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나 리젠이 안좋을때 찾아오지
자기 전에 후편을 마저 써올 수 있기를 빈다..
"난, 난 엄마라고 할 자격이 없어... 내가 어떻게,"
내 자식이 즉사했기를 바라는 내가, 내 아이들의, 고통을 바란 내가 어떻게...! 아아, 나는, 난...
소독약 냄새가 울렁대는 병원. 복도 의자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토리엘의 앞에서, 샌즈는 위로의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얀 안광을 꺼트리고 조용히 서있었다.
사실은 그 역시도 아이의 즉사를 바라고 있노라고, 그녀에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 *
결계가 깨지던 날, 샌즈는 다른 5마리의 괴물, 그리고 1명의 인간과 함께 절벽 위에 서있었다. 푸르게 펼쳐진 대지. 그 위에 반쯤 걸친 태양과, 그를 둘러싼 붉은 물을 들인 하늘은 기나긴 괴물생에 있어서 처음 마주한 지상의 풍경이었다. 모든 괴물이 지면에 쓰인 글자로만 알고 있던 그것은 마주하니 경외심마저 들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모두가 그 얼굴에 쬐이는 따스하고 포근한 빛을 느끼며 행복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샌즈는 그 순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형! 샌즈으-! 언제까지 자고있을거야!!"
아래층에서 고함치는 파피루스의 목소리에 샌즈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뿌연 시야로, 굳게 친 암막커튼 사이를 집요하게 뚫고 들어온 빛줄기가 보인다. 샌즈는 그 진득함에 진저리를 치면서 커튼을 걷어내었다. 촤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커튼에 매달리던 햇살이 이번에는 샌즈의 새하얀 뼈 표면 위로 들러붙었다. 샌즈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빛 입자를 제 뼈에서 털어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샌즈!!! 이 게으른 해골!!"
"알았어, 알았어 팝. 지금 내려가.."
1층 부엌에 있는 파피루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샌즈는 웅얼거리면서 바닥을 더듬어 슬리퍼를 꿰어신었다. 북슬북슬한 털이 발뼈에 감겨 샌즈의 날선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티셔츠와 후드집업을 주워입었다. 며칠동안 계속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뭐, 지상에 올라오기 전부터 그것은 아무래도 낫지 않는 작은 뼈 괴물의 고질병이 아니었던가.
어제와 같은 상의 하의를 걸친 작은 뼈다귀는 방을 나서 1층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 덜 깬 잠에 샌즈는 눈을 감은 채 얼추 먹음직스러운 토마토 소스 냄새를 쫓아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눈을 뜬 샌즈는, 그만 거실 벽에 아무렇게나 걸린 달력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만 것이다.
오늘일 날짜에 빨간 펜으로 그려넣은 동그라미가, 순식간에 샌즈의 정신을 물밖으로 끌어올린다.
"헤, 이런...."
"샌즈!!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내가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또 늦잠이야?!"
부엌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파피루스가 국자를 휘두르며 샌즈를 질책한다. 국자에 묻어있던 새빨간 스파게티 소스가 이리저리 튀어나갔지만, 파피루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 샌즈의 나쁜 버릇을 윽박지르는 일이 더 중요한 듯 했다. 샌즈는 제 옷을 향해 매력을 어필하려 드는 소스를 마법으로 치워버리면서 파피루스에게 대꾸했다.
"팝,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 국자가 묻은 소스를 휘두르는 건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녜헥!! 맨날 그렇게 말하면서 고치지를 않잖아 형은!"
"음, 이번엔 진짜야. 정말로 반성하고 있다구"
눈 감고 집안을 걸어다니다가, 껄끄러운 것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 말야. 샌즈는 평소처럼 가볍게 윙크하면서 뒤이어 나올 말을 갈비뼈 밑으로 삼켜버렸다.
"흐으음, 이번 한 번만 더 믿을거야... 늦었으니까 얼른 아침 먹어!"
