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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불살엔딩 에필로그

양말(183.104) 2016.03.08 11:52:19
조회 4385 추천 57 댓글 15
														


개인적으로 아스리엘은 좀 더 좋은 결말을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함..

사실 걸을 때마다 노란 꽃잎이 떨어지는 성녀님 모습이 예뻐보일것같아서 시작한 거지만 ㅎ 

난 융합체들은 

1. 같은 영혼의 의지를 주입받은 애들끼리 뭉쳤다

2. 녹은 애들은 융합한 영혼의 크기가 주입된 의지를 견딜 만 해지면 그대로 안정된다.

일 거라고 생각하고 썼음. 써놓고보니 진행에 별 필요는 없을 것도 같군.








*...프리스크


이게 끝이라고 말하지 말아줘. 


*나 대신 우리 엄마와 아빠를 잘 보살펴 줘. 알겠지?


나는 네 그런 말을 듣기 위해 널 부른(SAVE)게 아니었단 말야.


한 점으로 수렴된 세계가, 아스리엘 드리무어라는 개체로 압축되었던 세계가 다시 확산하는 그 눈부신 명멸의 순간. 모두의 영혼과 생각과 환성이 한데 뒤섞여 그저 내달려나가는 빛의 분류에 휩쓸렸던 우리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단어를 붙들었다.  


17번 기록


누락된 번호. 소각된 기록. 알피스의 연구소 지하. 스스로를 잊어버린 융합체들이 배회하는, 눈물이 얼어붙어 있던 연구소에서 우리가 얻어내지 못했던 마지막 조각이, 아마도 원래라면 절대로 얻을 수 없어야 할 조각이 지금 우리의 손에 들어왔다.


모두가 녹아 하나가 되어버렸다...


-


융합체들은, 어째서 녹아붙어버린 걸까? 가여운 알피스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와 그 뒤에 들이닥친 거대한 죄악감에 짓눌리느라 그 뒤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의가 해피엔딩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슬픈 현실에 부닥친 그녀는 감히 그 다음을 시도해 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실패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녀 또한 실패의 수렁에 반쯤 잠긴 채 멈추어 서는 것을 선택했고 모든 연구는 정지했다. 참담한 실패에 상처받아 그것을 목도할 수 없는 자들이 밟는 절차를 그대로 따른 그녀는 그녀의 연구기록물과 그 성과를 그녀의 연구소 지하와 그녀의 기억 뒤껸이라는,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어둡고 손 닿지 않는 곳에 은폐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지 못햇던 것이다. 왜, 녹아붙은 융합체들은 어째서 몇몇의 개체로 나뉘었는지. 왜, 녹아붙은 끝에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같은 것들을 감히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모두 다 신나서 떠나려는 것 같구나.


수십, 수백, 수천의 시간을 맺고 풀었다. 깨어진 결계의 파편에 석양이 맺혀 난만하는 이 한순간의 황혼을 맞이하려. 태동하지 않아 사그라질 수 없었던 수천의 밤이 마침내 웃음이 타는 저녁놀에 사위는 이 순간을 맞이하려.


*프리스크...

*넌 이 세계에서 왔지. 그렇지..?


그들을, 프리스크와 차라를 얽어매고 있던 강고하며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무수한 규칙들이 덧없는 낙조와 함께 녹아 사라져가는 이 때를, 사명과 역할에서 해방되는 이 순간을 맞이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돌아갈 곳이 있을 거야. 맞지?


그리움이 라일락색으로 옅게 녹아들어있는 목소리가 풀솜마냥 부드럽게 그들을 감쌌다. 폐허의 관리자는, 차라의 어머니였으며, 프리스크의 보호자였던 토리엘은 어쩔 수 없는 기대를 다시금 그들에게 살며시 뻗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은 기쁠 것이다.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보호자와 함께 지내는 것은 분명 기쁠 것이다. 하지만 뒤에 두고 온 것이 있었다.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어버릴 일 없을 소중한 것이 뒤에 홀로 남아있었다. 


"가야 할 곳이 있어요."


노을에 발그레하게 물들어 프리스크는 웃어보였다. 마침내 프리스크는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차라도, 프리스크를 따라 웃어보였다. 어린아이답게. 명랑하게. 앞에 펼쳐진 기나긴 여정의 끝이 행복과도 닮은 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아이들 특유의 웃음을.


*아...


