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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팬대] 그대는 거짓말쟁이 아마노자쿠

잉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25 22: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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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에 커다란 달만이 외로이 주위를 밝히고 있습니다. 옆구리가 뚫린 채 기울어져가는 저 달을 보고 있자니 발하는 월광이 괜스레 애처롭게 느껴지고 또한 마음 한편이 시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달을 품은 새까만 호수의 수면을 무심한 가을 찬바람이 흔들고는 지나갑니다. 흔들리는 수면에서 점점 흐려지는 달빛에 마치 내 시야가 그러한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소매로 눈을 비벼댔습니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개를 듭니다. 쓸쓸히 떠있는 달은 흐려진 채로 저 위에 박혀 있었습니다. 가을바람이 하늘마저 흔들고 갔나 봅니다.


 

 그대가 나에게 온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대가 우리 소인족의 나라에 찾아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호소하는 눈빛과 목소리로 연신 강자들로부터 약자들을 해방해야 할 것을 소인들에게 외쳐댔지요. 그대의 연설은 우리들에게는 소란이었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공주로서 저는 그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호위무사를 끼고 태산같이 서 있는 그대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대는 저를 발견하고는 몸을 낮춰 그대의 얼굴이 보이도록 우리 소인족에게 맞췄습니다. 그러고는 오래 바라던 것을 찾아낸 사람과도 같이 격앙된 목소리로 저를 줄곧 찾았다고 말했죠. 호위무사들은 그대를 막아서며 저에게 이런 녀석과는 말을 나눌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대가 아마노자쿠인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보호하려는 자들을 거두며 그대와 대화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제가 아마노자쿠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대가 아마노자쿠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대가 굳이 소인족의 나라에까지 와서 약자들의 해방을 외치는 의도에 대해서 진즉에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저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죠. 소인족들은 귀가 밝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것들보다 땅의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기에 오뉴월의 장마처럼 내리는 큰 자들의 여러 뜬소문들에 쉬이 젖고는 합니다. 저 또한 그런 소인족이기에 그대가 하극상을 일으킬 위험분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저의 명령에 호위무사들은 경계를 늦췄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대에게 다가가자 그대는 이렇게 말했죠.


 “공주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날 이후로 그대는 저를 자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대를 자주 만나러 갔죠. 그대는 이 세상의 강자와 약자들의 위계의 부조리에 대해서 열렬히 떠들어댔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소인족의 나라에서 힘을 구하고자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라 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인족이라 하면 약자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소인족은 잇슨보시의 후예들이잖습니까? 오니를 쓰러뜨린 그 잇슨보시 말입니다. 무지한 소위 강자들은 소인족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겉모습만으로 소인족들을 약자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조리는 뒤집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주장은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충분히 동의를 할 만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었죠. 우선 소인족은 겉모습 때문에 약자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대가 말한 것처럼 부조리라 할 만큼 약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인족이 소위 강자들의 취급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외부로 세력을 펼치지 않는 것은 역사적으로 소인족들이 그들 스스로 외부와의 단절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소인족들이 그들만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저와 만날 때마다 자신의 말만 하는 그대에게서 저를 구슬리고 말겠다는 그대의 의도를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그 끝에 그대가 저에게서 무엇을 요구할 지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잇슨보시의 후예인 스쿠나 공주님이시여. 부디 하극상을 위해 요술망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궁중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소인족의 공주가 아마노자쿠에게 속아 요술망치를 빼돌릴 것이라는 소문이 말입니다. 궁중의 신하들은 저를 뜯어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노자쿠는 거짓말쟁이라고, 잇슨보시의 유물인 요술망치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걱정 마시오, 대신들. 이것은 소인족들의 지위상승을 위한 장대한 계획의 일환이며, 아마노자쿠와의 외교의 일환입니다. 한 국가의 공주로서 우리 종족의 이익을 위해 정사(政事)에 임하는 것일 뿐이오니 부디 염려는 마시오.”


