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한도 없이 길어져버림ㅠㅠ
원래는 만화로 그려볼까하고 있었는데 이야기 구성하다보니 소설로 쓰는 게 더 잘 표현이 될 것같아서 글로 썼다.
게임 설정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붙여서 열심히 써봤으므로 주의하라. 불살 엔딩 이후 이야기란다.
※추측성 설정 주의
※성장스크 주의
※샌즈설명충 주의
※제목은 병신 같은데 씹진지 주의
※스압 있을 것 같음 주의

***
너는 발에 잘 맞지 않는 운동화를 억지로 구겨가며 신었다. 신발 안으로 힘겹게 기어들어가는 발등에는 사용감이 있는 반창고가 누덕누덕 발라져 있었다. 하지만 너의 얼굴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호수의 수면마냥 평온했고, 아무런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거울을 보며 이제는 제법 길어진 머리칼을 정돈하고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모처럼 맑게 갠 하늘을 가득 메운 햇살에 눈부셔하며, 오늘도 너의 의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일어났니. 아가?”
계단을 내려가자 출근 준비를 마친 토리엘이 너를 반긴다. 그녀의 복장은 오늘도 단정함 그 자체로, 학교 교장이라는 직책에 그보다 더 어울릴 옷은 없을 것 같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말끔하긴 하지만 별 특색도 없이 심심하다는 말이다.
“오늘도 멋쟁이구나.”
하지만 토리엘은 너의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패션에 대해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자신의 취향을 강요한 적도 없다. 다만 언제나 너를 온전히 이해해주었다. 아, 착한 염소 같으니. 너는 토리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춘다. 토리엘은 히히, 하고 작게 웃으며 너의 뺨에 뽀뽀를 되돌려준다. 복슬복슬한 털에 파묻힌 네 뺨에서 따뜻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나는 먼저 학교에 가있을 테니 아스고어와 느긋하게 오렴. 밥은 꼭꼭 씹어 먹고.”
너는 걱정하지 말라며 싱긋 웃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토리엘은 너의 미소를 보고 그것보다 더 밝고 기뻐 보이는 미소로 화답하고 집을 나섰다,
-쿵.
-달칵.
가 돌아왔다.
“잊지 말고 양치도 꼭 해야 해.”
토리엘은 어쩜 이 말을 잊었지, 하며 스스로에게 깐깐한 표정을 지으며 고시랑거린다. 잠시 긴장했던 너는 못살겠다며 그녀의 등을 꾹꾹 밀어 집밖으로 내보낸다.
너는 네가 곧 성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제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잘 해낼 수 있다고 덧붙이는 네 기특한 말을 듣고 토리엘은 분홍 코를 보다 붉은 색으로 물들이다가 조금 물기에 젖은 먹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랬지. 내 자랑스런 아가….”
너는 토리엘의 감격에 젖은 얼굴을 보며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네 두 팔을 그녀를 향해 뻗으면 토리엘은 망설임 없이 너를 품에 안아 올린다. 학교에서 보자, 여느 때보다도 자상하게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토리엘은 시계를 확인하곤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 너는 과감하게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잠시 망설이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쉬었다.
“프리스크, 얼른 밥 먹으러 오렴.”
부엌에서 너를 부르는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는 애써 조급함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 슬슬 등교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제 며칠 남지도 않은 등교일수를 지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다. 너는 씩씩하게 어깨를 펴 아스고어에게 걸어갔다. 부엌에 들어서자 노릇하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기분 좋게 피어오른다. 아스고어는 그 큰 덩치로 제 손바닥의 절반도 안 될 계란프라이를 네 접시 위에 예쁘게 얹어놓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찰팍, 오늘도 그리 능숙하지는 못한 플레이팅을 마친 아스고어는, 네가 제 어설픈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쑥스럽게 웃었다. 너는 오늘은 그의 요리가 어제보다도 더 가지런하고 맛있어 보인다고 칭찬해준다. 아스고어는 그렇지도 않다며 능청맞게 어깨를 으쓱였지만 덤디덤, 하는 기분 좋은 콧노래는 감추지 않았다.
