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서 올림
1-9화 모두보기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45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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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조금 전으로 되돌아갔다. 덕분에 차라가 죽는 모습은 다시샌즈와 프리스크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차라는 난입자를 노려보았다. 해골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뭘 봐?”
간결한 문장으로 시비가 들어오자 차라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길길이 날뛰어봤자 날 죽일 순 없어.”
“누가 모른대?”
“아는데 왜 사서 고생이야?”
“이봐, 네가 판 적도 없는 걸 내가 샀다고 하는 건 도둑질을 풀어 설명하는 거지, 안 그래?”
“네 동생 살인마한테 농담할 힘은 남아 있나 보지?”
“이 화법 꽤 좋은데. 질문에 질문에 질문밖에 없는 대화 말이야.”
샌즈가 한쪽 눈을 찡긋하자 차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이 치솟았다. 역겨운 해골.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익하다고 생각하며 차라는 아직 뜨끈한 피가 묻어있는 칼을 옆구리에 끼었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차라가 땅을 박차고 달리는 동안 샌즈는 멀뚱히 차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차라는 어떤 함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몸을 멈췄다. 왜 가만히 보기만 하는 거지? 차라가 멈춰 눈을 맞추자 샌즈는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안 달리고 뭐 해? 주특기잖아.”
차라는 속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러자 샌즈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차라는 샌즈에게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샌즈의 끄덕임은 다른 의미였다.
“아, 알겠군.”
샌즈의 눈이 깊게 꺼졌다.
“좀 쉬고 싶다, 이 뜻이지?”
바람을 들어주겠다는 듯이 바닥에서 뼈가 솟구쳤다.
***
세계는 조금 전으로 되돌아갔다. 덕분에 차라가 죽는 모습은 다시샌즈와 프리스크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차라는 난입자를 노려보았다. 해골은 웃어 보일뿐이다.
“우리 나중에 달리기 시합이나 해 보자.”
아까보다 길어진 문장으로 시비가 들어오자 차라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넌 항상 역겨운 생각만 하는군.”
“그래? 난 복에 겨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재수없는 놈.”
“어, 그거 지상에선 칭찬이야. 재수할 필요 없이 대학 붙는다는 말이거든.”
“…….”
“아 참, 너도 지상에서 왔지?”
샌즈가 한쪽 눈을 찡긋하자 차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다시 나갈 일은 없겠네.”
바닥에서 뼈가 솟구쳤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차라는 오른쪽으로 도약했다. 착지하자마자 왼쪽에서 날아드는 수십 개의 뼈들에 차라는 잽싸게 몸을 굴렀다. 엎드린 채로 샌즈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도저히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위쪽을 봐.”
차라는 고개를 홱 젖혀 위를 쳐다보았다. 뼈나 블래스터가 있을 거라 생각한 차라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다음 순간 하얀 뼈다귀가 위로 솟구치며 차라를 뚫었다. 뼈는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물들었다.
“그냥, 하늘이 예쁘길래.”
지하세계에 하늘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보편적 사실이다.
***
세계는 조금 전으로 되돌아갔다. 덕분에 차라가 죽는 모습은 다시샌즈와 프리스크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샌즈는 과대망상증자를 바라보았다. 살육마는 노려볼 뿐이다.
“와우, 엄청 빡친 듯한 표정이네.”
표정으로 시비를 걸자 과대망상증자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자구.”
샌즈의 왼손이 공기를 갈랐다. 차라는 뛰어올랐다.
***
무의미한 싸움이 반복되는 가운데, 숫자를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차라는 이번 싸움이 몇 번째인 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수십 번의 로드를 거친 건 분명했는데, 샌즈가 땀을 흘리는 것이 그 증거다. 해골은 지쳐가고 있었다.
차라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당최 이 두통이란 것은, 체력과 함께 되돌아가지 않고 더욱 부풀어 자신을 괴롭혔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 차라는 머리를 짚으며 로드했다. 두통 때문에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것보다 저 해골을 죽이는 것이 더 빠를 거다. 아니, 더 빠르다. 저 망할 해골바가지도 무한 로드 앞에선 굴복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은 샌즈의 패턴을 꽤 읽었다. 머리가 조금만 더 버텨준다면…
패턴?
