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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샌즈 혼자 남은 집에 프리스크가 찾아온 이야기 4.

딕슨(59.8) 2016.05.17 22:21:49
조회 6438 추천 54 댓글 11
														


 

 


1편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35489

2편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35493

2-1편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35565

 

3편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38826
 

 

두 편 연달아 올림.

 

아 이게 뭐라고 그렇게 시간 잡아먹었는지 모르겠다

흙손계의 대부 딕슨.

 

 

 

 

 

 

 

 

 

 

 

세이브 포인트를 만들어내자마자 샌즈가 시험삼아 작동해본 것은 '세이브' 였다.
그러니 그 돌만 찾아낸다면 돌을 완성시켰던 어제, 그러니까 프리스크가 집으로 찾아오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다.

 

 

 

토리엘을 찾아 길을 헤매는 동안 온갖 마주치는 괴물마다 샌즈에게 인사를 건네왔으며, 그 때마다 화답하며 토리엘의 행방에 대해 물었으나 아는 괴물은 없었다.


'아까' 이 근방이라고 했으면 폐허로 돌아가긴 부족한 시간인데..

 


샌즈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동안 주변을 탐색해나가다가,

 


결국 안되겠는지 '지름길'을 이용해 모든 곳을 돌아보기로 하고, 그녀가있을 법한 곳부터 뒤져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샌즈가 애니를 보고있던 알피스와 조우하고, 창 연습을 하던 언다인의 앞에 나타나 창에 꿰일 뻔하며 잠시 목숨이 위태로웠던 순간을 지나치고,

워슈아에게 강제로 물벼락을 맞아 씻김 당하고 베지토이드에게 받은 채소를 맛없게 우물댈 무렵이었다.

 

엉뚱한 여정도 여정이지만, 체력이 약한 그가 필요이상으로 능력을 사용해대서 샌즈가 스노우딘에서 폐허의 문으로 향하는 토리엘을 발견했을 때는 온 몸을 물과 땀으로

뒤집어쓴 채 걷는다기보다 그의 분홍색 슬리퍼를 땅에 끌듯이 해서 겨우 겨우 앞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머, 샌즈."


토리엘은 그를 보고 일단 그 굉장한 상태에 놀란 듯했다.

 

"..아주머니."
힘없이 웃으며 드디어 찾았다는 안도감에 샌즈는 다리가 풀리는 기분을 느끼며 작게 휘청였고, 그에 토리엘은 놀란 듯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손을 들어올려 사양을 표하는 샌즈에 움직임을 멈춘 토리엘은, 그래도 자못 걱정스러운 태도로 그를 계속해서 살피는 기색이었다.

 

 

"..할 얘기가 좀 있어서요. Heh, 핫 랜드 부근에 계셨다던데 빨리 오셨네요."


"네..?  아, 뱃사공이 모는 배를 타고 왔으니까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


샌즈는 자조적인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조심스러운 듯 샌즈를 살피던 토리엘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샌즈, 절 찾아다닌건가요?"


의아함과 당혹스러움, 그 어딘가에 사이를 둔 그녀의 감정이 그 목소리와 표정에서 잘 묻어났다.


 

"네.. 그런데 자리를 좀 옮길까요."


샌즈는 마을 괴물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토리엘을 그릴비 건물의 뒷편으로 인도했다.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만, 이곳을 지나는 괴물들이라면 그릴비 건물 뒷 편을 기웃거릴 시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 맛좋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하나라도 더 즐기기에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건물 뒷편에서 샌즈와 토리엘 단 둘이 마주하게 됐고,

무언가 조금 당황한 듯 하면서도 초조해보이는 토리엘의 모습이 그의 눈구멍에 매달린 땀방울로 희끄무레하게 비춰졌다.

 


".. 별 모양의 돌 갖고 계시죠?"