아스고어는 이번에는 토리엘과 재결합하는 것에 성공해 지금은 너의 아버지다. 학교장 일로 바쁜 토리엘과 한창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너를 위해 아스고어는 집안일을 도맡았고, 취미삼아 종종 학교의 정원을 가꾸곤 했다.
아스고어가 가사를 막 시작했을 때는 1인 생활이 갑자기 3인 생활로 규모가 커져버린 탓인지, 잘하는 일보다는 서투른 일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가족의 칭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요즘에 들어서는 확실히 눈에 띌 정도로 움직임이 좋아졌다. 너는 아스고어 역시 선하고 좋은 염소임을 안다.
비록 한때는 너의 작디작은 몸을 삼지창으로 갈가리 찢으려고 들었지만,
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너는 잘 구워진 식빵에 계란과 베이컨을 얹어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오늘은 토리가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해주지 않은 거니?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농담을 던지는 아스고어에게 너는 씩 웃어 보인다. 아스고어는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으며 빈 접시를 싱크대에 넣고 주변을 정리한 후 너와 함께 집을 나선다.
-쿵.
오, 이런.
너는 양치질을 하는 것을 깜빡했다.
***
“요, 너 입가에 뭐 묻었어!”
학교 현관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네게 달려온 괴물아이가 샛노란 꼬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너는 입가를 더듬어본다. 오른쪽 입가에 계란 노른자가 말라붙어 있었다.
“보아하니 너 또 양치하는 걸 깜빡한 거구나!”
호객이라도 하는 듯 복도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왁왁 질러대는 괴물아이 덕분에 너는 드디어 부끄러움을 학습했다. 너는 입을 가리고 서둘러 네 캐비넷에 넣어둔 양치도구를 꺼낸다. 괴물아이의 말을 들은 다른 동급생 괴물들은 너를 짓궂게 놀렸고, 너의 얼굴을 붉혔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성경 어딘가에 실린 성인이 했던 말처럼 오로지 양치를 하고 온 사람만 너를 비난할 수 있다며 소리를 질러본다면, 아, 그래, 저기 복도 구석에서 손을 들며 ‘너희들 다 불쾌해!’라며 소리치는 제리를 제외하고는 다들 입을 다물어버린다. 너는 자랑이라도 하는 양 칫솔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흔들었고 다들 킬킬대며 너를 배웅해주었다. 것 봐라.
“사실 우리 학생들이 그리 양치를 꼬박꼬박 하는 편은 아니지, 하지만 넌 항상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까지 여왕…아니 교장 선생님께 혼나잖아.”
어색하게 호칭을 고쳐 부른 괴물아이는 혹시나 주변에 다른 교사들이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았다. 밖에서라면 몰라도 학교 안에서만큼은 토리엘과 아스고어는 통치자가 아닌 남들과 같이 평범한 괴물들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엄격하게 호칭을 나눌 것을 강요하거나 명령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든 괴물들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어 했으며, 또 저들이 하고 싶어진 일에는 다소 과도하게 몰입하곤 했다.
특히나 지금은 체육교사가 된 언다인은, 저도 종종 토리엘에게 덜컥 여왕님이라고 부르곤 하면서 남들이 하는 실수에는 매우 철저하게 응징했다. 그런 이중적인 태도는 물론 괴물들에게는 매우 쿨하게 비쳤다. 너는 괴물아이의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렸을 테니 괜찮을 거라 말한다. 괴물아이는 안도하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토리엘은 훌륭한 선생님이고, 어, 물론 너한테 좋은 어머니겠지! 음, 하지만 만일 내가 너였다면, 나는 온종일 토리엘의 잔소리를 듣느라 아무 일도 못할 거야….”
너는 사실이 아니라 말하려고 했으나 거짓말은 좋지 않다. 토리엘은 언젠가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걱정 많은 여인이었고, 너는 하루에 무조건 한 번 이상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너도 역시 주위에 사람이 없나 유심히 살펴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헤헤, 괜찮아. 나한테만 보였을 거야! 음, 너도 하루정도는 부모님 간섭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너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한다.