차라는 선명해진 샌즈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패턴이라니? 리셋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에게 패턴이란 없다. 기분 내키는 대로 공격을 퍼부으니까. 그럼 혹시 저 놈도 프리스크처럼 된 게 아닐까? 아니다. 그렇기엔 샌즈의 저 힘들어하는 모습이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면 어떤 오류로 체력만 돌아가지 않는 걸까? 수많은 가설들이 혼잡하게 섞이었다. 샌즈는 뛰어오를 준비를 하지 않는 차라를 의아하게 여겼다.
“음, 그렇게 쳐다봐도 내가 닳진 않을 것 같은데.”
샌즈도 로드되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차라는 샌즈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눈치 못 챘어?”
“해골은 눈 없어.”
“프리스크가 이상하잖아.”
샌즈는 눈을 돌려 프리스크를 쳐다보았다. 옭아맨 손가락과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런가.”
“내가 로드할 때마다 쟤도 돌아가.”
“그래?”
샌즈의 애매한 반응은 차라가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저런 행동, 굉장히 짜증 난다. 차라가 한 마디 쏘아붙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확인해보지 뭐.”
차라는 자신이 언제부터 샌즈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곧 샌즈가 목소리를 냈다는 걸 알아차렸다. 샌즈는 차라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찍었다. 한 번 더 들어 올려 바닥에 찍었다. 샌즈의 손이 네 번 왕복운동을 하자 차라가 죽었다. 샌즈는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다. 세상이 흐려졌다.
***
프리스크의 두 손은 입을 막고 있지 않았다.
샌즈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세계와 함께 프리스크가 돌아갔다. 왜? 할 말을 잃은 채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몰랐나 보네.”
샌즈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일그러지는 표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었다. 차라는 말을 이었다.
“질문 하나만 더 하자. 왜 계속 똑같은 공격을 하는 거야?”
샌즈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조바심이나 더는 참지 못하고 재차 질문하려 했을 때 샌즈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방금 뭐라고?”
“왜 계속 똑같이 공격하냐고.”
샌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네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가 테스트해보고 있었어.”
차라는 기가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단지 그 뿐?”
“그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고.”
“그 다른 이유가 뭔데.”
뼈다귀 손이 차라의 머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헤, 이봐, 네 어깨 위에 올려둔 그게 머리라면 생각이란 걸 좀 해 봐.”
말이 끝나자 샌즈의 뒤편에 수십 개의 뼈와, 블래스터들이 나타났다. 샌즈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자 블래스터가 입을 벌렸다.
“처음부터 이러면 누가 재미있겠냐고.”
굉음 속에 파묻힌 자는 말이 없다.
“안 그래, 친구?”
***
사실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던가, 무언가 알아내기 위한 행동이었다던가 등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샌즈는 정말로 차라를 ‘골’려 주었을 뿐이었다. 차라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궁금했던 것, 그리고 처음부터 무작위로 공격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 그 이상의 이유는 정말로 없었다. 차라는 그 사실이 매우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이 놀아났다는 사실은, 차라를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훨씬 더 날뛰는 차라와는 달리 샌즈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다. 이대로 계속 싸웠다간 누가 죽을지는 자명했다. 있는 힘을 쥐어짜, 달려오는 차라를 향해 블래스터를 쏘았다. 차라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세계는 샌즈를 외면한 채 되돌아갔다.
***
샌즈는 숨을 몰아쉬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동되지 않았다. 어지러워지는 시야를 바로잡으려 노력했지만 그것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차라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동생 살인마는 백에 육박하는 횟수로 로드를 했고 그때마다 몸 상태도 다시 좋아졌지만 샌즈는 그렇지 못 했다. 차라가 전에 말해준 것처럼, 이건 오래 버티기 싸움이고, 어떻게 되든 자신은 차라를 이기지 못한다. 결국 끝은 없고, 결말은 샌즈가 패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샌즈는 이제 정말 한계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차라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결국은 이렇게 됐네. 파피루스, 이렇게 부지런했던 적도 참 오랜만이야, 그렇지? 파피루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어. 양말 안 치워서 그러는 거지? 오늘 안으로 빨래통에 넣을게. 대답이 없다. 헤헤헤, 화났어? 그릴비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그릴비는… 화(火)로 이루어져 있잖아? 파피루스는 웃는 대신 식칼로 변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샌즈는 파피루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댕그랑.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자 샌즈는 눈을 떴다. 차라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라는 자신의 발 끝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달달 떨며 머리를 움켜쥔 채로.
***
차라는 극심한 두통에 칼을 놓치고 주저앉았다. 바닥과 충돌한 무릎이 까져 피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건 두통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꾹 눌러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증폭되었다. 정말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아아아아아악!!!!!”