 


샌즈는 불쑥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아까부터 초조한 기색의 토리엘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네?"하고 되물었고, 그 모습은 샌즈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뭐, 어디서 났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그걸 저에게 돌려주셨으면 해서요."

힘들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샌즈가 말했다.

 

출처를 캐물어 그녀를 도둑처럼 몰고 싶지 않았다.

아주머니라면 분명 뭔가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심한 노곤함을 느끼며 축축 쳐지는 몸을 그릴비 건물에 의지해 등을 기대곤, 노곤함속에 몽롱해지는 의식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그의 뒤에서

​누가 초저녁부터 낮술을 하는지 혀 꼬부라진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헤. 이 시간에 술이라면 벤이겠군.

대충 그렇게 생각하며 똑바로 고개들어 마주하게 된 토리엘의 표정은..

그녀는 두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누가 보더라도 늦다고 생각될 정도로 시간을 지체하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 그게 샌즈 거였다구요?"

 

숨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


샌즈는 의아한듯 고개를 끄덕였고, 토리엘은 아니... 그럴리가.. 그렇지만... 하는 식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샌즈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돌의 생김새에 대해 설명했고 그 말을 듣는 토리엘의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표정은 점점 차갑게 굳어져 갔다.

 


"정말 죄송해요.. 그 돌은 버렸어요, 샌즈."


그렇게 들려오는 토리엘의 목소리는 어딘지 냉정했다.

 


샌즈의 눈구멍이 크게 뜨였다. 두개골이 흔들리는 기분을 느끼며 경악은 천천히 찾아왔다.


이런 식의 대답은 상상치도 못했다.


버렸다고.? 원래의 시간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세이브 포인트를?

 


샌즈는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급히 등 돌리려는 토리엘의 팔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녀의 모습은....

 

 

 

거짓말이다.

 

 

샌즈는 느낄 수 있었다.


토리엘은 샌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귀가 크게 붉어져있었고 전체적으로 허둥대며 크게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새.. 샌즈. 제발 놔 줘요."


사실을 말하지 않는 염소의 이유는 뭘까.


"돌을 주세요, 아주머니."


"그건, 그건 버렸다고 아까 제가-"


"Heh, 그거 처음으로 하시는 재미없는 농담같은데 두 번은 듣기 싫네요."


토리엘은 얼굴을 크게 붉히더니, 팔을 거세게 흔들어 샌즈의 손을 뿌리치고는 빠른 기세로 모퉁이를 돌아 샌즈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잠시동안 샌즈는 토리엘을 다시 붙잡으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하아."

 

곧 샌즈는 두개골을 짚고는 골치 아픈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왜 저렇게 나오는거지? 이유없는 거짓말을 할 괴물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탐할 괴물은 더더욱 아니다.


도대체 왜...


...? 그 때 골치아픈 표정으로 토리엘이 사라진 모퉁이를 바라보던 샌즈의 눈에 뭔가 띄었다.

 

 

모퉁이 뒤로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작게 찍혀있는 발자국.


그 발자국은 그들이 이 곳으로 올때까지만 해도 없던 흔적이었다.


그 곳은 토리엘과 자신이 있던 곳과는 좀 떨어져 있어서, 모습을 볼 순 있어도 소리를 듣기엔 어려웠을 정도의 거리였다.

 


샌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이 시간선으로 와서 하는 행동들 때문에 뭔가 변하고 있었다.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세이브 포인트도 돌려받지 못하고 알 수없는 불길함만 잔뜩 떠안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힘없이 돌아오게 된 샌즈는,

곧 "새애애앤~즈! 오늘은 내가 특제 스파게티를 만들테니까 일찍 들어오라고 했잖아!" 하며 집 앞에서 농성하듯 후라이팬을 휘두르는 제 동생 파피루스를 마주하곤
한숨섞인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Heh.

 


".. bro."


"녴? 샌즈, 몰골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사고라도 난거야?"


"그거.. 재밌는 농담이 될 수 있을것 같네. 내 몰'골'이 어떤데?"