“아, 내일 밤에 우리 집에 하루 놀러올래? 졸업식을 하기 전에 말이야, 아직 학생일 때 마지막 파자마 파티를 하자.”
너는 잠시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긴 모양이지만, 연락수단이 있는 한 밖에 나간다고 해서 토리엘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까?
“오, 그렇군…….”
잠시 생각에 잠긴 괴물아이는 어떻게든 너에게 자유를 선물해줄 수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입 밖으로 선물, 선물하며 중얼거리다가, 그리고 곧,
“앗!”
하고 제자리에서 크게 튀어 오른다.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생각이 떠오른 건지, 괴물아이는 잔뜩 벅차올라 안절부절 못하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넌 아무 것도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돼! 왜냐면, 며칠 뒤면, 그러니까 졸업식 날에는, 그 누구도 너한테 싫은 소리 못할 거니까. 그날이 네 휴일이야!”
너는 이유를 묻는다.
“왜긴 왜야. 바로 네 생”
“느아아아아!”
돌연 굉음이 들려왔다. 아니, '들려왔다'는 교양 있는 표현보다는 네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폭음이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 고막을 아슬아슬하게 찢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데시벨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너와 괴물아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붉은 머리칼은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영웅이 등장했다.
“요, 요! 언다인!”
“이- 꼬맹이가 쓸데없는 말을!”
“엥….”
다짜고짜 괴물아이의 머리에 큰 손바닥을 얹어 빙글빙글 돌리는 언다인은 화가 난 건지 당황한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흥분해있다. 분명 방금 막 복도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가 대체 얼마나 빠르게 날아온 건지 너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너는 언다인의 팔을 끌어당기며 그녀를 진정시키고, 괴물아이가 무슨 말을 한 거냐고 물어보았다.
“뭐어?! 그야 이 꼬맹이가! 그야, 그야……. 그게 말이지. 음.”
기세 좋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던 언다인의 목소리가 점점 안으로,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서는 매우 만화적인 땀방울이 주륵, 흘러내린다.
“그, 음. 이 녀석이 또 교장선생님을 여왕님이라고 부른 걸 들은…것 같았지…어… 안 그래…?”
“들렸어!?”
“아앙!? 진짜 또 그렇게 부른 거야? 학습 능력 없냐!”
“으, 응……?”
의아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괴물아이의 시선에 언다인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오, 제발, 난 할 수 있어, 알피스에게서 말버릇이 옮아오기라도 한 듯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다시 한 번 느아아아! 하고 호쾌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래! 들었다! 이, 내가! 바로! 이! 귓구멍으로 들었다고. 그러니까 넌 잠시 면담이다.”
“헉, 언다인이 나를 초대한 거야?”
눈을 반짝이는 괴물아이를 형용할 수 없는 막막함이 담긴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그래그래, 포기한 듯 언다인은 제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괴물아이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어, 그럼. 간다?”
언다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미소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졌다. 너는 복도에 잠시 오도카니 서 있다가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가기로 한다. 너는 이제 해마다 친구들이 준비하는 깜짝 생일파티를 모르는 척한지 10번째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100번은 가볍게 넘어가겠지.
너는 여전히 불편하게 발목을 찔러대는 운동화의 뒤축을 담담하게 참아내며, 걸음마다 힘을 실어 앞으로 나아간다.
***
“뭐든 말해보시라, 인간!”
파피루스는 얇지만 듬직한 어깨를 으쓱이며 너에게 외쳤다. 너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파피루스가 주는 선물이라면 뭐든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파피루스는 네 말에 와우, 감동하면서 눈망울을 반짝이다가 헉, 숨을 들이키더니 놀라서 손을 내젓는다.
“아니, 아니야. 선물이 아니라, 대체 누가 선물을 준다는 거야? 그냥 우리 집에 들어가서 최고로 편한 소파에서 쉬고 싶다면, 네가 가지고 싶은 가장 근사한 물건을 말해주면 돼. 이건 그런 퍼즐이라구.”
