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너무 상냥했어요. 쓸데없이.

-우리 그냥 같이 이대로 죽어버릴까요.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선배는 애초부터 망가져있었어. 그래서 내가 좋아한 거고.

-그만하라는 말, 그 말 좀 그만할 수 없어요? 누가 보면 내가 좆나 대단한 일 벌인 거 같잖아. 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선배한테 나는 어떤 존재에요? 그냥 동정 받아야되는 존재? 불쌍한 애? 아니지. 선배가 나를 불쌍하다고 여기기는 해요? 선배한테 나는 그냥 귀찮은 애잖아요. 선배의 이미지 때문에 챙기기는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애. 그래서 선배, 어차피 귀찮은 애로 낙인 찍혀버렸으면, 차라리 아예 안 좋은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사랑해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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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술자리는 엉망이었다. 동기 중에 한명이 휴가를 나왔다는 명분으로 모인 술자리는, 자리를 옮길수록 말과 행동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네 번째 술집에서는 누구랑 누구랑 싸웠고, 마지막 술집에서는 신입생 한명이 울어재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우는 애 엉겨붙고 있고. 몇 놈은 같이 울고. 그래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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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기가 고역이었다. 하기야 어제 5시까지 술을 들이부었는데. 어영부영 학교는 왔는데, 수업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속이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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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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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제 그, 울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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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니지. 오늘 잘 들어가셨어요?

-어. 너희는, 집 잘 갔어?

-네. 승희 언니가 잘 챙겨줘서. 보시다시피.

-다행이네. 어제 먼저 가서 걱정했는데.

-그래요? 걱정되는데 왜 먼저 갔어요?

-먼저 갔으니까 걱정된 거지.

-그건 그렇네. 선배 근데, 어제 저 운거 알아요?

-울었어?

-네. 저 어제 펑펑 울었는데.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아무 말도 못할 정도로. 크게 울었는데. 몰랐어요? 그래서 어제 언니들이랑 선배들, 저 달래준다고 나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미안, 어제 좀 많이 취해서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럼 왜 울었는지도 모르시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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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집요할까, 얘는. 그리고 원래 자기가 울었다는 거 숨기려고 하지 않나. 남이 꺼내도 자기가 입을 막지는 못할망정, 굳이 못 봤다는 내게까지 말하려고 할까.

나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슬슬 정말 수업 들어가봐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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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었는지는 안 궁금해요?

-어.... 왜 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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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살짝 미소 짓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내게 시선을 거두고는 이내 강의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뭘까. 사람 무안하게. 내가 질문을 강요했으면 대답도 하고 가야지. 내 얼굴에 당혹감이 묻어나왔을까, 후배는 웃으며 다시금 내게 오더니 자기 휴대폰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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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선배 지금 별로 안 궁금하잖아요. 나중에 궁금할 때 말해줄래요. 그니까 번호 좀 주세요. 나 아직 선배 번호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