평소같았으면 새애애앤~즈!! 하고 기함했을 파피루스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허리숙인 채 제 형을 걱정스러운듯 들여다보고 있어서 샌즈는 속으로 좀 당황했다.


"...형을 진흙탕에 빠뜨린 뒤 세탁기에 돌리고, 다시 진흙탕에 빠뜨리고나서 세탁기에서 탈수시키면 이렇게 될 것 같아."


" ..그거.. 정말 상상하기 무서운 몰'골'이겠는데."

 

어쨌든 이유 붙일 필요없이 즉각 방에 올라가 무조건적으로 이불 덮고 푹 쉬라는 파피루스의 단호한 처방이 내려져서, 샌즈는 초저녁부터  자신의 방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그 덕에 파피루스의 특제스파게티는 피할 수 있었다.

 


뭐, 다른건 참고먹을만 해도 '특제'가 들어간 것은 정말 '특히' 힘든 맛이었으니까.


그래서 '특제'인가?

 

그리고 곧 피식이며 8년 전 팝이나 원래 시간선의 팝이나 역시 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샌즈는 깊은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토리엘에게서 돌만 되찾아 온다면, 이 곳에서의 일은 더 이상 신경쓸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곳은 자신의 시간선이 아니었다. 이미 지나왔던 길이며, 다시 걸을 필요도 이유도 없는 길이었다.


샌즈는 파피루스의 처방대로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일 일찍이 일어나서 폐허로 찾아가 토리엘과 다시 이야기를 잘 해볼 참이었다.


샌즈는 침대에 몸을 누이며 한 쪽 팔을 옆으로 길게 뻗었다.


아차.


프리스크에게 팔베개를 해주던게 몸에 베었는지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자신의 행동에 절로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고작 하루인데...


샌즈는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며 가슴 한 켠이 뻥 뚫린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자신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헤, 내가 있어서 이 집이 다 좋다고 했던가.


자신에게 환히 웃어주던 프리스크의 얼굴을 떠올리며, 샌즈는 몹시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좋은 미소를 띄운 채 잠이 들 수 있었다.

 

 

 

 

 

 

 

 

 


"들어와요, 샌즈."


토리엘의 얼굴은 하룻밤새 수척해 보였다.


아침 일찍 찾은 폐허의 굳게 닫힌 문을 보며 토리엘이 열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토리엘은 마치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샌즈의 노크 한 번에 바로 문을 열어 그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토리엘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가 후다닥하며 샌즈의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어린 프리스크였다.


프리스크는 단발머리에 파란 바탕에 보라색 줄무늬 티셔츠까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어릴 때 꼬맹이였던 작은 모습 그대로였다.


샌즈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인사하려고 했으나,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치마폭을 붙잡곤 그녀의 뒤에 쏙 숨어버렸다.


그건 샌즈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없는 반응이었다.

프리스크가 그를 피해 숨어버리는 것.

 


"아가야, 인사해야지? 샌즈잖아, 네가 좋아하는."


프리스크는 고개를 젓곤 그녀의 뒤에 더 매달렸고 토리엘은 "어머 애가 왜 이러지.."하며 곤란한 듯 샌즈의 눈치를 살폈다.


"Heh. 괜찮아요. 그보다 오늘..."


그때 때마침 토리엘의 핸드폰이 울렸고, 토리엘은 샌즈에게 양해를 구하며 따라나서려는 프리스크를 간신히 만류하곤 핸드폰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이 나갔던 문만 바라본 채 마치 울 것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프리스크."

 


갑자기 들려온 샌즈의 목소리에 프리스크는 흠칫거리며 금방이라도 뒤돌아 도망칠 듯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상천데.


샌즈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꼬맹이에게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왜 도망치려는 거야? 내가 무서워?"


하지만 그간 프리스크의 행적들을 돌아봤을 땐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무서워하는 상대에게 백 번도 넘는 고백이라니.


