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F의 실종
형식 ; 단편
필명 ; 브루키애껴욧
배경소재 ; 언더테일
* 마지막 줄에 스포일러 있으니 스크롤 주의하렴.
* 워터폴 메아리꽃 이스터에그를 접한 후에 읽는 것을 추천.
파트너가 사라졌다.
네 이름 다섯 글자의 실종. 나는 쌉싸름한 네 이름의 맛을 음미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 아이의 이름은 간추린 약식으로서 F라 칭하겠다.
한때 나는 F와의 관계를 ‘조건부 임시 동거관계’라 지칭하였으나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다보니 그 관계가 서서히 바뀌게 되었고 새로운 개념이 거듭 덧붙여져 언젠가 부터는 명칭을 매번 재조정하는 것이 새삼 우스워지고 말았다. 어쨌든 이러한 사소한 정의 따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참 귀찮은 일이다. 우리 사이에 어떠한 올바른 학명을 붙일지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싶었던 적은 추호도 없으니 그저 간단히 말하여 F는 유령딱지가 붙은 꼬맹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딱지라 함은 F와 나의 사이를 따로 떨어뜨려놓는 일이란 제법 어려운 것임을 당신에게 앞서 경고하기 위한 일종의 으름장이다. 뭐, 당신도 얼추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영영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란 생각보다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머리를 공유하는 샴쌍둥이의 고초라고만 일컬어두도록 하겠다. 아니 그런데 가끔은 머리가 맞붙은 정도로는 미처 예상치 못할 일이 벌어지기에 이야기라는 것은 더욱 재밌어지기 마련이다.
우선 시간 상 가장 앞서있는 단서를 먼저 제시하도록 하겠다. 감각이 이어져있음에도 이따금 나는 홀로 눈을 뜰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F의 부재에 당황하여 황망하게 사태를 파악하고는 했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아마 이 순간의 내 표정은 F의 그 맹해 보이는 얼굴을 닮아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인가부터 외딴 각성의 빈도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횟수를 거듭할 적마다 나는 홀로 눈을 뜨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숨바꼭질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이후의 전개는 마찬가지로 나와 F의 마지막 숨바꼭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까지 나와 이야기를 함께한 당신에게만 미리 일러두도록 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조타수는 이미 정해진 답 사이에 존재했음직한 애매한 것들에 관하여 탐닉하는 걸 퍽 좋아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후의 내용은 본래 시작과 끝만이 있었던 단 한 줄짜리 구전의 각색 판이다. 줄거리의 핵심적인 내용은 단지 양 끄트머리에만 존재하며 그럼에도 나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백일몽을 헤프게 늘어놓으려기 때문에 따라서 지루함을 원치 않는 당신이라면 그저 이야기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을 읽으면 되겠다. 하지만 혹여나 실종의 과정에 존재하는 무언의 모티브에 대해 의문이 생긴 당신이라면, 혹은 경쾌한 낭패감을 맛보며 미스터리를 추찰하는 고상한 취미를 지닌 당신이라면, 더러는 작은 지하세계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어떠한 사건을 여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원하는 당신이라면 서두를 것 없이 눈알을 마저 천천히 굴리는 것을 더없이 추천한다.
첫 문단에서부터 고유명사가 의도적으로 누락된 이 이야기의 논점은 다름 아닌 사라진 아이의 행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단언컨대 부적절한 관형어로 당신을 기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언어라는 것의 고약한 습성 탓에 이러한 수식어의 오용은 흔히 진실을 가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실수를 최대한 배제한 채 이야기를 하도록 주의하려고 한다.