언다인하고 알피스는 벌써 도착했대!! 파피루스는 들뜬 마음으로 소리치며 부엌으로 돌아가버렸다. 혼자 남은 거실에서, 샌즈는 창문으로 스미는 햇빛을 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서서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달리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복판. 오늘은 모든 괴물들의 숭고한 영웅, 프리스크의 22번째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 * *
샌즈는 꼬마의 손 안에서 빛나던 의지의 별을 기억한다.
그것은 벌써 수 년 전. 괴물대사로 일하던 프리스크가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간사회와 최종 협약을 맺던 날이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이 괴물을 차별하는 것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나아가 괴물들은 인간과 동등한 지적 생명체로서 대우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수장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TV로 지켜보며 샌즈는 지상의 괴물 마을이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옆 소파에 앉아있던 파피루스는 TV에 비친 프리스크를 보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안 곳곳을 날아다녔다. 게다가 파피루스는 평소에 사양해 마지않던 그릴비에 가자며 제 형을 잡아끌었다!
프리스크에게서 문자가 온 것은, 샌즈가 마을의 괴물들이 전부 모여들어 미어터질 그릴비를 상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샌즈, 나 좀 데리러 와줄래? 보여줄 게 있어.]
샌즈는 안광이 꺼진 눈구멍으로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헤.. 팝, 먼저 그릴비에 가 있어."
"뭐?! 이시간에 또 어디를 가려고??"
"우리들의 위대한 괴물대사님이 감히 그 신성한 발로 직접 걸어오시게 놔둘수야 없지, 안그래?"
금방 다녀올게. 그 말에 파피루스는 샌즈를 막아서던 것을 멈추고 오히려 빨리 가라며 재촉했다. "헤.." 동생의 매정함을 뼈에 새기며 샌즈는 프리스크가 보내준 장소를 향해 지름길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샌즈 앞에는 파피루스 대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괴물대사가 서 있었다.
"동생 키워봤자 소용 없다니까. 널 데려오라고 팝이 날 집에서 쫓아냈다구, 어떻게 생각해?"
"그것 참 미안한걸... 사과의 의미로 머스타드 한 병 사줘도 될까?"
"흠, 그거 미안해하는 거 맞지 친구?"
"샌즈가 머스타드를 좋아하는 만큼은 미안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문현답이군."
프리스크는 시덥잖은 농담을 몇마디 주고받고는 대뜸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기'로 가자, 우리가 태양을 봤던 그 절벽. 작은 해골의 평온함에 순간 금이 갔지만, 샌즈는 곧장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프리스크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매케한 도시의 매연 대신 청량한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바로 몇 초 전 샌즈와 프리스크가 있었던 도시의 조명들이 제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야심한 시간에 나같이 연약한 뼈 괴물을 불러낸 이유는 뭐야, 꼬맹이?"
불과 몇 분 전을 기준으로, 인간이 괴물한테 상해를 입히면 중죄가 되는걸.. 알고있지?
샌즈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을 꺼냈지만, 프리스크는 그저 한 번 씨익 웃고는 샌즈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아이의 반응에 샌즈도, 조용히 프리스크와 마주보았다.
아이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샌즈, 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지."
프리스크의 이야기가 실타래 끝부터 천천이 풀려나간다. 샌즈는 내심 꼬마가 얼른 할 말만 하고 끝내기를 바랬지만, 기색을 눈치챈 프리스크가 필요한 이야기라며 잠깐만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인간의 부탁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샌즈는 자신도 모르게 저 멀리 지평선 너머를 힐끗대며 프리스크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귓구멍에 담았다.
"그러니까... 음, 내가 처음 지하에 떨어졌을 때, 난 그냥 무서웠어. 사방은 처음 보는 곳이고,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처음 플라위를 만나 친절 알갱이를 받았을 때는... 그래, 어쨌든.
처음에는 그저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 결계고 뭐고, 그냥 파란 하늘이 다시 보고싶었어. 그래서 '의지'를 다졌어."
'의지'
그 낯익은 음절에, 샌즈는 자꾸만 엇나가려는 자신의 집중력을 그러모았다.
