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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리얼라이프의 산증인 머페시가 다 죽어가는 샌즈 위로하는 갱생문학

브루키애껴욧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19 21:01:49
조회 4626 추천 59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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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jAiTP

* 브금 듣고 좋아서 쓴 글이니 가능하면 브금도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




“아후후. 자기, 알고 있어? 거미에게 물린 자는 반드시 춤을 추어야만 해.”

 

  외견에 걸맞지 않게 조숙해 보이는 교태로 소녀는 연신 손등을 핥아내며 홑눈을 깜박인다. 보드라운 페리윙클의 피부를 덮은 가시 털은 혀끝이 닿을 적마다 싹싹하게 가지런히 뉘어진다. 낭창한 동작으로 매무새를 다듬는 태도는 숙녀라 칭하기에는 무언가 빠져있었다. 마치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가 남 앞에 제 터럭을 다듬는 모양새였다. 길 잃은 객에게 넘실거리도록 차를 부어주더니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몹시도 희게 반짝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세련된 포즈로 입을 가린다.

 

“무도병이야. 자기, 뭔지 알고 있을까?”

“숨이 멎을 때까지 춤을 멈출 수 없는 거지.”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의 이야기 정도는 읽어봤겠지?”


  베네티안 레드의 페티코트가 흔들리고 소녀는 장난기가 함뿍 담긴 눈웃음을 지었다. 푸엥트, 그리고 살루트가 이어진다. 발레리나처럼 발뒤꿈치를 기품 있게 들어올려 손을 치켜들고 막명을 두드리듯 우아하게 빈 손뼉을 친다. 소녀는 집시여인으로 화하여 열정적인 타란텔라를 추고 이윽고 춤사위는 경쾌한 마주르카가 되더니 웅장한 폴리아로 암연히 이어진다.


  팔다리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샹들리에가 던지는 빛을 무수히 흩뜨리고 더욱 화려하게 너울거리는 그림자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온 자취는 말하자면 한 쌍의 댄서가 서로를 등진 누드 사진 같았다. 새카만 얼룩은 로르샤흐 반점처럼 꿀렁거리며 형형 모습을 바꿔간다. 해골은 언젠가 본 적 있는 천사의 초상화를 떠올렸다. 올빼미 같은 눈알이 무수히 박힌 여덟 개의 날개가 돋은 기괴한 모습이 떠오르자 몸서리가 쳐졌다. 소녀는 가장무도회에 홀로이 가면을 쓰지 않은 당돌한 무희이다. 전연 시선을 돌리는 법 없이 또렷이 해골의 텅 빈 눈동자 속 심연을 응시한다.

 

  저 눈알만큼은 거북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해골은 내색하지 않은 채 소녀의 발목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춤사위가 나부낄 적마다 거미 아가씨의 응접실에는 송진내를 품은 난초향이 한 오라기 피어오르고 연기는 이내 춤 놀림과 뒤섞인다. 해골은 덤덤한 말투를 뱉어내며 찻잔으로 객쩍게 시선을 돌렸다. 내어준 찻잔에는 진주알처럼 멀건 새끼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뭣도 모르는 작고 어린 것들을 보고 해골은 다시금 서러워졌다. 눈물뼈가 시큰했다.

 

“헤, ‘살고’ 싶다면 말이겠지.”

“그럼 가만히 있을테야?”

 

  코끝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녀는 심중을 간파해내려는 듯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소녀는 안와 밑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린 해답을 살포시 끄집어내며 말을 잇는다.


“자기는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 거야? 자신? 그도 아니라면 망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껏 이런 대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삼류 소설을 되풀이해 읽어야만 할 때, 특히나 재해석의 여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일 경우 대개의 당신이란 두 가지 생각을 품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만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하나는 반쯤 포기한 새 시도가 결말에 일종의 영향을 주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결말이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처롭게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경험론적 추론에서 나오는 회의감이다.