너는 코로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눈을 가로 굴렸다. 그러고는 부러 실망한 기색을 띄우며, 파피루스가 내일 자신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다. 파피루스는 예상 외의 반응을 보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그랬나? 정말? 그, 네 생일이었단 말이지! 녜, 헤, 헤…. 잠시만.”
파피루스는 네게 등을 돌리고 제 옆에 서있던 샌즈에게 귓속말을 할 요량으로 왁왁 소리친다.
“어떡하지 샌즈! 인간이 자기 입으로 생일인 걸 말해버렸어! 여태껏 제 생일이 언제인지 안 적 없었는데, 현명해져버렸어!”
“오우. 그렇네. 아이는 성장하니까.”
“태평하게 굴 때가 아니야! 어떻게 하지?”
“글쎄다, 내 생각엔… 그냥 있는 대로 솔직히 부는 건 어때. 밥 먹은 지도 얼마 안 됐겠다. 이미 배도 부른데 말이야.”
샌즈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곤 파피루스의 갈비뼈 아래로 너와 눈을 마주친다. 너는 실로 오랜만에 샌즈와 직접 눈을 마주친다고 생각했다. 그 시선은, 그걸 보고 너는,
“'골'탕까지 먹이려 들면 과식하잖아.”
“아, 샌즈! 제발!”
“그냥, 속이는 건 좋지 않다는 소리야.”
운동화를 고쳐 신는다. 발목이 시큰거린다. 갑자기 발을 타고 올라오는 피로감이 너를 덮치지만, 너는 어떻게든 버텨내며 몸이 휘청거리지 않도록 숨을 죽였다. 파피루스는 아까 네가 했던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고개를 돌려 너에게 시선을 던졌다.
“으음, 그래 이건 내 실수였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린 네 생일이 언젠지 알고 있었어….”
비에 젖은 강아지같이 풀이 죽은 파피루스의 머리를 너는 쓰다듬어주었다. 매일같이 관리하는 두개골은 기분 좋게 보송보송하다.
“난 네가 뭔가 가지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게 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으니까…. 한 번쯤은 네가 원하는 걸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너는 파피루스를 달래며 네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정말? 뭔데?”
너희들.
짧게 대답하고는 파피루스의 목에 팔을 감아 꼬옥 껴안는다. 파피루스를 안자 그 너머로 샌즈의 얼굴이 바로 보인다. 샌즈는 너희를 보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의 초점이 나간 눈구멍에는 어둡게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다.
“녜헤헤, 그럼 대신 최고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주지!”
너는 과장되게 방방 뛰며 파피루스와 함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샌즈가 조용히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생각해봤는데 네가 가지고 싶은 게 없다면 네가 필요로 할 만한 물건을 선물로 하는 게 좋겠어. 엄청나게 현명한 발상이지?”
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딱히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파피루스는 헹,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소파 아래로 늘어뜨린 네 발을 잡아끌었다.
“물론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은 이미 문제점을 찾았지. 신발이 엉망진창이잖아!”
아, 너는 꼭꼭 감추고 있던 것을 들킨 사람마냥 당황하다가, 고개를 들어 샌즈의 모습을 찾는다. 샌즈는 이제 이곳을 보고 있다.
“진작 새 신발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얼마나 신고 다닌 거야?”
파피루스는 네 낡고 해진 신발을 곰곰이 뜯어본다. 너는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침착하게 아랫입술을 한 번 핥고, 대답한다. 이것은 재작년 생일에 샌즈가 너에게 선물로 준 신발이다.
“세상에, 2년이나? 작년 생일에 형한테 새 신발을 달라고 하지 그랬어.”
너는 대답 없이 웃었다. 샌즈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작년 생일에 샌즈에게서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 파피루스는 낡은 신발이 건강에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정보를 주절주절 늘어놓았지만, 사실 애초에 이 신발은 낡기 전부터도 네 발에 맞지 않았다. 신발을 선물 받고 처음 신어볼 때부터 알고 있었다.