게다가 샌즈의 계산이 정확했다면, 프리스크가 자신에게 첫 고백을 했던 날짜는 이틀 전, 그러니까 샌즈가 이 시간대로 떨어진지 고작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 동안 프리스크가 날 피할 일이 뭐지?


프리스크는 샌즈의 시선을 피해 눈알만 데구르르 굴렸다.


그리고 자신의 애꿎은 티셔츠만 잡아당기며 입술을 우물대더니,

곧 더듬대는 목소리가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아주머니랑, 아주머니랑 사귀는거지?"

 

샌즈는 정신적으로 한 대 맞은 표정이 되었다.

 


"어제 둘이 있는거 보고..."

프리스크는 말 끝을 흐렸다.

 

그제서야 샌즈는 모퉁이 뒤에 찍혀있던 작은 발자국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식의 상상의 전개라니.


어제 어땠더라.

다른 괴물들이 없는 인적드문 곳에서 단 둘이 이야기하다 도망가려는 팔을 붙잡으며 얼굴을 붉히고 그 팔을 뿌리치고 뒤돌아 도망가는 토리엘...


샌즈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고 오른손으로는 아파오는 두개골을 짚었다.

 

 

"그런거 아ㄴ.."


"제가 좀 늦었죠, 죄송해요 샌즈."

 


때마침 통화를 끝내고 토리엘이 들어왔고, 대치상태로 서 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미소지어 보였다.


"아.. 둘이 얘기 중이었나보네. 자리 피해줄까요?"


프리스크는 아까 샌즈의 대답을 마저 듣고싶은 듯 말없이 샌즈를 올려다 보았지만, 샌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뭐, 별 얘기 없었어요. 그보다 오늘 우리 얘기할 게 있잖아요."


샌즈는 프리스크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지금의 샌즈 태도에 상처받았다는건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작은 연인이 상처받는것은 그로서도 물론 마음 아픈 일이지만, 지금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세이브 포인트였다.


그래야 8년 전 과거의 이 시간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제 연인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프리스크, 둘만 해야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리 좀 피해줄래?"


"......"


입을 꾹 다물고 샌즈를 올려다보는 프리스크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졌다.


"어서."


샌즈는 엄격하게 말했고 프리스크는 돌연 홱 하고 몸을 돌려 거실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달리더니, 곧 문을 세차게 여닫으며 문 밖으로 사라졌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샌즈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정말 프리스크를 위한다면, 돌을 빨리 찾아 제 시간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면 이 곳에서 있던 일은 모두 없던 일이 될 거야.


 

토리엘은 프리스크가 나간 문을 잠시 마음 아픈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샌즈에게 고개돌렸다.

 

"아이한테 꼭 그렇게까지.."

 


"뭐,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죠. 돌을 돌려주세요."

 

......

 

토리엘은 잠시 아무말 없이 샌즈를 바라보았다.

 

 

"제가 돌을 버렸다고 해도.. 믿지 않겠지요?"

 


"..유감스럽게도요."


토리엘은 자신의 모아 쥔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중요한 일로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내게도 양보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다고 한 번만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샌즈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거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감곤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건..."

 


"잠깐 앉아서 얘기할까요?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네요."


토리엘은 벽난로 앞의 안락의자로 자리를 옮겼고,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샌즈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토리엘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애초에 둘이 따로 나가지 않고 프리스크를 내보낸 것도, 토리엘이 어제처럼 도망가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으니까.

 


벽난로 앞에 하나만 있던 안락의자는, 프리스크가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


토리엘은 차까지 내왔고, 어느 덧 둘은 황금꽃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혼자 지내던 집은 너무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가와 함께 지내다 보니 집이 꽉 들어찬 것같은 기분이 들어요. 오히려 좁아보일 정도죠."

 


"...Heh. 그거 '골'치 아프겠네요."