그 그리운 웃음을 보고서 토리엘은 짧은 탄식을 흘리며, 마주웃어주었다.


*내가, 널 막으려던 게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부모라면, 부모라는 존재가 되었다면 얼마나 아쉽고 슬프더라도 언젠가는 자식을 품에서 놓아주어야만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토리엘은 몇 번의 비극을 넘어 다시 만난 자식의 잔영을 앞에 두고서야 마침내 도달한 것이다. 그 뒷모습을 기쁘게 송별하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라는 사실에.


*프리스크.

*..나중에 보자꾸나.


프리스크와 차라는 재회를 기약하는 그녀의 말에 그저 웃어보였고, 그 웃음을 본 그녀는 몸을 돌려 친구들이 바삐 뛰어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프리스크와 차라는 그녀의 모습이 산 아래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이제 나도 알지 못해."


그 자신의 눈동자보다 짙은, 가물어가는 황혼을 등진 채 차라가 속삭였다.


"나는 이제 네 안내자(Narrator)가 아니니까."


허공에 부유하는 프리스크의 안내자는 그럼에도 엷은 웃음을 입길에 띄워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허락받은 프리스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걸. 나도, 이제는 배우(Player)가 아니니까."


더이상 그들은 시간을 되감고 끊고 잇는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그것이 특권이었는지 형벌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프리스크와 차라는 이제는 세계와 함께 걸을 수 없다. 극은 이미 막을 내렸으니까. 프리스크와 차라는 그 맡은 배역을 충실하게 끝마쳤으니까. 


황혼의 모양을 한 커튼은 막을 내렸고, 이제 프리스크가 다룰 수 있는 것은 눈 앞에 보이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전부다. 아득한 옛날, 에봇 산에 빠끔히 뚫린 어둠에 몸을 내던지기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간다면 어머니를 다시 만나긴 아마도 좀 힘들겠지."

    

그러나 이것 외에 달리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 생명이 자신의 삶의 행보를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일 외에, 달리 바랄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혼나려나."


그것조차 기대된다는 듯 프리스크는 바람이 새는 듯한 웃음을 픽, 하고 흘렸다. 그 웃음을 본 차라도 시름없이 웃어보였다.


"...최대한 나중에 돌아가도록 하자. 어머니가 화내는 건 정말로 무서우니까."

"그러면, 먼저 다같이 별을 보러 갈까? 그때, 아스리엘은 별의 강을 보지 못했으니까."


수평선 너머로 잠겨들어가는 태양의 정 반대편, 아직 그 빛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달 아래 홀로 반짝이고 있는 샛별과도 닮은 금색의 눈동자가 천진한 웃음에 녹아든다. 실로 꿈 같은 말과 모습에 차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스리엘은, 아니, 플라위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지었던 샛노란 황금꽃은 다시 폐허에 홀로 피어있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맨 처음 떨어진 프리스크를 받아주느라 고개를 수그린 황금꽃들에 둘러싸여. 테두리에 기억이라는 차가운 격납고의 토대가 세워지기 시작한 체온의 잔상을 붙든 채. 별이 총총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득한 밤하늘을 향해 피어있었다.


간신히 끌어안을 수 있었던 꿈이, 희망이, 의지가 위로가 될 지 더한 불행의 전초로 다가올 지 플라위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나누었던 말에 느꼈던 기쁨이 조금 더 늦게 퇴색하기를.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손에 넣었던 마음으로 인해 깨달았던 죄과의 무게를 조금 더 오래 실감할 수 있기를. 


마지막에 받았던 용서가 드리운 눈물이 가능한 한 늦게 스러지기를.

끌어안아, 다독여 준 그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그런 소원들이 하나 둘 씩 꽃잎이 포개어지듯 차올라가는 폐허에,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돼.


돌바닥 위에 자박이는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는, 그 진동은 그것을 수없이 좇아갔던 플라위에게는 터무니없이 익숙한 소리였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프리스크..?


플라위가 지금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인물이, 프리스크가 끈기를 상징한다던 보라색의 문 앞에 숨을 할딱이며 서 있었다.


*영원히, 날 보지 않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했잖아...


다시금 감정을 잃어버렸다는데도, 아스리엘 본인이 그렇게 말한 것이니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일텐데도 프리스크에게, 그리고 차라에게 플라위의 목소리는 흡사 어린아이가 애써 울음을 참는 것처럼 들렸다. 