  한때 해골 또한 결과와 원인이 혼재하는 것 사이로부터 법칙을 찾기 위해 연구를 했었다. 날갯짓 한번으로 태풍을 만들어내는 나비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제 흔적을 더듬는다. 무엇부터가 이지러진 것인지 골몰하여보지만 그럼에도 검산에 요령이 생기는 법은 전연 없었다. 현상의 시공적인 전개에는 이처럼 때때로 예외나 변칙이 있었기에 희망을 보듬으며 새로운 시도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던 때도 분명 존재했다. 이따금 그것은 우스갯소리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었고 한때는 내 고운 것의 야단이었다. 조건법적으로 방정식을 되짚어간다. 여타의 시도는 과연 어떠한 처방이 되었을는지 수차례 복기하며 균열지점을 더듬어본다. 그럼에도 여러 갈래로 유리된 가지는 미로처럼 엮였으나 결코 서로 이어지는 법 없이 동일한 귀퉁이의 모양을 한 막다른 길로 마무리 되었다. 연구는 어느덧 감정의 거세라 칭하는 것이 적절해졌으며 해골은 점차 능숙하게 분석의 주체와 대상을 분리해낼 수 있게 되었다.


“글쎄. 자기, 우리 거미들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니?”

“허물을 벗는 거야. 사는 게 영 따분해지려고 하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니까.”

“약이고 술이고 그게 다 뭐람, 아후후.”


  포식자를 모사하는 그녀에게는 그 순간만이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두터워 보이는 거죽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체액을 상상하던 해골은 소프트 쉘 크랩을 떠올렸다. 질척이는 몸뚱아리는 앗 하는 사이 터져버릴 정도로 가녀리지만 탈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삶이며 죽음 사이의 경계심은 엷은 거죽 한 장을 사이에 둔 채 점차 애매모호하게 무뎌질 것이다. 그럼에도 매 시도는 더욱 짜릿하기만 할 것이다. 응달을 향한 동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진짜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감증에서 기인한 착오적 욕망이었음을 시인하고 다시금 생에 경건한 신앙을 가지리라며 숨죽인 채 몸을 말리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매 순간마다 즉물적 본질이 이상적 실존을 앞서게 되는 것이다. 


“우습지 않니. 가장 죽음에 가까워진 순간에 이르러서야 삶을 갈망하게 되는 법이거든.”


  나신은 달팽이처럼 둥그렇게 웅크리고 있다. 무수한 팔다리가 빈틈없이 배배 꼬아져 똬리를 튼 모양새는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 감히 시선을 뗄 수 없다. 한껏 구부러진 마디의 사이에는 좁은 틈이 벌어져있다. 협각의 틈새를 비어져 나온 고깃덩어리를 상상한다. 그곳은 어린소녀의 사타구니처럼 줄금이 그어져있다. 수밀도의 갈라진 실금처럼 보송하다. 눅눅해 보이는 틈바구니의 살점은 추접한 삶의 내음을 풍기고 순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축축한 살덩이를 마구 헤집어내고픈 욕망이 들끓었다. 그저 삶을 헝클어 버리고픈 충동이다.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삶을 추하게 연명하려는 모습이 이내 못마땅하여 해골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해골은 점철된 생이 주는 모욕과 경멸을 견딜 수 없었다. 텅 빈 생만이 존속하는 삶의 비루함을 견디는 것은 모래시계에 갇히는 감각과 유사했다. 진공에 갇힌 모래알은 정해진 법칙대로 좁은 구렁에 몸을 던진다. 이따금 그 순번을 바꾸는 예외를 제하면 추락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까끌거리는 모래알은 소용돌이를 향해 떨어진다. 누군가 유리관을 뒤집는다면 반복되어질 그러한 운명일 뿐이다. 잔뜩 꿈을 꾼 다음 날이면 홀연히 집을 떠나 거리를 배회한다. 지나치는 이들이 던지는 인사말에 시도해본 적 없는 말도 안 되는 농을 지껄여 보지만 그 어느 하나 대답이며 어조에는 바뀜이 없다.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시나리오에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잠이 늘어나고 잠을 자는 동안만큼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런 꿈을 꾸었다. 어린 모습의 너는 여느 때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무구한 어린 것이기에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 눈을 뭉쳐 굴리기 시작한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난거야. 형한테도 알려줬음 좋겠는데. 그저 뒷모습이 아니라 진지할 터인 네 표정을 보고 싶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장면. 다음 순간의 너는 넘어질 것이다. 나를 향해 뒤돌아보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온통 눈 범벅이 된 너는 손을 뻗고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어리광을 부릴 것이다. 힘없이 네 이름을 불러보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자기, 알고 있을까? 사실 그런 병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춤을 추어야만 낫는 다니 말도 안 되는 처방이잖아. 그런 허튼소리를 믿는 이가 어디 있겠어.”