"하지만 토리엘을 만나고, 너와 파피루스를 만나고, 또 수 많은 괴물들을 만나고.. 그들하고 친구가 되면서 내 안의 목표가 구겨지고, 펴졌다, 뭉그러지고. 그리고 마침내 아스고어의 앞에 섰을 때, 난 내 안의 의지가 뿌리내려 양분삼았던 목표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어. 난 너희들하고 다 함께, 지상의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진거야.
...아스고어 대왕님을 죽인 건 정말 본의가 아니었어, 변명같겠지만. 그리고 나 혼자 지상에 나와 태양을 봤을 때, 내 안의 의지가 소용돌이쳤지. 그래서 난 시간을 리셋했어."
"잠깐만, 꼬맹아.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네가 안다는거 다 알아, 샌즈."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을 응시하던 프리스크는 고개를 돌려 샌즈의 눈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샌즈는, 마치 뱀 앞에 놓인 생쥐가 된 심정으로 프리스크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프리스크의 안에서 움틀대는 의지의 끝자락이 그 속에서 보이는 듯 했다.
"네가 짐작하고 있듯이, 난 몇 번이고 다시 시작했어. 지하의 가보지 않은 곳을 구석구석, 모든 장소를 이 잡듯이 뒤져보고. 다 같이 지상으로 나갈 실마리가 어디에 숨겨져있지는 않을까, 되는 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해보면서. 그리고 그만큼 실패했고, 동시에 의지가 타오르는 한 나는 포기하지 않았지.
...그리고 난 마침내 여기에 왔어."
샌즈는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프리스크의 눈동자가, 그 안에 일렁이는 의지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의지는 흔적없이 눈동자 속에서 사라졌다. 샌즈는 자신을 옭아매던 압박감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프리스크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는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와 함께 태양을 봤어...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까지 했지. 이제 의지가 뿌리내릴 곳이 없어졌어."
봐, 샌즈
괴물의 이름을 부른 프리스크는 문득 한 손을 허공에 펼쳐보인다. 그리고 샌즈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손바닥 위에서 둥실거리는 흐릿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거의 안 보일 듯 투명했지만, 점점 선명해지더니, 갑자기 확 노란 빛을 터뜨렸다. 순간적인 섬광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샌즈는, 이어 빛이 잠잠해지는 기색에 눈을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손 안에서 태양처럼 반짝거리는 그것은, 작은 별이었다.
"꼬맹아... 그건,"
"..."
지평선 위에서 아이와 샌즈, 그리고 모든 것을 밝힐 듯 빛나는, 의지의 별.
샌즈의 머릿속에서 샌즈는, 빛이 자신을 집어삼킨 뒤 눈 뜨자 다시 스노우딘의 눈밭 위에 서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은 갑작스레 타오른 것 처럼, 갑작스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샌즈는 그제서야 아이의 손안에서 빛나는 별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세상을 삼킬 듯 빛나던 것은 아이의 눈 앞을 겨우 밝힐 즈음까지 사그라들고, 이내 점점이 부서져내렸다. 마치 괴물의 최후처럼. 모든 게 먼지로 화하고는 공중에 녹아들어갔다.
사방이 다시 어둠에 휩싸이고, 마침내 아이의 손이 빈손이 될 때까지. 샌즈는 그 과정 전부를 고스란히 두개골 안에 담았다.
"우리는, 다시는 이 별을 볼 수 없을거야. 장담할게"
오래 걸려서 미안해, 이걸 말하고 싶었어. ...음, 이것뿐이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망연히 서있는 샌즈에게, 아이는 말 끝을 얼버무리며 찡그린 웃음을 보낸다.
프리스크는 별을 품었었지만 이제는 비어버린 제 손을 무력한 뼈 괴물에게로 내밀었다.
"이제 돌아가자"
마치 모든 처음에서 아이와 나눴던 친구를 사귀는 악수같다고, 샌즈는 생각한다.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보고 작은 해골은,
"어"
어디로?
라고 물어볼 뻔한 것을 꿀꺽 삼켰다. 붉은 태양이 샌즈의 눈구멍 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서있는 절벽은 어두운 밤이었다.
"어, 그래. 팝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꼬맹아."
