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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하얀 결혼(3)

태지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1 21:28:37
조회 701 추천 14 댓글 4
														

1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6458

2편: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1168080


밥은 뭐가 좋을까?”

먹기 편한 게 최고지.”

카레 괜찮아?”

뼈에 새겨지는 맛이면 뭐든지.”


너는 냉장고를 열어 뭐가 있는지, 뭐가 없는지 체크하며 종이에 메모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너를 보고 있다 보면, 아직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 한 괴물이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것만 같다. 너는 내게 종이를 내밀고 나는 그걸 집어든 뒤 지름길로 향한다. 보통은 산책 겸 해서 너와 천천히 길을 걸어가지만 가끔 바쁠 땐 나 혼자 시장을 보러 간다.

필요한 건 당근, 감자, 브로콜리. 알뜰살뜰하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나와 파피루스가 얼마나 난잡하게 살았는지 질타를 받는다. 너는 남거나 부족함 없이 깔끔하게 냉장고에 식료품을 채워 넣었다. 저울로 재도 이렇게 섬세한 계량은 불가능할 테지. 감자를 집어 드는 내 위로 가느다란 눈빛이 따갑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야채가게 할머니는, 나를 보고도 그리 놀란 기색이 없는 인간 중 한 분이시다.


총각, 요즘 어떤고?”

다를 거 없죠.”


어르신 앞이라 농담을 하기가 미묘하게 껄끄럽다. 정말 뼈가 시리신 분들 앞에서 뼈에 대한 농담이라. 고약한 짓을 했다간 소문 퍼지는 속도가 인터넷보다 빠른 이 동네에서, 내 입지는 마당에서 우렁차게 짖는 멍멍이의 간식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총각은, 그 뭐시여? 몬스타? 그거라매?”

예에.”

새댁이 총각 많이 사랑하나벼.”


뼈에 닭살이 돋을 수도 있군. 손가락이 저리다.


총각이 거시기하단 건 아이지망, 거 사돈댁에서 을매나 놀랐겠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내미가 해골이랑 산다고 하믄.”

뭐 그렇죠.”


그 딸의 어머니가 염소라고 해봤자 얘기만 빙빙 꼬이겠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나는 어딜 가도 도둑놈 소리만 듣는다. 남들이 보기엔 그래 보일 테지. 참하고 어여쁜 여자를 덥썩 낚아챈 해골이라. 코미디언이 아니라 낚시꾼으로 전직해야하나.


그 새댁, 참 참하다잉. 총각은 복 받은 거시여. ?”


그 후로 이어진 할머니의 잡담에 적당히 맞장구 친 뒤 돌아온다. 어떤 어르신은 아직 내가 익숙지 않으셨는지, 안경을 벗으셨다 눈을 비비길 반복하신다. 그리고 내가 골목길을 돌 때 저 뒤에서 시방 해골이 걸어댕긴 거여?’라는 고함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영화처럼 사람 가죽이라도 뒤집어 써야하나.

노을빛에 물든 메타세콰이어를 바라본다. 지름길로 걷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너와 걷는 산책길로 온 것이다. 어디로 걷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버릇이란 건 참 무섭다. 수명이 지독히도 긴 나무들이 반듯하게 정렬을 이룬다. 꼿꼿하고, 매끄러우면서도, 어쩐지 인공적인 느낌도 묘하게 드는 나무다. 여러모로 너와 닮은 것이 많다. 무생물 같으면서도 사실은 살아있는 저 나무와, 너는 너무 지독하게 닮았다.

집에 도착한 뒤 사온 것들을 내민다. 너는 고맙다고 말하고 나는 찌개를 끓이는 너를 바라보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도마 위에 선다. 그리고 감자와 당근 따위의 껍질을 벗겨낸 뒤 하나하나 썰어낸다. 썩 예쁘진 않다. 너는 썰어진 재료들을 본 뒤 고맙다고 말하며 내 이마를 쓸어내린다. 밥을 짓기 위해 찬물에 적셔진 네 손이 이마를 쓸어내리고, 축축한 물기와 서늘한 물컹함이 뼈에 새겨진다.

따뜻한 식사에선 김이 피어오른다. 파피루스와 살적엔 그리 맛보기 어려운 만찬이었다. 서글프게도 파피루스는 요리를 못 했고, 나 또한 그의 형제라는 걸 입증하듯 요리에 대해선 그닥 뛰어나지 못 했으니. 적당히 맵고, 적당히 달고, 적당히 고소하다. 재료들이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남을 짓밟지 않는다. 레고를 조립한 듯 조금도 어긋나지 않은 균형.


후식으로 뭐 먹을래?”

케첩 코코아?”

설거지가 힘들 거야.”

농담이야. 케첩은 케첩대로, 코코아는 코코아대로가 좋지.”


그 외에는 특별한 말은 없다. 이 시골에 온 뒤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나는 멀찍이 떨어진 시장에 가서 핫도그를 파는 게 고작이고, 너는 자택근무를 하니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다음번엔 꽃도 사들고 가자.”


가끔 우리는 친구들이 사는 도시로 나가 그들과 만나고 온다. 그것으로 우리는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대부분의 만남이 자리한 도시에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 너는 왜 여기로 온 걸까.


여기서 안 심심해?”

오히려 좋아. 공기도 좋고, 밥도 맛있고.”

그리고 강아지가 많고?”


시골인지라 마당에 묶어 키우는 강아지가 많다. 아직 우리가 낯설어서 그런지, 대문 앞을 지날 때마다 듣는 우렁찬 목소리에 나를 보면 군침을 묘하게 흘리던 친구들을 절로 떠올린다.


도가미랑 도가레사 사이에 아기들이 태어났대.”

뼈가 움찔할 만큼 놀라운 이야기네.”


금슬이 좋았던 거에 비해 아이 소식이 없던 그들이었는데. 나름 경축할 일이군.


가기 전에 백화점에 들러서 아기 옷도 사고....”


너는 차근차근 며칠 뒤에 있을 도시 방문에 대해 계획을 세운다. 그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밥을 먹은 뒤, 내가 싱크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제작된 발판을 밟고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너는 케첩 한 컵과 코코아 한 컵을 탄 뒤 적당한 때 내놓는다. 우린 그것을 한 모금씩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지역방송을 본다. 시골이라 그런지 어르신들 취향에 딱 맞는, 우리는 알 턱이 없는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과 색감이 반짝인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빛이 나를 안락이란 사육으로 물들인다.


먼저 잘래?”

좀 더 볼게.”

그래, 졸리면 먼저 자고.”


너는 내 이마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케첩을 담은 컵은, 체온이 없는 괴물이 쥐었음에도 서서히 온기가 느껴졌다. 시골의 밤은 어둡기 짝이 없고 별은 유달리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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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날 때 쓰니까 진척이 매우매우 느린 문학.

그냥 그런 문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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