“그저 희망을 하나씩 저버리고 죽어가는 와중 뭐라도 원망하고 싶은 것뿐이겠지.”

“정말, 우리 거미들은 언제나 핍박받는 약자라니깐, 아후후.”


  해골에게 지금껏 궤도는 데칼코마니와 같았다. 닫힌 종잇장의 작은 틈새 너머는 어둠 그 자체이다. 오히려 불확실한 빛으로 모든 것을 드러내어 보였다면 이처럼 지독한 좌절은 없을 것이리라. 언젠가는 희망적이었다가 이내 같은 결말로 귀결된다. 반절 접힌 도화지 사이의 물감이 짜부러져 얼룩을 만드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본다. 이번에는 다른 모양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조심스레 신중히 종이를 펼치지만 결과는 언제나 변함없다. 기대와는 다르게 기대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오기에 언젠가부터 나는 반항의 열의를 잊고 말았다.


  어느 날 물감의 얼룩은 나방의 날갯죽지 한 쌍이다. 나방은 날실이며 씨실에 얽혀 꿈쩍도 못하고 있다. 날개에는 희번덕하니 눈깔이 달려있다. 눈깔은 비늘가루를 떨어내며 경련하고 골통으로 둔갑하려 몸을 애써 꾸무럭거리지만 시도가 변변치 않았다. 비단실에 얽매인 몸뚱아리는 나름의 반역으로 마지막으로 온몸을 샅샅이 꿈틀거려보지만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어금니가 쨍하니 파고든다. 저항하는 방법조차 잊은 것인지 온몸을 온통 뒤흔드는 독에 흠뻑 취한 것인지 나는 천천히 저항하는 손짓을 그만둔다.

 

  나는 이러한 무력화의 과정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동등한 것이 언젠가는 찬란히 아름다워 보이다 이윽고 추해보이는 지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이다.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사랑했던 것으로부터 더 이상 애착을 느낄 수 없을 때 가장 치명적이게 된다. 나는 비척거리다 문지방에 한번 주저앉았다. 너를 떠올릴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네 방으로 향하다 나는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열린 문 틈 너머로는 온통 향기만이 가득하다. 온통 너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너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네 방문 앞을 지나칠 용기가 없기에 언젠가부터 나는 내 방에서 자는 것을 그만두었다.

 

  웃기지도 않겠지만 그런 시도를 해본 적도 있었다. 나는 허튼 데 없이 말쑥한 옷을 입고 감히 네가 참견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바지런히 어른 행세를 부린다. 그런데 너는 착실하게 행실을 하는 내게 서운함인지 대견함인지를 함뿍 담은 미소를 만면 지어보이며 이젠 다 커버린 우리 형을 돌보지 않아도 괜찮겠군!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 짓고 만다. 그러기에 나는 네게 구태여 트집잡히고 말꼬리를 늘어뜨리려 매진하고 뒤이어지는 너의 잔소리며 심술 난 투정에 조금은 안도하는 것이다.

 

  식별의 원리는 단순하다. 해골을 둘러 싼 모든 것은 결국 단 하나로 수렴하는 기호에 불과하다. 언뜻 무연해 보이는 것조차도 결과적으로는 어리게 죽어버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정말이지 다행스러운 것은 아무런 추상이나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나 필경 존재한다는 점이다. 해골에게는 색깔이 그러했다. 글쎄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려는 참이었다. 소리며 촉각이며 향기를 온통 치워버렸다. 순하고 곱던 아이를 떠올리는 것은 모조리 한 곳에 가두어 두었기에 남은 것은 오직 색깔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색깔만큼은 어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해골은 텅 빈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죄다 불을 꺼버리고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흠뻑 색맹이 되어버린 것처럼 명암만이 존재한다. 혹자는 꿈이 흑백영화라고 말하였으나 해골에게는 그도 거짓말이었기에 언젠가 부터는 꿈조차 꾸지 않기를 희망하며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한 채 제 몸을 보듬어보는 것이었다. 영원히 다물어지지 않을 컴컴한 어둠이 항시 갈비 사이와 촉루에 고여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게 끝났음에도 되돌이킬 방법은 도무지 없다. 너는 영원히 죽어있을 것이란 생각에 서러웠으며 나는 일종의 유령이기에 무슨 여운이 남아 네 빈자리를 배회한다.