샌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윙크하며 프리스크의 손을 마주잡았지만, 바르르 떨리는 손뼈 끝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둘이 지름길을 사용해 떠나면서, 샌즈의 시선은 마지막까지도 검은 수평선 너머에 못박혀있었다.
* * *
"녜헤헤헤!! 위대한 파피루스님이 지금 막 도착했도다!!"
"안녕 친구들. 많이 늦진 않았지, 안그래?"
느아아아!! 안 늦긴 뭘 안늦어!! 문을 열고 나타난 뼈다귀 형제에게 깃발장식을 달던 언다인이 큰 소리로 윽박을 질렀다. "음, 원래 주인공은 제일 늦게 등장하는 법이지, 녜헥!" "오늘 주인공은 네놈이 아니라 프리스크다!!" 언다인은 소리치며 파피루스의 멱살을 잡고, 그 뒤에 선 샌즈는 순간 왼쪽 눈에 시퍼런 안광을 피워올린다. 구석에서 얌전히 선물상자를 포장하던 알피스마저도 기겁하며 언다인을 말리기 위해 포장지를 내팽게치고 달려간다.
그 엉망진창인 광경을, 토리엘만이 멀리서 지켜보며 훈훈한 웃음을 지었다.
"호호, 다들 사이가 정말 좋네요. 안그래요?"
"...그렇,소. 정말 훈훈한 광경이구려, 토리.."
"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스고어"
전 부인의 매정한 태도에 침울해진 아스고어의 모습에도, 토리엘은 콧방귀만 뀌고는 파이를 굽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안쓰러운 광경에 한창 드잡이질을 하던 다른 괴물들조차 그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아스고어 녀석, 덩치는 저렇게 큰데 숫기라고는 하나도 없군..."
"아, 아냐! 대왕님이 지금은 저러셔도, 고, 공식석상에서는 위엄이 넘치셔... 정말로"
"내 기억으론 프리스크 뒤에서 폼이나 잡으면서 서 있던 털복숭이 기억밖에는 없는데."
"프리스크는 이 파피루스님 다음으로 제일 위대한 인간이지! 녜, 헤, 헤!"
"어어, 맞아. 프리스크의 연설은 저..정말 대단했어...!!"
그리고 아스고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세 괴물은 염소괴물의 연애사 대신 프리스크의 영웅담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리스크 팬 모임'에 복슬대왕마저 슬쩍 끼어들고, 그리고 샌즈는, 저도 그곳에 동참하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 이야기꽃을 피우는 괴물 셋을 지켜보았다. 프리스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은 즐겁고, 행복해보였다.
샌즈는 화제의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튀기 전에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 샌즈. 무슨일인가요? 다른 분들하고 이야기 나누지 않고."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기운 넘치는 젊은애들 사이에 끼기에는 이미 '뼈' 삭을 나이라서요."
"음.. 다 큰 애가 딸린 아줌마 앞에서 그런 소릴 하다간 '골'치 아파질걸요?"
토리엘이 냉장고에서 파이 반죽을 꺼내며 작게 키득거렸다. 샌즈는 그 사이 식탁 제일 구석에 위치한 의자에 올라앉았고, 시선 끝 냉장고 문짝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사진들을 발견했다. 눈구멍이 무심코 그것들을 관찰했다. 어린 프리스크와 토리엘이 집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사진. 스포츠카 앞에서 폼을 잡는 파피루스와 함께 찍힌 프리스크의 사진. 슬픈 만화라도 본 건지 엉엉 울고있는 언다인과 알피스, 그리고 구석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프리스크의 사진 등등... 그리고 그 많은 사진들 중앙에 붙어있는, 괴물들과 아이가 그 절벽에서 다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샌즈는 자신 몫의 그것을 지하에 있는 비밀 연구실 서랍에 처박아둔 것을 기억해냈다.
"시간 참 빠르죠. 지상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지금 이렇게 아이의 22번째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니..."
토리엘은 샌즈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그를 따라 냉장고에 붙은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아직 어린 프리스크의 모습에 아이의 어머니는 감상에 젖었다. ...샌즈는 그녀의 말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파티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이었다.
"흠... 아주머니, 꼬맹이는 언제 온대요?"