“봐, 인간이 형 선물을 이렇게 아끼고 있었다니.”
“헤, 나도 이제 알았는데.”
하지만 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너는 뭐라 불만을 말할 수도 없었다.
“감동 받으면 되는 거야?”
당연하지! 파피루스는 호들갑을 떨며 샌즈에게 타박을 준다. 샌즈는 언제나처럼 대수롭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네게 고맙다고 말한다. 너는 안타깝게도 그 감사의 말에 잔뜩 돋아있는 가시를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지 못하다. 너는 고개만 간신히 끄덕인다. 샌즈는 다시 너를 보고 있지 않다.
***
대체 언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많은 리셋 중에서 지금 이만큼이나 멀리 진전된 시간대를 우리는 겨우 2번 접해보고 있을 뿐이다. 너는 처음으로 샌즈가 네 앞에서 사라졌을 때를 회상한다. 그날은 지상으로 나온 후 최초로 리셋을 시도한 날이기도 했다.
당시엔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와 토리엘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아스고어는 인간과 괴물의 화합을 이뤄낸-그러나 가정은 꾸리지 못한-훌륭한 정치가가 되었고, 언다인과 알피스는 달콤한 신혼생활에 젖어있었다. 메타톤은 샤이렌과 냅스타블룩을 데리고 작은 밴드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팝스타가 되어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너의 첫 괴물친구들이었던 샌즈와 파피루스는, 여전히 너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면서 이웃이었고, 나아가 가족과 같았다. 적어도 너에겐 그랬다.
어쩌면 너에게만 그랬다.
그렇지 않고서는 샌즈가 갑자기 그렇게 사라졌을 리가 없다.
그날 역시 지금과 같이 너의 생일 전날이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 아이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생일은 너에게 무척이나 의미 깊었다. 너는 마냥 들떠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툭, 툭.
지금처럼 네 창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에 너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조명이 잘 비치지 않아 그 모습은 잘 알아볼 수 없지만 집 아래에 샌즈가 서있다. 예전의 너는 샌즈가 네게 보내는 불온한 낌새에 대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에, 그 그림자가 샌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반가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이야기나 좀 하지.”
그저 무섭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금방 돌아올 사람처럼…, 마치 그러길 바라는 것 마냥,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선다.
인사할까? 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애써 웃음 지으며 샌즈에게 가볍게 손 인사를 한다. 샌즈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한 번 흔들었다. 인도식 대답이야. 이 실없는 농담도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는 드디어 이 시간대까지 돌아왔지만 너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래, 이 웃는 쓰레기봉투가 이따위 태도로 나온다는 건 이미 손쓰기엔 늦어버렸단 거야.
모든 게 샌즈가 사라진 날의 밤과 똑같았다. 샌즈는 가볍게 산책이나 하자고 제안할 것이고 너희 둘은 별이 잘 보이는 공터로 걸음을 옮길 것이다. 너는 불편한 신발 때문인지, 아니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몰라도 아주 천천히 샌즈의 뒤를 쫓는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함께 걷는 건 처음이 아니야, 그치?”
별안간 날아오는 질문에 너는 잠시 목이 메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으므로 샌즈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헤헤, 네 모든 행동, 말. 굉장히 주의 깊고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그보다 더 한 놈이거든. 보자마자 알 수 있었어. 넌 지상에 올라와서도 이미 한 번 이상 리셋 했겠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너는 샌즈에게 단 한 번도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되돌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니. 나는 네 인격적인 문제를 따지려는 게 아니야. 다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바람이 강해진다. 우우, 눈구멍을 통해 들어간 바람 탓에 샌즈의 두개골에서 우는 소리가 난다. 샌즈는 자신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서 나는 아스리엘…, 그러니까 플라위와 조금 대화를 했지. 우린 관계 개선을 좀 할 필요가 있긴 했거든. 그러다 나는 네가 지하로 내려왔을 때 플라위가 세이브 로드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때 난 한 가지 이론을 세웠지. 인간의 의지는 그 영혼을 죽어서까지 잔류시킬 정도로 강력해. 하지만 그 능력자체가 시간선을 쥐락펴락하진 못하지. 만일 그랬다면 지상은 봉인된 지하보다도 더 난장판이었을 테니까. 다만, 만일 어떤 이의 의지가 그 세계의 다른 것들보다 더 강력하고 크다면….”