토리엘과 헤어진 곳에서부터 이곳에 오기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은 탓에 차오른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 프리스크는 재차 한달음에 프리스크가 끌어안는다면 한 품에 안겨들 황금꽃의 앞으로 뛰어갔다. 

  

*..왜 날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꽃의 위로 차라와 프리스크 둘 모두에게 그리운 얼굴이 벙그러지더니, 이내 슬픔으로 일그러진다.


*난 마음을 다시 모두에게 돌려줬어. 이제 난 다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사랑을 느낄 수 없어.

*네가 나를 사랑해준다고 해도, 나는 이제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해.. 되돌려줄수도 없어...


그 슬픔을 닦아내며 프리스크는 단언한다.


"네가 내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프리스크의 입을 빌어 차라도, 단언한다.


"우리가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웃으며. 조금의 미혹도 없이.


"...너와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


시작의 꽃밭에 다다라, 그리운 친구와 풍경을 보자 프리스크와 차라의 의지가 차오른다. 세계를 바꾸기에는 모자라지만, 앞의 소중한 친구의 눈물을 닦아내어주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의지가. 앞으로 이 손을 놓지 않으리라고 결심할 수 있을 정도의 의지가.


"그러니 부탁이야. 플라위."

"부탁이야 아스리엘."


찬연한 의지의 빛으로 차올라, 프리스크와 차라는 가여운 꽃을 끌어안았다.


"함께 가자."


무엇보다도 약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온기에 휘감겨, 꽃은, 아스리엘은 프리스크와 차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 마지막 기적이....


-


손톱보다도 작은, 샛노란 꽃잎이 발자국 위로 떨어졌다. 걸음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그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처럼 여명이 녹아든 꽃잎이 그 모든 것을 송축하듯 흩날린다.


"정말로 잘 될 줄은 몰랐는데.."

*차, 차라...?!

"오랜만이지 아스리엘. 내 앞에서 프리스크에게 했던 말들은 잘 들었어."

"뭐, 서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으니까..그것보다." 

"보고 싶었어."

*.....너 또 날 울리고 있어 차라..울 것 같아졌잖아..

"정말로 변하지 않는구나. 넌. ..프리스크. 몸은 어때?"

"두 팔. 두 다리. 손가락 열 개. 아마도 발가락도 열 개. 괜찮아 보여. 아까부터 자꾸 꽃잎이 머리카락에서 떨어진다는 걸 빼면-."


눈 닿는 곳, 손 닿는 곳을 바지런히 두리번거리며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되짚어나가고 있는 아이들의 자취를 메아리꽃들만이 주의깊게 듣고, 속삭인다.


*오. 이런. 나 지금 너희들이랑 하나가 되어서 알겠는데. 차라. 프리스크 너희 둘 정말로 그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했을 뿐이었구나.....

"파트너가 하자고 한 일이야."

"차라 너도 응원한다고 했잖- 어라."


키드와 우산을 함께 나누어 썼던 그곳에서 프리스크는, 아이들은 발길을 멈추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의 일그러짐 없는 말그런 물거울에 아이들의, 프리스크-차라-아스리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프리스크,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있는 건 전부 꽃이야..?


단정한 다갈색 머리 사이, 머리장식마냥 송이송이 피어나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꽃줄기들을 프리스크는 가만히 매만진다. 그 손길을 견디지 못하고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잎 한 장이 팔락, 떨어져 물거울 위로 작은 파영을 그렸다.


"연구소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네. 그다지 변한 것도 없고."

*잠시만 대체 어느정도까지 생각했던....음. -아냐. 나 있지 이 상태에 적응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파트너와 나랑은 사정이 다르니까. 뭐, 이젠 시간이라면 넘칠 만큼 있으니까 천천히 적응하면 된다구 아스리엘."

"그것보다 프리스크. 잘못하면 별을 놓칠 거야."

*별?


프리스크는, 아이들은 기운차게 몸을 일으켜 텅 빈 지하를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응. 차라가, 그때 아스리엘은 별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했거든. 그래서, 지상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별의 강을 보러 갈 생각이었어."

*..........

"있지. 아스리엘. 이제는 지상에서도 별의 강을 볼 수 있는 곳은 적지만, 정말로 예뻐."

*너무해...너희들...아까도 간신히 참았는데...나,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뭇가지를 든 채 지하를 달려나가며 아이는, 아이들은 천진하게 지저귄다. 시름없이. 그저 별빛에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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