"아! 내정신좀 봐, 빨리 구워야 먹기 좋게 식을텐데!"
토리엘이 급히 화염마법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새하얗던 파이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이어 샌즈가 아직도 왁자지껄한 거실에 대해 언급하자, 토리엘은 그들에게 프리스크의 귀가시간이 얼마 안남았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혼자 남은 부엌에서 샌즈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얀 안광이 사라지고, 작은 몸이 힘없이 주륵 미끄러진다.
그 날 이후, 프리스크에 대해 생각할 때 마다 샌즈의 눈구멍 속에는 노란 빛이 어른거렸다. 그 전엔 그나마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었던 껍데기마저 그 노란 빛이 자꾸만 허물어버렸기에, 샌즈는 최대한 프리스크와 엮이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아이의 생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이마저도 피한다면 파피루스가 발 벗고 나설 것이 뻔했으므로, 샌즈는 자꾸만 조각나는 껍데기를 억지로 붙여가며 버텼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꼬맹이는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다른 괴물들도 그런 샌즈의 어색함을 눈치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그렇다 해도, 샌즈는 일부러 물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별달리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꼬맹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은, 말이지'
뼈 괴물이 작게 헤 하고 웃었다. 그 힘 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토리엘이 거실에서 괴물들에게 주의를 주는 소리가 부엌에까지 들려왔다.
"...아이가 곧 올거에요! 그러니까 얼른 마무리하고, 그리고... 어머, 날이 어두워졌네. 아침까지는 쨍쨍했는데..."
토리엘의 목소리에 샌즈는 하얀 안광을 띄우고 창 밖을 확인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창 밖의 하늘이 회색 구름으로 빼곡히 뒤덮여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모양새다.
샌즈는 눈이 아닌 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구름에 가려져 햇빛이 들지 않는 것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샌즈는 다시 눈구멍을 닫았다.
"비가 오면 프리스크가 좀 늦게 올지도 모르겠네요."
가물거리는 정신 때문에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샌즈는 부디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프리스크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 *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저녁시간을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에 토리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빗속에 아이를 찾으러 뛰쳐나가려는 토리엘을 다른 괴물들이 말렸다.
길이 엇갈릴 수도 있지 않느냐. 깜짝파티였으니 아이가 모르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일 기념으로 절친과 파자마파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모든 말에도 토리엘은 좌불안석이었다. 당연했다. 프리스크는 제가 말해놓은 귀가시간을 지키지 않는 아이가 아니었고, 늦을 일이 생겼을 때 연락하지 않는 아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위로의 말을 하는 다른 괴물들조차 프리스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불안해했다. 샌즈를 제외하고.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로, 프리스크는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아스고어가 토리엘과 함께 남아있기로 하고, 다른 괴물들은 저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샌즈는 다른 5마리의 괴물, 그리고 1명의 인간과 함께 절벽 위에 서있었다. 푸르게 펼쳐진 대지. 그 위에 반쯤 걸친 태양과, 그를 둘러싼 붉은 물을 들인 하늘은 기나긴 괴물생에 있어서 처음 마주한 지상의 풍경이었다. 모든 괴물이 지면에 쓰인 글자로만 알고 있던 그것은 마주하니 경외심마저 들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모두가, 그리고 샌즈마저도, 그 얼굴에 쬐이는 따스하고 포근한 빛을 느끼며 행복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샌즈는 그 순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빨리감기한 테이프처럼, 태양이 순식간에 저물어 어둠을 몰고왔다.
갑작스레 덮친 어둠 속에서 샌즈는 혼자였다. 파피루스, 언다인, 알피스, 토리엘, 아스고어. 그리고 프리스크마저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절벽 위가 텅 비었다.
샌즈는 갑자기 물에 빠져 수영하기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저를 잠식한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파, 팝! 파피루스! 어디야, 어디갔어!! ...언다인...? 아, 알피스...! 아주머니! 토리엘!! 아스고어!!!
동생과 다른 괴물들을 불러보아도 어둠은 여전했다. 지평선 너머 태양은 흔적도 없고, 저 멀리 보이던 도시의 불빛마저 지금은 검기만 했다.