먼저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한 가장 최초의 수단은 누구나 잘 알다시피 인상착의를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F는 유난히 별 표정이 없는 아이다. 실종 당시를 기준으로 한 인상을 말하자면 이것이 F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진술임에 틀림이 없다. 그밖에도 더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F는 푸른 스웨터를 매일같이 입고는 했다. 푸른 빛깔의 스웨터는 이곳에선 이미 공공연한 F의 시그니처였으니 이러한 진술이 두말할 것 없는 설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밖에 남는 것이라 하면 아이의 행방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을 지니는 일련의 요소들을 차근히 되짚는 일이겠다. F, 너를 사라지게 만든 작은 균열은 무엇일까. 솔직한 감정을 늘어놓자면 모든 전말을 이해하는 나로서는 네 죽음의 명제를 굳이 증명하는 게 너무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간의 숨바꼭질의 경험 동안 나는 F 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오는 장면을 수없이 상상해왔었다. 어쩌면 너는 그 전번과 마찬가지로 전에 살던 집이 문득 그리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파이 한 조각을 챙겨 나가버린 네가 작은 여행을 마치고 나 돌아왔어 라며 내게 방싯 웃어 보인다면 참 좋으련만.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석연치 않은 불안감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파이 조각은 여전히 어린이 방에 놓여있었으며 F는 신발을 남긴 채 사라졌다. 나는 F의 죽음을 전제로 하였을 경우 차후 나의 처지는 어떻게 될는지 우두망찰히 생각해본다. 소멸? 기가 막힌 결말에 겁이 난 나는 온갖 이유를 다 대며 반박과 변론이 가득 찬 변명을 늘어놓고 싶어졌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진상을 밝힐 이를 나 스스로 자처해야만 하는 사정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증명에는 이미 익숙했기에 애써 침착하게 논리를 하나씩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죽음에 이르는 방법의 한 가지로서 아이의 자살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 보려한다. 남겨진 파이와 신발 한 켤레가 이야기의 닫힌 답안이 되기 위해서는 송장이 한 구 필요했다. 결말로서는 같아 보이나 자발적 죽음은 타살이나 사고사에 의한 죽음과 아주 확연하게 다르다. F는 자살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었는가. 편지며 의미심장한 넋두리를 들은 기억은 없었지만 미지의 유류품이 존재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다면 자유죽음의 사유는 무엇에서 기인 한 것인가. 나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였다.
어쩌면 F는 못생긴 다리라던가 또래에 비해 넓어 보이는 미간 같은 것이 신경 쓰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를 흠모하는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저를 사랑하는 법을 까마득히 잊어버려 순간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뿜어낼 수 없는 욕망이 주는 반감과 열등감이 저로 인해 폭로되어 스스로의 삶조차 책임지는 것이 버거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 또한 이러한 애욕이 지니는 불합리한 매커니즘에 관해 번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색정에 대한 갈망이 크면 클수록 그 반동은 커지기 마련이다. 나는 내 나름의 소녀다운 감성과 경험을 동원하여 F가 겪었을 사적인 고민거리를 철저하게 추궁해보았다. 허나 내가 아는 한의 F는 어른스러운 입맞춤이나 가학적인 섹스에 대해 무지했다. 서로의 눈꺼풀을 핥고 음부를 주물럭대는 질펀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앤 기껏해야 손을 잡거나 이름이나 불러보며 얼굴을 붉힐 아이였다. 정조라던가 단단하고 좁은 살결이며 어린애의 덜 여문 피부 맛을 떠올리니 오금이 절절하게 짜릿해졌다. 한입 베어물면 온통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일 것만 같은 그 감각을 상상하니 그 앨 이토록 애닳게 할 이가 없다는 확신이 논리정연해져 무척 호기로워졌다. 나는 이러한 사적인 층위의 이야기는 순위로부터 당장 제외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의 추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번 더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딱 한번 온전한 죽음에 관하여 F에게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고여 있는 물이 어떤 방식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뒤 흔드는 지에 대하여 나는 아주 열렬한 자세로 웅변하였고 죽음에 일종의 낭만성을 부여하는 그 원리에 F는 유심히 귀를 기울였었다. 그렇다면 나와 F가 선택할 장소는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새카만 물바닥에 파묻힌 네 주검이 개흙 사이를 질척이며 이따금 물살에 흔들리는 모양을 상상해보았다. 나는 워터폴로 향한다. 달이 빠져죽은 무른 물웅덩이의 표면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 물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평온하게 금빛을 쪼개어내는 물잔주름이 연신 나울거릴 뿐이었다. 결국 자살의 가능성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송장을 발견하는 것에 실패하며 흐지부지 끝났다.
