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법무무법인(로펌) 지평지성 사무실에는 로펌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동법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11월 대법관직을 퇴임한 김지형 지평지성 고문변호사가 지난해 12월 설립한 노동법연구소 '해밀'이다. 다음달 2일부터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제1회 해밀 아카데미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김 전 대법관을 16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해밀 아카데미는 '노동법 전문가 공동체' 설립을 목표로 기획된 노동법 전문가 양성교육과정이다. '노동법이 참다운 노동법이기 위해서는 노동의 문제가 있는 곳에 노동법이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노동분쟁은 다른 법률관계에 비해 집단적 대결 양상을 보입니다. 사회적으로 크나큰 손실이죠. 법률가들이 노동분쟁에 관여하는 것이 하나의 해소 방안이라고 생각했어요. 노사 양측을 대변할 수 있는 법률가들이 머리를 맞대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러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개설한 것이죠. 해밀 아카데미에는 김 전 대법관과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 최은배(47·사법연수원 22기)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김성수(41·24기) 수원지법 부장판사, 이미선(43·26기)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노동법 전문가들이 대거 강사로 참여한다. "인연의 소중함만으로 바쁜 와중에 선뜻 강사로 참여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80년대 후반만 해도 국내에 노동법 전문가들의 저변이 너무 좁았어요. 다행히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계십니다. 아카데미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노동법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해밀 아카데미 강좌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수강 신청 이틀 만에 정원 30명이 꽉 차버려 40명으로 인원을 조정했다. "계속 수강 신청이 들어오고 있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좀 더 넓은 강의실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찾기가 쉽지 않네요. 수강을 희망하는 법률가들이 많은 만큼, 본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하반기에 다시 아카데미를 개설하겠습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노동법 강좌 개설도 준비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노동자로서 어떠한 권리를 갖는지 배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교육과정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법학도들도 노동법을 접할 기회가 적은 현실입니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과 일반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노동법의 기초를 강의하는 교양강좌를 개설할 생각이에요. 현재는 교재를 계발하고 교과과정을 기획하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해밀은 앞으로 노동법 강연뿐만 아니라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 노동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노동인권포럼'과 '학술연구와 출간활동', '노동분야 공익소송 지원활동' 등도 펼쳐나갈 계획이다. 김 전 대법관은 '해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동법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포부를 내보였다. "해밀은 '비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새로 설립한 노동법연구소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하는 중에 대학생 딸이 추천해준 이름이죠. 우리사회의 노동법 관련 문제들은 관련 당사자들이 많이 예민해져 있고, 거칠게 진행되고 있는 측면이 있어요. 법률가들의 노동법 연구로 이같은 상황들을 극복해 노동법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의미에 딱 들어맞는 이름입니다." 김 전 대법관은 판사 시절부터 노동법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2011년 11월 퇴임 때 법률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법률가로서 남은 삶은 노동법연구에 매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적이 있었죠. 공론화를 통한 일종의 다짐이었죠. 지평지성이 그러한 뜻에 공감하면서 고문 변호사직을 제의했고, 연구소 공간은 물론 인력까지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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