샌즈는 지하로 돌아가려 뒤를 돌았지만, 그곳에는 본 적도 없는 새까만 나락이 샌즈를 반기고 있었다.
*아, 으...
다리에 힘이 빠진 가여운 해골 괴물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소동물처럼 바짝 엎드려 몸을 웅크렸다. 사위를 덮친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키려 꾸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샌즈는 썩은 동앗줄이라도 잡으려 허우적거리듯, 마지막으로 자신이 아는 가장 자비로운 인간의 이름을 떠올렸다.
*꼬,맹아... 프리스크...
그리고 샌즈는 등 뒤에서 떠오르는 빛줄기를 느꼈다. 불과 몇 분 전 느꼈던 태양의 따스함이 두려움에 떨던 해골의 등뼈를 어룬다. 아,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의 여명이 찾아왔으리라. 샌즈는 기대에 차 몸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태양을 보기를 고대하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샌즈는 지평선 위에서 빛나는, 거대한 의지의 별과 마주했다.
거대한 별은 순식간에 산산조각나더니 먼지로 화해 사그라들었다. 다시금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샌즈는 그 세상 한가운데 망연히 서 있었다. 그의 뒤로, 지하에서 뻗어나온 검고 질척한 손이 샌즈의 온 몸을 휘감고 끌어당겼다. 그걸로는 모자란지 검은 손은 샌즈의 기억마저 둘둘 휘감았다. 저항도 하지 않는 샌즈는 제 기억이 그 질척함에 녹아드는 것을 관망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눈을 떠도 어둠뿐일 것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으리라 생각했다.
시끄러운 이명이 샌즈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삐리리리-
시끄러운 휴대폰 소리에 샌즈는 번뜩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방 안에 해골의 가쁜 숨소리가 가득이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옷이, 샌즈의 갈비뼈에 철썩 들러붙어 불쾌감을 주고 있었다. 샌즈는 저가 또 악몽을 꿨음을 깨닫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팔을 들어 눈구멍 위로 올려놓자니 차게 식은 팔뼈가 오히려 달갑다.
삐리릭-. 계속해서 울려대던 휴대폰 소리가 뚝 끊겼다.
샌즈는 문득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해졌다. 아직 창밖은 어둡고, 빗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많이도 쏟아지나보군. 샌즈는 한 손으로 더듬거려 제 눈 앞으로 휴대폰을 끌어왔다. 어둠 속 밝게 빛나는 액정이 표시하는 a.m 4:13, 6건의 부재중전화 그리고 2건의 문자메시지 표시가 해골의 두개골 뒤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이 시간에 자신에게 전화를 해댈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두개골 속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텅 빈 두개골 속에서 해답이 '없음'을 찾았을 때
삐리리리-
이번에는 거실에서 전화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피곤에 절은 뼈들을 질질 끌고 아래층까지 내려가야 했다.
새벽 여명이 들지 않는 거실은 어둡고 빗소리로 질척질척하다. 그 속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벨소리만 혼자 붕 떠있었다. 날카로운 벨소리가 두개골 안쪽을 갈작대는 듯, 거슬리는 느낌에 샌즈는 빨리 수화기를 집어 귓구멍으로 가져갔다.
"헤, 지금 시간이면 해골이 '골'로 가있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 샌즈인가?]
샌즈의 농담을 끊은 목소리는 아스고어의 것이었다. 자신만큼이나 지친 목소리, 그리고 그 뒤로 함께 들려오는 토리엘의 울음소리가, 식은땀 마냥 샌즈의 등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미안하지만 지금 병원으로 와줄 수 있겠나..?
아이가, 프리스크가...]
죽었다네...
그리고 샌즈의 사고가 멈췄다. 아스고어는 답하지 않는 샌즈가 충격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병원 주소를 문자로 보내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 정적만이 남았음에도 샌즈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냥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제 앞에 있을 어둠, 혹은 스노우딘의 눈밭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 앞에는 지상에서 구입한 전화기가 놓여있었고, 자신은 수화기를 손에 든 채 귓가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거실은 여전히 빗소리로 가득했다. 시간은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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