 


"후후. 아니요. 오히려 지금이 좋아요. 혼자서 그 동안 이 곳에서 어떻게 지내왔나 싶고. 샌즈도 동생과 지내니 잘 아실거에요.
파피루스가 어느 날 갑자기 독립하겠다고 나오면 집이 얼마나 휑해질지 충분히 짐작하시죠?"

 

"그거 동생의 스파게티 배식도 그날로 함께 끝난다는 의미가 되는데.  집안이 휑해짐과 동시에 확실히 위장은 평화로워지겠죠."


토리엘은 웃었고 샌즈도 유연하게 미소지었다.


겉으론 웃고있지만 사실 속으론 그렇게 애가 바짝바짝 타들어갈 수가 없었다. 샌즈는 들고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 아주머니."

 


"토리."

 


"네?"

 


"...토리라고... 불러주세요."

 

 

샌즈는 잠시 당황한 얼굴이 되어 토리엘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힌 채 뭔가 수줍어하는 듯한 염소의 의미는..

 


샌즈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은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그제서야 프리스크와의 교제시작을 알렸을 때 필요이상으로 경악하던 모습과, 극렬히 반대하며 눈물 흘리던, 지쳐보이던 자신을 걱정스런 눈길로 세세히 살피던,

달아나는 팔을 붙잡았을 때 발갛게 붉히던 귀까지 그 조각난 의미들이 하나 하나 짜맞춰지기 시작했다.

 


토리엘은 찻잔에 두 손을 감싼 채 그곳에서 아직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김 을 들여다보며 나른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스고어와 별거하며 산 지도 꽤 오랜시간이 흘렀지요.

폐허 안은 적응되면 무척 좁아져요. 그래도 혼자 몫의 고독은 감당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하루하루 폐허를 관리하며 지내왔어요.

그러다 어느 날은 지하세계로 통하는 문을 살피러 갔었는데 그 곳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어요. '똑똑'하고 말이죠.


토리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뒷 이야기는 샌즈도 잘 알고있었다.

 


며칠 간 그녀와 노크 장난과 썰렁농담들을 나누었던건 다름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전 제가 웃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누군가와 소소한 농담을 나누며 즐기는 그 단순한 기쁨을 잊고 살았던거죠.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이 문 밖의 괴물은 어떤 분이길래 저렇듯 재치있는 농담들을 하시는걸까. 어떤 분이시길래 나를 이처럼 웃게할 수 있는걸까.'"


토리엘은 눈을 감았다.

 


"..제 호기심에서 출발한 감정이 어떤 형태로 무르익었는지 알게 되었을때, 정말 주책이라고 생각했어요.이 나이를 먹고. 전 남편과 헤어진 경력까지 있는 여자가 정말 우습지도 않다고."


샌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지하세계에서 그와 농담을 나눌 수 있는 동료였고 동시에 그의 농담을 가장 잘 이해하고 웃어줄 수 있는 최고의 청중이었다.


토리엘은 프리스크의 엄마같은 존재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샌즈에게도 확실히 남다른 의미의 괴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 감정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내준지 오래다.

 


"스노우딘에서 아마 당신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리고 '돌' 문제로 당신과의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다면 전 절대 이런 이야기를 꺼낼 기회도 용기도 없었을 거에요."

 


토리엘의 조용한 말에,

샌즈는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확실히 '자신의 시간선'에서 토리엘이 샌즈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일은 없었다.


샌즈가 세이브 포인트에 휩쓸려 이 시간선으로 떨어지지 않았다연 아마 평생토록 모를 일이 되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전."


"토리요."


"..토리. 저는.."

 


자신의 마음속을 몽땅 내비친 너무나 진솔한 고백을 듣게 된 샌즈는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샌즈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들여다보던 토리엘은 잠시 후 갑자기 미소지었다.

 


"샌즈. 재미있는 농담 하나 해줄래요?"


"..농담이요?"


"네. 하나 해주세요, 오랜만에."