 

  미다졸람. 허튼소리가 잘 나오고 가끔은 기억을 먹기에 나는 이내 약을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즉흥적인 익살의 순간은 만족스럽다가도 술이 깨듯 먹먹하여 무엇이 그토록 흡족스러웠는지 만큼은 떠올리지 못했다. 시계를 치워버렸다. 밤이고 낮이고 들뜬 사랑이 없이 브라운관 너머의 여자를 안거나 온통 혼란스럽지만 똑똑하게 들려오는 난해한 지껄임을 네게 속닥인다. 한 움큼 쌓인 정적 사이로 너와의 대화시간이 늘어만 간다. 현실을 적당히 봉합하니 나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길러져갔다. 술을 마신다. 외면함으로부터 나오는 안온함과 포근함에 취하여 듣는 이가 하나 모자라는 장광설을 부단히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요란한 술주정 사이의 더한 침묵에서 나오는 불안에 시달리며 곧 그만두었다.


나는 미지의 것에 관해 지나치게 오만했다. 지금껏 나는 있어보지 못한 것이며 시도해보지 못한 것이 언젠가 희망적인 결말을 줄 것이라는 헛된 추측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그러나 그 어떤 허우적거림에도 너의 죽음은 관측된 수순을 밟는다. 너를 되살리고 그 모습을 다만 지켜볼 수라도 있는 삶이 어찌나 휘황찬란해 보이는지. 정답이 없는 지뢰 찾기 무덤 한가운데에 있었음을 깨달은 나는 인정해야만 하는 방정식의 해답에 읍소한다. 저항, 부정, 이윽고 굴종, 순응, 포기.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아주 단념하기에 이른다.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잠의 자락으로부터 깨어나면 항시 막연한 구토감에 어지러워하며 네 방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너의 나긋한 숨소리며 잠든 기척이 문 너머에는 없음에 고소한다. 이 짓거리에 영혼이 닳고 닳았음에도 헛되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듯 애중하던 것이 결여된 삶이란 권곤하기에 더욱 비루해지는 처지에 놓여있다. 상실은 하나이되 그 파도 한 자락은 도미노 조각처럼 그 밖의 행복을 무너뜨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주변 이들로부터 어릿광대나 익살꾼이라 송찬 받았던 재치는 거듭 우울해져만 갔다. 어느새 해골은 이상행복감에 사로잡힌 광인이며 착란한 가엾은 이로 불리었다.

 

  영구히 동일성을 반복해야하기에 삶은 더욱 권태로워진다. 정체를 자각하는 것과 그로 인한 좌절은 언제나 동일선상에 나란히 놓여있다. 몽중몽의 눈뜸은 어느 쪽이며 악몽에 불과하여 구분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꿈과 삶 또한 반을 쪼갠 호두조각처럼 서로를 끔찍할 정도로 닮아있기에 기대와 희망은 불가해한 타인의 것이 되기 마련이다. 소화 작용을 거치지 못하는 감정들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려 노력하지만 이제는 그만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끝없는 불안이 고질병이 되어 가능했었을 법도 한 열망들을 이젠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할 것 없이 흩날리는 빙박처럼 가벼웁기에 더욱 애처로웠다.

 

  해골은 얇은 얼음 조각을 멍하니 응시한다. 얼음 꽃은 번식하는 세균처럼 무한히 곁가지를 치며 몸을 부풀리다 손가락이 닿는 한순간 만에 쪼그라든다. 결정의 축소판은 사그라들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싹이 움트듯 얼음은 다시 얼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거푸집에서 떠낸 수정마냥 똑같은 모양새에 기가 차서 김이 빠지고 만다.

