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만 갖고 썼음. 짤쟁이는 짤만 뽑아야된다는걸 알았다. 글쓰는 놈들 조따 신기하다.

최근 들어 인간은 굉장히 시시하게 굴었다. 그 뻘건 눈깔만은 항상 광기로 번들거렸지만 샌즈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죽기 일쑤였다. 그러길 벌써 세 달 째였다.
매일 같은 일을 하다보면 싫증날 법도 했지만 어느 쪽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니 끝날 일도 없었다.
오늘도 인간은 언제나처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폐허 문을 밀고 나왔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너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듯이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안쓰러운 LOVE를 가지고 샌즈를 이기려 들었다. 너무 뻔한 패턴. 샌즈는 그가 발악하듯이 휘두른 장난감 칼을 가볍게 피했다. 덕분에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한 인간이 해골 옆으로 스쳐 꼬꾸라졌다. 뻔한 흐름, 하품나는 이야기. 마치 가장자리가 헤진 옛 동화책을 보듯이 기승전결이 또렷이 읽히는 전개. 샌즈는 가볍게 허공에 손짓했고 인간 발 밑에서 난잡한 모양으로 날카로운 뼈가 치솟았다.
비릿한 피냄새가 났다. 샌즈는 또 한번의 시시한 승리였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려고 했다. 등 바로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 샌즈. 왜 이렇게 느슨해졌을까? 그래,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지루한 과정이었어.
인간은 연극톤으로 자문자답을 하며 패닉으로 뻣뻣하게 굳은 해골의 등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 올렸고 그 손을 신경질적으로 홱 쳐내려던 가는 팔은 오히려 그 손에 너무 쉽게 붙들렸다. "참 신경 쓸게 많단 말이야."단단히 잡힌 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이어졌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기껏해봐야 인간의 허리만큼 오는 작은 해골의 완력으로는 택도 없었다. "경계심이 완전히 잠들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렸어."
샌즈의 왼 뺨에 핏 내나는 손바닥이 감겨왔다. 구겨진 눈 새로 불꽃이 홧홧 치밀었다.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찬찬히 얼굴을 쓰담는 인간의 의중은 샌즈에겐 항상 불투명했다. 역겨운 놈 같으니. 저런 놈을 두고 방심이라니 끔찍한 실수였지만 아직은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머리만 날려버리자.
먼지가 옷에 내려앉는 것과 인간의 터진 생 살이 옷에 묻는 것은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피와 살 조각으로 칠갑을 하게 될 게 뻔했다. 평소라면 더러워서라도 주저했을 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설령 잘못해서 자신까지 먼지가 된다고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니리라. 샌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허공에 가스터 블래스터의 동그란 안광이 떠올랐다. 작은 변화였지만 인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완벽한 드라마의 순간.
숨 죽인 채 왕 앞의 말이 움직이길 기다리던 여왕은 눈을 반으로 접고 해골의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어렵게 얻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생각이 없단다." 왼 뺨을 배회하던 차가운 손가락이 눈을 파고들었다. 샌즈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발 끝까지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팔이 덜걱거렸지만 여전히 인간의 오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손가락은 빠르게 눈 속을 침투해서 해골의 빈 눈에는 없어야 할, 알 수 없는 저항을 자비 없이 헤집었다. 끅끅거리는 신음성 끝에 두개골 속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옳지. 인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드디어 해골의 손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샌즈는 저도 모르게 눈구멍을 감싸 쥐고 새된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앉았다. 인간은 그걸 온전히 꺼내다가 입 안에다 굴리면 무슨 맛이 났을까하는 소소한 후회를 하며 눈 밭에 해골 앞으로 가는 동그란 발자국을 만들었다.
작은 해골은 주저 앉은 채로 벌벌거리며 신음했다. 눈을 뜨려고 시도할 때 마다 피인지 뭔지 알아보기 힘든 액체가 더 질척하게 얽혀 붙는다. 불규칙하게 숨을 삼키는 꼴이 인간이 보기에 썩 괜찮았다. 샌즈가 우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꽤 오래된 기억이라 오래 생각해야했다. 세 달, 아니 네 달 전이던가. 뭐 때문이었지? 음, 아무래도 좋았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광경이니 최대한 눈에 담아둬야지.