실망하였는가? 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피해자가 사망하는 것으로 종결된 사건을 뒤늦게 보도 받고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어렴풋이 기억했다 이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당신은 시체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선호할는지도 모른다. 안다. 나는 당신이 일상의 따분함을 상쇄할만한 자극적인 무언가를 이 줄글로부터 발견하길 갈망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은 말 그대로 ‘괴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촉진할 수 없는 부유물이 되어버린 내 처지로서 즐길만한 오락거리는 머리를 굴리는 것 외에는 마뜩찮았기 때문에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장광설이라는 서사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미 눈치를 챘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장 그럴듯한 후보를 애써 마지막까지 미루는 중이다. 오지선다를 푸는 상황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나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무의미함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가장 터무니없는 선택지를 먼저 제외시키기 마련이지 않은가. 물론 나는 아이를 발견하기 위한 작은 단서들을 틈틈이 숨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괄식이 될 것이라는 뒤늦은 귀띔에 지금껏 시간이며 집중력을 허비했다며 분개했을 당신에게 이러한 진실이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나는 앞으로도 무심한 척 단서가 될 낱말을 넌지시 흘릴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편견에 눈이 가려져 지금껏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이쯤 되어 유심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는 사라진 아이를 집어삼켜버린 배경에 대하여 검토한다. F는 남편과 별거중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너는 한참 잊어버리고 있었던 통조림 캔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너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나를 만나기 전 네가 본디 가족과 살았던 당시의 문제가 지금에 와서야 촉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골치 아프게 된다. 진공상태에 있는 네 기억에 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독살한 이야기는 그 통조림의 상한 내용물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예감이 든다. 그 천성을 보건데 F는 어렸을 적부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께끄름한 마음을 떨쳐내기 어려웠으나 통조림에는 내용물의 이름도 기한도 적혀있지 않기에 나는 일단 체크 부호를 남긴 채 용의선상에서 이를 제외했다.
어쩌면 당신은 나라는 존재가 추론에 관해 신뢰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꾼일지에 대해 의심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진솔한 고백을 하나 해보려 한다. 나는 타인이 감히 괄목할 수 없는 가치의 시간을 F와 함께 해왔다. F를 정말이지 잘 알고 있는 내가 장담하건데 F는 그 누구보다도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순수하고 올곧은 아이이다. 몇몇의 당신은 페이지에 줄을 그으며 책을 읽은 경험이 있을 터이다. 반복적으로 구절을 읽어대면서 같은 위치에 비슷한 곡선을 긋는 행위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첫 의도와는 달리 줄을 긋는 행위에 저 자신을 무의미하게 던져 넣는 것에 오히려 가까워지게 된다. 애석하게도 제 능력이 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깨달은 F는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 이미 충분히 외워버린 장면들을 물리도록 반복하였다. 만족할만한 정답이 나올 때까지 노력한 아이의 시도는 50인분짜리 스파게티 소스 냄비에 향신가지를 몰래 넣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용광로에 빠진 기술자를 구해내고 대신 저 자신이 불구덩이에 삼켜지는 끔찍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물에 젖지 않은 모래알들을 힘겹게 끌어 모아 완벽한 모래성을 쌓는 행위와도 같았다. 이러한 F의 숨겨진 노고를 나를 제외하면 지하세계의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파도가 칠적마다 이전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한 채 잊혀 져야만 했고 F는 더욱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모래성을 쌓아야만 했다.
다음으로 나는 사건의 모든 전말을 회의적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실종 전 아이의 마지막 모습과 남겨진 현장의 상징에 대해 검토하려한다. 아이의 방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신발이 여러 켤레 있었다. 신발에는 하나같이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F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신발 꾸러미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남겨진 신발이 지니는 함의를 F가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신발 더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등 뒤로 나는 평소와 같이 F의 완벽한 두상의 형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F는 언젠가부터 고이 목에 걸어 간직하고 있었던 로켓을 꺼내어본다. 쪼개어진 하트에는 ‘영원한 단짝’이라는 글귀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다. F는 이 낱말들이 상징하는 대상물이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으며 자신 또한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제 기억을 애써 더듬는다. 아마 그 순간 F는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으나 한때 자신이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었던 단 한명의 인물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길쭉한 해골은 아이를 한번이라도 더 자주 만나고 싶었는지 F의 이름을 건 소모임을 열고 오로지 F만을 위한 파티를 계획하기까지 해주었다. 그때마다 내 눈에는 가끔 냉담해 보이기까지 했던 아이의 무표정이 조금씩은 풀리는 것만 같았다. 반복되는 회귀에 지쳐있었던 F에게 길쭉한 해골이 선사한 추억들은 아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F는 언젠가부터 거의 습관적으로 회귀를 하고 있었다. 이 시점의 F는 본래의 의도는 잊은 채 무감각하게 행동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길쭉한 해골의 선행은 아이가 지하세계의 괴물로부터 처음으로 얻을 수 있었던, 그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아주 선명한 신호였다. 이러한 만남이 좀 더 충분히 지속될 수 있었더라면, F가 그로 인해 어떤 소중한 감각을 다시금 깨우치고 용기를 얻을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조금은 다른 결말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F는 모종의 까닭으로 인해 이 순수한 해골 친구를 만나지 못한지 정말 오래였다. 비록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으나 이 사건은 F의 실종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였다.