 

  사자는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든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그제야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기 마련이다. 대개의 삶이 그러하며 해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다지도 판박이인 양상이 거듭 반복되는데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남은 지만큼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죽음의 한걸음을 남겨둔 채 결과적으로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뿐이라면 이토록 그저 시달릴 것이 아니라 곧장 결말로 낙착하는 것이 나았다. 반은 살아있되 반은 죽어있는 자신의 산 주검을 생각한다. 비속하고 야비한 삶을 거듭 반복하여도 만상은 프랙털에 여전히 잠겨있을 뿐이며 마음먹은 의지며 노쇠해지고 있는 기억은 저로 인한 구토로 숨이 막혀 멀리 흩어진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어린 것을 그리는 마음은 매번 너무도 생경하였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치만 글쎄, 삶이란 매 순간이 파과의 고통 아니겠어, 자기?”


  지긋이 해골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무언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소녀는 죽음이라는 단어에는 일별도 던지지 않고 담담하게 설토한다. 살점을 걸치지 않은 주검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비유였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거미는 가녀린 실비단줄이 끊어져 대롱이다 바닥으로 톡 하고 떨어져버린다. 어미를 찾는 무력한 발버둥이 마치 장단에 몸을 놀리는 것 같다. 유일한 밧줄을 붙들고 있던 꼭두각시는 이제 그 거미줄을 놓치고 말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춤사위는 미치광이의 팔매질처럼 흐느적거리다 어느새 슬픔이 담긴 춤사위로,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질로 변해간다. 체념한 상여꾼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분명 어느 이의 장례행렬에서 그러한 미소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메스꺼움이 또렷해지며 그 원리를 이해 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산 자는 살아야만 한다.


  개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 피로함에 온통 쇠하여 팔을 들어 올릴 기운조차 없지만 해골은 예의바른 미소를 꾸며내어 보았다. 수족은 쉴 새 없이 방정맞은 춤사위를 계속한다. 해골은 이제 미쳐버린 발목을 쳐내줄 망나니를 기다릴 뿐이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놀음에 장단을 맞춰줄 요량이 있었다. 어째선지 꿈꿔왔던 것에 점차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처지라도 한참 발악해보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아후후, 아무튼 거밋길은 잘못 들기 십상이거든. 다음 만날 적에는 초대장을 들고 와줘 자기.”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가 난다. 나 또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리라. 너에게 시취가 옮아갈까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럼에도 떠올린 네 얼굴은 변함없이 사랑스럽다. 상앗빛 온전히 순결한 채로 죽은 너이기에 썩어 문드러지다 죽어가는 나와는 달랐다. 권태가 이다지도 달콤했던가? 항시 사랑했던 네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며 몸짓은 다시보아도 몸이 애닳을 지경이다. 더없이 사랑했으나 그럼에도 마치 환영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아귀가 들어맞는 쇠붙이가 정교한 열쇠구멍 속을 아늑하게 웅크리듯 해골은 더러운 소파의 구석에 몸을 구겨 넣으며 되풀이되는 노랫말을 중얼거려보았다. 말을 잃어버렸으나 무서울 정도로 노여움의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죽은 이를 보듬는 장소가 있으리라. 분명 그러하리라.

 

  새로 태어난 몸뚱이는 철떡 바닥에 세차게 떨구어진다. 만물은 생존하기 위한 것만을 진화시킨다. 한때 해골은 도태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였다. 변모하지도 파멸하지도 못한 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이 주는 포만감에 질리던 차였다. 해골은 기이함과 불완전함 사이의 기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거미의 뱃거죽에는 귀신 눈알이 달려있다. 무릇 나약한 것들에게는 그러한 가식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의태가 긴한 것은 해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골은 몹시 부자연스럽게 입가를 치켜 올려보았다. 나비뼈가 뻐근했다. 마지막으로 웃었던 기억을 더듬어 바람직한 견본을 떠올리다 결국엔 또 곱고 어린 것이 떠올라 어처구니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감정은 소모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해골은 이 눈알 무늬가 퍽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모두 감정을 꾸며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자위행위리라. 관자뼈를 이리저리 끌어당겨보며 가면은 더없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치환할 수 없는 모든 빛깔의 섬세한 고단함이 그제서야 해골에게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해골은 풋잠을 떨구어내는 것을 관두기로 마음먹으며 바른 관짝에 몸을 뉘인 듯 잠에 빠져든다. 해골은 저 스스로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함으로서 산죽음의 경유지를 마침내 얻게 되었다. 비로소 죽음이며 삶 사이의 길항작용은 저울이 기울어지는 법 없이 바르게 중심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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