인간이 자신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안다면 틀림 없이 보는 이가 질식할 만큼 혐오가 짙게 담긴 눈빛을 던졌겠지만 아쉽게도 샌즈는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샌즈는 고통으로 이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무진 애를 썼다. 평소에도 부족한 수면시간으로 그리 맑은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난항이었다. 눈밭에 드리운 인간 그림자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니?" 능글거리는 목소리. 괜찮냐니, 꾹 깨문 잇새로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샌즈는 저 입을 당장 못쓰게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날카롭게 팔을 휘저었다. 그러니까, 샌즈는 중력으로 폐허 문에다 인간을 내다꽂을 생각이었다. 인간은 선 자리를 두 번 휘휘 확인하고 어깨를 과장스럽게 한번 으쓱였다. 보랏빛 안광이 끊어질듯 미약하게 망가진 눈틈으로 새어나왔다. 아. 이번에는 가스터 블래스터를 불러오려고 했다. 인간은 하품하는 시늉을 했다. 다급하게 뼈를 쏟아 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샌즈는 뒷목이 싸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인간이 보란듯이, 오만하게 웃었다.
샌즈는 그 감각을 오래전에 느낀 적이 있다. 사고회로가 멈추고 손끝이 저릿하도록 무력한 감각. 땅을 짚은 손이 떨려오는 것을 샌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려다봤다. 빨리, 뭔가, 해야만. 역겨운 승리의 미소가 샌즈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긁어내리는 듯 했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 것 같네. 그렇지?"
나긋한 말소리. "그 많은 친구들을 네 손으로 죽였잖아. 날 막으려고." 그 말소리가 축축하고 끈적하게 흘러 내린다. "네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살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바닥으로 고여서 서서히 차오른다. "그런데 너는 날 막지도 못했네." 다리를 옭아매고 "가엾은 아스고어." 허리를 끌어내리며 "메타톤, 알피스, 언다인. " 가슴께를 자근자근 밟고 올라서서 "그리고 파피루스." 마침내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찰랑였다.
소름끼치는 고요. 먹먹한 귓가에는 오로지 지하에 살아 있는 것은 둘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숨소리만 요란히 들려왔다. 아니 고요해진 것은 그 많던 생각들과 공포가 차갑게 가라앉은 머릿속일 수도.
샌즈는 인간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버틸만한 충격이었을텐데도 인간은 해골의 무게를 버티지 않고 눈 밭에 픽 쓰러졌다.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완벽한 드라마. 각본 위에 놓인 초침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성 잃은 해골의 충분히 날 서지 못한 손 뼈 끝이 얼굴 가죽을 찢으며 파고들었다. 한 웅큼 집힌 살 가죽이 그대로 뜯겨나간다. 뚜드득, 그그극. 기괴한 소리가 열린 폐허 문 안으로 메아리 쳤다.
쓸 수 있는 모든 말을 지워 놓고 여왕은 일부러 무능한 왕의 한 칸 앞에 섰다. 형태를 잃은 입술이 뒤틀린 웃음을 지으며 뻐끔거렸다. 뭔가 말하려는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다음은 목을, 그 다음은 심장 언저리를,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샌즈는 인간을 엉망으로 북북 찢어냈다. 여전히 살아서 꿀럭이는 심장 박동이 천천히 잦아들다 멎을 때까지 하얀 눈 위에는 핏꽃이 가득 피어났다. 살점이, 내장이, 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해골의 옷 위에도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그그극, 쁘드득. 언제더라, 인간이 숨을 쉬지 않게 된게? 역시 상관 없었다. 내장이 쏟아져 발치에 치여도, 드러난 창백한 뼈에 손 끝이 미끄러져도 샌즈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죽음마저 이 역겨운 생명체에게는 과분한 안식일테다. 이제는 하나 뿐인 숨소리가 가쁘게 지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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