 저는 이런 따위의 말들을 하며 신하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무난하게 요술망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죠. 하지만 신하들에게 한 저의 말들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대도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의 의도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제가 그대의 말을 따라줬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대는 그대가 저를 잘 설득시켰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그대를 따른 이유는 그대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공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대는 다른 종족 간에 있어 강자와 약자의 논리의 부조리함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종족과 종족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조리함은 한 종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소인족의 공주로서 우리 종족을 화합하고 다스릴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허울뿐인 권력이지요. 실질적인 권력은 다른 이들이 행사하고 있고, 저는 그저 국가의 얼굴마담으로서 꼭두각시 노릇만 했었죠. 저는 저의 힘으로 가난한 자 한 명조차 구제할 수 없었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은 그들의 위치를 유지하거나 더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싸움을 했고, 권력이 없는 자들은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권력가들의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죠. 저는 그런 소인족의 나라에 신물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대를 따라 소인족의 나라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은 이런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부조리함을 혐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요술망치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기적인 실세들의 무능함 덕분이었습니다. 마침 당시에 호시탐탐 저의 자리를 노리며 절대왕권을 꿈꾸던 세력들이 있었기에 눈엣가시인 제가 제 발로 이 나라를 떠나준다고 하니 그들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을 것입니다. 하! 그렇다고 잇슨보시의 유물인 요술망치를 가지고 나가는 것까지 눈감아주다니요! 얼마저 남아있지 않은 정치뿐인 나라에 인정 따위 느끼지 않을 만도 하지 않나요?

 


 그대를 따르기로 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그대와 함께하는 것은 그저 일탈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대에게 전부 동의했던 것도 아니었고, 요술망치를 그대에게 뺏길 것이라는 걱정조차 없었습니다. 그대도 요술망치에 대해서 잘 알고 저에게 접근했을 것입니다. 요술망치는 잇슨보시의 직계후손인 저만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을요. 그대는 저를 잘 구슬렸으니 요술망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됐을 거라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대의 속내를 다 알고 있었기에 그대의 뜻대로 이용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대와 어울려 다니다 불안한 낌새가 느껴지면 이 일탈을 그만둘 계획도 남몰래 세우고 있었답니다.

 


 요술망치를 처음 사용한 일이 기억납니다. 그대에게 요술망치의 마력을 시험해보겠다고 하며 저는 저의 몸을 크게 만들었죠. 그대를 살짝 올려다 볼 정도로 몸을 키웠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요술망치의 시험사용이었지만 그대와 따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언제라도 그대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대는 요술망치를 사용하고 난 뒤의 저의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보고만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대의 넋을 놓은 표정이 의아했지만 그대는 그러했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죠. 저는 단지 그대가 요술망치의 힘에 놀랐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 후에도 그대가 제게 요술망치의 사용을 계속하여 요구할 것이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대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다니며 어딘가 모르게 당황스러워하는 그대의 모습을 본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소인족의 나라를 빠져나오고 우리는 하극상의 계획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규칙을 어기고 세상의 균형을 어그러뜨리며 많은 이들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배덕감에 심장이 박동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대와의 생활은 저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죠. 그대와 저는 세상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위 강자들에 대한 첩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위험해질 것 같은 상황도 종종 있었으나 그대는 절대 저를 그런 상황에 노출시키는 일이 없었죠. 저는 홀로 있다가 그대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그대를 치료해주며 돌봐주는 것이 다반사였죠. 또한 어째선지 그대는 요술망치에 대한 이야기도 입 밖에 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대의 행동에 의문이 산더미였지만 애써 묻거나 그대에 대한 경계를 늦추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대는 거짓말쟁이 아마노자쿠이고, 동료를 도구로 아는 간사한 전략가일 테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그대의 의외의 모습을 목격하고 맙니다.

