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분명히 세상의 형태를 바꿔버린 거야!

2회차까지도 저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머리에 안 들어왔는데

3회차까지 가서야 이해가 됨

스가까지 같이 넣어서 생각해야 읽히는 대사였음

스가라는 캐릭터 개인의 서사는 요약하자면 '실패한 호다카 프로토타입'임

어렸을 때의 행동은 둘이 꽤나 비슷하지

막무가내로 도쿄로 올라와 온전한 자신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욕구

스가는 이미 잠깐이지만 성공했던 적도 있었음

생활수단인 K&A를 만들어내고, 삶의 목적으로 함께 지낼 아스카와 모카가 있는 가족까지

온전한 삶의 조건은 그럴듯하게 갖춰졌고 그대로 누리기만 하면 됐었음

아스카가 죽기 전까지는

스가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삶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거임

딸은 자기 곁에 둘 수 없고, 장모는 노골적으로 비합리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스가 부부에 대한 애착으로 나츠미가 같이 살아주고는 있지만

그래봤자 조카인 나츠미는 사랑을 담을 수 있는 동등한 인생의 동반자도 될 수 없고

아예 꾸역꾸역 삶을 버텨야 할 근거인 진짜 자식도 되어 줄 수 없는 애매한 애였지

어떻게 해도 스가의 상경은 이제는 성공으로 마무리할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되어버렸음

만족감도 없고 대책도 없지만 아픔만은 남은 일이라면

스가의 실패는 강력한 트라우마로서 평생에 걸쳐 남는거지

그렇게 어쨌든 사는 도중 호다카가 나타남

신세도 어릴 적의 자기와 비슷함

행동동기도 자기와 비슷함

히나를 자기 옆에 두고 싶다는 순정에 매달리는 것도

어릴 적의 스가와 똑같은 거임

어린 시절의 자신을 재현해내는 호다카를 보고 있어야 하는 스가도

현재 온전한 삶을 놓치지 않으려 바락바락 발버둥치는 호다카도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끝날 때까지 공통된 질문에 머리를 싸매야 했음

"내가 인생을 걸고 이루어내고 싶었던 기적은 단지 환상에서 끝날 수밖에 없는 건가?"

히나와 같이 다녔던 몇 주+보호관찰 기간 3년동안 히나는 호다카의 현실이 되지는 못했음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듣고 이야기를 하거나 만질 수도 없었는데 그정도면 히나가 점차

호다카의 생활에선 멀어지고 있던 게 맞지

히나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에서 호다카가 먼저 타키 할머니 집에 들렀잖음

거기서 할머니가

'뭐 원래대로 돌아간 것 뿐이고,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나는'이라고 말한 거 가지고

호다카가 곱씹었던 이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거라면 내가 그렇게 애썼던 시간들도 별 일 없이 사라지는 시간이 되는 건가?

히나를 만난 일은 내 세상의 형태를 바꿀 정도로 큰 일은 아니었다는 건가?"

스가가 사무소에서 호다카에게

"세상의 형태가 바뀐 거라고? 자기과시도 적당히 하셈"이라고 한 건

이미 스가는 그토록 노력해도 자신의 세상을 원하던 대로 바꾸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호다카 너도 그럴 수 있다면서 비꼰 거임

지금의 스가가 만족할 수 없는 결말이 환상으로 마무리되고

자신의 순정에 대한 의미와 보상을 못 찾아낸 것처럼

호다카도 히나를 찾아내는 과정이 본인 인생에 별다른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 거 아닐까

나는 또다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도쿄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릴 수밖에 없는

그 시절로 돌아간건가 하는 공허한 불안에 휩싸인 거지

그러다가 히나를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호다카는 그때 그 일들이 확실하게 의미있는 현실이었음을 확신한 거임

나는 "분명히" 저 아이를 내 의사로 선택했고

"분명히" 저 아이와 함께 내가 선택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고

그 선택들은 결코 얻은 게 없는 헛짓거리가 아니라

이제 호다카와 히나의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현실로 자리잡게 됨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환상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어린애가 아니라 으른으로 성장할 한 단계를 건넌 것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