샌즈의 텅 빈 눈구멍이 너를 향한다.
“그 사람은 그 세계의 시공간 안에서 그의 의지대로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내 이론이었지. 그래서 넌 지상과 격리된 지하 세상에서 너의 의지대로 세상을 불러오고, 저장하고, 갈아엎었고, 우리를 지상으로 인도할 수 있었어. 그리고 실제로 본 인간들의 사회는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평범했지. 아무도 시공간적인 분쟁을 겪고 있지 않았거든. 그래서 나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드디어 안심했어. 이젠 더 이상 나도 모르는 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 이대로 영원히, 정말 당연하게도 내일이 찾아올 테니까. 네게……. 감사하고 있었어.”
샌즈는 자신의 목소리에 가능한 감정이 담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지만 너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분노, 좌절, 슬픔, 고독. 그가 이러한 모든 감정을 감추려는 것은 바로 너 때문이다. 샌즈는 이 만남이 한 번 이상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제 반응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에게 솔직한 감정을 부딪치기엔, 바보가 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돌아와 있어. 나는 솔직히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는데, 넌 뭐 사람 한 명분 의지를 더 가지고 있기라도 한 거야?”
그는 너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 사실 어찌된 영문인지 중요한 일은 아니지. 정말로 중요한 건 아직도 이 세계는 내 손아귀에 잡혀있고, 너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우릴 다시 농락할 수 있다는 거야.”
너는 그저 모두의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바라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친구야, 너는 이미 평범하지 않아. 만일 그랬다면 지상에 나온 이후론 리셋을 하지 말고 모든 일들을 받아들였어야지.”
너는 한동안 말을 못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너의 발은 작은 충격에도 바스러져버릴 것처럼 차갑게 얼어있었는데도 땀이 맺혀있었다. 샌즈의 차가운 태도는 너를 이미 여러 번 울릴 뻔 했지만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너는 눈물을 꾹 참느라 눈가를 주황색으로 물들인 채 말한다. 가장 최근에 했던 리셋은 이전 세계에서, 그리고 사실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세계에서 샌즈가 자신을 피해 사라졌기 때문에 그를 막기 위해 한 것일 뿐이라고, 드디어 용기 내어 털어놓았다.
“아, 그건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그래. 내가 도망쳐버려서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다니….”
샌즈는 한발자국 물러섰다.
“멍청하긴, 그럼 내가 도망치기 전부터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거겠지.”
하하, 그 말대로다. 샌즈가 도망가기 이전부터도 너는 네 친구들을 위해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몇 번씩이나 세이브와 로드로 시공간을 주물러댔다. 너는 이제 정말 할 말이 사라졌다. 참았던 눈물이 이제야 떨어진다. 왜, 그렇게 말하면 이번에야말로 그가 알아주리라 생각했어?
“네가 아주 악하거나 나쁜 녀석이 아니란 건 알아. 이런 말을 하긴 징그럽지만 진심 같은 게 느껴지거든.”
그가 등을 돌렸다.
“하지만 난, 내가 못 버티겠어. 네가 이 평화롭고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세상마저 질리고 나면, 그땐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글쎄, 적어도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수는 있겠다. 요즘은 매일 그런 꿈을 꿔.”
너는 저 뒷모습이 그의 마지막 인사임을 알고 있다.
“도무지 네 얼굴 보고 제정신으로는 살 수가 없어. 널 싫어하지 않지만, 네가 굉장히……무섭거든. 그러니 네가 아주 좋아하는 퀘스트를 남겨줄게. 벌써 몇 번이고 반복했다는 걸 보면 내 생각보다도 이게 아주 효과적이었던 모양이야. 그렇지?”