나는 이제 용의자에 대해 검토해보려고 한다. 용의자. 방관자. 조력자. 피의자. 당신도 알다시피 용의자라는 표현은 범죄의 혐의가 뚜렷하지 않아 정식으로 범죄자로 간주되지는 않았으나 조사의 과정에서 대상이 된 모든 이를 일컫는 낱말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읽게 된 당신은 어쩌면 나의 단어 선택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하겠지만 나열된 예시의 표현이 있음에도 용의자라는 단어를 내가 선택한 까닭은 뒤이어질 몇 문장의 요약에 미묘한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한 미덕이다. 특히나 어떠한 시간선에서 아이와의 모험을 마지막까지 마친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선택에 나 자신의 합리를 들이대는 것을 거부하려 한다. 위의 단어 선택은 당신이 취하는 잣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예정이므로 글을 다 읽고 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남기고 나머지 표현을 볼펜으로 지워주면 참으로 감사할 것이다.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자면 당신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은 후 괴물들을 지하세계에 봉인하기를 최초로 마음먹었던 인간 마법사의 심정을 다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어쩌면 그 결계가 어떤 한쪽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술책이 아닌 양측 그 누구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서로 한걸음 물러서기 위한 선의의 악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본론으로 돌아가자. 지하의 주민들은 흔히 괴물이라 불린다. 지나치게 열린 마음을 지니게 된 당신은 어쩌면 두 글자짜리 가치비하적인 표현에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혹은 이 낱말을 격리를 합리하기 위한 인간이 이들에게 붙인 꼬리말이라 착각하여 괴물이라는 나쁜 말을 친구, 주민, 동료와 같은 완곡어로 치환하기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명칭은 내가 처음 지하세계에 떨어졌을 시기의 훨씬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괴물들 사이의 호칭으로 쓰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괴물들은 제 자신들의 내면적 본질을 대변하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마치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는 관습에 대해 이미 약속이 되어있는 듯 했다. 인간인 당신에게 ‘괴물’이라는 단어가 부여하는 인상은 심지어 혐오와 공포를 자아내기까지 하는 외견적인 추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추악해 보이는 외견 탓에 괴물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순수함. 단순함. 우매함. 아둔함. 좀 전부터 나는 자꾸 일종의 등급이 매겨진 표현을 나란히 늘어놓고 있다. 당신이 아직까지 동그라미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놀랍게도 F가 사라지기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같은 일이 이렇게 수차례 반복되는데 이쯤 되면 사고를 수습하는 법을 학습하지 못하는 나라님의 무능에 한탄이 나오고 하다못해 뒤늦게 나마라도 이후의 희생을 막기 위해 소시민들이 자체적인 체제라도 발족하는 것이 정상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러한 현상을 목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 나타났다 이내 홀연히 사라지는 아이들의 행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이를 수상하게 여기거나 진심으로 걱정한 괴물은 없었다. 지하세계의 주민들의 지붕널 너머로 혹은 작고 아늑한 주점에서 지금껏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두 차례 언급되기는 하였으나 어떠한 영향력을 지닌 소문으로 발전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풍조를 해석하기 위해 가십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또한 매우 부적절하였다. 금세 잊혀 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십이란 적어도 한차례 머물었다 사라지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골빈 녀석들만이 가득한 이 지하세계에서 소문이며 구전이라는 것은 남의 귀로 전해지는 즉시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었다. 가십거리. 풍문. 소문. 구전.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을 한 단어로 정확히 번역하는 인간의 언어가 무엇일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괴물들의 이러한 지적 차이. 결손. 문제점. 혹은 장애를 완벽하게 보완해 줄 수 있는 메아리꽃이라는 것이 이 지하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지하의 그 누구도 이 꽃에 관한 자세한 내력을 알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 꽃은 상호 이해. 소통. 교화. 교도. 아무튼 번역이 어려운 어떤 행위를 위해 노력을 했던 첫 인간이 분명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괴물에게 주게 된 인류 최초의 선물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메아리꽃이 위와 같은 의도대로 유용하게 쓰이는 법은 없었다. 저들의 우매함을 보충해줄 유일한 수단은 이들에게 있어 미래의 성공을 기원하는 토속 신앙의 일종 혹은 은밀한 욕망의 배출구에 불과했다.