 


 하루는 우리가 어떤 숲속을 지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간악한 텐구들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약한 요괴들이 많다고 알려진 숲이었습니다. 유용한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것 같기에 우리는 숲을 빨리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어딘가에서 누군가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소리에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 저와는 달리 그대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뒤이어 그대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에서 저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요괴가 한쪽 발목에 덫이 걸린 채로 울부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는 그에게 급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대는 온힘을 다해 그의 발목을 물고 있던 덫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대의 치마 한 부분을 손으로 주욱 찢고는 부상을 입은 그 요괴의 발목에 꽁꽁 동여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함에 떨고 있는 작은 몸뚱어리를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여주며 안심시키는 그대의 모습은 자상해보였습니다. 반면에 그대의 표정은 분노에 가득 찬 채로 “텐구놈들 용서 못해!”라며 작게 되뇌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여태껏 제가 들어온 위험분자 아마노자쿠에 대한 소문은 무엇이었던 걸까요?

 


 “키진, 그대가 말하는 하극상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한 번 제가 그대에게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쉬이 대답하지 않았죠. 저는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키진, 그대의 하극상에 나를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자 그대가 입을 열었습니다.


 “공주님! 저는 아마노자쿠입니다! 원하는 것을 위해선 남을 속이는 것도 마다 않는 거짓말쟁이 아마노자쿠란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첩보를 수집하러 다니거나 강자들에게 당해 만신창이가 된 그대를 제가 돌봐주거나 강자들에게 당한 약한 요괴들을 구제해주는 등의 일의 반복이었죠. 이러한 생활 속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그대를 바라보는 저의 눈빛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의심과 불신으로 경계를 하던 눈빛은 많이 유순해져 어느새 그대를 연민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죠. 변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대 또한 언제나 무모하여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던 성격이 점점 저를 의지하기 시작하고 중요한 일은 함께 결정하려는 성격으로 변해갔습니다. 우리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서로를 의지하다 보니 서로에게 말 못할 애틋한 감정이 싹튼 것입니다.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강자들에게 당한 그대를 호숫가에서 제가 돌봐주고 있던 때였습니다. 차가운 달빛을 받으며 희미하게 보이는 그대의 알몸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상흔들이 빼곡했습니다. 신음을 하는 그대의 팔에 붕대를 감으며 그런 그대의 몸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공주님, 눈물을 거둬주시옵소서.”


 그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까칠해진 손을 들어 저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키진….”


 저는 누워있는 그대의 몸을 와락 끌어안고는 품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습니다. 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달빛을 받은 그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대의 표정은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보였습니다. 그런 표정을 보니 또다시 북받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서로 입을 맞추었습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었습니다. 뛰는 것이 저의 것이었는지 그대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뛰는 소리는 세상에서 벗어나 우리만이 온전히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안겨주었다는 것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래도록 초월적인 감각을 느낀 후에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대의 모습이 애틋하게 제 눈에 비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키진이여!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저는 그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대를 원했고, 늘 그대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대도 그러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공주님, 요술망치를 제게 주십시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기 시작한 초가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대는 저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요술망치에 대한 것이었죠. 충격이었습니다. 그 동안 요술망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입에 담지 않던 그대가 대뜸 요술망치를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크게 흔들리는 듯 했습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왜, 왜 이제 와서….”


 “저의 마지막 하극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쌓아온 우리의 유대감은 무엇이던 건가요? 우리의 사랑의 감정은 거짓이었던 건가요? 역시 그대의 목적은 요술망치였나요? 이 때 불현 듯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 자는 아마노자쿠였지, 거짓말을 일삼는….


 “하, 하지만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요술망치는 내가 다루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는 일개 나무망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저의 하극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 요술망치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괘씸했습니다. 대체 그대의 그 잘난 하극상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저를 속여 왔던 것인가요? 그대와 함께해 온 저는 이 한 낱 망치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가요? 그래서 저는 그대에게 요술망치를 건네주었습니다. 너무 충격이어서,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어차피 그대에게 그 망치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요술망치를 건네받은 그대는 제게 꾸벅 감사인사를 한 후 그렇게 멀어져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를 혼자 남겨 두고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를 떠나보내고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많이도 후회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화를 가라앉혔다면, 제가 그대에게 끝까지 요술망치를 주지 않았다면 그대는 저를 떠나지 않았을까요? 유달리 차가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