모처럼의 고백이 그에게 확신을 안겨준 셈이다.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내 스크립트는 영원히 잠금 상태일거야. 내가 너를 볼 수 없고, 너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갈 거거든. 그래, 한심한 책임 회피야. 그럼 최소한 네가 벌일 가장 끔찍한 일을 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되겠지. 아니면 너의 자비로 앞으로도 이 세계가 행복하게 이어지든가. 그것도 아니면,”
바람이 멎었다. 침묵으로 가득 찬 주변은, 참을 수 없이 시끄러워서.
“네가 여태껏 해온 것처럼, 행복한 세계들이 영원히 반복되든가.”
그가 사라지는 소리마저 정적에 잡아먹혔다. 너는 작게 등을 떨며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한다. 또다, 또 샌즈가 도망갔다.
너는 샌즈를 잃어버렸다.
처음으로 샌즈를 잃은 뒤, 너는 다시 세계를 뒤엎어 샌즈를 만나고자 했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주변 괴물들이 샌즈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기 때문이었고…, 이봐. 솔직하게 말하자. 너는 그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에도 불구하고 그가 너에게 그토록 깊은 적의를 내비치는 것이 너무 슬프고, 섭섭하고, 사실은 화났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도 끝에 드디어 그 이유를 알아냈다.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은 아니었다. 물론 내 잘못도 아니지만.
‘네’가 사실은 ‘우리’였다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는가.
존재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처음으로 에봇산에 뛰어들었던 날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러진 말아라. 나도 기분을 잡치니까.
그래서, 너는 이제 어떡할 거지?
사실 이대로 그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뭐가 문제야. 다들 행복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
가슴아파할 그의 가족과 친구들?
너도 몇 번이고 봐서 알겠지만, 그 똥자루는 어떤 수를 쓰는지는 몰라도 자기 동생한테만큼은 꾸준히 얼굴을 비춘다. 적어도 그놈이 엄마랑 한집살림 차려놓고 도망갔을 적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다.
뭐?
…….
너는 아스리엘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한다.
…….
그런 건 네가 직접 말해, 이 이기적인 썅년아.
-미안해, 미안해…….
너는 세상을 리셋시킨다. 세상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새하얗게 질려서는 소리없는 비명을 토해내 너의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곧 세상이 깜깜해진다. 너는 지금 세상 곳곳에 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너의 주름 없이 맨질맨질하고 작은 두뇌로는 아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네가 저지르고 있는 짓을 알게 되면 모두 입을 모아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욕을 너에게 퍼부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너의 옆에 있을 것이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한다면 나는 다시 너의 의지가 되어 함께한다. 물론 이제 슬슬 이 모든 짓거리를 포기하고, 그 코미디언부터 곱게 빻아버린 다음 여태껏 쌓아온 울분을 모두 터뜨리고 싶지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직 너이기 때문에
너의 의지가 충만해진다.
***
프리스크가 샌즈 ㅌㅌ때문에 호무호무하는 이야기. 뒷 이야기는 예전에 만화로 조금 그린 거 있는데 마저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딴 것 보다도 샌즈가 이미 우주 설명충인데 내용을 이해되도록 썼는지 모르겠음 ㅂㄷㅂㄷ. 나는 플레이어 존재 배제하고 언텔 자체 세계만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의지가 너무 먼치킨 능력이라서 지상 기어나가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인 거 아닌가 싶어서 고민해봤었음. 그래서 지상이 좀 정상적인 공간이려면 어떻게 되어야할까... 생각하면서 게임 내 떡밥이나 설정에 기반해서 개인적으로 해석해보다가 글까지 다 적네. 해석글 다 적어보려니 너무 설명충스러워서 생략하는데, 그냥 이상하거나 빙쉰이신가 원작 설정 붕괴잖음 싶은 부분 지적해주면 진짜 고마움.
물론 이런 미친 긴 빡빡한 글 여기까지 다 읽어준 것만 해도 고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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