여기 순박해 보이는 한 무리의 괴물이 있다. 이들은 어쩌다 주제거리로 튀어나오게 된 풍문에 관심을 주는 척 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여자는 건조한 눈가를 훔친다. 어머나. 어린 아이가 아닌가요. 아 어쩌다가 그런 처지가 된 건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겉으로는 동정하고 있으되 속으로는 사라진 아이가 품었을 법한 비관주의에 대해 무궁한 상상을 하는 것이다. 신발을 남기고 갔다니. 참 이상하죠? 이들은 흔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사라진 아이에게 맞추어보며 속으로 결말을 미리 단정 지어버린다. 그리고는 이내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내어 하하 호호 떠들기 시작한다. 지상과 지하 두 세계가 뉘앙스의 차이 없이 공유하는 개념 또한 존재하였다. 예를 들자면 좀 전의 대화 내용과 같이 두 세계에서 남겨진 신발이란 죽기를 작정한 사람들이 남기는 전형적인 자살의 증후였다. 지상세계의 통계적인 자료를 보아도 반박이 어려운 이 개념은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비극을 수습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섬뜩하게도 옷가지라던가 작은 리본을 판매하는 상인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인간의 용어로는 흔히 유품이라고 하는 이러한 것들은 지하세계에서 상품. 기념품. 전리품 혹은 약탈물이라 부르는 것이 적합했다. 아이는 그러한 현상을 보고 접하는 동안 상인들이 물품을 구비하는 방식에 관하여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중고품을 사들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죽은 이를 떠올릴만한 증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어머니에게 돌아간 유품은 없었다. 오로지 신발 두 짝만이 아이 방에 실종의 흔적을 하나 둘 남기고 있었다. 어쩌면 슬픔을 달랜다는 표현 자체도 지하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아이들이 신발조차 남기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어머니는 그러한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금세 잊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어디있는거니. 그 애가 정말이지 어디로 간 걸까요...? 그 아일 이토록 애타게 찾고 있는데... 나는 엄마의 그 습기 없는 울음을 몇 번째 보는 것인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열 손가락이 조금 모자라게 꼽아보던 헤아림을 그만 둔지 오래인 나는 그녀의 가식이 참으로 역겨웠다. 나 때에도 그랬듯 F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한 구절도 변하지 않는 수동적 애도의 표현을 앵무새처럼 토해놓으며 상투적인 슬픔을 연기하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이내 잊어버린 채 적응하고 말 것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집어삼킨 이 지하세계의 공간은 참으로 협소하기에 작정하고 마음먹기만 했다면 실종자를 발견하는 데에 한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 좁디좁은 지하세계를 단 하루 만에 달음질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지금까지의 사건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모든 지하주민들이 합심하여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더라면... 모두라니, 하다못해 F의 파티에 초대되었던 그 주요 인물들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노력을 했었더라면... 이런 일은 한 번의 비극적인 전례로만 존재하고 영영 반복되지 않았을 터였다. 좀 전부터 왜 자꾸만 이를 악문 소리를 내냐고? 아니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미 말했다시피‘ 라던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라는 표현은 이제 그만두고 싶어졌다. 이미 말한 것을 다시 언급하는 것에 변명을 늘어놓는 것에 이젠 지독하게 질려버렸다. 나의 진술에 도돌이표를 사용하는 것이 허가 되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더욱 간추려졌을 터였다.
