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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괴담] 밤나무가 많은 시골

이혁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6.27 00:00:36
조회 1098 추천 29 댓글 3
														

내가 어릴 때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시골에 사는 할머니 혹은 외할머니댁에 방문해야 하는 그런 집이었다.


친가 쪽도 엄청난 시골이었지만, 외가 쪽은 정말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만 한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지리산 중턱쯤에 있는 운룡마을이란 곳이다. 작은 마을이라서 아마 대부분은 들어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적당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 마을에 집이 여덟 채밖에 없고, 그 중 두 개는 폐가다. 나머지 여섯 채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최소 60세 이상이다.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는 도보로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주말을 통째로 날리는 게 싫었다.


그나마 9월이나 10월은 괜찮았다. 


특히 10월은 밤과 도토리가 제철인 계절이다. 나는 밤을 생으로 깨먹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때만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시기가 되면 부모님은 외할머니 집 뒷산으로 나를 데려가곤 했다.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는다고,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그렇다며 조심하라던 부모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묘비 있는 무덤도 있고 묘비 없는 무덤도 많은 그런 산이었는데, 그때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무덤 같은 건 산에 응당 몇 개쯤은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노인과 폐가가 많은 마을 근처 산의 특징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밤나무는 유독 무덤 근처에 많았다.


누가 심어 놓는 건가요, 라고 물어봤는데 엄마는 일부러 심은 게 아닐 거다, 라고 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자면 무덤가에는 사람들이 성묘니 뭐니 하면서 잡초를 다 뽑아내버리기 때문에 밤나무 같은 제대로 된 나무들이 자라기 쉬웠던 게 아닌가, 싶다.


버려진 무덤일지라도 버려지기 전까지는 관리되고 있었을 테고, 혹여나 시신을 묻자마자 버려졌다 한들 관을 파묻으려면 어쨌든 땅을 파고 잡초를 들어내야 하니까.


게다가 묻힌 시신이며 관은 썩으면서 좋은 비료가 될 터였다.


밤나무같이 열매를 맺는 나무들에게는 꼭 필요한 게 그런 유기물이다.




 

엄마는 밤을 잘 땄다.


긴 작대기를 나뭇가지에 대고 흔들면 밤송이가 땅으로 떨어진다.


가시투성이의 밤송이는 발로 밟아 까야 손을 다치지 않는다.


나는 그걸 배웠지만, 엄마는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했다.





무덤도 많았고 밤나무도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한번 뒷산에 나가면 꽤 큰 마대를 절반 넘게 채울 정도로 밤을 따오곤 했다.


밤따기는 주로 낮에 했지만 보름달이 뜬 날에는 밤에도 했다.


보름에는 달이 밝다. 시골이라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산 중턱이라 고도가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마을에서 달은 앞을 훤하게 비출 정도는 되었다.


가로등이 마을에 딱 두 개뿐이었다고 하면 믿을 텐가?





특이한 건, 보름날 딴 밤들은 우리가 안 먹었다는 거다.


밤송이를 까지도 않고 마대에 다 집어넣고는 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마을에 폐가가 두 개 정도 있다는 말을 기억하나?


그 밤송이는 전부 폐가로 갔다.


폐가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그냥 좀 쥐가 많고... 잡초가 길게 자란 마당은 뱀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바닥을 탁탁 치면서 다녀야 하는 것뿐이다.


보통은 구식 한옥에 슬레이트 지붕을 씌우고 알루미늄 인테리어를 하다 만 그런 집이다.


따온 밤송이를 집 구석구석에 뿌린다. 거실 비슷한 곳, 안방으로 추정되는 방, 부엌. 화장실은 안 뿌린다. 화장실이랑 마당 빼고 다.


왜 뿌리냐고? 나도 모른다. 그냥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밤나무가 무덤가에 많은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처럼, 이것도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진짜 잘 모르겠다. 이거 해본 사람 있으면 알려주길 바란다.







매번 그런 식으로 밤을 뿌려대니까 당연히 폐가 바닥은 밤 투성이다.


이것도 별로 신경 안 썼다. 밤송이가 쌓이면 쌓이는 대로 그 위에다가 뿌린다. 계속.


다 뿌리면 집에 가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내가 먹을 밤을 또 따러 가는 거다.


어제 밤새 땄던 밤은 생각도 안 하고.


생각해 보면 진짜 이상하지만.







그때 이유를 물어봤어야 했다. 이젠 시간이 너무 지났고, 5년 전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외할머니네나 운룡마을에 갈 일이 없었다. 밤 따기나 밤 뿌리기는 당연히 내 인생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은 고사하고 지리산 근처에 마지막으로 가본 지도 2년이 넘었다.


아마 마을의 모습은 예전이랑 별반 다르진 않을 듯하고, 폐가는 좀더 늘었을 거다. 외할머니네 집을 포함해서.


그 집도 밤투성이가 되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니지 않을까?


밤 따러 산을 오를 만한 젊은이가 마을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근데 또 모르지. 우리처럼 가끔 와서 밤 따는 자식손주나 친척들이 있을지도.






어쨌든, 우리 집은 그 이후로 밤을 먹지 않는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시판되는 밤은 별로 맛이 없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생밤은 더더욱 그렇다. 솔직히 진짜 차이가 심하다. 마트에서 파는 건 엄청 밍밍하다.


지금 오랜만에 생밤 몇 개를 까먹고 있는데, 그냥 옛날에 먹었던 밤이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본다.





말이 갑자기 샜네.


만약 산에서 갑자기 밤송이로 뒤덮인 마을이나 뭐 그런 게 튀어나와도 너무 놀라진 말고....


외진 산에서 폐가를 발견하면 밤 몇 개 주워다가 던져놔라.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게 문화라고 하고, 그렇게 배웠다. 


정확한 이유 알면 나도 알려주고. 어쨌든 밤 던져두셈.


근데 밤나무가 없다고 하진 마라. 있다. 무조건 있다.


폐가가 있는데 무덤이 없을 순 없고, 무덤이 있는데 밤나무가 없을 수는 없다.


낮에 땄으면 너도 몇 개 먹어도 된다.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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