차라는 머리를 바닥에 박고 비명을 질렀다. 샌즈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랄 정도로, 부푸는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차라는 샌즈에게 죽여 달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고통에 가득 찬 신음뿐이었다. 곧 망치가 머리를 때린 듯한 기분이 들며 멍해졌다. 멍해진 머릿속에서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발 그만해, 이제는 날 놔줘, 죽이기 싫어, 네가 싫어, 지상으로 나가고 싶어, 그만 갖고 놀아줘, 날 내보내 줘, 캄캄해, 어두워, 더 어두워, 싫어, 여기 갇혔어,
네가 날 속였어.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검다. 그러다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눈을 떴다. 땀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 덩어리가 시야를 가렸다. 차라는 머리카락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핫랜드로군. 내가 왜 여기 있었더라? 아, 맞다, 싸우고 있었지. 근데 누구랑? 차라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차라가 버르적대고 있는 동안 다시샌즈는 프리스크와 샌즈를 데리고 연구소로 이동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구소의 불이 꺼져있었기에 샌즈는 팔을 휘저어서야 겨우 벽을 짚을 수 있었다. 벽을 찾은 샌즈는 등을 기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다시샌즈는 아무렇게나 앉았고, 프리스크는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스위치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 결과로 어떤 사물들에 종종 정강이를 들이박았다. 비명을 동원하여 겨우 스위치를 찾긴 하였으나 달칵 거리는 소리만 날 뿐 불은 켜지지 않았다.
“여기 불이 안 켜져!”
“그냥 와.”
프리스크는 다시샌즈와 샌즈 중 누가 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샌즈는 지쳐있으니 다시샌즈가 말한 거겠지? 프리스크는 다시 사물들에 부딪치며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짐작이 갈 때쯤 프리스크는 갑자기 나타난 귀신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변에 집히는 것 아무거나 던지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다시샌즈였다. 다시샌즈는 손전등으로 자신의 턱을 비추고 있었다. 빛이 만들어내는 명암은 흡사 호러영화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프리스크는 겨우 욕을 우겨넣었다.
“바닥에 이게 있더라고.”
놀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우연히 손전등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해있었기 때문에 다시샌즈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장난을 서슴지 않는 저질스러운 해골이 되었다. 겸연쩍은 기분을 느끼며 주위를 비추었는데, 연구소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또 다른 자신, 그리고 인간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어딜 간 거야?”
프리스크는 걱정과 불만이 섞인 한 마디를 내뱉으며 눈으로 손전등의 빛을 쫓았다. 아무도 없음을 깨달은 다시샌즈가 팔을 늘어뜨렸다. 그때 손전등의 빛이 바닥을 비추었다. 빛을 쫓던 프리스크의 눈은 그에 따라 바닥으로 향했고, 이상함을 느낀 프리스크는 다시샌즈의 손에서 손전등을 낚아챘다.
“잠깐만, 여기 이상해.”
마주앉은 프리스크와 다시샌즈 사이의 바닥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프리스크가 더 면밀히 살펴보자 곧 그을림 외에 다른 것도 있음을 알아차렸다. 검다시피 한 붉은 액체가 먼지와 섞여 얼룩져 있었다. 마치 검은 도화지에 회색 가루와 붉은색 물감으로 낙서를 한 듯한 모양새였다. 손전등이 프리스크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과 충돌했다.
“뭐… 뭐야.”
손전등을 놓친 프리스크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누구나 이건 예상할 수 있었다. 정적을 깨트린 건 누군가 터뜨린 실소였다.
“헤헤헤헤….”
다시샌즈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흘러갔다. 허무함과 허탈함이 다시샌즈의 온몸을 가득 채웠다. 프리스크 또한 그러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아무도 지켜내지 못했다.
나는 기적을 만들지 못했다.
‘나’라는 개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텔레비전이나 보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 좀 더 자랑스러운 업적을 세워보자면, 모두를 이끌고 지상으로 나갔던 것. 혼란스러워하는 인간들을 위해 초반에 대사 역할을 한 것. 그러나 나는 무능력하다는 걸 안다. 지상으로 나간 이유는 그저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 대사 역할을 하긴 했으나 어린 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들은 정부가 처리한 것. 사람들은 능력 있어 보이기 위해 위대한 업적 뒤로 진실을 감추곤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이 모든 일들은 나의 이기심과 무능력으로 비롯되었다는 걸, 나는 꼭꼭 접어 저 뒤편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한낱 어린아이 일 뿐이다. 나는 너무도 나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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