이런, 아무래도 서술에 보편적인 인간의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된 것 같았다. 중언부언이지만 괴물의 도덕적 가치관과 그들만이 납득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 하다못해 사소한 인사방식 까지도 분명 인간의 그것과 미묘하게 빗겨나가는 점이 너무 많았다. 슬프게도 이 탓에 인간과 괴물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착각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서로의 풍토를 번역하는 것은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비꼬려는 것이 아니라 이는 나의 진심이다. 나는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노력을 하였으나 이를 중립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위와 같은 헤이트 스피치가 나오게 된 경위를 당신이 양해 해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주변의 괴물들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은 아이의 모습으로부터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를 외면하였다. 한두 장의 반창고 정도는 아이가 그 또래에 걸맞는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개구쟁이 아이라면 무릇 반창고를 두어개 붙일만한 크고 작은 장난으로 하루를 때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맨 살점을 대부분 가린 반창고의 숫자와 겨우 반창고로는 치유할 수 없는 심각한 상처들이 그 뒤에 가려진 것을 보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만약 F가 떨어진 곳이 지상세계였다면 적어도 누군가는 이를 아동학대 혹은 아동방임의 조짐이라 판단하였을 것이고 아이의 부모는 지금쯤 철창 너머에 있었을 것이다. 뼈다귀로 만든 얼기설기한 격자가 아닌 진짜 철창 말이다.
허나 괴물의 양육방식이란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기에 방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나의 주관을 차치하고 당신의 객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아이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F의 부모님은 사실 한때 나의 부모님이기도 했다. 하지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여기서는 그저 F의 어머니와 아버지라 칭하겠다. 글쎄, F의 어머니는 파이를 정말 잘 만드는 분이었다. 자기 전의 맛좋은 파이 한 조각은 F가 상처로부터 회복할 기운을 차리는 데에 도움을 주긴 하였으나 아이가 매일 밤 꿈꾸는 악몽까지 치유해주지는 못하였다. 학교를 세우고 싶어 했던 F의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농담책이 아니라 아동심리와 치유에 관한 책이었던 것 같다. F의 아버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것을 모르겠다. 사실 나와 F는 둘 다 아버지를 자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새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은 그 남자의 인상은 그나마도 덥수룩한 털에 가려 기억 속으로도 모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F는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언급하는 식의 실수 없이 내심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을 잊지 않는 기특한 아이였다. 나는 몇 번 보지도 못한 이 아버지라는 사람을 저렇게 존중할 줄 아는 F가 참 신기했었다. 부부가 별거를 시작한 것은 정말이지 한참 오래였던 탓에 사실상 나나 F가 그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우습긴 했다. F의 아버지는 하루의 대부분을 알현실에 머무느라 집으로 돌아올 겨를이 없었다. 분명 타인에게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책무가 있었을 것이다. 꽃을 돌보거나 차를 즐기는 등의 여가로 하루를 허비하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아주 중요한 일로 바쁘셨을 것임이 틀림없다.
모든 괴물이 무작정 단순하면서도 이타적이기만 했다면 이들을 용서하는 것이 보다 쉬웠을 테지만 어떤 괴물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 그 예로서 작고 뚱뚱한 해골이 하나 있다. 그 수많은 모임의 모든 장면에서 작은 해골은 키 큰 해골의 곁에서 연신 벙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저 짧은 해골을 참 싫어한다. 나는 거죽 없는 그 해골의 부자연스러운 껍질을 항시 경계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사려 깊어 보이는 미소를 하고 있으나 작은 해골은 제 동생 이외에는 전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파티에 참석한 이유 또한 너무도 뻔했기에 나는 코웃음이 뿜어져 나오고는 했었다. 참석한 이들 중에는 아이의 슬픔을 눈치 채기에는 멍청한 괴물들이 너무도 많았음에도 이 괴물은 사실 아이의 모든 변화를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간사한 이 괴물은 아이의 행복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변화의 가능성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간과되었다. 둘 사이에 항상 존재하던 불편한 기류가 점차 거칠어졌기에 나는 온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다. 회귀를 반복할 수 있는 F의 능력은 긴 해골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유용이 쓰였던 적이 많았던 탓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식으로 짧은 해골이 간섭을 하는 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해골은 항시 F의 능력이 품고 있는 나쁜 가능성을 지나치게 경계하였고 어느 날 결심한 듯 지금까지의 위선적인 행위를 무너뜨리더니 마침내 제 동생을 F로부터 떨어뜨려놓고 말았다. F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선의에서 근거한 것이었다. 비록 시간선을 회귀한 행위는 타인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이 일을 계기로 F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만 갔다.