 


 삭을 향해 기울어진 달은 하루 그 모습을 어둠에 감췄다가 이윽고 다시 보름을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요술망치를 들고는 자취를 감춘 키진은 모습을 다시 드러낸 저 달과는 달리 여전히 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품속에 간직했던 편지를 꺼내어 한 번 읽고는 다시 고이 접어 품속에 넣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키진이 곁에 없는 동안 나는 키진과 함께 사랑을 나눴던 호숫가를 거점으로 두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키진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던 중에 여러 요괴들에게 이런저런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키진과 함께 첩보를 얻으러 다니던 방식대로 말이다. 개중에는 강한 요괴들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이나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가 가장 강하다는 것이나 서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각자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규칙이 생겼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키진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자에 대한 이야기만이 오가는 대화에 약한 아마노자쿠에 대한 이야기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중에 익숙한 이야기가 귀에 들려와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인족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인족의 나라에는 공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절대왕권을 주장하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권력을 쥔 그들은 과거의 세력을 처분하기 위해 소인족의 나라를 떠난 공주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공주를 특정하기로는 잇슨보시의 요술망치를 지니고 있는 소인족 여인이라든가 뭐라든가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소식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애초에 나는 소인족의 나라와 소인족에 대한 미련은 버린 지 오래였고 지금은 요술망치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강자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곳에서 듣게 되니 키진이 소인족을 약자의 대명사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또 한 번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동쪽 하늘에서 가득 찬 보름달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수에는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은 듯 수면은 푸르렀다. 오늘도 별다른 소득은 없는 하루였다. 나는 초롱에 불을 밝히고는 품속에서 종이와 붓을 꺼냈다. 어째선지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마음이 아려왔다. 붓을 쥔 손이 떨렸다. 보름달이 천정에 떠올랐다.


 “공주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 그녀였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키진!”


 나는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헤진 옷, 마른 몸, 그리고 까슬한 상처의 감촉을 온 신경으로 느끼며 그녀를 인식했다.


 “키진! 대체 무엇을 하고 온 것인가!”


 “공주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 하극상을 성공시키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키진은 투박해진 손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요술망치는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대신 가장 강한 요괴에게 더 이상 그 누구도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강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키진은 담담히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문득 키진이 말한 하극상은 진즉에 변질됐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그 하극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에 스치는 것이었다.


 “키진…. 새삼스럽지만 그대의 하극상은 무엇이 목적이었는가?”


 키진은 나의 물음에 기색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하였다.


 “공주님, 저는 원하는 것을 위해선 남을 속이는 것도 마다 않는 거짓말쟁이 아마노자쿠입니다. 심지어는 저마저도 속일 수 있사옵니다. 저의 하극상이 무엇이었는가 물으신다면 그건 저 자신을 뒤집는 것이라 말씀 드릴 수 있겠사옵니다.”


 아, 그랬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위험분자라고 알려진 자의 의외의 모습을 보고는 나의 마음은 크게 움직였었다. 상처 입는 것도 마다 않는 그녀의 신념을 보고는 나의 눈빛은 달라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렴 어떠하냐는 생각이다. 이제는 소인족의 나라도, 공주로서의 지위도, 강자와 약자의 부조리한 관계도, 요술망치도 다 나에게는 아무 상관없었다. 나한테는 나를 안고 있는 이 자만 곁에 있으면 됐다. 우리의 모습을 그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었다. 그녀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나야말로 진짜 아마노자쿠였는지도 모른다.



 “저…. 공주님….”


 키진은 검지로 볼을 긁으며 멋쩍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 저, 저를 성으로 말고 이름인 ‘세이자’로 불러주셨으면 하, 하옵니다…만….”


 예상도 하지 못한 부탁이었다. 그리고 너무 귀여운 부탁이었다. 그런 귀여운 부탁에 나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응! 세이자!”


 오늘밤은 호수에 비친 달이 눈부시도록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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