 


샌즈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토리엘을 쳐다봤지만 토리엘은 그저 무료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선사할 재담꾼의 입담을 기다리는 청중의 표정이 되어 있을 뿐이다.


Heh .


그런 식이라면.


샌즈는 어깨를 으쓱이며 예의 익살맞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 산맥은 뭘까요?"


"흠... 글쎄요. 모르겠네요."


"안 '데스(death)' 산맥이요."

 


토리엘은 웃었다.


그냥 웃는것도 아니고 배를 잡고 고개는 한껏 뒤로 젖힌 상태로 깔깔대며 포복절도했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를 정도로, 그녀는 평생 처음 웃어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웃었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녀는 간신히 진정하며 눈가를 닦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샌즈는 그녀의 웃음이 그칠때까지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토리."

 


"하하.. 샌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줄래요?"


샌즈는 말없이 토리엘을 바라보았고 토리엘은 그 시선을 조용히 받아냈다.

 


"할 말이 있는 건 알아요. 그래도 부탁드려요."

 


조용히 미소지은 토리엘의 표정은 정중하지만 무척이나 단호해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할 재고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럼 다음 기회에."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샌즈에, 토리엘은 자리에서 따라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손님을 문 앞까지 배웅하지 않는 일은 샌즈가 아는 한으론 전례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었고, 샌즈도 작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기 전, 잠깐 돌아본 그녀의 뒷모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며칠동안 샌즈는 간격을 두고 폐허의 문을 두드렸으며,

이제 대답없이 잠잠하기만 한 그 문은 샌즈에겐 이제 문이 아니라 그냥 벽과도 같았다.

 

 

"똑똑."


샌즈는 공허하게 그 문에 대고 손 뼈를 두들겨보았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그 날 이후, 토리엘은 폐허에 틀어박혀 지하세계로는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비추지 않게 되었고, 방문객들의 부름에도 답이 없게 되었다.


토리엘은 예의를 아는 괴물이었다.


이렇게 방문하는 괴물들을 문전박대하며 모른척하고 지낼 괴물이 아닌지라 샌즈를 포함한 괴물들의 걱정은 날로 깊어져갔다.

한 날은 폐허에서 언제 나왔는지 스노우딘 눈밭에 쪼그려앉아 나무 막대로 바닥에 낙서하는 프리스크를 발견하고 샌즈는 피식이며 아이에게 손짓했다.


저번일도 까맣게 잊은듯, 샌즈를 보곤 눈에 띄게 환해진 얼굴로 달려오는 프리스크를 보고 그 볼을 살짝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샌즈는 현재 토리엘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러자 아이는 금새 실망한 얼굴이 되어 아주머니는 지금 아파서 누워있다고 웅얼대듯 대답했다.​

 

아프다니. 샌즈는 놀란 낯 빛이 되었다.

 


"허, 아프다고? 그럼 의사를 불러야지."


"아니.. 아주머니가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랬어.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나도 알 거 같아."

 


왠지 나이에 맞지 않는 조숙한 이 대답에도 샌즈는 웃지 못하고 그간 토리엘의 이상한 행적이 모두 자신때문이었음을 깨닫고는 가슴사이로 조용히 젖어드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사실 그런 토리엘의 걱정보다, 돌려받아야 할 세이브 포인트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자신의 내면을 깨달으며 더 큰 자괴감도 함께 맛봐야했다.


그렇게 어두워진 샌즈의 표정을 한동안 말없이 들여다보던 프리스크는 잠시 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묘한 종류의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안되겠다."


".. 뭐라고, 프리스크?"

 


프리스크는 샌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가지고 놀던  나무 막대기를 손에 들고서 샌즈의 곁을 떠나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샌즈는 죄책감에 젖어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프리스크의 '포기하는 미소' 였음을 깨달은 것은 조금 뒤늦은 훗날의 일이었다.

 


프리스크는 결계를 부수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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