F를 위태롭게 둘러싸고 있었던 이러한 상황들은 모두가 외면하였으나 나만이 올곧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실종은 아직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상황이다. 아직은 그 누구로부터도 호들갑이 시작되지 않았다. 최초로 사건을 발견한 나만이 이 와중에도 너는 힘껏 노력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네게는 말하지 않을 요량이었지만 네가 너무 그리웠다. 역시나 소거법이 적합했다. 이제는 마지막 단서만이 남아있다. 새카만 폭포물이 게워내는 부연 물안개를 뒤로 하고 나는 서둘러 너를 찾으러 향했다.
인광은 밝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이 묻혀있는 땅 위로는 항시 퍼런 도깨비불이 탄다고. 아직 썩지 않은 F의 뼈다귀가 저 꽃무리 사이에 묻혀있는 것을 상상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에 절박해진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꽃무리를 가로질렀다. 온통 정신없이 일렁이는 꽃그림자 탓에 사방을 분간하는 것이 힘들었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스치는 그림자들 사이로 F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리고 마침내, 좁은 회랑 사이에 흔들리지 않는 단 한 줄기 꽃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기억에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 나는 우뚝 멈춰서 미간을 찡그려야만 했다. 흐드러진 목련 꽃이파리처럼 작게 꼬부라진 등이 보였다. 메아리꽃 앞에 웅숭그리고 있는 그 작은 덩어리를 발견한 나는 조금은 눈시울이 붉어질 참이었다. 아, 너 여기있었구나. 나는 서둘러 F의 곁으로 날아가 깊이 숨을 들이쉬어 본다. 네 목덜미를 훑으며 싱그러운 향을 만끽한다. 아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쌉쌀하고 매운 향기.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걸신들린 듯 한참동안 네 체취를 탐식하던 나는 포만감을 느끼고 네게서 사뿐 떨어져 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F가 사라지는 바람에 지금껏 겪게 된 곤경에 대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토라짐이 가득 담긴 말투로 온통 투정을 쏟아내었다. 나의 작고 귀여운 골머리를 썩이던 그 수많은 걱정과 고민에 대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나는 문득 F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상하게도 F는 주저앉아 온통 몸을 웅크린 채 좀 전부터 말 못하는 식물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초췌해진 눈가가 어쩐지 온통 까슬해 보였다. F의 얼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못 느끼는 것처럼 맹한 표정이었기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메아리꽃 앞에 우두커니 서서 오그라들어있는 네 모양새를 보니 더 까탈을 부리는 게 못된 짓을 하는 것만 같아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F의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나는 내가 할 말을 지껄이느라 바빴기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지만 메아리꽃은 조금 전부터 같은 말을 읊조리고 있었다. 사실 F를 처음 발견했던 순간부터 나는 메아리꽃이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었다. 다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에 나는 그 소리로부터 의미를 파악 할 수 없었고 F가 저토록 풀이 죽어 시들어버린 이유를 그와 연관 짓지 못했을 뿐이었다. 귀를 기울이자 부서진 음소들로 구성된 그 웅얼거림은 낱개의 음절로 뭉쳐 점차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을 구성하였다.
히히히히히히. 그럴 리가. 엄마는 금세 다른 아이를 찾을 걸? 그리고 너 따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을 거야. 너는 다신 엄마를 못 볼 거라고. 히히히히...
결코 잊어서는 안될 저주가 아이의 귓전을 맴돌았다. F는 달싹이는 입술에 이따금 침을 적실 뿐 여전히 고개를 꺾고 있었다. F는 저 말이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곰씹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지하세계에서 오로지 F만이 메아리꽃의 사용법을 정확히 숙지한 것 같았다. 메아리꽃이 미친 듯이 반복하는 소리에 아이는 노력하는 방법을 이미 한참 전에 잊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꺾다. 지다. 시들다. 가녀린 한 송이 꽃이 된 아이의 내면은 제 외양에 완벽하게 걸맞는 동사를 뒤따르더니 죽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의 네 표정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흔히 한 발짝 뒤에 서서 네 표정을 상상하는 것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네 입으로 뱉아낸 더러운 소리는 탄생과 동시에 네 귓속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간 줄 알았는데. 메아리꽃이 공교롭게도 네 말을 엿듣고 있었나보다. 엿듣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한데 말이야. 그치? 플라위. 플라위. 나의 작은 꽃.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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