾸 나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어떤 이야기든지 깔끔하게 끝나는 게 내 취향이니까. 물론 마나사건 전담반과 관련된 큰 이야기는 얼추 적절하게 끊어서 다행이었다. 나머지는 후속작 때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지켜봐야겠지 싶고.
3. 고풍스런 분위기, 중간 이상은 간 편의성
그림들은 확실히 고전적인 느낌이 나게 잘 꾸민 것 같다. 캐릭터들의 스탠딩CG도, 배경도 색깔 톤을 고풍스럽게 맞춰서, 다른 비주얼노벨과는 다른 꽤나 독특한 느낌을 살렸어. 배경음이야 두말할 필요 없고.
물론 그걸 활용해서 보여준 연출은, 인디겜답게 좀 허전하긴 했다. 브리안이 도리도리할 때도 CG가 왔다갔다, 테나가 쓰러질 때도 CG가 90도 회전…. 그래도 여기까지는 취향과 현실의 문제라 치자.
이벤트CG가 나올 적에 이름의 글씨체가 갑자기 바뀌는 게 아무리 봐도 이상함. 두 글씨체가 따로 놀아서 불-편해. 물론 옛날 캡처본에서는 본편에서도 위와 같은 딱딱한 글씨체를 썼던 걸로 보이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이 확실히 낫긴 하지. 근데 이왕이면 좀 통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기능에 있어서는 딱 게임에 필수적인 것만 있는 듯해서 허전했지만, 그래도 세이브로드를 지원 잘 해줘서 다행이었다. 분기점이 나올 즈음에 세이브를 딱 띄워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생각하고.
다만 이벤트CG나 배경음 같은 걸 다시 볼 수 있는 컬렉션 페이지가 없는 건 좀 아쉬웠다. 뭐 게임에 있어서 필수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내가 한 비주얼노벨 중 그런 게 없는 건 이게 처음이었던지라. 그래도 CG는 아트북 DLC를 사고, 배경음은 유튜브로 들으면 되는 등의 방법이 있긴 해서 다행이었다.
4. 마치며
앞에서 말했듯 연출이 좀 짜치고 글씨체가 갑자기 바뀌긴 해도,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아쉬운 점일 뿐임.
기본적으로 초능력이 얽힌 사건이 재밌으며, 이야기가 끝날 때에는 여운까지 남았으니까.
덤으로 이렇게 골때리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캐릭들까지 즐길 수 있었지. 비주얼노벨이란 장르를 알고 난 뒤 건진, 흔치 않은 알찬 작품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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