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은 정말 어쩌다가 하게 됐다.

지금까지 해본 일이라고는 대부분이 단기 직종이었던 탓에 따로 길게 어디서 터전을 잡고 일해본 적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길어봐야 2개월 정도였기에, 어쩌다가 반 년을 채우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2.

사실 반 년 동안 배운 건 그렇게 많지 않다.

간단한 하이볼 제조 외에는 음료 제조에 손을 대지 않는다.

당연히 바에서 이것저것 알려주긴 하지만 이런 직종은 아예 해본 적이 없어서, 손이 빠르지 않아 급할 때 일 조진 게 몇 번 있어서

그 이후로 기물은 위스키같이 간단히 따르고 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것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 설거지도 포함하자. 사실 설거지 할 때 아니면 기물 만질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러쉬타임 때 퀄리티 조져서 내놓는 것보다야 아직 더 배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3.

의외로 진상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많이 없다.

이곳 저곳에서 괴담을 많이 들어서 처음 시작할 때에는 걱정이 좀 됐었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진상은 거의 없다. 있긴 있는데 좀 많이 더러운 이야기라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여튼 적어도 내가 본 손님들은 대부분 정중하고 겸손하다. 진상은 외려 평일에 찾아오는 것 같다.

매번 주말 시프트로만 뛰고 있는데, 한 주가 지나고 출근하면 참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4.

제일 공포스러운 건 마티니 잔이다.

바가 넓은 편이라 아무래도 트레이를 잡고 칵테일을 옮겨야 하는데, 마티니 잔은 손으로 잡고 있어도 이래저래 흔들리는 일이 많아서 영 불안하다.

솔직히 이건 반 년을 넘게 일했는데도 감이 안 잡힌다. 

잔의 스템이 거진 20cm는 넘는데 음료가 들어있는 5cm 내외의 그 자그마한 역삼각형 안에서 음료가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걸 보면 항상 발걸음이 느려진다.

보는 손님이나 사장님이나 불안하겠지만 별 수 있나. 그래도 마티니 잔이 예쁜데.

5.

사워류 칵테일 주문이 들어오면 여러모로 마음 속에서 한숨부터 나온다.

쉐이킹이야 뭐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설거지가 여러모로 진짜 답이 없다.

찬 물로 해도 답이 없는데 뜨거운 물로 하면 그 날 쉐이커를 대여섯 번은 닦아야 그 냄새가 지워진다.

언젠가 러쉬타임 때 그 쉐이커를 닦은 스펀지로 다른 잔들을 닦았다가 다른 잔들에서도 그 특유의 계란 비린내가 진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에서 일하면서 끔찍했던 기억 베스트 3 안에 들어가는 듯하다.

세 번째로 닦을 때 즈음에는 현타가 꽤 많이 오는데, 사워류 칵테일은 굉장히 인기가 많다.

15번째로 닦을 때 즈음에는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진다.

6. 

바에서 일하면서 배운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것까진 없는데, 적어도 내가 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다.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 많다.

손님으로서는 한 잔 한 잔에 출혈이 크니 그래도 꽤 벌지 않겠나 싶었는데,

새벽까지 일하고 마감 직전에 포스기 결산을 보면 여러모로 생각이 착잡해진다.

요즘은 가성비를 많이들 찾는다. 다만 가성비와 저렴을 혼동한 채 찾는 경우가 많다.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 많다.

7.

아무래도 과일 안주를 많이들 찾으신다.

물론 어쩌다 타이밍이 맞으면, 어떻게든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매번 과일을 구비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팔리리란 보장이 없으니 문제다.

매 주마다 식재료들을 버리는 걸 보고 있으면, 역시 아무래도 과일은 무리지 않나 싶다.

회전율이 잘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니.

8.

모든 업계가 그렇겠지만,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록 어두운 구석이 꽤 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애초에 말해서도 안 되는 게 많다.

입을 벌리면 벌릴 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